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목소리, 그의 이야기
긴 하루를 마무리하며 잠들 채비를 한다. 불을 끄고 누워 듣는, 볼륨을 높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나지막한 목소리.어둡고 조용한 방 안을 가득 채우는 편안한 이야기. 김목인과 나눈 대화는 그런 감성을 되살렸다.

주로 가사에 꽂힌다. 노랫말은 동시대를 가장 생생하게 담아내는 ‘문학’ 장르라는 믿음으로, 멜로디보다 가사 쓰는 사람을 더 궁금해한다. 싱어송라이터 김목인을 알게 된 것도 우연히 그의 노래 가사를 읽고 나서다. 마치 시나 수필을 읽듯이 그가 쓴 가사를 꺼내 읽곤 했지만, 왠지 노래를 듣지는 않았다. 아끼던 책이 영화화되면 마음 한구석에서 실망을 느낄 때가 있듯 노래가 내 상상과 다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가 만든 멜로디도, 만든 이의 목소리도 전부 하나로 연결됐다. 지금은 그의 노래를 눈으로 읽고 귀로도 듣는다.
충주에서 자란 김목인은 영화와 음악을 사랑한 소년이었다. 피아노를 배우긴 했지만 그 흔한 스쿨밴드 경험도 없이 친구들과 올드 록 음반을 구해 들은 게 전부였다. 오히려 영화와 영상에 대한 관심으로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다. “학교는 절반 정도 다니다 그만뒀어요. 음악을 좋아하고 많이 들었지만 직접 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못했죠. 다만 음반 녹음에 대한 호기심은 있었어요. 집에서 카메라 마이크로 녹음도 해봤어요. 처음엔 영화 일을 하고 싶어서 단편영화를 만들고 시나리오도 썼어요.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게 창작에 대한 욕구에서 비롯한 것 같아요. 이야기를 구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어요. 카바레사운드에서 일하며 처음 스튜디오에 가봤는데, 그때는 음악을 직접 만들고싶더라고요. 몇 년 후에 캐비넷 싱얼롱즈라는 밴드를 결성했죠.”
친구들과 만든 캐비넷 싱얼롱즈는 세월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각자 재즈, 디자인, 일렉트로닉 등 다양한 분야로 떠났고, 김목인은 현재 솔로로, 다양한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작년 11월엔 4년 만에 세 번째 정규 솔로 앨범 <콜라보 씨의 일일>을 발매했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을 구현한 음반이에요. 1960~1970년대는 대부분 연주자가 스튜디오에 다 같이 들어가 녹음했어요. 하지만 요즘은 더빙이 많아 모여서 연주할 일이 없어요. 저는 솔로 가수지만 이번엔 임시로 밴드를 구성해 마치 한 팀처럼 만들고 싶었어요. 저 말고도 다른 연주자 4명을 모았죠. 즉흥연주처럼 하고 싶은 대로 연주해보니 재미있더라고요.”
새로이 시도한 사운드도 흥미롭지만, 말 그대로 ‘콜라보 씨’의 하루를 담은 앨범 컨셉도 재미있다. ‘콜라보 씨의 외출’이라는 노래로 시작하는 앨범은 ‘지하보도’를 지나 ‘SNS’로 끝난다. “제가 워낙 책을 좋아하거든요. 소설에서는 꼭 큰 사건만 일어나진 않잖아요. 예를 들면 주인공이 무작정 집에서 나와 배회하는 이야기를 다루기도 하죠. 저도 이런 식으로 앨범 하나를 구성하고 싶었어요. 한 앨범에 10곡 이상이 들어가니 전체를 아우르는 형식이 필요했죠. 그래서 ‘콜라보 씨’라는 주인공을 설정했어요. 저는 보통 평소 사람들이 쓰는 말투에서 영감을 받아 가사를 써요. 논리적이거나 시적인 말로 표현하려면 어렵잖아요. 구어체만이 표현할 수 있는 절묘함을 담고 싶어요.”
