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기다릴게
빠른 시간 안에 예술의 갈증을 채우기에는 홍콩만 한 곳이 없다. 특히 3월의 홍콩은 더욱 그렇다.

1만 5000점이 넘는 예술품을 보유한 홍콩 아트 뮤지엄은 내년 재개장을 앞두고 한창 레노베이션 중이다.
홍콩을 좋아한다. 예술을 늘 곁에 두고 싶지만 세계에서 열리는 전시를 다 찾아다니는 건 불가능하니까, 그 아쉬움과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홍콩이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홍콩을 찾아 몸과 마음 곳곳에 벼락치기로 ‘예술’을 수혈하곤 한다. 짧은 시간을 투자해 이만큼이나 다양하고 수준 높은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곳은 홍콩뿐이라고 자신한다.
홍콩은 아트 마켓이 활발하고 주요 예술 스폿이 한데 밀집해 있다. 그래서 이동 시간을 아끼고 동선을 짜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에서 홍콩까지는 비행기로 약 3시간 30분, 직항편도 많다. 언제 가도 좋을 홍콩이지만 매년 아시아 최대 규모의 아트 페어 ‘아트 바젤 홍콩’이 열리는 3월을 추천한다. 페어만 방문해도 가치가 있는데, 동시에 다양한 위성 페어가 열릴 뿐 아니라 가고시안 갤러리나 화이트 큐브 등 세계 예술 시장을 주무르는 갤러리가 페어 기간에 맞춰 일제히 전시를 오픈한다. 올해는 하우저 앤 워스처럼 개관을 앞둔 곳도 있어 더욱 놓칠 수 없다.
홍콩의 예술을 느끼고픈 독자들이 참고할 만한 동선을 제안하면, 관광보다는 아트 스폿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홍콩섬 센트럴 지역에 숙소를 잡으면 좋다. 홍콩 역에 있는 포시즌스 호텔을 추천한다. IFC몰과 연결돼 있어 쇼핑과 미식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고, 홍콩 국제공항에서 익스프레스 트레인으로 40여 분, 자동차로 30여 분이면 닿는다. 마지막 날 홍콩 역에서 얼리 체크인으로 짐을 공항에 미리 보내놓고 가뿐하게 전시를 즐길 수 있는 점도 메리트다.

컬렉터와 대중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아트 바젤 홍콩.
센트럴에 다다랐다면 첫 번째로 추천하는 행선지는 홍콩 역 건너편에 있는 중앙 농업은행 빌딩이다. 이 건물의 1층과 2층엔 화이트 큐브가, 17층엔 페로탱이 있다. 3월을 맞아 화이트 큐브는 조각가 앤서니 곰리를, 페로탱은 팝아티스트 카우스(Kaws)의 전시를 연다. 평소라면 두 전시를 본 직후 센트럴 랜드마크 백화점 근처에 있는 페더 빌딩으로 향한다. 하지만 리만머핀과 가고시안, 사이먼 리, 벤 브라운 등 주요 갤러리가 한 건물에 모여 있는 홍콩의 대표적 아트 스폿인 페더 빌딩의 도보 3분 거리에 이웃사촌 H 퀸스(H Queen’s) 빌딩이 생겼다. 중앙 농업은행에서 페더 빌딩으로 걸어가는 길목에 있으니 그곳에 가기 전 먼저 둘러보면 좋을 듯하다. 작년 11월에 완공한 24층짜리 빌딩엔 데이비드 즈워너, 페이스 갤러리의 홍콩 두 번째 지점, 펄램 갤러리, 중국의 탕 컨템퍼러리, 한국의 서울옥션, 3월에 오픈하는 하우저 앤 워스 등 다양한 아트 스폿과 디저트 숍, 레스토랑이 있다. H 퀸스의 갤러리 대부분은 토요일까지만 운영하니 되도록 일요일에는 방문을 피하도록 하자.
뉴욕 첼시나 런던 올드 스트리트처럼 갤러리가 밀집한 거리를 거니는 것도 흥분되는 경험이지만 H 퀸스나 페더 빌딩이 주는 매력은 색다르다. 첼시처럼 갤러리가 가까이 밀집한 지역마저도 페이스 갤러리에서 하우저 앤 워스까지 7분을 걸어야 하는데, H 퀸스의 두 갤러리는 엘리베이터로 단 3층만 오르내리면 닿을 수 있다. 평소 전시를 몰아서 보면 체력 고갈과 뇌 과부하로 고통받는 에디터도 이런 빌딩은 거뜬하다. 쭉 써 내려가다 보니 어째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것 같지만, 지금까지 언급한 갤러리의 명성을 알고 나면 그 말이 쏙 들어갈 것이다. 숨 가쁜 일정을 소화했지만 아직 이 근방에 두 곳이 더 남았다. 두 빌딩과 도보 1분 거리에서 필립 라이의 홍콩 첫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는 에두아르 말링그 갤러리와 페이스 갤러리의 또 다른 지점을 놓치지 말 것.

