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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공간

ARTNOW

컨템퍼러리 리빙 브랜드 ‘비아인키노’의 새 쇼룸이 청담동에 문을 열었다. 서점과 카페를 안에 들였다. 선, 빛, 최소한의 형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1층 라이프북스 전경. 나무로 제작한 가구와 노출된 콘크리트 기둥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

읽고 싶은 공간이 있다. ‘공간’을 읽는다는 말은 말이 안 되지만. 읽고 싶은 공간은 말이 거의 없다. ‘공간’이 말을 한다는 말도 역시 말이 안 되지만. 말이 없는 공간은 읽고 싶어진다. 뭐, 다 말이 안 되는 말이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동의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일단 나는 어떤 공간이 최소한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을 때 역설적으로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다고 느낀다. 애초에 많은 말이 있고, 그걸 다 생략해야 최소한의 형태로 머무를 수 있으니까. 덜어내기 위해선 명분이 필요하며, 덜어내고 남은 것이 서로 조화를 이루기 위해선 당위성도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은 논리의 영역이 아니다. 감각의 영역이다. 혹은 ‘빛’의 영역이거나. 시인으로서 내가 느끼기에 ‘감각’은 ‘빛’과 동의어다.
뭔 헛소리야, 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믿는다.
청담동에 문을 연 ‘비아인키노(wie ein KINO)’의 새 쇼룸에 다녀왔다. 비아인키노는 가구를 중심으로 다양한 제품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컨템퍼러리 리빙 브랜드다. 그런데 새 쇼룸 1층에는 서점을, 지하 1층(정확하게는 반지하)에는 카페를 두었다. ‘두었다’라는 말은 정확한 표현이 아닐 테지만, 감각적으로는 옳은 표현일 것 같다. 서점은 정갈하게 디자인되었다. 모든 가구를 나무로 만들었다. 어떤 책이 있는지 보기 전에 한 걸음, 아니 열 걸음쯤 물러나 가구를 둘러보면 오로지 존재하기 위한 최소한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은 모두 직선이다. 이를테면 나무 의자의 다리는 존재하기 위한 가장 당위적인 형태로 곧게 뻗어 있으며, 그 위에 가로로 나무판이 놓인다. 나무판은 오래 앉아 있기에 넉넉한 크기는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 커야 할 이유가 굳이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반면에 책을 진열해둔 평평한 테이블은 꽤 넓다. 마치 책을 펼쳐놓은 것 같다. 덕분에 책들은 그 위에서 여유롭다.
계단을 내려가면 카페가 있는데, 한 층을 완전히 내려가지는 않는다. 카페는 1층과 지하 1층 사이에 있다. 서점에서 내려다볼 수 있도록 개방돼 있는데 눈의 초점을 흐릿하게 하고 바라보면 카페가 조금 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무로 제작한 가구의 ‘톤 앤 매너’는 카페에서도 이어진다. 예를 들어 의자는 거의 같다. 뭐가 다른지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왜 달라야 할까,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고. 자연스럽게 흐르며 이어지되, 서점과 카페는 분명히 분리된 공간이라는 의지를 담고 싶었을까?
뭐, 이유는 얼마든지 찾거나 만들 수 있겠지. 공간을 읽을 수만 있다면!
아, 곧게 뻗은 선이 모두 같은 게 아니라는 사실은 번번이 나를 놀라게 하는데, 이 공간에서도 그 미세한 다름을 경험할 수 있다. 길이에 따라, 맞닿는 선의 형태에 따라, 놓이는 위치에 따라, 빛과 공기의 흐름에 따라 세계는 낯설어진다.
카페 의자에 앉아 둘러보면 천장이 높고, 여기저기에서 빛이 내린다. 공간의 세부와 세부를 잇고 세부와 세부를 메우고 세부와 세부를 지우고 마침내 하나의 독립된 공간을 완성하는 데 빛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일은 어렵지 않다. 반쯤 아래, 그러니까 완전한 의미의 지하 1층은 비어 있고, 약간 어둡다. 그러니까 지하와 카페를 분리하는 것은 계단이 아니라 빛이다.

1 빛이 들어올 때 라이프북스의 풍경은 거실의 풍경과 비슷하다. 책꽂이에서 책들이 잠을 자는 것 같다.
2 라이프커피는 반지하에 위치했는데, 그 때문인지 공간이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3 비아인키노의 가구는 2층과 3층에 진열돼 있다. 1층의 서점, 반지하의 카페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특히 컬러가 눈에 띈다.

커피 한잔 마시고 다시 서점으로 올라오면 빛은 진작부터 1층에 축복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책과 책 사이, 책과 진열장 사이, 진열장과 의자 사이, 의자와 빈 공간 사이에서 빛은 낯선 세계로 향하는 틈을 열어줄 것처럼 존재한다. 나무 진열대 위에 펼쳐져 있는 책들을 보고 있자니 새삼 종이의 기원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책 한 권 한 권이 눈으로 읽는 무엇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무엇, 즉 감정처럼 느껴진다.
내 눈엔 수전 손택, 존 버거의 책이 가장 먼저 들어왔다. 꽤 감각이 좋은 누군가가 읽고 추천한 책들로 목록을 작성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아인키노의 마케팅을 총괄하는 고정현 이사에게 물어보니 소설가 정지돈과 협업해 책을 골랐다고 한다. 진열대 위의 책은 2~3개월에 한 번씩 테마를 정해 바꿀 예정이다. 과학, 역사, 철학 등을 아우른다. 첫 번째 테마는 눈, 시간, 집이다.
책을 고르다 문득 비아인키노의 가구가 보고 싶어지면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된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서점과 카페를 내려다보면 노출된 콘크리트 벽, 벽의 세부를 연결하듯 부착된 스틸 구조물, 나무 가구와 동일한 컬러의 나무판이 눈에 들어온다. 그때 무슨 생각이 들지 알 수 없으나 누구라도 그 순간 무엇인가 읽어냈다고 느낀다면, 좋은 공간은 한 권의 좋은 책과 같다고 해도 적어도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을까?
서점 이름은 ‘라이프북스’다. 카페 이름은 ‘라이프커피’다.
‘라이프’라는 단어를 사용한 의도는 명확하다. 삶의 태도, 삶의 방식을 표현하겠다는 것. 건물 바깥으로 나가 영어로 적힌 서점 간판과 카페 간판을 보고 있으면 비아인키노가 담으려한 본질은 다시 한번 명확해진다. 간결함과 우아함. 모순적인 두 단어 사이를 탐험하게 하는 것. 그 길에 빛이 쏟아진다. 라이프북스와 라이프커피의 가구를 비롯한 공간은 플랫엠(Flat.M)과, 간판을 비롯한 BI는 워크룸(Workroom)과 협업했다.

Address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 741 Tel 1899-6190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이우성(시인)  사진 김잔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