김목인의 노래는 여러 편의 책 같다. 인터뷰 내내 편안함을 주던 그의 목소리와 말투로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이야기이자 콜라보 씨의 평범한 하루처럼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노래다. “저는 가사가 있는 음악을 주로 하니까 음악에 뚜렷한 이야기를 담고 싶어요. 가사에 신경을 많이 쓰는 만큼 스토리텔링이나 플롯도 중요하게 여겨요.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구성할지 끊임없이 고민하죠. 아무래도 가사를 쓰는 게 제 직업이니 일부러 소재를 찾진 않지만 시야에 담기는 것이 있어요. 사람들을 만날 때나 어딘가 방문했을 때 마주치는 상황을 자주 기록으로 남겨요. 그런 메모와 끄적임을 쌓다가 노래로 만들 만한 내용이 생기면 가사로 발전시키죠. 평소에 억지로 고민하지는 않아요. 아직 음악으로 쓰지 않은 것도 많고요.”
예전에는 대부분 앨범 단위로 음악을 들었다. 김목인의 음반처럼 전체적 컨셉이 있는 앨범도 많았다. 하지만 싱글이나 음원별로 듣는 데 익숙한 요즘은 하나의 내러티브로 이어지는 김목인의 앨범이 오히려 신선하다. 그의 앨범 수록곡 리스트는 마치 책의 목차를 읽는 것 같고, 제목도 담백하고 직접적이다. <콜라보 씨의 일일> 수록곡이자 ‘인터뷰’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노래는 제목이 ‘인터뷰’다. “가사 안에 있는 단어를 제목으로 쓰기도 해요. 이번에는 간단한 제목을 많이 사용했는데, 반응이 좋아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종종 있어요. 공연 세트리스트에 ‘인터뷰’라는 노래 제목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공연 중 인터뷰를 하는 줄 알아요. 또 ‘계약서’라는 노래를 보냈을 때는 담당자가 실제 계약서로 착각한 적도 있고요.”
이야기를 쓰는 능력이 탁월한 그가 노랫말만 쓰는 건 아니다. 에세이집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과 <22세기 사어 수집가>에는 수필가로 참여했다. 영미 문학에 조예가 깊어 번역가로도 활동하는 그는 지난 2월에 <강아지 책>, <고양이 책>, <리얼리티 샌드위치> 등 세 권의 번역서를 동시에 출간했다. 영문학이나 번역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그가 어떻게 번역가로서 발걸음을 내디뎠을까? 바로 비트 세대 문학가 잭 케루악의 팬이었기 때문이다. “<길 위에서>를 읽고 잭 케루악에게 빠졌죠. 책이 준 감동이 커서 직접 번역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전문인이 아닌 마니아로서 겁 없는 도전이었죠. 출판사에 연락했지만 이미 계약이 돼 있다는 대답만 돌아왔어요. 아쉬웠지만, 몇 년 후에 인연이 닿아 잭 케루악의 <다르마 행려>를 번역했습니다. 그 후 번역을 진행할수록 영미 문학에 더욱 빠져들어 깊이 공부하게 됐죠.”
번역은 원작자의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만큼이나 한국인의 감성에 맞게 이야기를 옮기는 것도 중요하다. 멜로디를 만드는 것도, 음악을 쓰는 것도, 책을 쓰고 번역하는 것도 결국은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김목인은 과거엔 악기를 직접 제작하고 싶었고, 미래엔 사운드 비중이 높은 음악도 해보고 싶다. “앨범을 만들 때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요. 완벽히 만족하지는 않지만, 앨범을 낼 때마다 경험이나 데이터를 쌓아가는 것 같아요. 제 능력치를 깨달아가죠. 창작자로서 아직 제가 충분한 작업을 남겼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노래를 쓰는 입장에서는 노래 하나하나에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좀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노래를 남기고 싶어요. ‘싱어송라이터’에 관한 보편적 이야기를 담은 책도 준비하고 있어요. 독자들에게 빨리 보여주고 싶습니다.”
Profile 싱어송라이터 김목인은 지금까지 3개의 정규 앨범을 냈다. 여러 권의 번역서를 출간했고, 10년 넘게 멤버로 활동 중인 ‘집시앤피쉬 오케스트라’ 처럼 한번 인연을 맺으면 오래 이어간다.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
사진 김잔듸 촬영 협조 벨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