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과 편집의 시대, 그 너머의 버전을 향해
베를린의 편집숍 ‘다크랜즈’는 패션과 인테리어, 미술과 음악이 한데 뒤섞여 최상의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트렌디한 공간이다.

베를린 로컬 신의 감성을 충족하는 편집숍 다크랜즈는 노매드 컨셉을 바탕으로 1.0 버전부터 현재의 5.0 버전까지 공간을 옮겨 다닌다. 사진은 주물 공장이라는 공간적 특성을 살린 다크랜즈 5.0 외관과 내부 모습.
‘협업‘과 ‘편집’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는 문화 전반에 걸쳐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최신 동력이다. 그리고 지금 동시대적인 두 단어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 일련의 결과물을 쏟아내는 최전선이 바로 패션이다. 여름을 겨냥한 유명 브랜드의 크루즈 컬렉션부터 2020년 S/S 시즌 트렌드를 소개하는 밀라노 컬렉션과 파리 컬렉션, 그리고 얼마 전 막을 내린 2019년 F/W 시즌 파리 오트 쿠튀르 패션 위크까지. 시각예술, 공간 디자인, 퍼포먼스, 사운드 아트가 녹아 스며든 무대와 의상 컨셉을 보고 있노라면 협업과 편집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가능성에 신선한 호기심이 절로 솟아난다.
패션 불모지로 여겨지곤 하던 독일의 패션 산업도 협업과 편집이라는 이슈에 힘입어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상황. 특히 예술 자유 구역으로 전 세계 문화 예술인이 살아가는 도시 베를린은 여타 도시보다 풍부한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베를린 곳곳에서는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독특하면서도 명확한 컨셉을 지닌 다양한 패션 공간과 편집숍을 만날 수 있다. 그중 베를린 로컬 신의 감성을 충족하는 ‘다크랜즈(Darklands)’는 1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며 가장 최신 베를린 로컬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이스라엘 출신 작가이자 디자이너 스룰리 레흐트(Sruli Recht)가 다크랜즈에 3D 프린팅 작업을 선보였다.
하이엔드와 아방가르드를 지향하며 엄선한 디자이너의 남성 의류를 선보이는 다크랜즈는 지난 2008년 베를린에 터를 잡았다. 이름에서 알아차릴 수 있듯 검은색 계열의 모노크롬 의상과 슈즈, 액세서리를 취급한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검은색에는 베를린 특유의 솔직하고 냉소적이면서도 섹시한 분위기와 역사와 현재가 교차하는 도시의 중립적 미감, 그리고 악명 높은 클럽 컬트 문화가 한데 섞여 있다.
다크랜즈가 패션 편집숍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노매드 컨셉을 바탕으로 1.0 버전부터 현재의 5.0 버전까지 두 시즌, 또는 네 시즌을 기준으로 공간을 옮겨 다니며 매번 새로운 공간 구조와 콘텐츠로 눈길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특히 그 공간이 지닌 역사와 연관 지어 공간을 연출하는 모습이 인상적인데, 베를린 미테(Mitte)에 있던 다크랜즈 1.0과 2.0은 홍등가와 부티크 상점을, 티어가르텐(Tiergarten)에 자리잡았던 3.0과 4.0은 자동차 정비소와 비행기 격납고를, 그리고 베딩(Wedding)에 있는 5.0은 주물 공장이라는 공간적 특성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연출해 다크랜즈만의 분위기를 드러냈다.

아방가르드한 분위기가 특징인 다크랜즈 4.0의 디스플레이와 외관.
또한 시즌별로 편집한 제품이 즐비한 공간에 설치 작업과 드로잉, 삽화 등 예술 작품이 더해져 의류 편집매장 그 이상의 예술 공간으로 기능하는 점도 이곳이 인기 있는 이유다. 스웨덴 작가 예스페르 발데르스텐(Jesper Waldersten)의 삽화부터 지난 2013년 런던 패션 위크에서 ‘뉴 오브젝트 리서치(New Object Research)’ 컬렉션으로 주목받은 디자이너이자 작가 아이터 스룹(Aitor Throup)의 설치, 상드린 필리프(Sandrine Philippe) 컬렉션 설치를 선보인 팀 판 덴 우덴호벤(Tim van den Oudenhoven)과 거스리 맥도널드(Guthrie McDonlad), 조각을 비롯해 가구 디자인과 패션을 오가며 활동 중인 페이 투굿(Faye Toogood)의 선반 디자인까지 다양한 작품을 통해 다크랜즈의 한층 더 아방가르드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 대상을 예술 작품에 한정하는 건 아니다. 베를린 클럽 신에서도 손꼽히는 DJ 크리스 리빙(Chris Liebing), 펑션(Funtion), 벤 프로스트(Ben Frost), 패너시어(Panacea), 토미 포 세븐(Tommy Four Seven)의 디제잉과 퍼포먼스가 시각적 감상의 고루함으로부터 고객 혹은 관객을 해방시킨다. 쏟아지는 테크노 음악은 공간 분위기를 한층 다채롭게 만들 뿐만 아니라, 정적일 것만 같은 검은색이 얼마나 활동적이고 매력적으로 움직이는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다크랜즈를 찾은 사람들은 진정한 베를린 로컬리티 세상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최근 다크랜즈는 6.0 버전을 위한 새로운 공간을 물색하고 있다. 새로운 시즌에 소개할 제품과 협업 아티스트 라인업도 준비 중이다. 명확한 컨셉과 그에 걸맞은 컬렉션을 통한 변별력 그리고 베를린이 갖춘 매력적인 네트워킹. 이 삼박자가 유연하게 어우러져 동시대 문화를 담은 다크랜드를 새로운 버전으로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협업과 편집의 시대, 그 너머까지 이어질 버전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글 이정훈(미술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