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당 대첩
매달 서울 시내 곳곳의 레스토랑을 취재차 드나드는 리빙 에디터 3명이 가장 핫한 한식당 4곳을 찾았다. 다양한 종류의 수많은 레스토랑 중 한식당을 도마 위에 올린 건,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한식당이야말로 까다로운 기준을 내세울 수밖에 없으면서도 그 맛과 멋을 평가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운, 한식당에 대한 솔직한 품평기를 전한다.
명태 만두
오.늘.
이정주 일단 비빔밥과 찌개 같은 ‘밥집스러운’ 단품 메뉴가 많다는 것이 맘에 든다. 그런 것치고는 2만 원 내외의 가격이 다소 비싸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먹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재료가 신선한 것은 물론 음식의 양도, 간도 딱 적당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메뉴를 맛보는 즐거움도 크지만, 소꼬리찜 같은 대표 메뉴를 맛보지 않으면 후회할 듯 하다. 차에서 내리면 1층 로비까지 ‘알현’하는 직원의 친절함이 어색하지 않고, 홀 테이블에 앉아도 프라이빗한 느낌이 드는 게 신기하다. 복잡한 도로에서 약간 벗어난 동빙고동의 아파트 단지 골목 안에 위치하고, 스칸디나비안풍 가구와 한식 그릇이 조화를 이뤄 허세가 느껴지지 않는 편안한 분위기 덕분인 듯하다. 이 맛과 멋을 공유하고 싶은 절친과 오면 가장 좋겠지만, 음식에 까다로운 어르신을 모시고 와도 점수 따기 좋을 듯하다.
홍유리 명태 만두가 유명하다고 해서 주문하긴 했지만 ‘좀 비리진 않을까?’ 싶었는데 웬걸, 그 비주얼과 맛에 놀랐다. 흔히 알고 있는 만두의 모습을 떠올리면 안 된다. 마치 순대처럼 만두소를 얇게 썬 명태 껍질이 둥글게 감싸고 있다. 먹기 좋게 자른 만두를 입에 넣는 순간 느껴지는 아삭한 식감의 주인공은 가을 겨울에 특히 맛이 좋다는 연근이다. 자칫 심심할 수 있는 맛에 재미를 더한 것. 시래기 반상도 훌륭하다. 다른 요리에 비해 값도 적당할뿐더러 감칠맛이 예술이다. 분명 화학조미료는 들어가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분위기 좋은 한식당을 찾는다면 이곳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전유화
계절 전채
윤.가.명.가.
이재연 분위기에서 이미 짐작이 가듯, 한식 코스만 전문으로 한다. 배를 갈아 만든 소스에 버무린 수경 인삼 샐러드, 한 입에 쏙 들어가는 감칠맛 나는 다시마선과 두부선, 새콤한 유자 소스를 곁들인 대하 요리를 애피타이저로 즐길 수 있다. 도쿄 윤가의 시그너처 메뉴인 그릇 위에 직접 불을 붙여 서빙하는 전복 구이는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식사로 쌈밥에 굴국과 갈비찜, 섞박지와 곶감 김치, 제주 조사리와 겨울냉이 무침, 부지깽이 나물 등의 반찬을 내주었는데, 슴슴하니 어느 것 하나 튀지 않고 편안하게 한 끼 즐길 수 있다. 특히 섞박지는 장독에서 갓 꺼낸 맛으로 식사 도중 입안을 개운하게 해준다. 직접 제작한 기물이 독특했는데 음식의 맛처럼 비주얼에 각별히 신경을 쓴 곳인 듯.
홍유리 <2015 미슐랭 가이드>에서 도쿄 내 한식당으로는 유일하게 미슐랭 2스타를 획득한 윤가의 윤미월 셰프가 야심 차게 준비한 서울의 윤가명가. 삼국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를 공간에 담은 컨셉이라는 인테리어는 다소 과하게 느껴지지만 음식만큼은 우리 고유의 손맛을 그대로 재현해 만족스러웠다. 건강한 제철 식자재의 잊힌 맛을 찾아가는 여행이랄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산복숭아 장아찌. 처음 맛본 산복숭아는 아삭하면서 쫀득한 식감이 특징인데, 이 위에 달콤함과 짭조름한 맛이 더해지니 그 하모니가 환상적이다. 그날의 좋은 식자재를 공수해 요리하기에 매일 코스 메뉴가 바뀌는 만큼 다음에 들를 땐 어떤 밥상이 차려질까 궁금하다.
양갈비 구이(왼쪽), 홍시 레몬 아이스크림(오른쪽)
밍.글.스.