중국 전통 거리를 재현한 홍콩의 역사박물관 전시장.
갤러리 탐방이 끝났다면 아트 바젤 홍콩이 열리는 홍콩 컨벤션센터로 향하자. 센터 1·2층을 통째로 할애한 대규모 페어와 몰려드는 인파를 생각하니 벌써 진이 빠지는 것 같지만 페어장에서 마주할 수많은 작품에 대한 설렘이 더 크다. 지금까지 언급한 갤러리가 대부분 페어에 참여하니, 관심이 있다면 각 갤러리 부스도 들러볼 것. 32개국 248개 갤러리가 참여하는 올해 페어는 3월 27일 프라이빗 오픈을 시작으로 29일부터 일반 관람객에게 개방하고, 31일 토요일에 막을 내린다. 미술계 블루칩 작가의 작품을 아무런 장애물 없이 코앞에서 볼 수 있고, 대규모 설치 작품도 선보이는 아트 바젤 홍콩의 매력은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근처에 있는 센트럴 하버프런트엔 실험적인 갤러리가 모인 ‘아트 센트럴’이 3월 26일부터 4월 1일까지 오픈하고, 호텔에서 작품을 볼 수 있는 ‘하버 아트 페어’가 강 건너 침사추이에 있는 페닌슐라 호텔에서 3월 23일부터 26일까지 열린다.
잠시 상업적 아트 신을 벗어나고 싶다면 침사추이의 서주룽 예술단지를 찾자. 공연장으로 쓰일 시쿠 센터가 올해 말 완공되며, 단지 내에서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니 홈페이지를 참고하자. 그리고 이곳에 내년 오픈을 앞둔 뮤지엄 M+가 운영하는 M+ 파빌리온이 있다.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에 홍콩관 대표 작가로 참여한 샘슨 영의 개인전이 5월 6일까지 열린다. 또 하나, 잊지 말고 들러야 할 곳은 홍콩을 대표하는 비영리 예술 공간 파라사이트(Para Site)가 있는 쿼리베이다. 센트럴에서 자동차를 타고 가면 시간을 아낄 수 있지만 이곳에 갈 때만은 꼭 트램을 타고 잠시나마 여유를 즐겨보라. 센트럴에서 트램으로 1시간을 꼬박 달려야 도착하는 파라사이트 부근에선 명품 숍이 즐비한 센트럴과는 사뭇 다른 홍콩의 로컬 풍경을 볼 수 있다. 간판도 찾을 수 없는 오래된 산업 빌딩의 좁은 입구로 들어가면 22층에 파라사이트가 있다. 전시에 따라 야외 테라스를 개방하기도 하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화려한 스카이라인은 아니지만 나름의 매력이 있어 놓치기 아쉽다.

홍콩 아트 신의 새로운 명물 H 퀸스에 가면 세계의 중요한 갤러리를 대부분 만날 수 있다.
레노베이션을 위해 잠시 문을 닫은 홍콩 아트 뮤지엄, 아시아와 문화적 교류를 강화하는 미국의 비영리 재단 아시아 소사이어티, 아시아 현대미술 자료를 아카이빙하는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AAA), 홍콩 역사박물관, 홍콩 아트 센터(HKAC), 홍콩의 예술가가 모여 만든 원에이 스페이스(1a space), 전시와 공연이 열리는 프린지 클럽 등 이왕 시간을 들여 홍콩에 간 김에 모든 곳을 두루 둘러보면 좋겠지만 절대 무리할 필요는 없다. 이번 여행에서 자신의 예술 취향을 파악하기만 해도 절반은 성공한 거니까. 모든 스폿을 ‘도장깨기’하듯 방문해도 색다른 재미가 있고, 홈페이지에서 작가나 전시를 먼저 파악한 다음 갈 만한 곳을 선별해도 된다. 전 일정을 아트 바젤 홍콩에만 할애해 페어 내 모든 섹터와 부스를 둘러볼 수도 있지만, 일부는 과감히 패스해도 상관없다. 관람법엔 정답도, 기준도 없으니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예술을 받아들이면 된다. 작년 아트 바젤 홍콩에 가던 길, 내 인스타그램 피드에 무라카미 다카시의 그림을 찍은 사진 한 장이 업로드 됐다. 평소 좋아하는 가수가 올린 사진이었다. 아무런 설명도, 위치 태그도 없는 포스팅이었지만 수준급 아트 컬렉션을 보유한 그가 당시 아트 바젤 홍콩에 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실제로 그 작품을 발견하고는 똑같은 각도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물론 당사자를 직접 마주하진 못했지만 여전히 소중하게 그 사진을 간직하고 있다. 혹시 아는가? 당신이 평소 흠모하던 셀레브러티나 아티스트가 같은 시간 홍콩에 있을지도 모른다. 매년 이맘때 전 세계 아트 러버가 홍콩에 모여드는 것만은 확실하니까 말이다. 3월 마지막 주를 기억해두자. 홍콩의 봄바람이 당신을 기다린다.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