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여유롭고 열정적인 옥시타니
다녀온 자만이 그 매력을 안다. 고대 로마의 숨결이 깃든 건축물과 그 속에서 생동하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에너지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옥시타니의 주도 툴루즈를 거쳐 카르카손과 퐁 뒤 가르, 위제와 님, 몽펠리에에서 짧지만 알찬 여정을 보내고 왔다.

카르카손 구시가지에서 바라본 시내 전경.
남프랑스라는 단어가 주는 막연한 동경이 있다. 지중해의 밝은 햇살을 받아 빛나는 보랏빛 라벤더 물결이 일렁이는 곳. 니스, 생폴드방스의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거니는 상상. 내가 꿈꾸던 휴가의 한 장면 역시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가본 프랑스 남서부 옥시타니주는 우리가 꿈꾸는 남프랑스의 모습과는 다르다. 누군가 “프랑스에 그런 곳이 있었어?”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옥시타니는 2016년 행정 개편을 통해 랑그도크루시용(Languedoc-Roussillon)과 미디피레네(Midi Pyérnées)를 합친 지역으로, 여전히 그 이름은 낯설다. 동쪽으로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와 지중해를, 남쪽으로는 스페인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곳. 가을의 문턱에 선 한국과 달리 9월의 프랑스 남부는 여전히 맑고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1 장밋빛 도시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툴루즈 거리. 2 16세기 툴루즈의 상인 피에르 아세자가 지은 저택. 3 고풍스러운 그림과 천장 벽화로 장식한 카피톨 파사드.
역동적인 장밋빛 도시 툴루즈
옥시타니주 여행은 주도 툴루즈(Toulouse)에서 시작했다. 공항에서 40분을 달려 시내에 들어서자 앳된 얼굴의 대학생들이 붉은 건물 사이를 걷고 있었다. 역사를 간직한 오래된 도시, 장밋빛 도시라는 두 단어만 떠올린 내게 툴루즈는 에너지 넘치는 첫인상을 심어줬다. 장밋빛 도시. 프랑스어로 라 빌 로즈(La Ville Rose), 영어로는 핑크 시티(Pink City)라고 부르는 곳. 건물을 지을 때 주변에 돌을 캘 산과 언덕이 없어 흙으로 빚은 벽돌이 붉은색을 띠어 그런 별칭을 얻었다고 한다. 센강, 론강, 누아르강과 함께 프랑스 4대 강으로 꼽히는 가론강 변에 위치한 툴루즈는 파리, 마르세유, 리옹에 이어 프랑스에서 네번째로 큰 도시다. 약 95만 명이 이곳에 살고 있는데 그중 20만 명이 2000년 이후에 왔으며 매년 2만 명 이상이 툴루즈로 이주하고 있다.
호텔에 짐을 풀고 가벼운 산책 겸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툴루즈의 중심가인 카피톨 광장으로 향했다. 직사각형 광장에는 한눈에 봐도 오랜 역사를 간직했을 법한 기다란 건물, 카피톨 파사드가 있었다. 18세기에 지어 현재 시청으로 사용 중이다. 카피톨 파사드는 밖에서 봐도 장관이지만 내부는 더욱 아름답다. 고풍스러운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15개의 그림과 천장 벽화로 장식한 그림의 방으로 이어진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관광객에게 개방하지만 결혼식과 같은 특별한 행사가 열릴 때면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한다. 툴루즈 사람 대부분이 이곳에서 결혼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예약률이 높다. 카피톨 파사드를 나와 광장을 마주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시작할 때 쯤 장밋빛 도시에도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디저트까지 먹은 뒤 툴루즈 관광안내사무소 소장 아드리앙 하르멜이 가론강을 따라 산책을 제안했다. 밤이 되면 퐁뇌프 다리와 고풍스러운 은행은 황금빛 조명을 입고 젊은이들의 성지로 탈바꿈한다. 청년들이 강가에 앉아 기타를 치며 비틀스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마치 내일은 오지 않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몰입한 모습이었다.
