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 떨어진 ‘미술’ 융단폭격
올해로 3회를 맞은 아트 바젤 홍콩이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이 행사는 유명 작가의 동시대 미술 작품을 한 장소에서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종합 선물 세트와 같다. 글로벌 아트 피플이 어우러져 밤새 파티가 이어지고, 고급 샴페인이 쉼 없이 쏟아지던 그 열띤 현장 속으로.
‘갤러리’ 섹션 전경. 올해 아트 바젤 홍콩에는 전 세계 37개 지역 233개 갤러리가 참여했으며, 총 6만 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지난 3월 13일, 아트 바젤 홍콩(ABHK)이 열리는 홍콩 컨벤션 센터에서 미디어 브런치를 진행했다. 금요일 저녁의 첫 프라이빗 뷰를 7시간 정도 앞둔 시점이었다. ABHK는 아트 바젤이 인수해 3회째를 맞으면서 개최 시기를 5월에서 3월로 앞당겼다. “아주 엄청난 변화입니다.” 아트 바젤의 디렉터 마크 스피글러가 말했다. 아머리쇼(3월), 프리즈 뉴욕 홍콩(5월) 등의 경쟁 아트 페어는 물론 6월에 열리는 아트 바젤과 시차를 둬, 홍콩에 부스를 차리길 망설이는 유명 갤러리에 선택의 폭을 넓혀주기 위한 전략이다. 또한 올해부터 베니스 비엔날레가 6월에서 5월로 개최 시기를 옮기는 바람에 글로벌 아트 피플의 관심이 모두 베니스로 향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고온다습하고 변덕스러운 홍콩의 여름 날씨도 피해야 했다. 별다른 방도가 없는 상황에서 내린 결단의 결과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올해 처음으로 홍콩에 참여하는 유럽과 미국의 갤러리가 20개예요. 잘 정착만 되면 척척 굴러가는 기계가 될 겁니다.” 채식주의자 마크가 샐러드를 입에 넣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사실 아시아와 서구 갤러리에 ABHK는 서로 다른 맥락에서 주요 선택지 중 하나다. 서구에는 아시아 미술 시장에 진출하는 주요 플랫폼으로 기능하며, 아시아에는 유난히 까다롭고 문턱 높기로 유명한 아트 바젤에 입성하는 좋은 기회인 셈.
홍콩 관광청은 쐐기를 박겠다는 듯 3월을 ‘미술의 달’로 선포했다.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경매, 아트 센트럴(Art Central)처럼 새롭게 설립한 위성 아트 페어, 홍콩에 분점을 낸 해외 유명 갤러리가 어깨에 힘을 주고 준비한 전시, 홍콩의 비영리 미술기관의 크고 작은 페스티벌과 기획전이 모두 ABHK에 맞춰 폭발했다. 그야말로 3월에 홍콩으로 떨어진 ‘미술’ 융단폭격이었다. 글로벌 아트 신을 쥐락펴락하는 거물급 인사가 홍콩으로 총출동한 낯선 풍경을 보며 혹자는 이곳에서 만약 폭발 사고라도 나면 국제 미술계가 대혼란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센(?) 농담을 하기도 했다. 주목할 만한 또 다른 변화는 ABHK의 새 디렉터로 말레이시아 출신 아델린 우이를 임명한 것이다. 아트 바젤의 동남아시아 VIP 매니저를 맡고 있던 그녀는 정식 기자간담회장에서 ABHK의 갤러리 선정 위원이자 싱가포르 STPI의 디렉터로 활동하는 에미 유와 포옹하며 감격에 겨워 울먹이기도 했다.
‘갤러리’ 섹션에 참여한 뉴욕 갤러리 반 드 웨이의 부스 전경
같은 날, 저녁 6시가 되기 1시간쯤 전부터 4개의 출입구 앞에 프라이빗 뷰를 위해 세계 각지에서 모인 VIP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어떤 갤러리가 무슨 작품을 출품할지 사전에 정보를 확보하고 누구보다 먼저 작품의 실물을 살피며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일종의 선택받은 자들이다. 한껏 멋을 부린 그들의 손에는 VIP 카드와 행사장의 플로어 플랜이 들려 있었다.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6시가 되자 문이 열렸고, 그들은 물고기처럼 재빠르게 각자 마음에 정해둔 갤러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장 많은 VIP가 모여 있던 출입구 1B를 통해 행사장에 들어서자 뿌리째 뽑힌 올리브나무가 수평으로 매달려 떨리는 시오반 하파스카(Siobha′n Hapaska)의 거대한 설치 작품이 관람객을 맞았다.
