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황제와 교황의 도시, 로마

LIFESTYLE

굳건한 이탈리아의 중심지 로마. 문화 칼럼니스트 정준호가 이 도시를 여행하며 말하는 로마는 황제의 로마일까, 교황의 로마일까?

잠볼로냐의 헤르메스 동상이 있는 메디치 빌라.

이탈리아 유미주의 문학의 대가 가브리엘레 단눈치오(Gabriele dʼAnnunzio, 1863~1938)는 소설 <쾌락(Il Piacere)>에서 주인공의 취향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가 사랑한 로마는 황제의 로마가 아니라 교황의 로마였고, 아치와 고대 대중목욕탕이나 포로 로마노의 로마가 아니라 빌라와 분수, 교회의 로마였다.” 부연하자면 콜로세움보다는 바티칸이, 폐허의 유적보다는 보르게세 미술관이 더 좋다는 말이다. 보통 사람에겐 굳이 우열을 가릴 필요 없는, 똑같은 옛것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이는 예술적 취향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 쪽인지, 르네상스와 바로크 쪽인지를 나누는 단서가 된다. 나는 로마에서 보낸 어느 하루를 단눈치오식으로 구분해보았다.

위쪽 빌라 데스테의 분수.
아래쪽 빌라 데스테에서 바라본 티볼리.

티볼리의 웅장한 빌라
아침 일찍 티볼리로 향했다. 로마에서 동쪽으로 약 30km, 차로 30여 분을 달려 도착한 근교다. 기원전 13세기 로마 이전부터 삶의 터전이던 이곳은 아름다운 경관과 좋은 수원 덕분에 로마시대 황제와 귀족의 별장 터가 되었다. 대표적인 곳은 5현제(賢帝) 중 세 번째 인물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빌라 아드리아나(Villa Adriana). 빌라라지만 실은 별장이나 별궁을 넘어 폼페이 전체보다 넓은 규모다. 제국의 팽창을 잠시 중단하고 안정화에 힘을 쏟은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로마 이전의 그리스·이집트 문명을 높이 평가해 점령지의 유산을 빌라에 재현했다. 나일강 하구 도시 이름인 카노푸스나 그리스 아고라에서 유래한 페칠레, 로마 고유의 자랑인 거대한 욕장(terme)은 현재 뼈대만 남아 있음에도 감탄을 자아냈다. 하드리아누스는 목욕하며 지중해를 경영하는 천리안의 황제였던 셈이다. 그렇다고 티볼리가 황제만의 공간은 아니었다. 교황 시대 귀족도 이곳에 빌라를 지었다. 그중 으뜸은 데스테 집안의 이폴리토(Ippolito d’Este, 1509~1572) 추기경이 지은 빌라 데스테(Villa d’Este)다. 페라라의 데스테 집안은 르네상스시대 최고 예술 후원자였다. 이폴리토의 할아버지 에르콜레 1세는 음악을 중시했고, 아버지 알폰소 1세는 화가 티치아노를 후원한 미술 애호가였다. 또 이폴리토의 어머니는 교황 알레산드로 6세의 딸이자 세기의 경국지색으로, 숱한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루크레치아 보르자였다. 이러한 가풍을 이어받은 이폴리토의 곁에는 교황청의 음악을 책임지는 조반니 피에를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가 있었다. 추기경은 교황청 건축가 피로 리고리오(Pirro Ligorio)에게 빌라 데스테의 건축을 맡겼다. 고대 로마를 깊이 숭상했던 리고리오에게 폐허로 남은 빌라 아드리아나는 본받을 만한 위대한 유산이었다. 다만 원상 회복이 아닌 그 재료를 활용해 빌라 데스테를 지은 탓에 황제의 빌라는 앙상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빌라 아드리아나의 잔재를 보며 옛 모습을 상상하는 데 그쳤으나, 빌라 데스테 앞에서는 화려함과 웅장함에 혀를 내둘렀다. 다만 이곳에서도 실내를 장식했던 값진 미술품은 프레스코화로만 짐작할 수 있었다. 또 그 대기를 감쌌던 놀라운 음악은 하루 두 번 분수가 가동될 때 나오는 스피커 소리로만 겨우 귀를 간질일 뿐이었다. 내 일은 공간을 채운 음악을 찾는 것이다. 고대 빌라 아드리아나의 음악은 요원하지만, 르네상스시대 빌라 데스테의 사운드트랙은 우리 귀에 거의 다다랐다.

크리스티나 여왕이 숨을 거둔 리아리오 궁전의 방.

