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영감 받은 반클리프 아펠
반클리프 아펠 한국지사장 스테판 라에와 스타일리스트 서영희의 대화에서 퇴색되지 않는 명품의 가치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1 1950년대 리브즈 클립과 이어링은 한지로 만든 꽃에 달아 청자에 꽂았다.
2 꽃과 거북이를 묘사한 1940~1960년대 클립과 한지로 만든 겨울 풍경. 화보에 쓰인 한지는 모두 장인 이순재의 작품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며, 시간이 빚어낸 역사는 누구도 탐하지 못한다. 그렇게 한 겹 한 겹 쌓인 이야기는 어떤 물건의 가치를 높이며 사람에게는 사라지지 않는 능력이 된다.
명품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그렇다. 시간과 숨은 이야기의 조화만이 사치품을 뛰어넘는다. 프랑스 하이 주얼리 & 워치 브랜드 반클리프 아펠은 1895년부터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명품의 영역에서 ‘사랑스러운 우아함’이라는 말의 뜻을 보여줬다. 파리 방돔 광장에 위치한 많은 호화로운 주얼리 하우스 중 가장 페미닌한 브랜드로, 또 기술적으로는 가장 엄격한 메이커로 자리매김했다. 지퍼처럼 여닫으며 팔찌로도 쓸 수 있는 지퍼 네크리스(1950)나 보이지 않는 스트링으로 보석을 유연하게 고정하는 미스터리 세팅은 1930년대 출시할 때만 해도 충격적 시도였으니까. 반클리프 아펠의 화려한 쇼윈도에 가려 미처 몰랐던 그들의 역사를 지난봄부터 9월 31일까지 서울에서 볼 수 있었다. 한국가구박물관에서 시작해 강남 신세계백화점 쇼룸에서 마무리한 <반클리프 아펠 헤리티지 컬렉션> 전시다. 192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반클리프 아펠의 주요 아이템 40여 점을 소개했는데, 이 아이템을 새로운 작품으로 바꿔놓은 스타일리스트 서영희의 손길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우리 패션계에서 옷에 국한된 코디네이터의 영역을 패션뿐 아니라 비주얼에 관한 모든 스타일링을 책임지는 위치로 넓혔다. 서영희는 한복을 실마리로 더하기보다는 덜어내는 스타일링으로 확고한 인물. 저 멀리 이국에서 날아온 반클리프 아펠의 주요 아트 피스와 한국적인 것에 천착하는 스타일리스트가 한지와 갓 같은 우리 전통 소재를 활용해 원래의 형태와 기능을 넘은, 새하얀 제3의 세계를 화보에 열었다. 다이아몬드와 모시, 프랑스와 한국. 누가 봐도 이질적 소재지만 매칭의 이유를 이해하기 쉬웠고, 잘 어우러져 더욱 고와 보였다. 어쩌면 참으로 강한, 고유의 시그너처를 지닌 메이커와 스타일리스트의 만남이 궁금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제안한 스테판 라에(Stephane Larher) 반클리프 아펠 한국지사장과 서영희를 만나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 계절이 지난 전시지만 회고하는 자체로 명품에 대한 정의로 자연스럽게 귀결되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스튜디오에 먼저 도착한 서영희의 지난 연휴 에피소드다. “라에 사장이 백제시대 유물얘길 하며 공주박물관 방문을 권했어요. 그래서 가족들과 함께 주말에 나들이 삼아 공주에 다녀왔죠.”
라에 사장은 리치몬드 그룹에서 오랫동안 일했다고 들었습니다. 지사장으로는 한국이 첫 부임지고요. 당신에게 한국은 그만한 애착이 가는 곳이라 특별한 전시를 기획하게 됐나요?
스테판 라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국은 풍부한 역사에 강한 애착을 보이는 나라이기에 우리의 헤리티지를 표현하기 적합한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샤머니즘을 바탕으로 곳곳에 사찰이 있고요. 그곳을 둘러보면 동식물을 각별히 여기는 것을 느낄 수 있죠. 아시다시피 동식물은 반클리프 아펠의 주요 모티브입니다. 역사를 다룬 전시는 처음이 아니에요. 같은 맥락으로 지난해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연 <노아의 방주>전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보유한 동물 모티브의 주얼리로 프렌치 메종의 장인정신과 역사를 선보였어요. 20대 아트 전공 학생들을 특별 초청해 투어를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부상 중인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우리의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죠.
서영희 씨로부터 우리 역사에 관심이 높다고 들었어요. 덕분에 공주박물관을 다녀 왔더군요.
스테판 라에 일로서가 아니라 언제나 역사를 좋아했어요. 특히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관심이 많습니다. 훌륭한 박물관이 많은 한국은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최적의 플랫폼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물관은 어딜 가든 꼭 들르는 곳이에요. 저 역시 공주박물관에 다녀왔는데,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보고 엄청난 세공 기법에 충격을 받았어요. 지금 메이커들도 참고할 만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서영희라는 이름을 빨리 알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시 한국적 소재에 관심이 많은 분이죠. 작품을 처음 본 건 언제인가요?
