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은 쉼표
월간지 <마당>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 월간 <한국인>, 주간 <시사저널> 편집장과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자리를 내려놓고 2006년 산티아고 순롓길에 오른 여인. 정치부 기자로 재직 당시 대통령과 유명 정치인들과 동석하며 국내 정치계의 중요 이슈를 전한 그녀는 기자를 꿈꾸는 누군가에게 롤모델이고 멘토였겠지만 이제는 ‘걷는 길 내는 여자’가 되어 인생 제2막을 꿈꾸는 이들에게 또 다른 본보기가 되고 있다. (사)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 이야기다.

5년 전, 워크숍 참석차 제주를 방문했을 때 회사 동료들과 올레 6코스를 걸은 적이 있다. 60명 정도 함께 걷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나를 포함해 5~6명의 기자가 선두 그룹에 섰다. 한번 처지기 시작하면 꼴찌는 맡아놓은 당상이라 등산이든 오래달리기든 늘 의식적으로 선두에 서던 나는 그때도 역시 ‘닥직(닥치고 직진)’ 스타일로 서귀포의 올레 코스를 완주했다. 사실 풀코스도 아닌, 쇠소깍다리에서 출발해 6코스의 5분의 4 지점인 서귀포 칼 호텔까지가 미션이었는데 다른 그룹보다 20분 정도 빨리 1등으로 도착한 우리는 오버페이스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서로의 승부 근성을 칭찬하며 의문의 1승을 거두곤 방으로 돌아갔다. 식사 자리에서 제주 올레 이야기가 나올 때면 60명 중 선두로 피니시 라인을 통과한 이야기를 프랑스를 구한 잔 다르크 이야기처럼 떠벌리던 내가 그것이 최악의 올레 걷기였다는 걸 깨닫게 된 건 불과 한 달 전,(사)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을 만나고 나서다.
대한민국에 ‘올레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이자 걷기 여행의 열풍을 일으킨 ‘걷는 길 내는 여자’ 서명숙 이사장은 제주도 성산읍 출생으로 1983년부터 2006년까지 총 23년간 기자로 일하다 쉰 살에 산티아고 길 순례에 나선 인물이다. 순롓길에서 고향 제주를 떠올리고 산티아고 길보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을 제주에 만들자는 각오로 (사)제주올레를 발족, 2007년부터 올레길을 내기 시작해 지금까지 총 425km, 26개의 올레길을 완성했다. 종달리해변 근처 시흥초등학교에서 출발해 성산일출봉을 지나는 1코스를 시작으로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아 21코스 종달리해변에서 마무리하는 제주 올레 코스를 만드는 동안 그녀는 틈틈이 글을 쓰고 책도 냈다. 특히 <제주 올레 여행>,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에는 여자로서 오르기 힘든 시사지 편집국장 자리를 하루아침에 그만둔 용기와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산티아고로 훌쩍 떠난 결단력, 제주로 돌아와 맨손으로 직접 나무와 덤불을 헤쳐가며 올레 코스를 낸 힘겨운 성취 과정이 모두 담겨 있어 같은 여성으로서 상쾌통쾌한 대리만족 같은 걸 느낄 수 있다. ‘집 대문에서 마을 길까지 나가는 좁은 길’을 뜻하는 올레처럼 제주의 해안가를 축으로 마을과 들판, 산과 바다를 모두 잇는, 느릿느릿 걸으며 제주의 속살을 발견할 수 있는 제주 올레를 만든 서명숙 이사장과 함께 걷기 좋은 봄 3월에 서귀포의 6코스를 다시 찾았다.

1 올레 코스 방향을 알려주는 표식인 리본이 제주의 바람에 나부낀다.