‘인카운터(Encounters)’ 섹션에 선정된 이 작품은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구매하며 쾌감을 느끼는 컬렉터의 ‘아트 사랑’ 심리 상태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올해 ‘인카운터’ 섹션은 시드니 아트스페이스(Artspace)의 상임 이사 알렉시 글라스-캔터(Alexie Glass-Kantor)가 맡아 ‘Landscape Urbanism’을 주제로 총 20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미술관에서 만날 법한 이런 작품을 누가 살까 싶지만, 작품 대부분이 판매 완료됐다. 작년 양혜규에 이어 한국 작가는 김태윤(원앤제이), 이우환(국제)이 참여했다.
ABHK는 유명 갤러리의 일반 부스를 의미하는 ‘갤러리(Galleries)’, 복잡한 전시장의 이정표로 대형 조각과 설치 작품 등 스펙터클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인카운터’, 쇼케이스 형식으로 전도유망한 작가를 소개하는 ‘디스커버리(Discoveries)’, 큐레이터 프로젝트로 꾸리는 ‘인사이트(Insight)’ 섹션 등의 전시가 중심이다. 영상 작품을 상영하는 ‘필름(Film)’, 미술인이 삼삼오오 모여 동시대 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퍼블릭 프로그램 ‘컨버세이션(Conversations)’, ‘살롱(Salon)’ 등의 부대행사도 함께 열린다. 올해 ABHK는 37개국에서 233개의 갤러리가 참여했다. 작년보다 12개가 줄었지만, 출품작의 면면은 전반적으로 향상됐다는 평가다. 홍콩에 새롭게 입성한 갤러리가 행사장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애니시 카푸어 . 줄리언 오피 . 쿠사마 야요이 . 제프 쿤스 등 스타 작가의 비슷비슷한 작품이 눈에 띄었고, 마티에르를 강조한 회화 작품 그리고 인간과 동물의 중간 지점에서 탄생한 것 같은 기이한 형상의 조각과 설치가 대세를 이뤘다. 뜻밖에 사진 작품은 많지 않았다. 아시아에서 열리는 페어 특유의 지역색(?)이 약해졌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미술인도 보였지만, 자국의 작품에서 해외 유명 작가의 작품으로 시선을 돌린 중화권 젊은 컬렉터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잘 선별했다는 호평 아닌 호평도 여기저기서 들렸다. 살벌한 미술계에서 살아남아 명성을 유지해온 콧대 높은 갤러리들은 작품을 산 컬렉터의 요구나 프로모션 차원에서 부스에 걸린 작품을 수시로 바꾸는 열의도 보였다. 한편 몇몇 갤러리는 다른 아시아 페어에서 가져온 작품을 설치 방식까지 그대로 ‘재탕’해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Courtesy David Zwirner, New York/London
크리스 오필리, Dead Monkey-Sex, Money and Drugs, 코끼리똥 이외의 혼합재료, 182.9×304.8cm, 2000 _데이비드즈워너 갤러리는 이 작품을 VIP 프라이빗뷰를 시작한 지 한시간도 안 돼 약 22억원에 판매했다.
ABHK의 이상 열기는 프라이빗 뷰 다음 날 확인됐다. 판매 결과가 속속 집계된 것. <아트리뷰>가 매년 선정하는 국제 미술계의 ‘파워 100’에서 2위를 차지한 데이비드 즈워너(David Zwirner)는 몇몇 기자만 초대한 브런치 자리에서 크리스 오필리의 회화를 약 22억 원에, 네오 라우흐의 회화를 약 11억 원에 판매했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행사가 열리고 1시간도 안 돼 얻은 성과다. “홍콩은 젊은 컬렉터가 활약한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에요. 물론 작가나 다른 미술인도요. 마이애미나 바젤에 있었다면 지금 여기 모인 분의 대부분이 60대일 겁니다.(웃음)” 중화권 컬렉터를 대상으로 대대적 프로모션을 펼치기 위해 내한한 네오 라우흐도 자리를 함께했다. 즈워너는 현재 홍콩에 갤러리 공간을 알아보는 중이다. 홍콩 컨벤션 센터에서 다시 만난 숀 켈리(Sean Kelly)는 “프라이빗 뷰가 3시간이라니 말도 안 돼요”라며 불만을 털어놨다. 풍채 좋은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갤러리를 24년 동안 운영해온 유명 갤러리스트로 아트 바젤 홍콩, 바젤, 마이애미에 모두 참가하고 있다. 작년에 갤러리 소속이 된 쑨쉰(Sun Xun)과 휴고 매클라우드(Hugo McCloud)의 작품으로 부스를 차려 많은 작품을 높은 가격에 판매했다.
