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 후에 오는 것
개인 후원자의 활동을 활성화하려면 그들에게 지원의 기쁨이 있음을 알려야 한다. 잠재적 후원자까지 혹하게 하는 몇몇 나라의 후원 세제 혜택을 알아봤다.
미술 후원자의 후원 활동은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작품 구입을 통한 직접적인 작가 지원, 두 번째는 미술품 기증을 통한 대중과의 예술 공유, 마지막은 재단 또는 미술관 설립을 통해 작가와 대중 모두 컬렉션을 공유하게 하는 거다. 과거 미술 후원자들의 활동은 그간 동시대의 유명 미술관이 탄생하는 초석이 되었고, 해당 국가가 문화 강대국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그들이 이런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는 우호적인 세제 혜택이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미술 후원자를 ‘혹하게’ 하는 몇몇 국가의 세제 혜택을 알아보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생각해본다.
개인 미술관 설립을 통해 미술계를 후원하는 미국 ‘루벨 패밀리 컬렉션’의 전시 작품
미국 마이애미에 위치한 루벨 패밀리 컬렉션

미국이 세계 미술계를 주도하는 방법
미국은 세계 미술계에서 후원자의 작품 기증과 후원 활동이 최고 수준인 나라다. 미국을 대표하는 유명 미술관 대부분이 정부 지원이 아닌, 이들의 후원으로 설립됐다. 록펠러 가문의 뉴욕 현대미술관(MoMA)을 시작으로 철도 사업가 존 테일러, 금융 재벌 J.P. 모건 등의 컬렉션 기증으로 탄생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철강 거물 솔로몬 구겐하임의 컬렉션이 바탕이 된 구겐하임 미술관, 석유 재벌 J. 폴 게티의 게티 미술관, 에스티 로더 가문의 노이 갤러리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
1917년 미국은 미술 후원자에게 면세 혜택을 주는 연방 세법안을 통과시켰다. 혜택만 놓고 보면 이렇게 파격적일 수 없다. 국공립 미술관에 작품 기증 시 기증자 소득의 30% 한도 내에서 기증하는 작품 시가 기준으로 100% 소득공제를 해주고, 5년간 이월 공제까지 가능하다. 동시에 해당 작품 이관 시 발생하는 증여세 또한 면제해준다. 이러한 혜택을 바탕으로 기증을 위해 철저한 작품 감정, 기증받는 기관의 요건, 기증자와 수여 기관 사이의 기증 조건 등 상세한 매뉴얼에 따라 기증을 진행하며, 기증 확정 결과에 따라 세금 감면 혜택을 차등 적용하고, 조건을 위반한 경우 불이익 등에 대해서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특히 연방 세법안 중 하나인 ‘Fractional Gifts’ 프로그램은 기증하고자 하는 작품의 권리를 매년 일정 부분 기증하고, 소유권 이전이 완료될 때까지 매년 작품 시가를 기준으로 기증한 금액만큼 소득공제 혜택을 받는 제도다. MoMA에 있는 파블로 피카소의 ‘The Reservoir, Horta de Ebro’와 세잔의 ‘Boy with a Red Vest’, 휴스턴 미술관에서 소장한 르네 마그리트의 ‘Kiss’ 등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후원자가 기증한 작품이다. 미술관은 예산 문제로 직접 구입할 수 없는 천문학적 가격의 대작을 그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소장할 수 있었는데, 일각에서 혜택이 지나치다는 의견이 일자(2000년대 들어 부자들의 절세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비난이 있었다) 결국 2006년 이 프로그램의 일부 혜택을 규제하는 내용의 조항을 포함한 법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법 개정 이후에도 저명한 현대음악 작곡가이자 컬렉터인 앙리 라자로프가 평생 모은 1억 달러 상당의 모더니즘 작품 130여 점을 LA카운티 미술관에 기부하는 등 이 프로그램의 인기는 여전하다.
