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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을 닮은 조각

ARTNOW

패션에서 조형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지중해로 돌아온 올리비아 코녜의 유기적 여정.

조형성이 돋보이는 작품 ‘키네틱 베이스’.

남프랑스의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코트다쥐르, 그중에서도 도예의 수도라 불리는 발로리스. 이곳은 피카소와 로제 카프롱(Roger Capron), 장 데르발(Jean Derval) 등이 머물며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실험한 창조의 땅이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재능이 자라고 있다.
바로 도예가 올리비아 코녜(Olivia Cognet)다. 프랑스 니스 출신으로 랑방, 소니아 리키엘 등 패션 브랜드의 주얼리 디자이너로서 커리어를 쌓은 그녀는 컴퓨터가 아닌 손을 사용하는 작업이 그리워 파리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도예를 익혔다. 6년간 흙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현지 갤러리를 통해 작품 판매도 진행했는데, 당시 제이지(Jay-Z)가 그녀의 화병을 구입하는가 하면, 로버트 드니로가 운영하는 노부 호텔은 내부를 그녀의 세라믹 램프로 장식하기도 했다. 이처럼 그녀가 선보인 현대적 조형미는 빠르게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발로리스에 위치한 쇼룸 전경.
아래 왼쪽 쇼룸에서 포즈를 취한 올리비아 코녜.
아래 오른쪽 아틀리에에서 건조 중인 작품들.

미국에서 활동하던 올리비아 코녜는 최근 발로리스로 돌아와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도예가 로제 카프롱의 전설적 공방을 매입했다. “카프롱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 공간을 얻은 것은 특별한 일이에요. 처음 여길 방문했을 때 아직도 그가 살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거든요. 매일 아침 문을 열 때마다 그 기운이 느껴져요.” 1960년대에 카프롱이 세운 이 아틀리에는 미로 같은 구조와 시멘트 계단, 벽에 새긴 부조의 추상 장식 등으로 프랑스 도예 역사에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긴 공간이다. “이곳은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유산이에요. 내부를 새롭게 레노베이션하면서도 그 원형을 존중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천장이 높고 빛이 잘 드는 작업 공간, 지중해 식물로 가득한 중정, 그리고 카프롱이 설계한 세라믹 타일이 돋보이는 바비큐 시설과 테이블이 있는 야외 공간이 마치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장치 같지 않나요?”
올리비아 코녜의 작업은 전통적 도예의 경계를 넘어선다. 그녀는 조각과 디자인, 회화와 건축적 요소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새로운 조형 언어를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대표작 중 하나인 조각적 형태의 조명 시리즈는 황토색 점토로 손수 빚은 것으로, 단순한 기능을 넘어 공간 전체를 빛과 그림자로 감싸는 오브제로 기능한다. 벽에 직접 설치하는 파노라마 벽화나 대형 거울, 유기적 곡선을 강조한 화병 등도 모두 그녀의 조형적 상상력이 녹아든 결과물이다. 이런 그녀의 창작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받은 시각적 영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린 시절 니스에서 자란 올리비아는 도시 곳곳을 장식한 벽화와 조각, 미술관에서 본 피카소, 레제, 미로의 작품에 매료되었다. 니스의 오래된 건물 외벽에 걸린 도자 장식을 보며 흙이 감성적일 수 있다는 것을 느꼈고, 이 감각은 로스앤젤레스에서 거대한 자연, 건축과 마주하며 더욱 확장되어 특유의 유기적 형태를 완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모티브를 얻은 작품 중 하나로 올리비아는 자크 쿠엘(Jacques Couëlle)의 건축을 손꼽는다. “쿠엘의 건축은 도예에 가깝죠. 그가 만든 계단이나 곡면을 도자기 표면에 옮기고 싶었어요.” 실제로 직접 레노베이션한 공방의 시멘트 계단은 쿠엘의 곡선을 연상케 하는데, 그 위에는 다채로운 세라믹 작품이 마치 오래된 풍경처럼 어우러진다.

위 왼쪽 가마로 이동 중인 작품들.
위 오른쪽 부조 형태의 세라믹 작품은 최근 인테리어 디자인 트렌드를 형성하며 올리비아 코녜를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다.
아래 아틀리에에서 작업 중인 올리비아와 그의 동료 장인들.

작업의 아이디어를 흙이 아닌 종이와 펜에서 얻는 점도 흥미롭다. “모든 작업은 스케치에서 시작됩니다. 저는 항상 스케치북을 옆에 두고 있어요. 손에서 자연스럽게 형태가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 때까지 계속 그리죠.” 스케치는 그녀의 창작에서 핵심적 출발점이다. 평면에 추상적으로 그린 형태는 점토 위에 옮겨져 입체로 재탄생하는데, 이 과정에서 올리비아의 손길은 형상은 물론 표면, 질감까지 작업 일체를 통제한다. 스케치에서 도드라지는 유기적 형태는 건축에서 영감을 받은 결과다. “1950~1960년대에 지은, 당시의 모더니즘 운동이 반영된 코트다쥐르와 로스앤젤레스의 건물을 좋아해요. 건축에 관심이 많지만 건물을 지을 능력은 없어 도예 작업을 작은 건축물을 짓는다 상상하며 이어갑니다. 그래서 제 작품에는 기능과 장식, 두 요소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모던 건축에서 영감을 얻은 올리비아의 작업은 현대적 인테리어에 고급스럽게 어우러지는 미감을 자랑한다. 지금 그녀의 작품이 뉴욕과 파리, 로스앤젤레스의 주요 갤러리에 전시되고, 전 세계 건축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그녀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일 것이다. 최근에는 건물 외부 수영장의 한쪽 벽을 덮는 대형 파노라마 도자 조형물에 도전 중인데, 단순한 월 데커레이션을 넘어 건축 및 주변 자연과 하나로 통합된 듯한 회화적 장치에 가깝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런 대형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로 발로리스의 작업 환경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랜 도예 전통을 자랑하는 이 마을에선 여전히 뛰어난 장인들이 활동 중이다.

로제 카프롱이 사용한 전통 방식 가마가 있던 장소.
아래 쇼룸 전경. 1960년대 카프롱의 흔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올리비아는 현지 유리공예가, 대리석 장인, 금속 세공인과 협업하며 작업의 확장 가능성을 실험 중이다. “이곳에는 제가 원하는 모든 작업이 가능할 정도로 아티스트와 장인들이 서로 돕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어요. 작품에 원하는 컬러를 입히는 것이 쉽지 않은데, 현재 그 기술도 발로리스의 장인들에게 배우는 중이에요. 언젠가 모든 걸 혼자 해결할 수 있길 바라지만, 한편으로 이 도시 전체에 스며 있는 협력의 역사가 제 작업에 영감을 주는 원천이라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이곳에서, 올리비아 코녜는 도자의 미래를 새롭게 빚어내고 있다. 로제 카프롱이 남긴 유산 위에 그녀의 조형적 감각을 더한 공방에서 탄생한 작품들은 남프랑스의 햇살을 머금은 채 전 세계의 거실과 갤러리, 안목 있는 컬렉터의 수장고로 스며들고 있다. 그렇게 그녀의 작업은 기능과 추상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동시대 인테리어 신에 새로운 유행을 제시하고, 미래 도예의 가능성을 확장해나가는 중이다.

 

양윤정(아트 칼럼니스트)
에디터 김수진(jin@noblesse.com)
사진 올리비아 코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