밤의 열기를 뒤로하고 다음 날 생텍쥐페리가 머물던 방을 복원해놓은 르 그랑 발콩 호텔을 떠나 본격적인 툴루즈 투어에 나섰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1216년 고딕 시대에 성 도미니크가 지은 자코뱅 수도원(Le Couvent des Jacobins). 청빈한 삶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던 도미니크 수도사들이 살던 공간으로 22m에 달하는 야자수 모양의 기둥이 인상적이다. 성당과 이어진 회랑을 따라 나가니 네모나게 정돈된 나무 정원이 보이고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매년 9월 자코뱅 수도원에서는 클래식 피아노 음악 페스티벌인 ‘피아노 자코뱅’이 열리는데, 마침 축제를 하루 앞두고 피아니스트 엘리자베트 레온스카야가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고즈넉한 수도원에 울려 퍼지는 슈베르트 소나타와 살랑거리는 바람까지, 이 순간만은 삶이 완벽하다고 느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툴루즈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순례 코스인 생세르냉 대성당(Basilique Saint–Sernin)의 육중한 문을 열었다.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었는데 30여 년 간 복원 작업 끝에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이어 16세기 툴루즈의 상인 피에르 아세자가 만든 아세자 저택과 툴루즈 전통 음식인 카술레, 치즈와 야채 등을 파는 125년 전통의 레 카르므(Les Carmes) 시장까지. 가는 곳마다 활기찬 에너지를 뿜어내는 대학생들의 사전 OT 행렬을 마주쳤다. 핑크색 옷을 맞춰 입고 흥겨운 게임을 즐기는 그들의 모습에서 툴루즈를 오래된 전통의 도시라고만 표현하기엔 뜨거운 열정이 느껴졌다. 오렌지색에서 핑크 시티로 변해가는 늦은 오후 툴루즈를 떠나 카르카손으로 향했다.

4 호텔 드 라 시테 객실. 5 전시장처럼 꾸민 콩탈 성 내부.
중세의 숨결이 깃든 카르카손 & 퐁 뒤 가르
밝은 햇살이 여전히 내 손등을 비출 즈음 1시간가량을 달려 중세 요새 도시 카르카손(Carcassonne)에 도착했다. 이 도시의 이름은 국내에서도 낯설지 않은데, 독일에서 만든 보드게임 카르카손의 배경이기 때문이다. 중세시대 언덕 위에 지은 이중 성벽 도시 카르카손은 루이 9세가 5세기에 서고트인이 세운 시가지라 시테(La Cité)에 성을 복원하는 작업을 시작해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외벽의 길이는 1650m, 내벽은 1250m로 52개의 탑이 설치되어 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으로 매해 200만 명이 방문하는 명소다.
요새 안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고 카르카손에서의 일정을 시작했다. 아침 일찍 카르카손 관광안내사무소 홍보 담당자 사라가 밝은 인사를 건네며 생나제르 대성당(Basilique Saint–Nazaire)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11세기 로마네스크 양식과 14세기 고딕 양식이 조화를 이룬 대표적 건축물로, 1096년 짓기 시작해 1130년 완성 후 14세기에 고딕 양식이 돋보이는 제단 등을 다시 세웠다.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를 묘사한 형형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바라보며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주어진 삶에 감사하는 겸허함을 달라’고 잠시 기도해본다.
카르카손 성벽의 하이라이트인 콩탈 성(Chateau Comtal)으로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각종 기념품 상점과 아트 숍, 레스토랑을 구경하다 보니 점점 발걸음이 느려진다. 사라에게 성벽 안에 실제로 사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예전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살았지만 지금은 거의 떠나고 50명밖에 남지 않았어요”라며 아쉬워했다. 출퇴근하며 상점을 운영하는 사람이 대다수라는 이야기. 끝나지 않은 여름의 마지막을 불태우듯 파란 하늘과 따뜻한 돌벽이 어우러져 콩탈 성은 잘 설계된 중세 드라마 세트장 같았다. ‘요새 속 요새’라 불리는 콩탈 성은 이중 성벽 안쪽으로 다시 성을 증축해 견고한 3중 성을 쌓았다. 내부를 마치 박물관처럼 꾸며놓았는데 사라는 카르카손의 이름과 연관된 흥미로운 전설을 들려줬다. “유럽 최초의 대제인 샤를마뉴의 군대가 이 성을 함락하고자 5년간 포위하고 있었어요. 6년째에 접어들어 물과 식량이 고갈되자 사라센 카르카 공주는 요새 안에 있는 마지막 돼지에게 남은 밀 한 자루를 먹여 높은 곳에서 살찐 돼지를 떨어뜨리죠. 다행스럽게도 샤를마뉴 대제는 돼지에게 곡식을 먹일 정도로 요새에 식량이 풍부해 도저히 함락할 수 없다 여기고 철수했어요. 적이 물러가는 것을 보고 카르카 공주가 승리를 자축하는 종을 울리는데, 이것을 보고 한 병사가 “카르카 공주가 울리는군(Carcas sonne)”이라고 외쳐요. 그래서 공주의 이름 카르카와 울린다는 뜻의 손을 더해 카르카손이 됐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전설이 있죠.(웃음)”
조심스레 돌벽을 만져보며 성의 꼭대기에 오르자 주황빛으로 물든 카르카손의 시내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카르카손의 모든 것, 다른 것은 잊어도 이 장면만큼은 기억하고 싶어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고 오래도록 마음에 담는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퐁 뒤 가르(Pont du Gard)로 이동했다. 거의 도착할 무렵 프랑스 관광청 박선주 과장이 대뜸 5유로가 있느냐고 물었다. 황급히 다리가 인쇄된 지폐를 꺼내니 바로 이곳에 갈 거라고 귀띔해준다. 49m 높이의 3단 아치로 이뤄진 다리가 눈앞에 펼쳐지자 ‘우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터져나왔다.
