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활짝 웃다
아시아의 최대 미술품 거래 시장인 홍콩은 뉴욕과 런던에 이은 세계 3대 미술 거래의 허브다. 아시아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서양에 소개하는 완벽한 창구인 그곳에서 서울옥션이 17번째 홍콩 경매를 열었다. 결과는, 이번에도 성공이다.
17회 서울옥션 홍콩 경매 현장

김환기, 16-II-70 #147, 208.2×151.5cm, 1970, 낙찰가 HKD 13,500,000 (약 20억 5000만 원)
매년 5월과 11월이 되면 홍콩은 유독 바빠진다. 전 세계 메이저 옥션 컴퍼니들이 홍콩의 주요 호텔에 자리 잡고 호화로운 경매를 펼치기 때문. 경매에는 부동산을 비롯해 와인, 하이 주얼리, 시계, 백 등 보기만 해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아이템이 쏟아져 나와 고객을 유혹한다. 그중 가장 고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 역시 미술품이다. 경매에 나온 작품은 이미 갤러리 또는 아트 페어에서 그 가치를 한 번 이상 인정받은(안전한 검증을 마친) 데다 시기적으로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것. 그 때문에 대부분의 작품이 추정가를 웃도는 가격에 낙찰되거나 어떤 작품은 추정가의 몇 배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는 것이 미술 경매의 현장이다. 시작가를 비웃기라도 하듯 사방에서 경쟁적으로 응찰 팻말을 들었다 내리며 천정부지로 가격이 오르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거기 모인 사람들이 최종 낙찰자에게 왜 큰 박수를 보내는지 절로 알게 된다.
한국 최초의 경매 회사 서울옥션이 이런 다이내믹한 홍콩 경매시장에 합류한 건 지난 2008년이다. 홍콩 법인을 설립한 그해 10월, 서울옥션은 처음 실시한 ‘동서양 컨템퍼러리 홍콩 세일’에 백남준·김창열·전광영·배병우·홍경택·김동유·최소영·안성하·이환권·도성욱 등 다양한 한국 작가의 작품을 들고 나갔고, 122점 가운데 80점을 팔면서 낙찰 총액 289억 원, 낙찰률 65%를 기록했다. 금융 위기로 컬렉터들의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된 것을 감안하면 첫 출사표치고 꽤 좋은 성적이었다. 해를 거듭하면서 서울옥션 홍콩 경매는 점점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고, 2015년 10월 5일 제16회 홍콩 경매에서는 김환기 화백의 1971년 작인 푸른색 점화 ‘19-Ⅶ-71 #209’(253×202cm)가 약 47억2100만 원에 판매되면서 한국 작가 미술품 경매 최고가를 다시 쓰며 세계 미술 시장에 놀라움을 선사했다.
17회 서울옥션 홍콩 경매 프리뷰 전경
이번 제17회 홍콩 경매는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렸다. 서울 평창동 본사에서 지난 11월 20일까지 프리뷰를 진행한 뒤 11월 27일에는 해외의 VIP 컬렉터를 위한 프리뷰를 마련했다. 서울옥션은 메자닌층에 위치한 ‘Tiffin & Salon’에 단색화를 비롯한 20세기 현대미술 작품을 소개하는 ‘현대미술’ 부스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작품을 전시한 ‘고미술’ 부스, 이렇게 2개 파트로 나누어 손님을 맞이했다.