2 (사)제주올레는 여러 사회적 기업과 ‘리얼’ 제주를 만나는 다양한 특화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사장님의 <제주 올레 여행>을 읽고 저도 모르게 “이건 내 이야기야” 그랬어요. 이사장님이 기자 출신이라 더 감정이입을 했지만,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 책에서 어떤 용기와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어제 서울로 출장을 다녀왔는데,돌아오는 비행기 옆자리에 50대로 보이는 한 여자분이 타셨어요. 제가 다 읽은 신문을 보시겠다고 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제주 올레스테이(올레 여행자들을 위해 제주올레에서 운영하는 숙소)에 오시는 분이더라고요. 학교 선생님이었는데 제 책도 다 읽었다며 얼마나 반가워하시던지, 공항에서 올레스테이가 위치한 사무국 빌딩까지 함께 왔어요. 근데 사무국에 오니 또 어떤 여자분이 계시는 거예요. 제가 쓴 <영초 언니>를 읽고 책에 사인을 받고 싶어 기다리셨다는 거예요. 약사로 일하는 분이었는데, 50대 정도로 보였어요.20~30대에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린 사람들이 50대에 들어 한 번쯤 뒤를 돌아보게 되는데, 제 이야기가 바로 그 지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를 알아보고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신기하고 색다른 경험일 것 같아요. 누가 봐도 성공한 인생 제2막처럼 보입니다. 그래도 2006년 당시 언론사 편집국장이라는 지위를 내려놓기 쉽지 않으셨을 텐데,미련은 없었나요? 일중독자처럼 살다 보니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된 상태였어요. 어느 날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스스로가 유령 같은 거예요. 그 전까지는 매일 아침 “I can do it”을 외치며 “나니까 이렇게 할 수 있는 거지” 그랬어요. 마녀라는 별명으로 불리면서도 “나만큼 열심히 해봐, 난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아”라고 외쳤죠. 결국 체력이 버텨낼 수 없는 상태까지 갔고, 그래서 사표를 낼 때도 미련은 없었습니다.
주변에서 가정과 일의 밸런스에 대해 조언을 해주신 분은 없었나요? 내게 80%만 해도 된다고 하신 분도 있었어요. 되돌아보면 경고음을 울린 사람이 꽤 있었는데, 제가 안 들은 거죠. 1989년에 <시사저널>로 이직할 때도 전 직장의 상사가 “100%를 다 하려고 하지 마라. 스스로를 몰아가지도 마라”고 하셨는데 그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결국 체력과 정신력 모두 바닥이 났죠. 그때 느낀 영혼의 황폐함은 십 수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해요. 잊히지 않죠.
그래서 산티아고 순롓길에 오르셨군요. 그 길 위에서 만난 분들도 대부분 비슷한 처지였나요? ‘이제부터라도 스스로를 돌보고 나 자신에게 시간을 줘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죠. 하지만 그 이유는 제각각이었어요. 공통점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 사람이라는 것이었어요. 어떠한 이유에서든 꼭 한번 나를 돌아보고 싶은 사람, 어떻게 살고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삶의 방향을 확인하고 싶은 이들이 보통 순롓길에 오릅니다.
그런데 길 위에서 치유를 받았다고 해도 대부분은 원래 자리로 돌아오지 않나요? 인간이란 본능적으로 어떤 조직이나 체제 안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욕구가 크니까요. 36일간 순롓길을 걷는 건 삶의 대청소를 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돼요. 예를 들어 집 안 대청소를 했다고 그게 1~2년 가나요? 다음 날 바로 먼지가 쌓이는데. 그렇듯 우리도 매일 길을 나서는 순례자가 될 수는 없어요. 어느 순간에 한번 되어보는 거죠. 그리고 삶으로 돌아와 삶 그 자체를 살아가다 보면 또 때가 묻고, 그럼 또다시 걷는 거죠.
순롓길을 다녀온 뒤 이사장님처럼 걷는 길을 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전 세계에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누구나 생각은 하지만 실천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쉬려고 그곳에 갔지만 인생 제2막을 열 수 있는 단서를 발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었어요. 여행 작가와 순수문학 작가. 대충 설정한 것이 그 두 가지였는데, 지금은 그것과 너무 동떨어져 길 내는 사람이 되었죠. 만약 산티아고에서 고향 제주도에 꼭 길을 내보라고 한 영국인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면 저는 예전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을 거예요. 그만큼 우리 인생은 우연을 가장한 기적 같은 만남이 곳곳에서 일어나죠.