영국의 체계적인 세제 혜택
‘Cultural Gift Scheme’은 영국에서 대표적인 국가 차원의 기증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으로 작품을 기증하는 경우 개인은 작품 시가의 30%에 대해 소득세,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감면 금액이 납부해야 할 세금보다 많은 경우 5년동안 이월 감면이 가능하며, 기증 작품에 대한 상속세 또는 양도세도 면제된다. 한편 ‘Acceptance in Lieu’는 기증하는 작품의 시가만큼 상속세를 작품으로 대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상속세의 25%를 삭감해줘 작품을 판매할 때 얻는 금전적 이익보다 17% 이상 높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 프로그램으로 기증받은 작품은 연간 100일 이상 미술관에 전시되며 기증 작품의 이미지, 작품 정보, 기증처 및 기부자 정보, 세금 감면액 등을 모두 포함한 보고서를 대중에게 공개한다. 이 두 프로그램으로 영국 내 미술관은 2013년 4900만 파운드(약 810억 원), 2014년 4500만 파운드(약 730억 원) 상당의 작품을 기증받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Gift Aid’ 제도는 후원자의 기부금에 25%를 더한 금액을 기부금으로 인정하고, 그 금액만큼 세금을 감면해주는 제도다.
기부 천사로 불리는 엘리 브로드가 지난해 LA에 개관한 현대미술관 ‘더 브로드’의 내부
프랑스가 문화 강대국인 이유
프랑스는 자국의 문화유산이 해외로 유출되는 걸 막고 문화 강대국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2003년 메세나법을 개정한 이후 유럽 내에서 가장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개인이 기부하는 경우 기부금 또는 기증 작품 시가의 66%에 해당하는 금액에 대한 세금 기부자가 해당 연도에 납부해야 하는 세금의 20% 내에서 공제해주고, 기부하는 금액이 납부 세액보다 높은 경우 5년간 이월 공제도 가능하다. 이와 함께 후원자 역할을 하는 기업이 생존 작가의 작품을 구입했을 때, 5년간 판매하지 않고 공공장소에 전시하는 조건하에 기업 매출액의 0.5% 한도 내에서 작품 가격의 100%를 비용 처리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기업이 작품을 구입해 국공립 미술관에 기증하는 경우, 법인세의 50% 한도 내에서 작품 구입가의 90%를 세금 공제해주는 혜택도 마련했다.
좀 더 체계적인 세제 시스템이 필요한 한국
국내에선 미술 후원자를 위한 세제 혜택이나 시스템이 별도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기부에 대한 몇몇 세제 혜택이 있긴 하지만, 그것을 원하는 경우 어디서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일반적으로 국가기관에 기부하는 법정 기부의 경우 개인은 근로소득 금액 한도 내에서, 공익단체에 기부하는 지정 기부의 경우 근로소득의 30% 한도 내에서, 3000만 원 이하 기부금은 15%, 3000만 원 초과 기부금은 25%의 소득세를 공제받을 수 있고, 5년간 이월 공제가 가능하다. 또 개인이 작품을 공공 미술관에 유증하는 경우 상속세가 면제되며, 기증하는 작품에 대한 증여세 면제 혜택을 준다. 또 기업이나 개인 후원자가 미술관을 포함한 공인 문화재단 설립 시 부동산취득세와 부동산세를 면제하고, 기관 운영과 관련된 상속세와 증여세를 유예해주며, 운영비와 입장료 부가가치세 면제 등의 세제 혜택이 주어진다. 이는 최근 국내에서 많은 기업이 기업 미술관 설립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국내 후원자의 영향력은 문화 선진국에 비해 절대적으로 빈약한 편이다. 그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제도적 공백이 그 원인 중 하나지만, 후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은 탓도 크다. 따라서 이런 사회 현실을 고려할 때, 후원자의 기부와 공유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선 더 체계적이고 명확한 기부 프로그램 확립이 필요하다. 점점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미술계의 보다 빠른 성장을 원한다면 말이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글 채민진(퍼스펙트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