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 스피커를 만드는 남자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는 독특한 음향 기기 회사가 있다. 세계 유일의 직선형 혼 스피커로 하이엔드 오디오 세계에서 위명을 떨치는 오스왈드 밀 오디오(Oswalds Mill Audio, OMA)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OMA를 다루는 오드(ODE)의 초청으로 내한한 창업자 조나단 바이스(Jonathan Weiss)에게 물어봤다. “오스왈드 밀은 누구인가?” 그에 대한 대답으로 수수께끼의 회사, OMA의 이야기는 시작됐다.

OMA는 지난 2007년에 설립했다. 하이엔드 오디오업체로는 이례적으로 역사가 짧다. 아이고, 난 단 한 번도 내가 오디오 회사를 만들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정말로. 회사 이름도 독특하지 않나? ‘오스왈드 밀’의 오디오라니. 지금까지 오스왈드 밀이 누구냐는 질문을 계속 받아왔는데 실제 상황은 이렇다. 난 영화 제작자 출신이다. 그리고 빈티지 오디오를 모으는 컬렉터다. 펜실베이니아주의 뉴트리폴리시에 오스왈드 밀이라는 옛 제분소 건물이 있었는데 거길 사들여서 내 컬렉션을 모아두고 소리를 즐기는 여가 장소로 활용하곤 했다.
그러니까 회사 이름인 오스왈드 밀이 사람이 아닌 제분소(mill)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뜻인가? 그렇다. 오스왈드 밀 제분소를 레노베이션해 아지트로 쓰면서 지인을 하나둘 초대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앰프를 가지고 오면 내 빈티지 스피커에 매치하며 음악과 소리를 즐기곤 했지. 그러다 판이 커졌다. 이벤트를 여니까 오스왈드 밀이 점점 유명해진 거다. 사람들도 많이 몰리면서 앰프, 스피커, 턴 테이블 등 오디오업계의 권위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오스왈드 밀이 빈티지 스피커와 진공관 앰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이름이 된 것이다.
오스왈드 밀이 위대한 음악 관련 인물이 아니라는 건 이제 알겠다.(웃음) 그런데 어쩌다 지금의 음향 기기 회사로 발전하게 됐나? 회사를 창업할 당시만 해도 난 오디오 쇼에 가기는커녕 오디오 관련 잡지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지인이 스피커 드라이버를 만들었는데 오디오 쇼에 출품해야 한다고 해서 어쩌다 따라가게 되었다. 수없이 쪼갠 공간 안에 스피커가 진열되어 있었는데, 맙소사, 하이엔드 스피커라고 해서 주의 깊게 들어보니 소리가 완전 엉망인 게 아닌가. 근데 더 어이없는 건 가격이었다. 이런 소리를 내는 물건을 4000만~5000만 원에 팔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펜실베이니아로 돌아온 후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럴바엔 차라리 내가 스피커를 만드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보니 내 주변에는 스피커 설계자부터 앰프 개발자, 드라이버 개발자 등 음향 기기 제작에 필요한 전문가가 많이 있었다. 그리고 펜실베이니아는 나무가 엄청나게 좋은 지역이다. 게다가 주철, 점판암 등 소리 왜곡을 막아주는 각종 물산도 힘들이지 않고 구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수공업에 종사하는 각종 장인도 주변에 밀집해 있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음향 기기는 최첨단 기술의 산물이라고 알고 있는데 당신이 말한 ‘좋은’ 여건이란 수공예품에 최적화된 것 같다. 요즘 같은 21세기라면 실리콘밸리에 세워야 하는 것 아닌가? 음향 기기는 확실히 기술의 소산이다. 정확히 말하면 물리학으로 구현한 소리의 장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내가 당시에 만들고자 한 (그리고 지금도 만들고 있는) 스피커는 기존의 스피커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혼 스피커를 만들고 싶었다. 그것도 직선형 혼 스피커 말이다.

OMA의 시그니처 앰프, GM70
혼 스피커는 대중도 잘 아는 종류다. 혼 스피커로 유명한 몇몇 브랜드도 있고. 그런데 직선형 혼 스피커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당연하다. 현재 전 세계에 직선형 혼 스피커를 만드는 회사는 OMA밖에 없으니까. 직선형 혼 스피커는 한마디로 꿈의 스피커다. 보통의 곡선형 혼 스피커만 해도 많은 장점이 있다. 오디오업계에서 오디오를 개발할 때 여러 이슈거리가 있는데 그중 중요한 게 출력값과 저항값이다. 특히 출력값은 앰프에서 스피커로 소리를 옮길 때 중요해진다. 정교한 기술력이 담보되더라도 전체적으로 앰프의 출력이 높을 경우 왜곡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낮은 출력값으로 소리를 잘 들리게 할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 혼 스피커의 경우 형태가 뿔 모양이라 물리적으로 소리의 직진성이 강하다. 직진성이 강하면 소리가 좌우로 퍼지지 않고 음파가 응집되어 멀리까지 뻗어갈 수 있다. 전문 용어로 직접음을 듣는 비율이 높아져 잔향이나 반사음 등 간접음이 귀를 방해할 틈이 없다. 이 말인즉슨 출력값이 낮더라도 혼 스피커를 통과하면 다른 스피커보다 소리를 왜곡 없이 더욱 멀리서 들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똑같은 출력값이라도 다른 스피커처럼 가까이 가서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멀리서 들어도 니어필드 스피커(전문 녹음 스튜디오에서 쓰는 모니터용 스피커) 같은 효과가 난다. 이렇게 좋은 혼 스피커도 곡선형일 때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옆의 곡선 처리 때문에 음파가 튕기고 분산된다. 잔향도 많이 남고. 그래서 특유의 음색이 발생하며 왜곡된다. 그에 비해 같은 혼 스피커지만 직진형으로 만든 스피커는 이런 문제가 전혀 없다.