산티아고에서 돌아온 지 11개월 만인 2007년 9월에 (사)제주올레를 발족하고 1코스 조성을 시작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제주도가 고향이라 더욱 쉽게 시작하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길을 내는 데 전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생각해요.(웃음) 또 제주도에 남동생이 살고 있지않았다면 길 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예요. 돌아보면 제주 올레를 조성하는 데 저만큼 최적의 조건을 갖춘 사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도와 시의 도움 없이 이사장님과 남동생 두 분이 맨손으로 길을 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처음 1년간은 동생과 둘이 제 퇴직금을 써가면서 했어요. 시에서 지원을 받았다면 아마도 시간에 쫓겼겠죠.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그냥 제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니까요. 저처럼 산티아고 순롓길을 걷고 싶어도 돈, 시간, 가족 때문에 가지 못하는 친구들을 위해 가까운 제주도에, 산티아고보다 풍경이 아름다운 제주도에 꼭 길을 내고 싶었어요.
제주 올레를 조성하고 나서 빠르게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제주를 대표하는 하나의 관광 코스로 완전히 자리 잡았는데, 이런 반응을 애초부터 예상하셨나요? 10~20년 정도 지나면 알려지겠지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빨리, 마치 팝콘 터지듯 ‘뻥’ 하고 순식간에 알려졌어요. 올레 코스가 유명해지든 아니든 저는 바쁜 생활에서 은퇴했으니 천천히 길을 낼 생각이었는데 말이죠.

3 제주올레여행자센터 1층에는 제주 올레 기념품인 간세인형을 직접 만들며 체험하는 간세공방이 있다.
4 올레 19코스를 따라가다 보면 길가에 샛노란 유채꽃을 마주할 수 있다.
(사)제주올레 발족 후 2007년부터 2009년까지는 거의 두 달에 한 코스씩 개장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코스가 하나씩 생긴 셈인데, 그 속도라면 기자 시절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름 업무량이 많았을 것 같아요.저에겐 즐거운 놀이였죠. 기자는 특종을 터뜨렸을 때의 짜릿함이 있잖아요. 길도 그래요. 가시에 찔려가며 덤불을 들췄는데 그 뒤에 옛 길이 숨어 있을 때의 기분은 정말 끝내줘요. 유적을 발굴한 것 같은 기쁨이랄까요.
올레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사실 길을 내는 즐거움만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라 사후 관리에 얼마나 많은 손길이 가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길을 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올레를 걸으신 분들이 전화를 주기 시작했어요. 길을 관리하고 싶다고. 예를 들면 리본으로 길 표식을 해놓은 부분이 많은데, 제주엔 비와 바람이 많아 금방 삭거든요. 그럼 때에 맞게 리본을 교체해야 하는데, 425km를 몇 명의 직원이 다할 순 없잖아요. 그렇게 자원봉사자들이 나서면서 자연스럽게 올레지기라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지금은 26개 각 코스마다 2~3명의 올레지기가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길을 걸으며 시와 도에서 새로 도로를 공사하는 구간은 없는지, 파손된 표식은 없는지 등을 확인하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롓길은 한 해에 한국인 4000명 이상이 다녀간다고 하는데 제주 올레는 한 해 국내외 방문객이 어느 정도인가요? 정확히 셀 순 없지만 꾸준히 늘고 있어요. 국내뿐 아니라 해외, 특히 홍콩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인접 국가에서도 많이 찾습니다. 제주올레축제에 매번 참석하는 싱가포르 관광객은 매년 친구들을 더 많이 데려오고 있어요. 한 홍콩 관광객은 매달 올레길을 청소하는 ‘클린올레’에 참여하고 있죠.
(사)제주올레에서 하고 계신 사업 중에 주민과 올레꾼을 이어주는 마을 사업, 제주 여성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간세인형공방조합 등이 있습니다. 길 하나가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건 국내 관광산업에도 고무적인 현상으로 보여요.길을 내는 단체의 의무이자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바꿔 생각하면 올레꾼들을 위해 마을 사람들이 길을 내준 셈이니까요. 그래서 마을 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는 ‘신산리 마을카페’인데 신산리에 2만 평 가까운 녹차밭이 있다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카카오봄의 고영주 대표가녹차 아이스크림과 녹차 초콜릿 제조 노하우를 전수해줬고, 덕분에지금은 우리에게 기부금을 내는 카페가 됐어요. 솔직히 일본 긴자의 녹차 아이스크림보다 몇 배는 맛있어요.
