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찾아서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가깝고 확실한 행복, 소확행에 대한 단상.

행복은 평범한 일상에서 얼마든 지 찾을 수 있다.
삶에 만족하는 편이다. 에디터로서 글 쓰는 일을 즐기고, 각 분야의 성공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배우는 점도 많다. 주말에 여자친구를 만나면 업무로 쌓인 피로가 싹 풀린다. 하지만 누가 “행복하니?”라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하긴 어렵다. 마음속 어딘가에 공허함과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데 나만 그런 건 아닌가 보다.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와 카카오가 개발한 ‘마음날씨’ 웹에 따르면, 2월 7일 기준 대한민국의 ‘안녕 지수’는 100점 만점에 51점, ‘흐림’이다. 참고로 이곳에선 ‘삶에 얼마나 만족합니까?’, ‘지금 얼마나 행복합니까?’, ‘어느 정도 불안합니까?’ 등의 질문에 점수로 답변을 받고, 이를 토대로 종합 행복 지표인 안녕지수를 산출한다. 이곳에서 다른 이들도 나처럼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위안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그럼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자문해본다.
혹자는 그 방법으로 ‘소확행(小確幸)’을 제시한다. 매해 트렌드 분석서 <트렌드 코리아>를 내놓는 김난도 교수가 작년 말 2018년 키워드 중 하나로 제시해 몇 달 새 유행처럼 퍼진 단어다. 이는 사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6년에 발간한 에세이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처음 사용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갓 구워낸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을 열면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쌓여 있는 것”, “침대에 누워 고양이와 함께 빈둥거리는 것” 등으로 소확행을 정의했다. 하루키의 묘사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낭만적인 구석이 있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행복은 거창하지 않은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1 집 인근의 풍경을 세밀하게 관찰하며 걷는 ‘마이크로 산책’.
2 애완 고양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소확행의 한 예다.
소확행이란 용어 자체는 생소하지만,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진부한 격언을 좀 그럴듯한 단어로 바꾼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선진국에는 이미 소확행과 비슷한 개념이 존재한다. 촛불 옆에서 핫초콜릿을 마시는 기분처럼 안락한 분위기를 의미하는 덴마크의 ‘휘게(hygge)’, 창가에 핀 허브를 돌보며 소박하게 공간을 채워나가는 삶의 방식을 일컫는 스웨덴의 ‘라곰(lagom)’, 집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고요하게 삶을 즐기는 모습을 뜻하는 프랑스의 ‘오캄(au calme)’이 바로 그것.
그렇다면 왜 이제 와서 소확행이 화두가 된 걸까? 그 이유는 오늘날 우울한 사회 분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입신양명하기 어려운 사회구조가 굳어지면서, 현재를 희생하면 풍요로운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실 평범한 직장인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서울에 집 한 채 마련하기 쉽지 않다. 직장의 정년이란 개념도 희미해서 10년, 아니 5년 후의 미래도 장담하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은 사치다. 몇몇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당장 인터넷에 접속해 20~30대와 관련한 뉴스를 찾아보라. 취업난, 공무원 시험과 관련된 기사의 댓글엔 어김없이 ‘헬조선’, ‘흙수저’, ‘N포세대’란 단어가 등장한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나기 힘든 세태를 자조적으로 빗댄 표현이다. 요새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면, 어김없이 진작에 비트코인에 투자해야 했다는
푸념 섞인 농담이 나온다. 요행을 바라지 않고는 현재의 막막한 상황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다.

3 마음날씨 웹에선 우리나라 국민의 심리 상태 변화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4 집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는 것도 소확행이 될 수 있다.
작년 한 해 욜로(YOLO)라는 말이 크게 유행한 것도 이러한 시류와 무관하지 않다. ‘You Only Live Once’의 머리글자를 따 만든 욜로는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를 뜻한다. 내 집 마련이나 노후 준비를 위해 저축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삶의 질을 높여줄 취미 생활이나 자기 계발에 투자한다는 이야기다. 직장을 관두고 버킷 리스트로 남겨둔 세계일주를 떠난다거나, 그동안 엄두도 못 낸 고급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정찬을 즐기는 것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겠다. 욜로는 성장기 사회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천편일률적 삶의 목표에 대해 젊은 세대가 ‘다른 행복도 존재한다’며 들고 일어난 반기다. 하지만 욜로에는 한 가지 허점이 있다. 이것의 핵심은 자신이 가치를 두는 대상에 과감하게 투자함으로써 의미 있는 경험을 얻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비할 여력이 없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는 소리인가? 또 당장은 돈을 쓰며 행복을 느끼겠지만, 미래의 불행은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세계 여행과 같이 자신이 가치를 두는 대상에 과감히 투자하는 것이 욜로의 특징이다.
소확행은 욜로의 효율적 방안이자 구체적 대안이다. 욜로가 자칫 무분별한 돈 쓰기와 연결될 수 있는 것과 달리, 소확행은 주변의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추구한다. 요새 뉴스 칼럼이나 트렌드 분석 서적을 뒤적이다 보면, 소확행의 실천 방안이 여럿 제시되어 있다. 예컨대 100m 이내의 공간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마이크로 산책’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새순을 피우는 나무, 어느새 망울을 맺은 꽃 등 어제와 다른 오늘을 보며 소소한 기쁨을 느끼는 것. 멀리 휴가를 떠나지 않고 집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호캉스(hotel+vacance)’, 아예 집을 최고의 휴식처로 삼는 ‘홈루덴스(home+ludens)’도 한 예다. 또 그간 당연하게 여긴 일상을 다시 느껴보는 방법도 있다. 이를테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주말에 늘어지게 늦잠을 자는 것, 강아지를 쓰다듬는 것, 힘든 하루를 따뜻한 물로 샤워하며 마무리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중 어느 것도 정답이라고 할 순 없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고, 그것을 추구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니 말이다. 생각해보니 에디터도 이미 소확행을 실천하고 있었다. 회사와 집의 거리가 멀어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데만 1시간 30분이 걸리는데, 그 시간에 주로 유튜버들이 진행하는 게임 방송을 시청한다. 일에 쫓겨 요샌 좋아하는 게임을 하지 못하는데, 대신 입담 좋은 유튜버들이 최신 게임을 공략하는 방송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하나 더 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집에서 최상급 소고기를 먹는다. 등심, 안심, 부챗살 등 좋아하는 부위를 종류별로 챙겨놓고 그날그날 먹고 싶은 걸 고른다. 여기에 편의점에서 산 수입 맥주를 곁들이면 금상첨화. 작지만 소중한 나만의 맞춤형 소확행이다. 그럼에도 소확행이 우리를 진정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큰 행복을 찾기는 글렀으니 작은 행복으로 ‘정신 승리’를 도모하라는 일종의 사회적 메시지처럼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에 행복에 대한 담론이 풍성해지는 건 좋은 일이다. 행복의 양상이 다양해질수록 그만큼 행복해질 확률도 높아질 테니 말이다. 삶은 대체로 고단하지만,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건 우리의 몫이다. 소확행이 당신의 행복 찾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
에디터 황제웅(hjw1070@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