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x 장인정신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라.’ 얼마 전 새롭게 문을 연 홍콩의 랜드마크 펜디 부티크와 함께 마련한 특별 전시 <펜디, 또 다른 아트의 세계> 현장에서 펜디가 고집하는 패션에 대한 철학과 그 가치를 다시 한 번 실감했다.
1 아시아 최초로 홍콩에 안착한 뉴 인테리어 컨셉의 펜디 부티크 외관 2 부티크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1층의 이그조틱 레더 백 전시 공간 3 2층에 자리한 바게트 월 4 다채로운 모피 의상을 만나볼 수 있는 2층의 퍼 섹션 5 홍콩의 뉴 부티크 오프닝을 축하하며 선보인 스페셜 윈도 디스플레이. 미니 사이즈로 제작한 기념비적 퍼 코트의 앙증맞은 모습이 시선을 붙잡는다. 6 자르지 않은 듯한 효과가 특징인 인레이 기법을 활용한 2000-2001년 F/W 컬렉션 밍크 퍼 코트 ‘멀티 인레이(Multi Inlays)’.
“불가능한 것은 없다(Nothing is impossible)!”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Silvia Venturini Fendi)는 이 세 단어로 펜디를 정의했다.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펜디 하우스 설립자의 3대손이자 레더 구즈 라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그녀가 보여준 일에 대한 열정을 표현하는 데에도 이보다 잘 어울리는 말은 없을 듯하다. 펜디야말로 끊임없는 도전정신으로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패션 하우스이자 그 후손이 아니던가.
안락한 패션 하우스, 예술을 품다
아시아 최초로 선보이는 뉴 컨셉의 펜디 부티크에도 펜디표 특유의 냉철한 열정은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전체적으로 골드빛이 감도는 가운데 장대하면서도 온화한 분위기가 공간을 장악하고, 건축적 특성과 소재를 정교하게 대비시킨 점이 단연 눈에 띄었다. 홍콩 센트럴 랜드마크에 안착한 이 부티크는 프랑스 건축가 그웨나엘 니콜라가 펜디의 뿌리인 로마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한 것. 가죽과 청동, 스톤 등을 고대의 유적과 건축물 작업 시 사용하던 트래버틴(travertine, 백색이나 우윳빛을 띠는 결핵성 석회암)에 곁들여 새로운 시도를 이어갔고, 독창적인 소재와 오브제를 조화롭게 연출해 펜디 하우스의 개성과 기품을 표현했다. 지하 1층(남성복과 남성 액세서리)과 1층(여성용 백과 슈즈, 액세서리) 그리고 2층(여성용 백과 퍼를 비롯한 RTW 의상, MTO 서비스 공간 등), 총 3개 층으로 이루어진 공간은 마치 펜디 하우스에 초대받은 듯 안락한 느낌을 주며 방문객을 맞이한다.
1층에 들어서니 맨 먼저 이그조틱 레더 소재로 제작한 백을 전시해놓은 공간이 한눈에 들어왔다. 홍콩 랜드마크 부티크의 오프닝 행사에 맞춰 특별 제작한 초미니 사이즈의 퍼 코트와 피카부 백이 어우러져 이 공간의 특별함을 부각한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앙증맞은지, 소장품으로 간직하고 싶을 정도! 안쪽에 자리한 슈즈 섹션까지 찬찬히 둘러본 후, 나선형 계단을 따라 2층으로 향했다. 왼쪽에는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의 역작 중 하나인 바게트 백 월이, 오른쪽에선 밍크 퍼 컬러 블록으로 위트를 더하고 독창성을 한층 살린 펜디의 아이코닉 워치 크레이지 캐럿 워치가 에디터를 반겼다. 1만8000여 개의 브론즈 스파이크를 꽂은 벽에 다채로운 바게트 백 컬렉션을 걸어둔 모습은 마치 찬란하게 부서지는 햇빛 속에서 영광의 순간을 만끽하는 듯했다. 다음은 퍼 섹션. 아름다운 퍼 코트와 케이프가 캄파냐 형제가 디자인한 대리석 테이블과 건축가 티에리 르메르의 작품인 오벌형 테이블과 어우러져 정갈히 자리하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아이템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링스 퍼 코트. 윤기가 흐르는 광택,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운 감촉은 ‘퍼의 대가’다운 펜디의 면모를 재확인시켰다. 디자인 또한 평범함을 거부한다. 