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후원, 솔직히 말해봅시다

ARTNOW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한 후원 활동이 곧 작가들이 생각하는 후원과 같을까 하는. 아티스트가 생각하는 진정한 후원이란 무엇일까요? 12명의 아티스트가 이에 대해 답했습니다.

‘엇갈린 신(들)’의 영상 스틸, 2015

김실비
예술은 사회 안에 있으면서도 그 사회를 극복하려는 태생적 딜레마를 안고 있다. 예술 후원자는 그렇게 모순을 끌어안는 행위의 이상을 공유하려는 사람이다. 또 후원자는 그 이상의 가치를 변별하는 기준에 대해 끊임없이 반문하면서 예술가의 의지와 표현에 기여할 수 있다. 이상적인 후원자는 무언가를 주는 대가로 그 무엇도 요청하지 않는다. 후원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살피는 영민한 짝사랑에 가깝다. 식물에 물을 주듯, 생명을 키우듯 예술가가 바라보는 세계에 동조함으로써 창작의 밑거름이 되는 물질적 세계에 함께 몸담는 일이다.

 

‘URC-1’, 2014

최우람
진정한 후원의 모델을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찾으려 해보니, 서로 다른 바람 때문에 그 역시도 수월치 않다. 하물며 타인에 대한 후원이 쉬울 리 없겠고 소통 없는 일방적인 후원은 서로를 실망시키기 쉽다. 그러니 진정한 후원은 양측의 충분한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할 때 가능해 보이고, 이런 조건이 시간을 두고 진심이 오가는 관계로 발전한다면 아주 작은 마음까지도 후원이 될 수 있다. 이런 후원으로 인해 예술가들의 용감한 창작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며, 작품에 진심이 담기도록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작가로서 내가 모든 이들에게 보답하는 일이라 믿는다.

 

2015년 샤르자 마라야 아트 센터의 <아나: 잠시만 눈을 감아보세요>전에 전시한 ‘일상의 기념비’

홍순명
나와 절친한 프랑스인 친구는 파리에서 200km 떨어진 북쪽 해안가 작은 마을에 살고 있다. 최근 나는 풍경 좋고 공기 좋은 그곳에서 며칠을 묵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동네의 유명인이었다. 10년 전 그곳으로 이사했는데 시장이 예술가가 이사 왔다며 기쁘게 맞아줬다고 한다. 부러웠다. 전시를 하며 여러 나라를 다녀봤지만 대한민국처럼 예술가가 별 볼일 없는 나라는 본 적이 없다. 유럽이나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요즘 자주 방문하는 필리핀도 예술에 대한 인식이 우리나라보다 낫다. 후원한답시고 생색을 내거나 작업실을 잠시 빌려주어 단발적 전시를 만들면서 구체적 수치에 목숨을 거는 행정보다는 예술을 이해하는 사회의 인식이 중요하다. 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 빠른 결과를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볼 때 내가 쓰고 있는 이 글도 하릴없는 넋두리일 수 있다. 그래도 굳이 한마디 한다면 우리의 삶에서 예술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인식할 수 있는 환경, 그것이 바로 우리 예술가에게 가장 큰 후원이라고 생각한다.

 

‘Color Notation-Clouds’, 2010

전가영
가능하다면 후원이 필요 없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은 아트의 세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누군가에게 받는 금전적·정신적 후원에는 무게감이 따른다. 당장은 그것의 긍정적 작용으로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 하지만 후원이 끝난 이후엔? 혹시라도 예기치 못한 일로 후원이 중단되거나 후원자가 내 작업의 방향을 바꾸려 한다면? 아티스트에게 후원은 달콤한 유혹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진정한 후원에 대한 동화 같은 로망은 있다. 파울 자허(Paul Sacher)처럼 아트에 대한 깊이 있는 관심과 막대한 부를 겸비한 후원인이 있다면 무궁무진한 아이디어와 창작열이 샘솟을 것 같다.

 

2015년 페리지갤러리에서 개최한 < P >전의 인스털레이션 뷰

김도균
지금도 LIG의 후원으로 한 달간 뉴욕 ISCP(International Studio & Curatorial Program)에서 지내는 중이다. 이곳은 매년 두 번 오픈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작가가 그동안 작업한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지금까지 미술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작업실을 지원하거나 작품을 컬렉션하는 여러 형태의 지원을 받아왔다. 이런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후배 작가들에게 이어진다면 좋겠지만, 예전에 왕성하던 후원을 최근 주위에서 찾아보기 힘들어 안타깝다. 유럽에서는 마음에 드는 작가를 긴 시간 묵묵히 후원하며, 작가와 컬렉터의 특별한 관계가 오래도록 지속되는 경우를 봤다. 확 불붙었다가 순식간에 식어버리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길게 이어지는 후원이야말로 작가와 페이트런 모두에게 좋은 후원이 아닐까 싶다.