1985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퐁 뒤 가르는 고대 로마 시대에 위제에서 님까지 물을 운반하기 위해 건설한 수도교다. 지금처럼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 산맥의 고도차를 이용해 50km 수로로 약 5세기 동안 엄청난 양의 물을 님에 공급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로마인의 기술을 엿볼 수 있는데 물의 압력을 고려해 1층부터 3층까지 각각 6개, 11개, 35개로 층별로 아치수를 조절했다. 특히 굴곡이 있는 구간에서 물의 압력을 버터내야 하기에 킬로미터당 24cm의 완만한 경사도를 유지했다고 한다. 다리의 가장 높은 층에 수로가 있는데, 미리 예약하면 직접 그 안을 걸어서 통과할 수 있다. 유적지도 장관이지만 여름엔 가르동강에서 수영을 즐기고 165ha에 이르는 대자연을 만끽하는 것이야말로 퐁 뒤 가르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다.

위제에서 님까지 물을 운반하기 위해 건설한 수도교 퐁 뒤 가르.

6 와인 바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하는 님 시민. 7 프랑스 남부 지방의 전통 요리 카술레. 8 노천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는 위제 사람들.
로마의 흔적을 찾아 떠난 위제 & 님
다음 날 아침 일찍 20분을 달려 위제(Uze‵ s)에 도착했다. 중세의 요새 도시인데 성벽을 허물고 그 자리에 길을 낸 구조다. 동그란 형태의 아기자기한 골목길로 이뤄진 위제는 당장이라도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말을 타고 달려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중세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아침 일찍 도착한 탓일까. 다른 관광객 무리가 있었지만 도시는 고요했다. 화가의 아틀리에와 호텔로 개조한 대저택 등을 둘러본 후 1000년 동안 위제 공작 가문으로 명맥을 이어온 공작의 성(Duché d’Uzès)에 올랐다. 동화 속 공주가 갇혀 있을 법한 135계단으로 이뤄진 타워에 오르니 구시가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위제의 진면목을 보려면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아침 시장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평소에는 한산하지만 시장이 열리는 날이면 도시 전체가 흥겨운 축제의 장으로 변한다. 이날 악기를 연주하는 퍼레이드 행렬을 보며 노천카페에서 와인을 마신 후 싱싱한 야채와 치즈를 구경하는 것은 위제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아쉽지만 오늘은 시장이 서지 않는 날이라 광장은 조용했다. 위제를 떠나기 전 꼭 봐야 할 특별한 성당이 있다고 해서 찾은 곳은 11세기에 성녀 테오도라에게 봉헌하기 위해 지은 위제 대성당(Uzès Cathedral). 종교전쟁으로 파괴된 후 17세기에 다시 지었는데 “오르간을 덮는 오리지널 패널이 있는 프랑스 유일의 오르간이에요. 지금도 각종 행사와 콘서트에 쓰이죠”라고 말하는 가이드 카롤의 어투에서 자부심이 묻어났다.
