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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의 길, 현대 예술의 길

ARTNOW

장영규는 1990년대 초반부터 무용음악과 영화음악, 록, 국악, 민요, 현대미술, 무용 연출 등을 차례로 섭렵해왔다. 질서정연한 기존 예술의 범주에 도전장을 내밀며 시대에 한발 앞선 도전과 열정으로 새로운 퍼포먼스의 개념을 제시한 그를 만났다.

장영규
Jang Younggyu

현대 예술의 다양한 장르를 끊임없이 개척해나가는 장영규

장영규

1994년 백현진, 원일과 함께 ‘어어부프로젝트’를 결성해 음악계에 눈도장을 찍고, 이후 대중적 파급력이 큰 영화계에서 음악감독으로 오랫동안 활약했다. 현재는 영화음악과 국악, 민요, 무용 연출, 현대미술을 넘나들며 그야말로 전 방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장영규가 하는 일련의 활동은 쉽게 말하면 ‘흐름’이다. 끊임없는 변화. 그러니까 절대 ‘고이지’ 않겠다는, 기존 예술을 넘어서는 예술을 하겠다는 어떤 의지. 사실 이런 건 오래전 현대 예술사에서 퍼포먼스 아티스트들이 일군 성과와 크게 다를 게 없다. 1년에 6~7개에 달하는 상업 영화음악 작업부터 국내 정상급 무용수들을 모은 무용 연출, 또 민요와 국악, 록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음악 활동에 때론 위트와 실험성으로 무장한 현대미술 작업까지. 지금 그의 ‘흐름’을 좇는다.

김소라 작가의 <무릎을 뚫고 턱으로 빠지는 노래>전을 위한 드러머 손경호의 드럼 연주

지난주의 씽씽 밴드 공연은 대단했어요. 민요로 록을 한다 해서 그러겠거니 했는데, 공연 내내 정말 몸이 얼마나 들썩거렸는지 몰라요. ‘씽씽 밴드’가 아니라, 그냥 ‘씽씽(Sing Sing)’이에요. 멤버들이 ‘씽씽’ 뒤에 자꾸 ‘밴드’를 붙여요.(웃음) 그건 그렇고 저를 제외한 멤버들은 아직도 우리가 ‘민요’를 한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저는 완벽히 록 음악을 하고 있다고 보거든요. 말하자면 ‘민요 록 밴드’.

‘씽씽’ 전에 활동한 ‘비빙(Be-Bing)’은 판소리도 하고 가야금도 켜는 완벽한 ‘국악’ 그룹이었죠. ‘비빙’ 시절엔 극장에서 하는 공연이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무대와 조명을 신경 쓰고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게 많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게 다 거추장스러워지더라고요. 팀이 커진 만큼 음악의 유통도 원활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오직 ‘음악’만으로 공연할 수 있는 활동에 대해 고민하다 새 팀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비빙도 그렇고, 씽씽도 그렇고, 민요나 국악에 어떻게 그렇게 관심을 갖게 됐어요? 어어부프로젝트(장영규와 백현진의 록 밴드)를 준비하던 1990년대 중반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원래 어어부프로젝트의 초기 멤버에 국악을 하던 ‘원일’이란 친구가 있었어요. 그가 홍대역 부근에서 녹음실을 운영했는데 거기에 모인 이들에게 자연스레 영향을 받았죠. 강산에나 이상은, 황보령, 황신혜밴드 같은 이들이 10년 가까이 거기에 모였어요.

일종의 ‘사랑방’ 같은 공간이 지금의 장영규나 어어부프로젝트, 비빙, 씽씽 같은 팀을 만든 셈이네요? 그렇죠.

그런데 현대미술 작업도 하시죠? 얼마 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김소라 작가의 <무릎을 뚫고 턱으로 빠지는 노래>전에선 음악가들이 만든 소리를 각기 다르게 배치하는 작업을 했어요. 음악을 베이스로 한 전시지만, 영화음악이나 클럽 공연과는 다른 맥락이었을 것 같아요. 김소라 작가가 8명의 음악가(황병기, 강태환, 계수정, 박민희, 방준석, 손경호, 최태현, 알프레트 하르트)에게 받은 ‘소리가 온전히 신체를 관통하는 음악’을 제가 전시장으로 끌어왔어요. 이쪽 스피커에서 나온 소리가 저편으로 이동해 누구의 소리와 만나고, 저쪽에 있던 소리가 이쪽으로 돌아오기도 하게요. 오브제 하나 없이 전시장에 10개의 스피커만 배치했는데, 그것들이 전부 ‘다르게’ 들리는 전시죠. 쉽게 말해 ‘10개의 서라운드’ 같은 거였어요.

<무릎을 뚫고 턱으로 빠지는 노래>전 전경. 가벽 없이 기둥만 있는 휑하고 넓은 공간에서 장영규는 8명의 연주자가 내는 소리를 하나의 ‘흐름’처럼 잇는 작업을 했다.
ⓒ 국립현대미술관

보도자료를 통해 정말 단출하게 스피커만 몇 개 놓인 전시장 사진을 봤어요. 전시를 본 관람객들의 반응은 어땠나요?그즈음 해외 공연이 있어서 전시 땐 가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작가에게 듣기론 “이게 뭐냐”라는 반응이 가장 많았대요.(웃음)

과장을 조금 섞어 말한다면, 저는 그 전시가 예술의 오브제화, 대상화에 대한 어떤 투쟁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퍼포먼스 아트라 이름 붙일 만한 어떤 것이요. 누군가는 ‘멍때리는’ 전시라고 하더라고요.