스테판 라에 박물관 전시를 통해서였습니다. 2015년부터 파리장식 미술관에서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한 <코리아 나우(Korea NOW)>전이 열리고 있었어요. 파리에서 한국을 주제로 한 최초의 대형 전시였는데, 저는 2016년에 방문했습니다. 아시아인이 아니라 파리지앵이 박물관을 가득 메웠더군요. 패션과 도예, 전통과 현대가 한데 어우러져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어떻게 전하는지, 많은 통찰력을 엿봤습니다. 시적인 의상을 만드는 진태옥 디자이너를 비롯해 아티스트도 많이 알게 되었고요. 그때 서영희씨가 전체 큐레이션을 맡았다고 들었고, 한국에 오자마자 점심 약속을 잡았습니다. 전시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선생님에게 영감을 받기도 했습니다.

3 문병식 장인의 백자와 클립 버드(Clip Birds, 1957).
4 일명 엔젤 헤어라 불리는 1950년대 네크리스 세트와 도국희 장인의 통영 양태.
처음 만난 자리에서 영감을 받는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서영희 외국인이 <코리아 나우>의 주제를 파악하고 자세히 기억해준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어요. 그것만으로도 존경스러우니 다음 이야기는 뭐든 통했고, 어떤 액션이든 귀 기울이게 되었어요. 그의 모든 것에 신뢰가 생기는 그런 거 있잖아요. 사람은 누가 날 인정해 준다는 것에 항상 감동을 느끼니까요. 더구나 사실 생애 가장 힘든 전시였어요.(웃음) 1년 내내 준비를 했죠. 디자이너들과 제약 조건 속에서 힘들게 진행했는데, 그 얘길 하는 순간 모든 것이 한 방에 날아갔어요. 이 사람이 내게 숙제를 준다면 나는 기꺼이 잘하리라, 그런 느낌이었어요.
스테판 라에 맞아요. 감정적 교감이죠.(웃음)
그때는 헤리티지 컬렉션 프로젝트가 결정되기 전이죠. 많은 아티스트가 첫눈에 떠오르는 직감을 따릅니다. 이번 건을 의뢰받았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
서영희 일단은 반클리프 아펠이 인정하는 헤리티지잖아요. 가장 중요한 건 원래 그들의 제품처럼 분명 이야기가 있을 텐데, 그게 너무 궁금했어요. 예쁘다, 비싸다 이런 것보다 그 자체의 스토리가 궁금했죠. 그동안 나온 컬렉션 중 의미 있는 것을 모은 것이니까요. 헤리티지 피스 하나하나가 누가 주인이고 어떤 면을 인정받았는지 각각의 사연부터 듣고 스타일링의 연결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만든 책 중 컬렉션과 같은 이름으로 < Le Secret >이라는 것이 있어요. 저는 지금도 최고의 아트 북이라 생각해요. 그 책을 다시 한번 보면서 이야기에 집중했습니다.
반클리프 아펠의 디자인이 대체로 유려한 색감입니다. 때문에 화보가 어떻게 진행될까 궁금했죠. 결과는 뜻밖이었어요. 새하얀 설국(雪國)이 떠올랐죠. 맑고 깨끗했어요. 따뜻했고요.
서영희 라에 사장이 공주박물관에서 백제 유물을 보고 어떤 부분을 좋아하게 됐는지 같이 보면서 말해주더군요. 섬세한 디테일에 관한 이야기였죠. 지금 우리가 명품과 혼용해 쓰는 ‘럭셔리’라는 개념은 굉장히 정신적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르 시크릿 컬렉션 중 제가 사랑하는 것은 어미 새와 아기 새가 함께 있는 반클리프 아펠의 클립(Sous son aile)이에요. 어미 새의 날개를 밀면 아기 새가 보이거든요. 영롱하고 예쁜 보석으로 아기 새를 표현한 마음이 너무 ‘럭셔리한’ 거예요. 내가 꼭 이 주얼리를 못 사더라도 날개 아래를 보는 순간 느껴지는 감동이 진짜인 것 같아요. 헤리티지 클립 버드는 그래서 쌀 위에 놓았어요. 가족은 늘 따뜻한 밥을 함께 나눠 먹잖아요. 전 사실 가족이랑 저녁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거든요. 그런 개인적 경험을 스타일링과 매치하는 거죠.
매치한 소재를 찾을 때 특별한 기준이 있었나요?