 

‘오렌지 스톤’, 2015

안두진
우리나라에서 후원은 많은 작가가 바라지만 선택된 소수에게만 집중되거나 어쩌면 그마저도 신기루에 가까운 실체 없는 것일 수 있다. 최근 민간의 지원도 종종 이뤄지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하는 예술 후원은 대부분 기관과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이다. 이런 지원 정책이 크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정책이 만든 풍경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경제적 논리를 따지지 않더라도 수요가 많으면 선별 기준이 엄격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자기 세계를 존중받아야 할 작가들의 경쟁 상대가 다른 작가라는 사실은 늘 씁쓸하다. 그러니 이런 정책은 경쟁적 선별 기준이나 사업 일정, 지원 성과 등을 강조하기보다는 ‘세심한 배려’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 후원자의 기다림과 집행기관의 유연함, 그리고 후원받는 작가의 성실성이 어우러져야 후원 정책이 차가운 도구가 아닌 온기 있는 친구가 될 것이다. 이것이 좋은 후원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Imprisoned Body, Wandering Spirit #1’, 2002’

박영숙
작가가 믿고 실천하는 ‘미학적 사유’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형태가 컬렉션이다. 아티스트들은 이런 지지와 지원을 받을 때 행복하다. 나 역시 그렇다. 작가는 그 덕에 작업할 동력을 얻어 재생산하며 자신을 발전시킨다. 결국 후원하는 사람들은 자본을 갖고 있으면서 아트를 사랑하는 이들이며, 그들은 사회에서 문화 귀족의 역할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알고 있다. 이런 역할을 하는 이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문화예술위원회에서 많은 지원을 받아왔고, 2009년 출간한 ‘미친년 프로젝트’의 도록 역시 경기도문화재단의 지원으로 가능했다.

 

2011년 엔씨소프트 사옥에 전시한 작품 ‘office’

이정민
기업이나 대규모 행사와 관련한 전시에서 작품 제작비를 지원받은 적이 있다. 후원의 진정성은 단순히 금액으로 가늠할 수 없고, 작가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법이다. 영상 작업은 작은 모니터부터 미디어 파사드까지 그 방식이 다양하기 때문에 가끔 기술적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대부분 프로젝트 준비 기간이 길지 않아 문제가 생겼을 때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데, 미디어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곳에서는 전시 과정에 기술팀을 지원해 작가가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럴 땐 내 작업을 홍보용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이런 섬세한 배려가 진정한 후원이 아닐까 생각한다.

 

‘A Night of Burning Bone and Skin’, 2014

양아치
아티스트의 역할을 이해하고 아티스트의 작업 방향을 지지하는 것, 창작 공간과 전시 공간 등 아티스트의 환경을 개선하는 것, 그리고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아티스트의 상황을 이해하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후원이다. 나는 하나대투증권 청담금융센터의 전병국 센터장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투명한 그림자’, 2015

정보영
예술가 후원 제도가 전무한 시기에 활동을 시작해 국가와 지자체의 예술 활동 지원, 기업과 예술의 협업이 점차 확산되는 상황을 지켜본 나로서는 현재 운영하는 여러 가지 후원 정책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입장이다. 다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의 폭이 무척 좁다는 것이 문제다. 국가든 기업이든 갤러리스트나 한정적인 평론가 몇 명에게 기대어 작가를 탐색, 지원할 것이 아니라 문화 전반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잠재적 에너지가 풍부한 젊은 작가의 미래에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미 알려진 작가를 통한 또 다른 이윤 창출이 아니라 후원자와 작가가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하는 후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조덕현 작가가 오클랜드에서 진행한 수중 발굴 프로젝트

조덕현
사진은 수년 전 뉴질랜드 오클랜드 시에서 진행한 수중 발굴 프로젝트의 한 장면이다. 바다 깊은 곳에서 컨테이너를 인양해 거리로 옮기고 그 안에 들어 있던 그림들(!)을 전시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를 위해 여러 명의 잠수부와 바지선 그리고 크레인 등 중장비를 며칠 동안 동원했고 막대한 비용이 들었는데, 모든 것을 오클랜드 시에서 조성한 기업 후원금으로 충당했다. 그뿐 아니라 작가인 나와 조수 2명의 항공료, 숙박비를 비롯한 작업 비용 일체를 조건 없이 지급했다. 그런 작업 환경이 부럽기만 하다. 그러고 보니 20년 전, 필라델피아 ICA 개인전을 위해 제법 많은 작품 운반료와 보험료 15만 달러를 선뜻 내주신 분이 있었다. 당시 금호그룹의 고(故) 박성용 회장님이다. 그런 큰 후원자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지난봄 송은아트센터에서 개최한 개인전 < Now Here is Nowhere >의 인스털레이션 뷰

박혜수
한국 미술계엔 작가 지원 프로그램이 생각보다 다양한 편이다. 전시 비용을 지원하는 것부터 공간을 빌려주거나 평론가를 주선하는 것까지 여러 가지다. 특히 국공립 레지던시와 재단 기금은 이미 자리를 잡았고, 몇몇 기업이 주최하는 공모전엔 해마다 수백 명의 작가가 몰린다. 수상 작가는 개인전을 개최할 수 있고, 이때 기업이 전시 공간과 작품 제작비, 홍보를 비롯한 모든 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가 향후 작품 세계를 펼쳐나가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조언하며, 작가는 작업에만 몰두하면 되는 환경이다. 내가 우리나라 기관과 기업의 후원에서 가장 바라는 것은 지속성과 다양성이다. 여러 공모전이나 후원 사업을 단발성의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하거나 특정 분야에만 치중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차별화한 다양한 공모를 통해 작가들이 작품 세계를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수 있길 바란다.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