음악가로 이름을 알렸지만, 요 몇 년 현대미술 전시장에서도 심심치 않게 이름이 보입니다. 일민미술관의 <탁월한 협업자들>전(2013년)이나,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망상지구>전(2016년) 등에서도 현대미술 전시를 이어왔죠. 그 밖에 몇몇 난해하다고 할 수 있는 전시도 있었고요. 이건 뭔가가 지겨워졌기 때문인가요? 기존 예술에 저항한 퍼포먼스 아트의 태동과도 같은? 일례로 1970년대의 김구림이나 성능경 같은 작가가 선도한 움직임 같은 거요.글쎄요, 딱히 떠오르는 말은 없네요.(웃음) 사실 제가 하는 일련의 작업은 주변에서 ‘영향’을 받은 게 많아요. 1990년대 초반 대학을 졸업하고(중국어 전공), 직업으로 음악을 시작하려 할 무렵 현대미술을 하고 있던 제 사촌 누나에게도 영향을 받았고, 당시 누나를 통해 함께 어울린,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가 된 안은미, 이불, 최정화 같은 작가에게도 많은 영감과 영향을 받았죠. 수많은 연극과 영화 제작자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비록 음악을 전문으로 하지 않는 이였다고 해도 전 뭔가를 ‘받았고’, 또 ‘소화’했다고 봐요. 그렇게 지금의 제가 있는 거고요.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허익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지난 5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사라져가는 목소리들’ 전은 아시아 5개국 작곡가들이 사라져가는 ‘소리’와 ‘언어’를 탐색하고 이를 새로운 사운드 퍼포먼스로 선보이는 자리였다. 장영규는 이 전시에서 기획과 큐레이팅을 맡았다.

지난해에 국립무용단에서 무용 연출도 맡았어요. 새 ‘강강술래’ 공연 <완월>이었죠. 갑자기 무용 연출가로 데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완월>은 사실 맡게 된 얘기가 재미있어요. 재작년에 소치 동계 올림픽 국제 아트 페스티벌에서 비빙이 국립무용단에 이어 공연을 했는데, 제가 당시 무용단의 ‘강강술래’를 본 후 음악을 바꿔보면 어떻겠느냐고 무용단에 제안을 했거든요. 한데 페스티벌이 끝난 후 국립무용단에서 벌컥 무용 연출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죠.

음악 얘긴 어떻게 하게 되었어요? 그냥 공연 자체가 정말 신선했어요. 특히 움직임이요. 공연 내내 ‘우리나라 전통 무용에 이런 게 다 있어?’라며 놀랐거든요. 오래된 ‘전통’이라기보다는 뭔가 세련된 ‘현대의 움직임’으로 느꼈어요. 그래서 음악만 조금 손보면, 그 자체로 완전히 새로운 예술처럼 보일 거라고 생각했죠.

어쨌든 그 일로 더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된 거네요? 그렇죠. 근데 사실 당시엔 조금 두려웠어요. 10명이 넘는 무용가를 직접 컨트롤해 무용 연출을 하는 건 당최 생각도 해볼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죠. 그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으니까요.

ⓒ 국립극장

ⓒ 국립극장
장영규의 첫 무용 연출작 <완월>. 달 아래에서 추는 전통 춤 강강술래를 모티브로 한 이 공연에서 장영규는 원형의 안무를 분석하고, 해체해 다시 새롭게 조합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무용가는 몸을 쓰는 사람이잖아요. 몸을 쓰지 않는 음악가는 어떻게 그들과 소통하나요? 사무용단 측에선 사실 연습 초반에 안무가가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연출과 안무가를 따로 두자는 얘기였죠. 하지만 저는 무용 작품은 연출가가 곧 안무가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연출을 한다면 안무가가 없는 작품을 하는 게 옳다고 했죠. 하지만 결국엔 저와 무용가들 사이에서 연습을 진행하는 무용가 출신 한 분을 모시는 정도로 합의를 봤어요.

국악에 대한 관심은 다른 음악가에게 영향을 받았다 쳐도, 무용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잖아요.사실 밴드 활동 외에 가장 먼저 접한 타 장르 활동이 무용이에요. 1992년부터 현대무용가 안은미 씨 공연의 모든 음악을 제가 맡아서 했죠. 대략 40~50편의 공연 음악을 만든 것 같아요. 그때마다 무용가들과 연습 단계부터 어울렸으니 무용에 대한 이질감은 없었죠.

그래도 공연 준비는 힘들었을 것 같아요. 연습 초반엔 단원들이 제게 꽤 적대적이었어요.(웃음) 제가 그쪽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였죠. 하지만 보름쯤 지나니 좋아지더라고요. 제가 적극적으로 다가갔거든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아주 귀찮게 매달렸고요. 그랬더니 나중엔 다들 으샤으샤 하며 많이 도와주시더라고요. 본공연은 독일 출신 현대미술가 라삐율과 협업해 연출했어요. 그녀에게도 꽤 도움을 받았죠.