이 밖에 베이징, 상하이, 싱가포르에 분점이 있는 갤러리 샹아트(ShanghART)는 숀 스컬리(Sean Scully)의 작품을 약 9억 원에, 뉴욕과 런던의 스카스테트(Skarstedt) 갤러리는 조지 콘도(George Condo)의 작품을 6억 원에, 화이트 큐브(White Cube)는 수술용 메스로 제작한 데이미언 허스트의 흑백도시 조감도 ‘Shanghai’를 약 13억 원에 팔아치웠다. 리먼 머핀은 ABHK에 맞춰 홍콩 분점에서 개인전을 연 앨릭스 프레이저(Alex Prager)의 작품을 판매해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봤다. 물론 정확한 판매 액수를 밝히지 않은 갤러리도 상당수다.
초대형 설치 조각 작품을 선보이는 ‘인카운터’ 섹션에 소개된 미칼라 드와이어(Mikala Dwyer)의 작품
한국 갤러리의 활약도 ABHK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 국제, 갤러리스케이프, 아라리오, 원앤제이, 학고재, PKM이 ‘갤러리’ 섹션에 이름을 올렸다. PKM갤러리의 박경미 대표는 “유럽 컬렉터를 비롯해 홍콩과 중국 등의 로컬 바이어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수지킴이 ABHK의 갤러리 선정 위원으로 활동하는 국제갤러리는 행사가 작년보다 더 잘 정리됐다고 평가했다. 학고재는 정상화와 백남준의 작품을 프라이빗 뷰에서 판매했다. 외국 갤러리에서도 한국 작가의 반가운 작품이 눈에 띄었다. 국제갤러리뿐 아니라 샹탈 크루셀(Chantal Crousel)에 설치한 양혜규의 구슬 작품, 리먼 머핀의 서도호 작품도 관람객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인사이트’ 섹션에서는 갤러리인이 김범명의 사슴뿔 조각 설치를, 리안갤러리가 자를 소재로 작업하는 김승주를, 갤러리EM이 여성 작가 성낙희와 장현선의 작품을 내놓았다. 갤러리EM의 손엠마 대표는 “나날이 성장하는 중화권 컬렉터와 새롭게 교류를 쌓은 점”을 최고의 성과로 꼽았다.
ABHK를 향한 세간의 관심은 미술이 비즈니스와 결합한 우리 시대의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ABHK가 단 3회 만에 국제 미술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이유도 같은 맥락에 있다. ABHK를 비롯해 유명 갤러리부터 미술관, 비엔날레급 행사를 대신해 홍보를 진두지휘하는 서튼PR의 대표 캘럼 서턴(Calum Sutton)은 아트 바젤의 메인 파트너 UBS가 꾸린 VIP 라운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20년 전에만 해도 미술은 비즈니스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죠. 그야말로 ‘취향 전쟁’의 시대입니다. 명망 있는 컬렉터 루벨이 지난 아트 바젤 마이애미에서 중국 작가의 작품만 모은 전시를 열었잖아요. 아주 엄청난 변화입니다. 홍콩은 그런 변화를 상징하는 곳이에요.” 적어도 2018년 개관을 목표로 준비 중인 M+ 뮤지엄이 문을 열 때까지, 매년 3월 홍콩에는 미술 융단폭격이 계속될 전망이다.
나라 요시토모, Setsuko the Cat, 브론즈, 149x133x125cm, 2012_블룸 앤 포 부스에서 소개했다. 한편 페이스 갤러리 홍콩은 아트 바젤 기간에 맞춰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해 관심을 받았다.
Hot Places in Hong Kong
아트 바젤 홍콩을 찾는다면 이곳을 놓칠 수 없다. 홍콩뿐 아니라 아시아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주도하는 곳이자, 홍콩 아트 신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핫 플레이스’다.
파라 사이트(Para Site) 1996년 설립한 홍콩의 첫 동시대 미술기관으로 전시, 각종 이벤트, 레지던시, 출판 사업을 진행한다. 올해 3월 동쪽 산업 지역 쿼리베이로 이사해〈수치의 100년: 중화 국가를 위한 저항의 노래와 시나리오〉라는 독특한 전시를 열었다.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Asia Art Archive) 2000년 설립, 상환 근처에 있는 이곳은 동시대 아시아 미술의 보물 창고와 다름없다. 아시아 각국의 미술 자료를 꼼꼼하게 리서치하고 분류하며 전시와 각종 세미나를 개최한다. 5만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스프링 워크숍(Spring Workshop) 2012년 설립한 비영리 기관으로 황주컹 근처에 있다. 작가가 거주하며 작품 창작에 몰두할 수 있는 레지던시와 국제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관련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페더(Pedder) 빌딩 센트럴 역 D1 출구에 있다. 벤 브라운, 펄 램, 한아트 TZ, 사이먼 리, 리먼 머핀, 가고시안 등 유명 갤러리가 포진해 있어 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꼭 방문해야 할 곳이다. 도보로 5분 거리에 화이트 큐브, 페로탱, 페이스 갤러리도 모여 있다.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사진 제공 아트 바젤 홍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