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숨결, 도자기 하나
흙으로 빚어 불로 구워내는 도자기는 가마의 온도가 미세하게 달라져도 원하는 모양이 나오지 않고, 생명을 얻을 수 없다. 오랜 인고의 시간을 거쳐 세상에 나온 다양한 도자기의 멋을 감상해보자.
이기조, 달항아리
조선백자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곁에 두고 보고 싶다면 달항아리만 한 작품이 없다. 보통 높이가 40cm 이상으로 둥근 형태와 맑고 깨끗한 표면의 빛깔 덕에 백자 ‘달항아리’라 불린다. 도예가 이기조는 오랫동안 백자의 미학을 계승, 발전시켜온 작가로 올해 초 뉴욕 크리스티 옥션에 백자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3점을 출품해 모두 판매됐다. 그의 달항아리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은은한 달빛이 곁에 와 머무는 것 같다 .

민세원, Balloon
만지작만지작 자꾸만 만져보고 싶은 민세원 작가의 작품은 색과 형태 모두 아기자기하고 곱다 . 말랑말랑 신축성 있는 풍선과 이장(흙물)을 이용해 만든 도자는 부드럽고 자유로운 곡선이 특징이다. 풍선을 불어 석고를 빨리 주입하고, 석고가 굳기 전 풍선을 누르고 묶어 크고 작은 볼륨을 빚어낸다. 민세원 작가의 ‘벌룬’ 시리즈는 생활 도자와 작품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 일상에 파고들어 매일 손에 닿는 작품이 된다

이헌정, 달항아리와 발우
회색, 모래색, 부드러운 미색 등 여러 색이 섞여 자연스럽고 흙의 온기마저 느껴진다. 유약을 바르지 않고 말려 서걱거리는 표면의 질감도 작품의 멋스러움을 강조한다. 이헌정 작가의 달항아리는 찌그러지고 움푹 파여 기존 달항아리의 본질을 뒤집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도자기는 모던함을 잃지 않고 마치 오래 두고 본 친구처럼 매력적이다. 해외 유명 배우와 아티스트가 구입했다는 말은, 그러니까 그의 작품 앞에 굳이 덧붙일 필요 없는 칭찬이다.

이기조, 다기 세트
머릿속을 채운 복잡한 생각을 비우고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을 때 따뜻한 차 한잔이 절로 생각난다. 온화한 백색을 띠는 이기조의 다기 세트는 다도를 잘 모르는 이라도 옷매무새를 바로잡고, 자세를 고쳐 앉게 하는 기품을 지녔다. 도예가 낯설고 어려워 덜컥 작품부터 구입하기가 망설여진다면 이처럼 생활 속에 가까이 두고 쓸 수 있는 아이템으로 시작해보자. 백자 잔에 담긴 맑은 차 한잔으로 시름을 잊을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이도, 윤빛 컬렉션
수공예 그릇 전문인 이도의 인기 컬렉션 ‘윤빛’. 소박한 듯 단순한 디자인은 쉬이 질리지 않고 쓰면 쓸수록 진가를 발휘한다. 차분한 푸른빛이 감도는 도자 그릇은 정갈한 한 상 차림을 대접하고 싶을 때 꺼내면 좋겠다. 음식에 담긴 정성 어린 마음까지 표현해줄 그릇, 윤빛은 샐러드 접시와 뚜껑 물컵, 삼단합, 원볼과 다기 세트 등 실용적인 구성까지 마음에 쏙 든다.

김자인, 신을 수 없는 하이힐
유려하게 흐르는 곡선, 세련된 청회색이 감도는 김자인 작가의 하이힐은 눈으로 즐기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행여 발끝이라도 넣어보는 무모한 시도는 섬세한 아름다움을 산산이 깨뜨릴 수 있다. 흑유 작가로 유명한 김시영 작가의 장녀인 김자인 작가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젊은 도예가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사연이 숨어 있을 것 같은 하이힐, 신을 수 없어 더 탐난다.

이지은, Vase
담백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이지은 작가의 화병. 우유를 풀어놓은 듯 부드러운 파스텔 컬러와 매트하게 마무리한 표면이 대조를 이룬다. 심플한 선을 강조한 ‘베이스’ 시리즈는 꽃 없이 빈 화병으로도 존재감을 잃지 않는다. 벽에 걸 수 있는 화병 ‘월 베이스’는 말 그대로 작품을 거는 동시에 꽃을 담을 수 있는 장식적 기능도 해낸다. 담는 꽃에 따라 사시사철 다른 모습을 감상할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인 작품이다.
백진, Nylon
백진 작가의 작품 ‘나일론’은 도자기가 어디까지 변형될 수 있는지, 그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멀리서 보면 바람에 날릴 듯 가벼운 패브릭을 잘라 붙인 것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단단하게 굳은 도자기라는 걸 눈치챌 수 있다. 전통 기법에 현대적 감성을 더해 백자의 전통을 이어가는 젊은 작가로 인정받고 있는 백진. 그녀는 수많은 도자 조각을 하나하나 엮어 만든 초대형 설치 작품으로 여의도 콘래드 호텔을 비롯해 다양한 공간에 백자의 멋스러움을 전하고 있다.
에디터 고현경
사진 김경수 세트 스타일링 문지윤(뷰로 드 끌로디아) 작품 협찬 갤러리 이소, 박여숙 화랑, 이도, Min&N Ceramic 스튜디오, www.jinbaek.com ,www.kimjain.com,www.clayworks.kr, 근대화상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