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의 미래를 짓는 여정
IT 1세대 벤처 사업가 조정일 회장에게 한옥은 치열한 취미이자 가치 있는 미래다. 강원도 영월의 ‘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에서 그의 신념과 열정을 확인할 수 있다.

굽이쳐 흐르는 평창강과 겹겹이 둘러싸인 산세가 절경을 이루는 영월의 소나무 숲속에 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이하 더한옥)가 자리한다. 양옆으로 강물이 찰랑이는 나지막한 돌다리를 건너 굽이굽이 이어진 산길을 오르자 고요한 풍경 사이로 웅장한 한옥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형의 생김새에 따라 높낮이를 달리해 조성된 건축물은 단번에 눈길을 끌 만큼 위용을 뽐내면서도 주변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채 조화를 이룬다. 고려 시대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검이불루 화이불치’라는 표현처럼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은 한국의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
지난해 처음 문을 연 이곳의 정체는 연면적 1만6332m² 규모로 조성 중인 프리미엄 한옥 리조트다. 현재는 영월종택 1·2와 선돌정까지 총 3개 동을 오픈했고, 2027년까지 순차적으로 총 18개 동을 완성할 예정이다. 각 동은 터 형태와 주변 자연에 따라 규모와 시설이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600m² 이상에 달하는 널찍한 공간에 독립된 3개 이상 침실, 소파와 테이블이 놓인 거실, 현대적 다이닝 룸 등을 두루 갖췄다. 나뭇결이 살아 있는 매끈한 기둥과 견고한 서까래, 근경과 원경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창, 공간 가득 짙게 밴 나무 향 등이 평온한 분위기와 특별한 쉼을 이끈다.

조정일 회장.
나무에 대한 고찰
한옥을 변주하거나 표방하는 호텔과 스테이는 수없이 많지만, 전통 건축에 대한 고민과 철학까지 반영한 공간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한옥이 특별한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한옥의 목구조가 세계 어느 나라의 건축양식보다 뛰어나다는 신념으로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는 인물은 중견기업 코나아이 조정일 회장.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그는 1990년대 후반 IT 기업을 설립해 국내 최초 스마트 IC 칩, 세계 최초 통합 교통카드 등을 선보이며 90여 개국과 거래하는 글로벌 기업을 키워냈다. “해외 거래처가 많아 1년에 200일 이상을 외국에서 보내곤 했어요. 호텔, 리조트, 스테이 등 굉장히 다양한 공간을 경험했는데 유럽 대도시 주변의 작은 마을이나 오래된 성에 가면 마음이 편안하더라고요. 오랜 세월 잘 보존된 집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직접 느꼈고, 우리나라에서 그런 공간을 찾다 보니 바로 한옥이었던 거죠. 잘 만든 한옥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직접 증명해 보이고 싶었어요.”
무엇이든 한번 꽂히면 깊이 파고드는 그의 성향은 한옥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제대로 짓기 위해 건축 공법과 목구조를 연구하다 보니 일제강점기 이후 정체된 기술과 해결해야 할 문제를 인지하게 됐다. “전통 한옥은 대목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요. 우리나라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건축양식이죠. 목재 자체가 뿜어내는 힘이 워낙 강렬해 집을 지으면 별다른 장식 없이도 그 자체로 압도적이고 기품이 넘칩니다. 한데 대목을 제대로 건조하지 않은 채 사용하면 집이 완전히 틀어집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한옥 중 비틀리지 않은 경우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만큼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거죠.”
한옥의 첫걸음은 나무라는 것을 인지한 그는 가장 먼저 한국과 미국에서 최상급 수종을 선별해 공수했다. 이와 함께 원목 건조 기간을 혁신적으로 단축하는 마이크로웨이브 장비도 직접 개발했다. 세계 최초로 만들어 특허 낸 이 기계를 활용하면 7~10년 걸리는 목재 건조 작업을 6개월까지 단축할 수 있다. 여기에 2년가량 자연 건조 과정을 거쳐 최상급 목재를 완성했다. “더한옥에 사용한 자재의 수분 함유율은 문화재 복원 기준인 25%보다 훨씬 낮은 15% 정도입니다. 잘 말린 나무는 돌보다 더 단단해 못을 박으면 그대로 튀어나올 정도예요. 견고한 만큼 변형이나 뒤틀림이 없어 한옥의 약점인 웃풍이나 창문의 어긋남을 보완할 수 있죠.”

왼쪽 외부에서 바라본 영월종택 2동.
오른쪽 주변의 풍경을 작품처럼 비추는 선돌정의 창.
전통 그 이상의 한옥
10년 이상 건축 공법, 구조, 소재 등을 연구하고 태양·바람 등 자연을 탐구해온 조정일 회장은 더한옥 건물과 레이아웃을 직접 설계하며 시대 흐름에 따른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건물과 공간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현대인의 키를 고려해 천고를 높였고, 방습을 책임질 뉴질랜드산 양털을 지붕 사이에 채워 넣었다. 또 단열과 차음을 위해 독일 기술로 제작한 이중창과 특수 금속으로 만든 경첩을 적용했으며, 특수 섬유를 사용한 투명 방충망도 설치했다. “원하는 것을 구현해줄 건축가를 찾기 어려워 직접 설계했어요. 전체적 구상은 제가 했지만 좋은 집을 짓기 위해서는 반드시 훌륭한 목수가 필요하기에 초기 제작 단계부터 함께 고민해줄 대목장을 찾아다녔죠. 기존 작업 방식이 몸에 익은 분들이다 보니 처음엔 갈등도 있었지만, 함께 돌을 놓고 지붕을 오르내리며 꾸준히 대화하다 보니 이젠 누구보다 막역한 사이가 되었답니다.(웃음)”
한지, 천연 대리석, 나무 등 자연 소재로 마감한 실내 공간에는 그가 직접 만들고 디자인한 가구를 채워 넣었다. 이와 함께 코나아이가 전개 중인 신진 작가 플랫폼 ‘아트마이닝’에서 소개해온 김선형, 최영욱, 권중모 등 국내 아티스트의 작품을 곳곳에 배치했다. 기존 한옥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대형 다이닝 룸, 야외 마당, 미디어 룸, 실내 수영장 등 다채로운 편의 시설도 눈에 띈다. “한옥은 자연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간의 시작은 자연이지만, 완성하는 것은 사람이죠. 자연을 마주한 채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다가도, 때로는 함께 모여 새로운 관계를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직 15채의 한옥을 더 지어야 하는 만큼 더한옥의 본격적인 여정은 이제 시작 단계다. 하지만 조정일 회장의 한옥에 대한 열정과 포부는 더 먼 미래를 향한다. “언젠가 파리나 뉴욕에도 한옥을 짓고 싶어요. 우리가 만든 한옥이 앞으로 1000년 동안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소중한 문화적 자산으로 빛나길 바랍니다.”
에디터 김수진(jin@noblesse.com)
사진 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