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와유산수’로 떠나는 랜선 여행
나랏일로 바쁜 조선시대 관리들은 산을 그린 산수화로 아쉬움을 달랬다. 자연을 담은 현대판 와유산수로 봄나들이를 떠나보자.


‘와유(臥遊)’는 ‘누워서 노닌다’는 뜻으로, ‘와유산수(臥遊山水)’는 옛 선비들이 방 안에 산수화를 걸어 놓고 누워서 상상 속의 절경 유람을 즐겼던 것을 뜻하는 말이다. 중국 남북조시대의 종병(宗炳, 375-443)은 관직을 거절하고 산수를 누비며 음악과 서화를 즐긴 화가로, ‘산수화’ 즉 산수를 그린 그림이 실제 산수를 대신할 수 있다는 ‘산수화론(山水畵論)’을 말했다. 이 이론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나랏일로 바쁜 관리들이 매일 산에 갈 수 없게 되자 산을 그린 산수화로 그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다.
봄이 왔지만 가벼운 바깥 나들이조차도 예전처럼 마음 놓고 하지 못하는 현재 우리의 상황을 예견하듯, 그림으로 산수를 즐길 수 있는 산수화론을 마련해준 종병. 바쁜 일상 속 화가의 눈을 통해 자연을 간접 경험하며 아쉬움을 달래고자 했던 조상들의 멋과 풍류를 이 시대의 작품들을 통해 느껴보는 건 어떨까?
꽃과 곤충이 어우러지며 내뿜는 봄 기운
‘설악의 화가’ 김종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강원도 설악산에 칩거하기 시작한 후 ‘자식들이 자랑할 만한 좋은 작품 100점만 남기고 죽자’라는 일념으로 자연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자연을 통해 시련을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삶의 의미와 생명력을 소생시키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추상에 기초를 둔 구상’으로 설악의 사계와 꽃을 주로 그리며, 자신만의 회화세계를 구축한 김종학은 지금까지 한국 현대미술을 지탱해 온 구심점이자, 해외 시장에서 ‘한국의 고흐’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화면을 가득채운 꽃과 곤충들이 어우러지며 살아 있음의 환희를 뿜어내는 그의 작품을 통해 봄 기운을 만끽해보자.

김종학 (b.1937), 백화만발, 캔버스에 아크릴, 45.5×53cm (10호)
몽롱하고 부드러운 하늘
오치균은 이 세상의 풍경을 그린다. 뉴욕, 산타페, 사북이 가장 대표적인데, 소재가 된 지역에 따라 여러가지 색다른 조형미가 가득하다. 종이에 파스텔로 그린 <산동네>는 제대로 하늘을 바라보는 날이 거의 없는 현대인들에게 하늘의 아름다움과 경외감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하늘이지만 하늘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포옹한다. 보면 볼 수록 신비하고 사색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내는 공간이기도 하다. 파스텔로 그린 몽롱하고 부드러우면서도 화사한 하늘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차가워진 우리의 일상에 따뜻하고 서정적인 감성을 회복시켜 주는 것 같다.

오치균, 산동네, 2007, 종이에 파스텔, 63×97cm
따스함과 정감이 느껴지는 풍경 속으로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한국적 구상화를 잇는 이대원은 산, 들, 연못, 농원을 주로 화폭에 담았다. 선묘와 점묘, 파묵과 갈필 같은 동양화의 준법이 배어 있는 표현방법과 색 점 하나하나로 형태와 빛을 암시하도록 표현한 이대원의 작업은 화려하고 두터운 유화물감과 어우러져 ‘서양화로 그린 동양화’라는 독특한 화풍으로 가지고 있다. 화면 전체가 다양한 색채로 뒤덮여 서정적인 정조를 뽐내는 작품 <강변(낙화암)>은 따스함과 정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그의 그림을 마주하는 순간 풍경화의 감흥과 경치 속으로 이끌려 들어간다.

이대원 (1921 – 2005), 강변 (낙화암), 캔버스에 유채, 1976, 45.5×53cm (10호)
경이로운 자연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그린 작품들을 통해 와유산수의 멋과 풍류를 즐겨보기를 바란다. 마스크 없이는 바깥 출입도 어려운 현실을 마주한 현대인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글 손이천 (K옥션 수석 경매사)
에디터 김희성(alice@noblesse.com)
디자인 장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