뒷모습은 숄을 두른 듯한 실루엣을 연출했고, 트렌디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곧바로 후드 재킷으로도 활용할 수 있게 디자인했으니 말이다. 이는 펜디 고유의 탁월한 퍼 가공 기술 덕분. 이어서 셀러리아 공간과 마주했다. 이곳에서는 셀러리아 라인의 안나와 아델은 물론, 바게트와 피카부, 투쥬르 백을 주문 제작할 수 있는 MTO(Made-to-Order) 서비스를 제공한다. 차별화와 특별함을 추구하는 고객을 배려해 마련한 곳이다. 주문 과정에서 참고할 만한 원단 샘플을 넣어두는 박스(펜디 고유의 장인정신과 컨템퍼러리한 감각을 반영한 디자인은 보는 순간 탄성을 자아낸다) 하나에서도 펜디만의 탁월함을 엿볼 수 있다. 2층의 마지막 공간은 레디투웨어 섹션. 이곳에선 프랑스의 예술가이자 디자이너 에르브 반 데르 스트레텐이 완성한 ‘파이프’ 콘솔과 티에리 르메르의 푸른색 대리석 테이블이 공간의 분위기를 한층 모던하게 이끈다. 그러고 보니 부티크 곳곳을 장식한 오브제가 예사롭지 않다. 실비아가 이 부티크의 특징으로 제일 먼저 꼽은 점이기도 하다. 예술을 품은 패션 하우스. 펜디의 홍콩 랜드마크 부티크를 묘사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를 표현이 아닐까?
펜디 퍼의 역사와 가치를 보여준 <펜디, 또 다른 아트의 세계> 홍콩 전시의 주인공 가운데 6벌의 퍼 코트 1 21세기(21st Century), 2014 S/S 2 메터모퍼시스(Metamorphosis), 2013-2014 F/W 3 3D, 2013 S/S 4 아나토미(Anatomy), 2013-2014 F/W 5 오키드(Orchid), 2012-2013 F/W 6 레이비린스(Labyrinth), 1979-1980 F/W
펜디, 모피를 혁신하다
‘펀 퍼(Fun Fur).’ 브랜드 로고인 더블 F의 뜻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펜디와 퍼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모피를 펜디처럼 유쾌하게 즐기고, 심혈을 기울여 연구하고, 사랑해 마지않는 패션 하우스도 없을 테니까. 1925년 로마의 소규모 가죽·모피 상점으로 출발한 펜디, 모피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세기 가까이 모피 소재와 디자인 개발을 위해 발휘한 창의력과 혁신적 기술력 그리고 여기에 장인정신을 뒷받침해 탄생시킨 모피 컬렉션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모피에 대한 펜디의 열정을 엿볼 수 있는 자리도 함께 마련해 인상적이었는데, 부티크의 그랜드 오프닝을 기념해 펼친 <펜디, 또 다른 아트의 세계(Fendi: Un Art Autre)> 전시가 그것이다. 이 전시는 세계 순회전의 일환으로 지난해 열린 도쿄와 베이징 전시에 이은 세 번째 전시. 지난 10월 23일 개막해 홍콩 랜드마크 펜디 부티크 바로 앞 랜드마크 몰 중심부에서 9일간 이어졌다. 황금색 원형 구조물로 꾸민 이 팝업 미술관은 화려하고 웅장한 외관부터 쇼핑몰을 찾는 이들의 이목을 모으며 발걸음을 붙잡았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한 멀티 모니터를 통해 선보인, 196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펜디 모피의 대표적 디자인을 담은 감각적인 편집 영상 또한 전시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1 홍콩 랜드마크 몰 한가운데 자리한 팝업 전시장 전경. 금빛 외관과 나선 형태의 전시장 구조가 독창적이다. 2 인레이 기법을 시연하고 있는 장인의 진지한 모습에서 진정성이 묻어난다. 3 전시장 안쪽에 마련한 퍼 아뜰리에 ‘템플’ 공간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피카부와 투쥬르 모피 백들 4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와 씨엘 그리고 펜디의 CEO가 장인정신과 혁신적인 기술력 그리고 창의력으로 탄생시킨 모피 샘플을 관람 중이다. 5 칼 라거펠트가 그린 스케치들 6 플로렌스 리미티드 에디션 피카부 백(2013). 밍크 퍼에 인레이 기술을 적용해 3D 효과를 살렸다. 7 칼 라거펠트를 형상화 한 칼리토. 칼 라거펠트는 내년에 펜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한 지 50주년을 맞이한다. 8 뉴 아이코닉 백으로 떠오르는 바이더웨이 백(2014). 가젤 퍼를 사용해 입체감을 부각했다.