전국 각지의 지인들이 올레 코스를 걸으려고 제주도에 많이 올 텐데 자주 동행하시나요?네, 그렇긴 해도 저는 혼자 걷는 걸 제일 좋아해요. 아침에 일어나 그날 기분 내키는 코스로 걷는데, 제주올레사무국 탐사대가 제일 스트레스 받을 때가 제가 예고 없이 아무 때나 아무 코스에 출몰해 이거 고쳐라, 저거 고쳐라 지적하는 거래요.(웃음)
제주에 계신 날엔 거의 올레를 걸으세요?그게 제 일이니까요. 바빠서 며칠 못 걷게 되면 컨디션이 안 좋아지기 때문에 꼭 걷는 편이에요. 2년 전에 산티아고에 간 것도 체력이 다시 처지는 게 느껴져서 다시 한번 힘들게 걸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올레 코스는 그렇게 걸을 수 없어요. 걷다 보면 꼭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거든요.
26개의 올레 코스는 풍경도 그렇고 난이도도 각각 다릅니다. 이사장님이 자주 애용하는 길은 몇 코스인가요?제 집이 6코스 선상에 있어 집 앞에서 우회전, 좌회전만 결정하면 서로 다른 분위기의 길을 즐길 수 있습니다. 가장 드라마틱한 풍경으로 꼽는 코스는 18-1, 추자도 코스예요. 혼혈의 아름다움처럼 남도와 제주도의 매력을 절묘하게 믹스해놓은 풍광을 볼 수 있는데, 산도 높고 골도 깊어 난도가 매우 높아요. 그래서 하루는 상추자, 또 하루는 하추자, 이렇게 걸어야 그 길을 가장 잘 즐겼다고 할 수 있죠. 정서적으로는 1코스에 특히 애정이 갑니다. 첫사랑 같은 길이죠. 오름과 바다가 같이 있는 전형적인 제주도의 풍광을 마주할 수 있어요.
40대 후반까지 대도시에서 치열하게 살다, 지금은 자연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다. 부침 심한 언론인의 삶과 (사)제주올레 이사장으로서 삶, 혹시 이 둘의 연관성이 있을까요?서울에서의 시간은 마치 전생의 삶처럼 느껴져요. 가끔 기자 시절 이야기가 나오면 어렴풋한 기억만 있을 뿐 현실감이 없죠. 진짜 내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니까요. 그렇지만 그 시간을 열심히 살았기에 당시 만난 분들이 지금도 제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본인의 일 외에 일절 다른 직함을 갖지 않는 손석희 씨가 우리 사무국 이사직을 수락해주신 것이나 양희은, 한비야 씨 모두 제주 올레를 알리는 데 엄청 기여하신 분들이거든요.
기자로서 그런 것이 큰 밑천이죠. 기자를 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기도 하고요.삶에서 바로 전 단계에 한 일은 어떤식으로든 그다음 단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요. 설령 그 업계를 떠났다 해도요. 그래서 당시 주어진 일, 맡은 일에는 반드시 충실히 임해야 한다고 봐요. 저만 해도 미친 듯이 일한 그때의 후광을 지금 보고 있으니까요.
제주올레아카데미의 교장을 맡고 있는 오의삼 선생님도 이사장님의 초등학교 4학년 담임선생님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제주 올레는 사무국 조직부터 올레 코스 현장까지 모든 부분에 스토리가 깃들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누군가에 의해 쓰인 장편소설같이 말이죠. 어머, 맞아요. 그렇지 않아도 한 영화감독님이 올레 스토리를 영화화하겠다고 해서 몇 번 미팅을 했어요. 기자로 살다 산티아고 순롓길에 다녀온 뒤 고향에 내려와 마을 사람, 공무원, 심지어 제주도 조폭과도 부딪쳐가며 기어코 걷는 길을 낸 그 드라마틱한 과정을 몇 년 안에 영화로 보실 수 있을 거예요. 내가 걸어온 인생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이 정도면 괜찮은 인생 맞죠?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