프리뷰를 둘러보던 컬렉터들은 대부분 한 작품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는데, 바로 이번 경매에서 큰 이슈가 된 조선시대의 ‘백자대호’다. 높이 42cm의 보기 드문 귀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백자대호는 29일 경매 당일 약 19억 원에 낙찰되었으며 ‘국가 문화재 지정’이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 ‘달항아리’라 불리는 이 작품의 낙찰 소식을 9시 뉴스에서도 언급한 것은 다름 아닌 일본인 컬렉터에게서 되찾아왔다는 사실 때문. 서울옥션에서도 경매 전부터 남달리 신경 쓴 작품이다. “그런 작품이 시장에서 잘 소화되어야 향후 홍콩 고미술 경매가 잘될 수 있기 때문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이 작품을 소장한 컬렉터가 일본인이고, 50여 년 넘게 소장해왔기 때문에 작품에 대해 굉장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를 설득하는 과정이 매우 힘들었을 뿐 아니라, 경매를 진행하면서 한국인이 낙찰받아 국내에 환수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죠.” 서울옥션 최윤석 상무의 말이다. 이들의 이런 노력 덕에 ‘백자대호’뿐 아니라 전 세계에 20여 점밖에 남지 않은, ‘세밀가귀’라 불리는 고려시대 나전 ‘나전칠국당초문합’도 4억 원을 웃도는 가격에 한국인에게 낙찰되며 경매 현장에 모여 있던 이들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백자대호, 조선시대, 42.2×42(h)cm, 낙찰가 HKD 12,000,000 (약 18억 3000만 원)

나전칠국당초문합, 13.7×10 x7.3(H)cm, 고려시대, 낙찰가 HKD 2,800,000(약 4억 2700만 원)
현대미술 작품 중에서는 역시 단색화가 강세였다. 박서보와 정상화 작가의 작품은 모두 낙찰되었는데, 그중 박서보의 ‘묘법(Ecriture) No.2-80-81’은 높은 추정가를 훌쩍 뛰어넘은 약 10억 원에 낙찰되었다. 권영우 작가의 작품도 단색화 작가 중 가장 많은 응찰 횟수를 보여 눈길을 끌었고, 35번과 36번으로 소개한 ‘무제(Untitled)’ 역시 최고 추정가를 넘겼다. 그간 한국 미술의 작품성과 시장가치가 글로벌 아트 시장에서는 저평가되어온 아쉬움을 한 번에 씻어준 셈이다. 한국적이고 서정적인 정서를 품고 있는 김환기의 1970년 작품 ‘16-II-70 #147’은 약 21억 원에 낙찰되며 지난 10월에 이어 다시 한 번 높은 가격에 거래됐고, 해외시장에서 처음 선보인 유영국의 ‘무제(Untitled)’는 약 5억 원에 거래되며 20세기 한국 근대 작가에 대한 세계 컬렉터의 기대감을 확인시켰다. 이외에도 알렉산더 콜더의 ‘무제(Untitled)’는 약 40억 원을, 야요이 쿠사마의 1960년 작품 ‘No.Red.A.B.C’는 약 39억 원에 낙찰되며 경매 현장에 긴장감을 선사했다.
과거의 경매와 이번 17번째 홍콩 경매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에 최윤석 상무는 “한국 작품뿐 아니라 중국 작품(창위), 웨스턴 피스(콜더 등)가 고루 분포돼 있어 외국인의 관심이 더 높았던 것 같습니다. 규모도 커졌지만 프리뷰나 경매 현장을 직접 찾는 해외 컬렉터가 점점 많아지고, 그들과의 유대관계도 점점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경매의 낙찰자도 한국인이 20%, 아시안이 60%, 나머지 20%가 미주와 유럽의 컬렉터죠”라며 서울옥션이 회를 거듭할수록 발전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서울옥션 제17회 홍콩 경매는 낙찰률 83.76%, 판매 총액 약 315억 원으로 한 달 전 열린 10월 홍콩 경매보다 높은 금액을 기록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경매가 거의 끝나갈 무렵, 현장을 빠져나오던 한 국내 갤러리스트와 마주쳤다. 싱글벙글한 표정의 그녀는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다. “정말 신나지 않나요? 유찰된 작품도 거의 없을 뿐 아니라(‘현대미술 편’에선 거의 90%의 낙찰률을 보였다) 한국 작가들의 작품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는 게 말이에요. 이건 우리가 다같이 축하해줘야 할 일이에요!”
박서보, 묘법 No.2-80-81, 181.2.5×226.7cm, 낙찰가 HKD 6,500,000 (약 9억 9000만 원)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사진 제공 서울옥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