본격적인 전시 관람에 나섰다. 이번 전시를 큐레이팅한 에마누엘라 노빌레 미노(Emanuela Nobile Mino)의 설명을 따라 펜디의 모피 컬렉션 역사에서 기념비적 작품을 차례로 감상했다. 이번 전시는 기존의 도쿄와 베이징 전시와 달리, 펜디의 모피에 대한 철학과 제작 기술 발전에 초점을 맞춰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컬렉션 가운데 대표적 의상 12점만 선보여 전시에 대한 집중도를 더욱 높였다. “펜디의 철학과 탁월한 기술력을 담은 예술 작품”이라며 전시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애정을 보인 큐레이터 에마누엘라 노빌레 미노의 설명과 함께 전시 의상을 살펴보니, 펜디가 그간 얼마나 모피 제작 기술 발전에 큰 영향력을 미치며 중추적 역할을 해왔는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패션 하우스 중 유일하게 모피 공방을 운영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와 가치가 있다. 마지막 작품으로 선보인 최근 컬렉션 ‘21세기’ 퍼 코트를 예로 들면, 속이 비치는 얇은 오간자에 바짝 깎은 밍크 퍼를 더해 봄과 여름에도 즐길 수 있는 ‘서머 퍼’를 처음 선보인 것도 펜디가 아닌가. 흔히 겨울 의상으로만 떠올리는 모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등 이와 같이 모피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펜디가 퍼 스타일의 혁신을 위해 들인 공은 상상을 불허한다.
전시 작품을 모두 둘러본 후, 로마의 퍼 아틀리에를 재현해놓은 듯한 안쪽의 특별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템플(temple)’이라고 소개한 이곳에서는 펜디가 엄선한 퍼가 실제로 어떻게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하는지 모피 샘플과 디자인 스케치, 가봉, 실제 제작 과정 등을 선보이며 관람객의 이목을 모았다. 특히 펜디가 개발한 대표적 모피 제작 기술 중 하나인 ‘인레이 기법’을 시연하는 장인 앞에서는 신기롭다는 듯 눈빛을 반짝이며 질문 세례를 쏟기도 했다. 한편, 원형을 이룬 벽면에는 깎고, 이어 붙이고, 오리고, 꿰매고, 꼬는 등 다채롭게 제작 및 직조한 형형색색의 모피와 피카부, 바게트, 바이더웨이까지 퍼를 사용해 다채로운 스타일로 완성한 펜디의 대표 모피 백을 전시해 흥미로운 볼거리를 더했다. 9일이라는 전시 기간이 너무나 짧게 느껴진 홍콩에서 열린 <펜디, 또 다른 아트의 세계>전.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은 장인정신 위에 견고한 탑을 쌓고 있는 펜디의 퍼에 대한 열정과 확고한 신념을 오감으로 느꼈으리라. 최근 몬스터와 칼리토에 이르기까지 위트를 더한 퍼 액세서리로도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는 펜디. 펜디가 제시할 또 다른 퍼 혁명이 기대되는 이유는 그 주체가 이 순간에도 혁신을 추구하는 ‘펜디’이기 때문이다.
에디터 유은정 (ejyoo@noblesse.com)
사진 제공 펜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