이전 ‘완월’과 관련한 한 인터뷰에선 ‘강강술래’를 전부 분해해 보여주고 싶다고 했어요. 그간 현대미술과 국악 같은 장르에서 실험과 갱신 같은 걸 지속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퍼포먼스 아티스트로서의 의지가 무용에서도 드러난 셈이죠. 동작 하나하나를 분해해 완전히 다르게 보여주고 싶다는 말이었어요. ‘다른 공연’처럼 보이고 싶다기보다는 ‘다르게’ 보여주고 싶다는 뜻이죠. 우리가 잘 안다고 믿는 강강술래 자체에 얼마나 좋은 요소가 많고, 그걸 이렇게 저렇게 했을 때 얼마나 다른 모습이 되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애초에 음악만 바꿔선 될 게 아니라고 생각했고요.

강강술래란 게 여성들이 서로 손잡고 원을 그리며 빙빙 도는 ‘대표’ 이미지가 있잖아요. 사실 그게 전부인 것 같기도 하고요. 그 외에 또 뭐가 있나요? 손잡고 빙빙 도는 건 강강술래의 극히 일부예요. 예부터 여성들이 일상에서 해온 놀이와 노동을 춤으로 만든 게 강강술래인데, 거기엔 고사리 끊기, 쟁기 끌기, 기와 밟기 등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 자체로 아름다운 동작이 많죠. 사실은 본래 10분 안팎인 강강술래의 주요 동작을 잘게 쪼개 1시간의 공연으로 변형, 조립하는 게 핵심이었죠.

무용 자체에 그렇게 신경 썼다고 하지만, 한 평론가는 <완월>을 본 후 ‘음악이 몸 위에 얹혀진 느낌’이라고 썼더군요. 아니요. 음악엔 사실 신경을 거의 못 썼어요.(웃음)

장영규의 첫 무용 연출작 <완월>. 달 아래에서 추는 전통 춤 강강술래를 모티브로 한 이 공연에서 장영규는 원형의 안무를 분석하고, 해체해 다시 새롭게 조합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 국립극장

손에 잡히지 않는 음악 작업과 몸을 직접 움직여야 하는 무용 연출엔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완월’은 제가 음악 작업에서 근래에 계속 유지해온 형식을 그대로 가져간 공연이었어요.

‘형식’요?네, ‘근래’도 아주 ‘긴’ 근래죠. 사실 그동안 음악 작업을 해오며 ‘무슨 음악을 만들어야 하나?’, ‘뭐부터 시작해야 하나?’ 같은 고민을 꾸준히 해왔어요. 근데 그러다 보니 ‘어떤 소리를 내야 하나?’, ‘어떤 재료를 써야 할까?’ 그런 식으로 되레 생각이 거꾸로 가더라고요. 쉽게 말해 요샌 악기도 다양하고, 컴퓨터로 낼 수 있는 소리도 많잖아요. 그래서 더더욱 그 음악 작업의 가장 밑에서부터 신경을 곤두세워 그 작업의 뿌리와 의미를 찾고 싶었죠. 예를 들면 함께 공연하는 사람들이 연습할 때 내는 소리, 무대 리허설을 할 때 들리는 각종 소음을 채집해 음악 작업에 그대로 사용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완월>에서도 안에 있는 모든 걸 꺼내 다시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고요.

그건 ‘마음가짐’ 같은 건가요? 네, 그런 셈이죠

어디에서 출발하느냐가 점점 중요해진다는 얘기죠? 맞아요.

실제로 쉽게 규정하기 힘든 많은 무경계 아티스트가 완성된 작품보다 아이디어와 현장의 즉각적 의사소통이 교차하는 작업 초반부를 중시하는 것 같아요. 많은 퍼포먼스 아티스트도 그런 과정을 거쳐 작업을 시작하죠. 그렇죠.

한데 퍼포먼스를 하는 이들은 막이 오르면 퍼포먼스를 시작하지만, 장영규는 무대의 결과 소리를 듣는 것부터 퍼포먼스를 시작하는 게 재미있어요. (웃음)

이 와중에 ‘장르’ 이야기를 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겠죠? 장르를 구분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건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어요. 이미 장르 간 경계가 무너진 지 오래됐으니까요. 그보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음악이든 미술이든 무용이든 다 마찬가지죠.

지금 많은 예술가가 ‘장영규’라는 한 사람을 찾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냥 제 색깔이 있어서 그렇다고 믿고 싶어요. 그래서 ‘이건 장영규랑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거고요.(웃음)

앞으론 당연히 ‘근본’ 같은 단어를 생각하며 작업하시겠죠? 맞아요. 또 사이즈 줄이기. 아, 그런데 아까 잠깐 묻다가 만 ‘궁극의 작업’ 같은 건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없는 것 같아요.(웃음)

에디터 | 안미영 (myahn@noblesse.com)
사진 | 김수린(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