하이힐, 그 속에 담긴 이야기
남성의 자존심에서 여성의 무기가 되기까지. 하이힐이 걸어온 유구한 역사 속 숨은 이야기.
“신발은 패션의 완성이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신발은 스타일링의 완성도를 높이는 중요한 아이템이다. 하지만 미학적 관점만이 전부는 아니다. 신발은 과거부터 성별을 구분하거나 사회적 지위를 대변하고 저항을 표현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사회적인 동시에 역사적 의미를 지닌 것이다. 현대 여성 패션의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하이힐 역시 과거에는 귀족 남성들이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착용했다. 하이(high)는 ‘높다’를, 힐(heel)은 ‘발뒤꿈치’를 뜻하는데, 뒷굽이 높은 여성용 신발을 통칭하는 하이힐의 시작은 기원전 3500년경 고대 이집트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벽화에서 알 수 있듯이 낮은 계급은 맨발로 생활했고, 오직 상위 계급만 굽 있는 신발을 신어 권력을 과시했다. 굽 높은 신발을 통해 하위 계급을 내려다보는 권력과 영향력의 욕망을 드러낸 셈이다. 이후 9세기경 페르시아에서는 하이힐이 특권층 남성의 신발로 자리 잡았다. 승마를 할 때 굽을 등자에 걸쳐 안정적인 자세로 활을 쏘거나 전투에 임하기 위한 기능적 이유 때문이었다. 승마는 귀족과 부유층이 즐기는 취미였기에 굽 높은 신발 또한 자연스레 부와 권력을 의미했다.
이처럼 권력과 남성성을 상징하던 하이힐은 17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아름다움을 위한 신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유리 구두가 등장하는 동화 <신데렐라>가 17세기 말에 등장한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유행의 중심에는 태양왕 루이 14세가 있다. 절대왕정의 정점에 있던 루이 14세는 콤플렉스였던 작은 키를 보완하고 다리 라인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굽 높은 하이힐과 스타킹을 신었는데, 이 스타일은 곧 프랑스 궁정 귀족들 사이에 유행을 일으켰다. 붉은 굽은 시각적 우월성과 함께 강력한 권위를 상징했다. 18세기 들어 남성과 여성의 하이힐은 점차 다른 모양새로 발전했고, 여성의 하이힐은 더욱 화려한 디자인으로 탈바꿈했다. 프랑스혁명 시기에 잠시 사그라진 하이힐의 기세는 19세기 중반부터 다시 거리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20세기 할리우드 배우의 등장과 함께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전설적 슈즈 디자이너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1937년 웨지 힐을 처음 선보였고, 로저 비비에는 15세기 베네치아 거리의 진흙과 오물을 피하기 위해 등장한 초핀(chopine)에서 영감받아 현대적 플랫폼 슈즈를 창조했다. 1950년대 들어 굽은 점차 가늘어졌고, 흔히 ‘뾰족구두’로 불리는 스틸레토가 탄생했다. 스틸레토 창시자가 페라가모인지 비비에인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스틸레토가 등장하면서 여성들은 당당한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메릴린 먼로, 베티 페이지, 제인 맨스필드 등 할리우드 배우와 핀업 걸들이 스틸레토를 즐겨 신으며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팜 파탈의 상징이 되었다. 하이힐은 스틸레토 외에도 슬링백, 메리제인, 키튼 힐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마놀로 블라닉, 크리스찬 루부탱, 주세페 자노티 등 세계적 디자이너들이 다채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며 영역을 넓혀갔다. 수천 년에 걸쳐 변신을 거듭한 하이힐은 말 위에서부터 왕궁과 무도회, 그리고 현대 거리에 이르기까지 시대 흐름과 함께 진화해왔다. 권력과 욕망, 실용과 허영이라는 서로 다른 가치를 품으며, 어느덧 하이힐은 패션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과거에도 그랬듯, 지금도 많은 이가 하이힐을 신은 당당한 모습으로 자신만의 아름다운 스타일을 완성하고 있다.
에디터 김유정(yjkim@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