서영희 ‘엔젤 헤어’를 한번 보세요. 1950년대 피스예요. 천사의 머리카락, 말 그대로 섬세한 소재와 장인을 찾는 식이었죠. 그 밑에 받친 것은 갓을 만들 때 쓰는 망태입니다. 화보 준비를 할 때 한국의 지화나 도자기, 갓을 만드는, 정말 섬세하고 얇은 작품을 만드는 장인들을 찾아갔죠. 처음 섭외할 때 장인들도 묻더군요. “이게 외국 거랑 그렇게 잘 어울려?”라고요. 예상치 못한 결과물을 보고 정말 좋아하셨어요. 작품을 위해 따로 제작을 의뢰하기도 했습니다.
같이 작업한 결과물을 프랑스에 보냈을 때도 반응이 각별했을 것 같은데요.
스테판 라에 작품 사진 중 세 가지는 아시아태평양 헤드쿼터에도 걸려 있어요.(웃음)본사에서도 반응이 좋았죠. 모두 서영희 씨의 훌륭한 재능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랜드의 정수, 우리의 정체성을 잘 표현한 것 같아요. 앞서 말씀하신 주얼리가 우리의 ‘르 시크릿’ 컬렉션 중 하나예요. 반클리프 아펠은 세계대전이 끝나고 상실감을 해소하고자 가족 간 화합을 의미하는 디자인을 만들어왔습니다. 우리 우주관은 그런 것 같아요. 상상 속 따뜻한 꿈 같은 세계, 동화 같으면서 기품 있는. 정신과 영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요. 그런 점이 우리와 잘 맞아 감사했습니다.
서영희 씨는 스타일리스트 중에서도 기존 룰을 거스르는 재밌는 작업이 많습니다. 그런 것들이 프랑스 문화와 잘 맞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아틀리에의 전통을 지키는데는 보수적이지만, 시도는 늘 남과 달라야 하죠.
스테판 라에 제가 보기엔 한국 아티스트의 특징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통과 현대를 믹스 매치하는 사람이 많고, 서영희 씨처럼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는 이도 많죠. 한국 창작자의 작품을 보면 과거, 역사, 유산 그리고 과거 예술가에 대한 사유와 존경심이 묻어나는 것 같거든요. 역사상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힘든 시기가 있었잖아요. 그런 것도 작가의 경험이 되고요. 과거의 가장 좋은 것을 끌어내 미래의 새로운 것으로 재탄생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가 그 결과물이 아닐까요. 고유의 정신과 영감을 중요시하고, 변함없는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서로 다른 시대와 소재라도 어울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거죠. 이미 충분히 느껴지지만, 두 분에게 오늘날의 명품이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스테판 라에 럭셔리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고, 개인적 의미도 다르겠죠. 화려하거나, 고가이거나, 다른 사람들이 보고 감탄할 수 있는 제품을 착용하는 게 럭셔리일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겐 아무도 없는 박물관 벤치에 앉아 몇 시간 동안 작품을 감상하는 게 럭셔리일 수도 있고요.

박물관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은 혹시 당신인가요?
스테판 라에 맞아요. 그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웃음) 결국 공통적 정의를 말씀드리자면 영속성, 시간을 초월한 무언가가 럭셔리를 정의하는 것이 아닐까요. 한국 고객의 경우 1930~1940년대 물려받은 주얼리를 소장한 분이 많거든요. 패션을 생각해보면 시즌마다 다른 컬렉션이 나오고 매 시즌 옷장을 바꿀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명품을 사거나 선물로 준다는 것은 시간을 초월해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엄마가 딸에게, 딸이 또 그녀의 딸에게 반지를 물려주는 식으로 시간과 세대를 잇는 영속성이 바로 럭셔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아름다움의 가치를 세계와 공유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죠. 자신은 하이 주얼리로부터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전시를 통해 ‘럭셔리가 가진 아름다움에 대한 영감, 창조에 대한 영감이 나와 연결 고리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고, 또 우리가 그 가교 역할을 하면 좋겠습니다.
서영희 저는 그 정의를 오히려 에디터에게 물어보고 싶어요. 많은 인터뷰를 해보셨죠? 럭셔리 브랜드들이 다르다고 느낀 것이 있나요?
모든 것을 오픈하는 브랜드가 항상 그 분야의 최고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나눠줘도 모자랄 것이 없을 때 대중에게 문을 열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특별한 체험이나 노하우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해주죠. 동화되길 강요하지 않고요.
서영희 공감해요. 문화를 말하면서 소비자의 마음만 얘기하려 하면 매력이 반감되죠. 해외 브랜드와 협업해보면 자신의 제품만 돋보이게 하려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로 만난 라에 사장의 관점은 특별해요. 이렇게 동양화처럼 비운 느낌으로 진행하도록 두는 곳이 많지 않죠. 기꺼이 저의 제안을 다 받아주었으니까요. 일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를 하면 상대도 나에게 유대감을 갖게 되고, 내가 아니면 그들도 아닐 거란 생각을 하게 되죠. 그래서 마음껏 할 수 있었습니다. 행복한 프로젝트였어요.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 헤어 박창대 메이크업 서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