위제의 물이 도착한 님(Nimes)은 고대 로마의 흔적이 잘 보존된 도시로 로마의 카이사르가 이집트에서 승리를 거둔 후 노병들을 위해 만들었다. 그래서 님에선 과거 로마제국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탈리아 로마의 것보다 보존 상태가 양호한 님의 원형경기장도 그중 하나. 1세기 말에 지은 것으로 길이 133m, 너비는 101m 정도다. 인접한 스페인에서는 투우를 법적으로 금지하지만 여기서는 여전히 1년에 두 차례 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 18세기에 지은 라 퐁텐 공원(Jardins de la Fontaine)을 걷다 거대한 대리석 건물에 눈길을 빼앗겼다. 파리의 마들렌 성당에 영감을 준 건축물 메종 카레(Maison Carrée)로 아우구스트 황제의 손자 카이우스와 루시우스 황제에게 헌정한 신전이다. 완벽한 비례미와 섬세한 장식은 물론 2000년이 지났음에도 로마 사원 중 가장 보존 상태가 좋다. 좀 더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기 위해 고대 폐허 위에 지은 유럽 공공 정원 중 하나인 라 퐁텐 공원에 가보기로 했다. 루이 15세의 명으로 기술자 자크 필리프 마르샬이 설계한 정원으로 항아리와 조각상으로 장식한 고풍스러운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중세 이후 버려졌다가 우연히 발견한 후 점심식사를 즐기고 운동을 하는 등 시민의 여유로운 쉼터로 활용하고 있다.

9 루이 14세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개선문. 10 개선문 위에서 바라본 몽펠리에 시내.
리틀 파리 몽펠리에
소도시 위제와 님의 여유롭고 아기자기한 분위기에 금세 익숙해진 탓일까. 마지막 여정인 몽펠리에(Montpellier)는 번화한 대도시처럼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랑스에서 일곱 번째로 큰 도시이며, 파리를 본떠 지은 곳이라 도시 곳곳에서 화려함이 묻어났다. 1755년에 조성한, 달걀 광장이라는 별명의 코메디 광장(Place de la Comédie)은 만남의 장소로 애용되는 곳이다. 이날도 분수대에서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다 흩어지는 사람들을 쉴 새 없이 보았다.
리틀 샹젤리제라 불리는 포슈 거리를 따라 올라가니 파리의 개선문을 모델로 한 작은 개선문이 보였다. 루이 14세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가이드 투어를 신청하면 개선문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며 몽펠리에 시내를 내려다보는 기분이 제법 호쾌하다. 개선문 건너편의 페루 광장(Place Royale du Peyrou)과 루이 14세 동상, 맨 안쪽에 물의 성(Châ teau déau)이 보인다. 17세기 말 식수 공급을 위해 지은 물의 성은 수로로 전해지는 물의 저장고 역할을 했다. 물의 성 뒤에는 함께 지은 생클레망 수로교(L’aqueduc Saint-Clément)가 있다. 앞서 다녀온 퐁 뒤 가르와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를 본떠 만든 다리라고 한다. 크기는 그보다 작은 편이다. 한여름 성수기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곳은 강아지와 산책을 즐기는 몽펠리에 시민과 관광객으로 붐볐다. 하지만 번잡함 속에서도 자신의 공간을 탐미하는 여유가 존재했다.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을 바라보며 프랑스 여정을 아쉽게 마무리했다. 툴루즈에서 시작해 몽펠리에서 끝난 5박6일의 여정. 몇 시간 혹은 하루 남짓의 일정을 통해 방문한 도시를 제대로 알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이번 여행은 좋았다고,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역사와 젊음의 열기가 공존하는 남프랑스로 다시 한번 떠나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옥시타니 여행 팁
옥시타니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해줄 호텔과 항공편을 소개한다.
르 그랑 발콩 호텔 비행기 조종사였던 <어린 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는 툴루즈에 갈 때마다 르 그랑 발콩에 묵었다. 그를 기념하는 사진이 로비에 전시되어 있으며 32호실은 생텍쥐페리가 머물던 광경 그대로를 재현했다.
호텔 드 라 시테 중세 요새 도시 카르카손 시내에 위치한 5성급 호텔로 1909년 성당 주교들의 숙소로 설계했으나 1920년부터 호텔로 손님을 맞고 있다. 윈스턴 처칠, 월트 디즈니, 그레이스 켈리 등이 머무른 곳으로 클래식한 매력을 뽐낸다.
에어프랑스, 프리미엄 이코노미 인천에서 파리까지 12시간이 넘는 비행을 견디려면 좌석의 안락함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비즈니스와 이코노미 클래스 사이 독립된 캐빈인 에어프랑스 프리미엄 이코노미 클래스는 일반 이코노미 좌석보다 40% 넓은 코쿤식 좌석을 마련해 편안한 여행을 돕는다. 가죽 머리 받침대와 다리 받침대도 여러 각도로 조절 가능하다. 12인치 개인 HD 터치 스크린과 넓은 트레이, 소음 차단용 헤드폰 등을 제공한다.
에디터 최윤정(amych@noblesse.com)
사진 김은주 취재 협조 에어프랑스, 옥시타니 지역 관광청, 프랑스 관광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