홍유리 요즘 예약하기 힘든 레스토랑 중 하나가 바로 밍글스예요. 최소 일주일 전에 하지 않으면 점심 예약도 쉽지 않지만, 그 수고가 아깝지 않은 곳이죠. 이재연 점심 코스가 3만 원대이니 이 정도면 꽤 합리적인 가격이지. 화려한 비주얼의 아뮤즈 부쉬는 음식을 내오는 순간 기대감이 솟아 오르네요. 광어회를 씹으니 석류가 톡 터지고, 김으로 감싼 게살과 도미 안에 타피오카가 숨어 있어 더 쫄깃해요. 밤 수프는 위스키 크림이 올라가 풍미를 더하고. 홍유리 애피타이저로 나온 완두콩 퓌레를 곁들인 꼴뚜기 순대는 오징어 순대의 하이엔드 버전 같은데요. 이재연 비지칩과 어란을 조금씩 잘라 함께 비벼 먹으니 입안에서 온갖 다채로운 맛의 향연이 펼쳐지는 기분이야. 이정주 적어도 한국 사람에겐, 퓨전 한식이란 먹히기 힘든 시도라고 생각하는 편이야. 그런데 이곳 음식은 그런 선입견을 보기 좋게 뒤엎는 것 같아. 강민구 셰프의 요리는 모든 플레이트가 기막히게 환상적이네. 홍유리 맞아요. 어떻게 이런 재료의 조합을 생각해냈을까 싶을 정도로 크리에이티브함이 돋보여요. 이재연 메인 디시인 양고기가 하이라이트예요. 인기 폭발의 밍글스 대표 메뉴로 입소문이 자자해요. 이정주 된장에 24시간 재워 채소 애시를 묻혀 구운 거라는군. 난 개인적으로 양고기 특유의 노린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고 맛있네. 이재연 디저트도 꼭 맛봐야 해요. 특히 고추장, 간장, 된장을 넣어 조리한 크렘뷜레인 장 트리오는 한식 양념으로 프렌치 디저트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경이로워요. 홍유리 평소 단맛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이곳 디저트는 깨끗하게 비워낼 정도로 맛있네요. 홍시와 레몬 아이스크림의 궁합이 이렇게 훌륭할 줄이야! 이정주 다음 요리를 기다리는 게 두근댈 정도야. 재료 하나하나의 절묘한 어울림이 혀끝에 닿는 순간, 마치 미식가가 된 듯한 기분마저 든다니까!
전복젓국갈비(왼쪽), 신선로(오른쪽)
라.연.
이정주 호불호가 갈리지만, 이만큼 밝으면서 정중한 분위기와 서비스, 수준 이상의 음식을 겸비한 한식당도 흔치 않다. 호텔 한식당답게 코스 메뉴만으로 구색을 갖췄다. 코스의 앞부분만 맛보고 ‘역시 크게 다를 것 없다’며 실망하지 말 것. 라연의 코스는 뒤로 갈수록 임팩트가 있다. 환영 음식과 구절판 등에 이어 나오는 삼겹살찜이나 갈비 등 고기 요리는 입안에서 녹을 정도로 부드럽다. 식사 메뉴인 전복젓국갈비는 흔하지만 없으면 아쉬운 갈비탕에 필적하는 라연만의 새롭고도 색다른 야심작이다. 싱싱한 전복과 쇠고기를 듬뿍 넣어 끓인 깊은 국물 맛이 일품이다.
홍유리 신라 호텔 23층에 자리한 만큼 계절에 따라 변하는 남산을 보며 기분 좋은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요리를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궁중 요리 같다. 식사 시간 내내 테이블 위에 놓인 고구마 전병과 바삭하게 말린 대추 주전부리는 코스 사이의 여백을 단단히 메워주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굳이 담당 서버가 설명하지 않더라도 요리를 맛보면 최상급 식자재를 사용해 음식을 완성한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3인 3색, 에디터의 한식당 선정법
이정주 알고 보면 한식만큼 복잡다단한 식자재에, 손이 많이 가는 음식도 없다. 그러한 정성의 크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 밥과 김치라고 생각한다. 좋은 쌀로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과 맛있는 김치는 음식의 맛을 보완하기도, 망치기도 하는 중요한 존재다. 분위기와 서비스도 훌륭하면 금상첨화겠지만, 다른 어떤 요리보다 한식은 음식 맛이 별로면 다른 훌륭한 요소에도 감흥이 일지 않는다.
이재연 일단 인테리어를 본다. 너무 고전적이어서 ‘나 한식당이오’ 하는 곳보다는 모던한 터치가 들어간 곳을 선호하는 편. 그리고 주로 어른을 모시고 가는 경우가 많아 서비스를 눈여겨보는 편이다. 따뜻하게 환대하는지(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긴다면 무조건 탈락), 음식을 먹기 좋게 덜어주는지 등. 또 화려한 일품요리보다는 맛깔스러운 김치에 더 마음이 간다.
홍유리 20대에 정점을 찍은 서양식 탐닉 후 현재는 한식의 맛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재래시장에서 먹는 백반부터 파인 다이닝 공간에서 정갈하게 플레이팅해 나오는 한식 코스 요리까지 가리지 않고 즐긴다. 무쳐내면 비슷한 모양새를 띠는 나물조차 제각각 맛이 다른 것처럼 분위기나 장소와 상관없이 신선한 식자재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선호한다.
에디터 이정주(프리랜서) 이재연 (jyeon@noblesse.com) 홍유리 (yurih@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