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에서 새벽까지
해변의 석양과 칵테일, 새벽까지 이어지는 파티와 함께 즐기는 현대미술. 휴양지 특유의 느긋한 분위기로 가득한 아트 페어, CAN.


위 방공호를 개조한 전시 공간에서 열린 하우메 로이그의 〈No Home〉 전시 전경. © Mariasantosphotography.
아래 어부의 숙소로 쓰이던 석조 건물. 2024년 페어 기간에는 벨기에 아티스트 듀오 에릭 콜로넬과 토머스 스피트의 세라믹 작업을 설치했다. © Raymond Petrik.
지중해의 여름은 아트 페어로 시작된다. 스페인의 대표적 휴양지 이비사섬에서 열리는 부티크형 아트 페어 CAN(Contemporary Art Now)은 저녁 6시에 문을 열어 밤 10시까지 이어지는 독특한 형식의 이벤트다. 6월 25일부터 29일까지 열리는 2025년 에디션에는 전 세계 30여 개 갤러리가 참가해 회화, 조각, 세라믹, 디지털 등 다채로운 매체의 작품을 선보이며 이비사섬의 여름 휴양 시즌 개막을 알린다. CAN은 2022년 처음 막을 올린 신생 아트 페어다. UVNT 아트 페어를 성공시키며 스페인 마드리드 아트 신에 주목할 만한 흐름을 만들어낸 창립자 세르히오 산초(Sergio Sancho)는 이비사섬 전체를 예술의 실험실로 활용하는 새로운 페어를 구상했다. 여기에 새로운 감각의 아트 매거진 〈적스타포즈(Juxtapoz)〉의 컨트리뷰팅 에디터 출신 사샤 보고예브(Saša Bogojev)가 큐레이터로 참여, 기존 주류 아트 신에서 벗어난 스트리트 아트, 디지털, 세라믹 등 젊은 작가들의 예술 언어를 강조하며 페어 이름처럼 ‘지금’의 감각을 극대화했다.

CAN 창립자이자 페어 디렉터인 세르히오 산초. © Mariasantosphotography.
작년에 세 번째로 열린 CAN은 5000명 이상의 관람객을 기록했다. 토니 아워슬러(Tony Oursler), 마크 라이언 채리커(Mark Ryan Chariker), 애덤 파커 스미스(Adam Parker Smith) 등 잘 알려진 작가부터 신진 작가의 작품까지 폭넓게 거래되며 “불황 속에서도 견조한 아트 페어”라는 평가를 얻었다. 올해부터는 참가 갤러리 수를 늘리고, 영상과 NFT 섹션을 신설하는 등 프로그램을 확장할 계획이다. 로에베를 비롯한 스폰서와 함께 ‘이비사 아트 위크’라는 공식 브랜드를 출범,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아티스트 오픈 스튜디오, 주변 레스토랑의 미식 프로그램까지 더해 보다 입체적인 예술 경험을 제공할 예정이다. CAN이 여타 아트 페어와 가장 차별화되는 요소는 휴양지 환경을 십분 활용한 야간 개장이다. 6월 하순 이비사섬의 일몰 시간은 밤 9시 20분 전후. 페어가 열리는 FECOEV 전시장의 파사드를 붉게 물들이는 노을을 배경으로 해변을 따라 들어선 클럽에서는 라운지 DJ들이 BPM과 볼륨을 높이고, 현대미술을 즐기던 관람객들은 자연스럽게 파티 장소로 옮겨간다. 전시장뿐 아니라 해변, 등대, 방공호, 폐공장 등 섬 곳곳에서 열리는 오프사이트 전시와 라이브 퍼포먼스가 이비사 전체를 하나의 예술 루트로 엮고, 현장 실황은 이비사 글로벌 라디오 채널을 통해 전 세계로 송출된다. 올 상반기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 아트 마켓의 가장 중요한 행사인 스위스 아트 바젤 바로 다음 주에 열리는 개최 시점도 흥미롭다. 일부 갤러리는 바젤의 부스 구성과 작품을 그대로 활용해 설치 및 운송 비용을 절감하고, 컬렉터는 바젤에서 눈여겨본 작품을 휴양지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다시 한번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 지중해의 여름을 여는 CAN은 ‘어떤 작품을 구매할 것인가?’에서 ‘어디서 어떻게 예술을 경험할 것인가?’로 아트 페어의 초점을 옮기는, 새로운 감각의 이벤트다.
에디터 정규영(ky.chung@noblesse.com)
사진 C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