로마를 채운 음악
일단 다시 로마로 돌아갔다. 메디치 가문의 첫 군주 코시모 1세의 아들 페르디난도 1세(1549~1609)는 이폴리토 데스테 추기경처럼 성직자의 길을 갔다. 불과 열세 살에 추기경이 되어 로마로 간 페르디난도는 이폴리토 못지않은 예술적 안목의 소유자였다. 핀초 언덕에 자리한 고대 건물은 그의 눈에 들어왔고, 고대부터 명당이던 그 자리에 서기 2세기 무렵 빌라 아드리아나를 모방한 아름다운 궁전이 들어섰다.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고 풍파를 겪었지만, 1576년 페르디난도 추기경이 매입한 후 빌라 메디치로 불렸다. 아름다운 전면 부조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개선을 기념해 고대에 만든 평화의 제단(Ara Pacis)에서 떼어낸 것이다. 개인 서재 스투디올로는 새장처럼 만들었고, 천장에는 자연을 끌어왔다. 그 자체로 박물지(博物志)였다.
1587년, 서른여덟 살이던 페르디난도 추기경은 피렌체 군주이던 형이 급서하는 바람에 그 뒤를 잇게 되었다. 후사를 위해 결혼도 서둘러야 해야 했다. 결혼 상대는 오래전 프랑스로 시집간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손녀 크리스티나 디 로레나였다. 1589년 피렌체 피티 궁전에서 열린 이들의 결혼식은 예술사의 기념비적 행사였다. 당대 으뜸이던 작곡가들이 공동 창작품으로 결혼을 예찬했으니, 이로부터 오페라라는 종합예술의 문이 활짝 열렸던 것이다. 피로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노래 ‘오, 이 얼마나 새로운 기적인가’는 ‘대공의 무도회’ 또는 ‘피렌체의 선율’이라는 이름으로 편곡되며 널리 퍼졌다. 오토리노 레스피기(Ottorino Respighi, 1879~1936)는 ‘옛 춤곡과 노래 모음곡 2번’의 첫 곡에서 바로 그 선율, 공기를 현대풍으로 해석했다. 또 그의 ‘로마의 분수’ 중 마지막 곡 ‘해 질 녘 메디치 빌라의 분수’는 제목 그대로 그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추기경이 떠난 뒤에도 빌라의 많은 조각이 피렌체로 옮겨지며 모사품으로 대체되었지만, 그 안을 감돌던 대기까지 가져가지는 못했다.
메디치 빌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영화 <로마의 휴일>로 유명한 스페인 광장이 있다. 계단을 내려가지 않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두 갈래 길 사이로 독특한 생김새의 건물이 보인다. 로마를 황제와 교황의 도시로 나눈 단눈치오가 살던 팔라초 추카리(Palazzo Zuccari)다. 자니콜로 언덕 너머로 해가 떨어질 무렵 이곳을 지나 서울의 홍대 앞처럼 젊은 인파가 가득한 트라스테베레 구역으로 향했다. 이곳에 자리한 팔라초 리아리오 궁전과 정원(현재 로마 식물원)은 17세기 크리스티나 여왕(1626~1689)이 머물던 곳이다. 여왕은 신교 국가 스웨덴의 왕위를 박차고 교황의 로마로 건너온 뒤 ‘아카데미아 아르카나’를 열어 예술을 후원했다. 교회 안에서 ‘거룩한 찬양’과 ‘악마의 유혹’이라는 갑론을박 탓에 뜨거운 감자였던 음악은 새 시대를 맞아 교회 밖에서 만개했다. 오페라는 물론 기악의 융성으로 말미암아 바로크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인근 산타체칠리아 대성당 수녀들이 막 저녁 기도를 시작할 때라 어둑하던 교회를 따스한 불빛이 감쌌다. 체칠리아는 3세기 무렵 순교한 음악의 성녀(聖女)다.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오르간이 연주되고, 천장에 보이는 세바스티아노 콘카(Sebastiano Conca)가 그린 ‘성 체칠리아 대관식’에는 교회의 내력이 담겨 있다. 그리스도와 마리아가 승천한 체칠리아에게 관을 씌워주는 모습 아래로 오르간이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체칠리아를 찬양하는 곡은 많지만 그녀의 시신이 안장된 이 교회에 봉헌되고, 또 이곳에서 초연한 곡이 있으니 스카를라티의 ‘성 체칠리아 미사’다. 스카를라티는 이 밖에도 ‘성 체칠리아 저녁기도’와 오라토리오의 ‘성 체칠리아의 순교’를 작곡해 예술에 바친 그녀의 삶을 찬양했다. 트라스테베레 너머 자니콜로 언덕에 달이 떠올랐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산들바람과 달빛이 서로 애무한다. 이는 레스피기가 ‘로마의 소나무’ 중 ‘자니콜로의 소나무’에서 묘사한 광경이다. 레스피기의 지시에 따라 녹음된 새소리를 들으니 빌라 메디치 스투디올로의 천장을 장식했던 박물지를 다시 살아나게 할 것만 같았다.
나는 황제의 로마와 교황의 로마, 둘 중 어느 한쪽만 택할 수 없다. ‘황제의 로마’ 갈비뼈로 만든 것이 ‘교황의 로마’이며, 그 살과 피를 이루는 것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 미술과 음악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술품은 다른 곳으로 떼어가면 그만이지만, 그 공기를 채웠던 음악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들어줄 사람을 기다릴 뿐.

로마 트라스테베레의 산타체칠리아 대성당.

산타체칠리아 대성당 내부.

단눈치오가 살았던 추카리 궁전.

페르디난도 추기경의 초상.

 

글·사진 정준호(문화 칼럼니스트)
에디터 김혜원(haew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