아니, 설명만 들으면 스피커의 끝판왕인데 왜 OMA밖에 만드는 회사가 없나? 많은 사람이 물어본다. 직선형 혼 스피커가 그렇게 효율이 좋고 능률적인 최고의 형태라면 왜 지금까지 다른 브랜드는 시도하지 않았을까? 정답은 바로 사이즈에 있다. 직선형 혼 스피커를 제대로 만들려면 물리적으로 절대적인 사이즈가 필요하다. 스피커가 거대하면 작업 공간도 커져야 하고 무엇보다 스피커를 놓을 장소가 넓어야 한다. 그런데 1960년대 이후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뀌었다. 전보다 작은 집에 살면서 거실에는 인테리어 요소를 가미하기 시작했다. 오디오 회사들도 이런 흐름에 편승해 좀 더 작고 간소한 오디오를 만들려고 노력해왔다. 요즘은 남자들이 오디오를 구비하려면 부인의 신경을 긁지 않을 만큼 크지 않고 또 예뻐야 한다. 인테리어 소품처럼 보여야 한다는 말이다.(웃음) 하지만 난 OMA를 시작할 때부터 그런 타협점은 생각도 안 했다. 왜냐하면 직선형 혼 스피커야말로 소리를 가장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는 도구라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OMA의 오디오가 외관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디자인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우선순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음향학적 설계를 끝내고 그에 맞는 디자인을 고안하는 게 중요하다. 디자인을 먼저 만들어놓고 거기에 부품을 욱여넣는 건 좋지 않다. 디자인은 기능을 따라야 한다!
실제 내 눈앞에 있는 OMA의 스피커, 임페리아를 보면 디자인이 투박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거대한 나무 조각상을 보는 느낌이 들 정도다. 방금 좋은 단어를 말했다. 나무는 OMA의 핵심이다. 정확히 말하면 원목인데, 나무로 만든다면서 MDF, HDF를 쓰는 하이엔드 오디오업체가 많다. 우리는 절대 합판을 쓰지 않는다. 내가 알기론 원목을 그대로 활용해 스피커를 만드는 업체는 우리밖에 없다. 원목은 무척 까다로운 재료지만 그만큼 좋은 사운드를 내는 재질이 없다. 좋은 악기일수록 좋은 원목으로 만들지 않나? 우리는 펜실베이니아에서 나는 원목만 쓴다. 월넛, 체리, 메이플, 애시…. 정말 태생부터 너무 좋은 나무다. 아마 당신이 살 수 있는 나무 중 가장 좋은 품질의 나무가 펜실베이니아 원목일 거다. 우리는 아예 나무를 통째로 산다. 이를 판으로 쪼개 총 3년 동안 건조하는데, 자연 건조와 더불어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차갑게 온도 조절이 가능한 특수 시설에서 건조를 병행한다. 그러면 원목이 응축되어 쉽게 금이 가지 않고 단단한 구조를 띤다. 소리도 특별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안톤 코르빈을 위해 만든 OMA의 첫 제품, AC1
재료가 그렇게 좋으면 만드는 사람들도 장인을 쓰는 게 어울릴 것 같다. 당연하다. 우리 장인들은 모두 최고다. 실제로 우리와 함께 일하는 나무 장인들이 얼마 전에 디자이너 랄프 로렌의 초호화 별장을 짓기도 했다. 그 정도로 실력이 이름난 사람들이다. 우린 스피커는 물론 스피커 혼을 만들 때도 그냥 접착하지 않는다. 접착 부분에 작은 나뭇조각을 집어넣어 서로 맞물리게 해서 더 단단하게 만든다. 사실 이런 방법은 동아시아에서 수백 년 전부터 가구나 건물을 만들 때 사용한 방법이다. 기본적 컨셉은 같다. 결국 장인정신으로 일하니 굉장할 정도의 섬세함과 노력, 그리고 돈이 든다. 아, 우리는 만든 나무 제품에 고무 오일과 왁스도 바른다. 손으로! 바르고 말리고 바르고 말리고, 이런 작업을 윤기가 날 때까지 계속 반복한다. 다른 오디오는 아마 기계로 몇번 뿌리고 말 것이다.
당신을 보니 자연스러운 소리와 재질 그리고 당연한 기다림과 사람의 노력을 좋아하는 것 같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그건 개나 고양이한테 “너는 왜 개니? 너는 왜 고양이니?”라고 묻는 것과 같다. 내 본능이자 본성이다.(웃음) 자연스러운 소리를 좋아하는 건 그게 가장 훌륭한 소리이기 때문이다. 오디오업계에서는 인공적으로 소리를 왜곡시키는 경향이 있다. 사람은 20~20kHz까지 들을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저음역대와 고음역대에 비해 중음역대 소리에 더 민감한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인위적으로 저음역대와 고음역대를 높여 사람들이 좋은 소리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이들이 있다. 빵빵하고 선명하게 잘 들린다고 하겠지만 그건 다 인공적인 결과물이다. 이런 예가 필름 시대에도 있었다. 흑백필름이 지배하던 시절, 컬러필름이 나왔다. 그때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어메이징 소리가 그냥 나왔다. 화려한 색감에 막 튀어나올 것 같은 생동감. 하지만 이건 인상적이라고 말할 순 있겠지만 진짜가 아니라 인공적인 효과다. 특히 요즘에야 기술이 발달해 자연적 색감에 가깝지만 그때만 해도 초기라 그런 경향이 더 심했다. 대중적인 하이파이나 가격대가 높은 하이엔드 모두 이런 인공적인 왜곡을 하는데, 태생부터 자연스러운 소리를 추구하는 우리는 그래서 하이엔드 그 위에 있다고 자부한다.
OMA가 직선형 혼 스피커 전문 업체인 줄 알았는데 앰프를 비롯해 플레이어, 장식장 등 오디오와 관련된 건 다 만드는 종합 음향 기기 회사라고 하더라. 스피커 만들기에만 집중해도 시간이 모자라지 않나? 세계적 포토그래퍼 안톤 코르빈(Anton Corbijn)이 내 친구인데, 내가 스피커를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맞춤형 음향 시스템을 꾸며달라고 연락을 해왔다. 그래서 탄생한 결과물이 바로 AC1이다. 안톤 코르빈의 이니셜에 숫자 1을 붙인게 실제 우리 제품 1호가 됐다. 근데 스피커만 만든다고 소리가 나오는게 아니지 않나. 앰프가 필요해서 시중에 나온 앰프를 매치해주려 했는데 이게 곤란한 거다. 굉장한 기술력으로 만든 앰프를 써봐도 내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다. 아까 말했듯이 혼 스피커는 능률이 좋다. 앰프로부터 힘을 적게 받아도 특정 음압에 도달할 수 있다. 근데 문제는 시중에 나온 앰프는 다 고출력을 예상하고 만들었기 때문에 OMA에서 만드는 혼 스피커에 어울리는, 저출력에 최적화한 앰프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우리에게 맞는 진공관 앰프를 만들었고, 그것이 지금 시그너처 앰프인 GM70의 프로토타입이다. 그다음부턴 아예 모든 걸 우리가 만들기로 했다. 런던 새빌로 거리의 테일러링 서비스를 들어봤겠지? 슈트, 재킷, 셔츠, 심지어 양말까지 모든 걸 잘 맞춰 입은 사람이 멋쟁이 신사 소리를 듣듯 우리도 모든 요소를 정밀하게 계산하고 섬세하게 배려해 자연스러운 소리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서브 우퍼나 장식장에 쓴 검은색 부분만 해도 철이 아니라 펜실베이니아산 천연 점판암을 가공했다. 진동과 공진을 잡아주는 용도로는 최고다.
OMA의 최고급 라인인 임페리아 스피커는 국내 판매가가 4억 원이 넘는다. 이런 스피커는 대체 누가 구입하나? 우리 고객은 오디오에 미친 사람이 아니다. 기존에 듣지 못한 자연스러운 소리에 관심을 보이고 진심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실제 우리 제품을 사기 전에는 하이엔드 오디오를 산 적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할리우드 스타도 가지고 있고, 골드먼삭스의 최고위층도 우리 고객이다. 인터넷 언론으로 유명한 바이스(Vice)의 본사에도 우리 스피커가 있다.
OMA의 스피커를 보면 대대로 물려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과연 가능할까? 물론이다. 내가 빈티지 오디오 컬렉터다. 1930년대에 나온 RCA 스피커를 고쳐서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다. 아주 쌩쌩하다. OMA의 모든 제품도 이처럼 내 손자의 손자까지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자연스러운것은 유행을 타지 않는다.
에디터 전종현(harry.jun@noblesse.com)
사진 장호(인물) 사진 제공 오드(ode-audi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