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히틀러와 하우스 데어 쿤스트

ARTNOW

나치 시절의 건축물인 뮌헨의 현대미술관 ‘하우스 데어 쿤스트’가 이슈다. 영국의 스타 건축가가 이 건물을 예의 나치 스타일 건축으로 새롭게 손보려고 하는 문제 때문이다.

리모델링 도안을 두고 논란에 휩싸인 나치 시절 미술관 하우스 데어 쿤스트.

독일 뮌헨에 있는 주립 현대미술관 ‘하우스 데어 쿤스트(Haus der Kunst)’는 ‘예술의 집’을 뜻한다. 그 기원은 1853〜1854년에 설립한 ‘글라스팔라스트(Glaspalast)’라는 식물원이며, 이 건물은 1931년 화재로 소실되기 전까지 70여 년 동안 뮌헨을 중심으로 활동한 순수 미술가들의 주요 전시관으로 쓰였다. 하지만 이 건물은 1933년 이후 새로운 역사를 맞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바로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전 건축가가 되었을 겁니다.” 지독한 ‘건축 마니아’였던 아돌프 히틀러가 한 연설에서 한 말이다. 그는 1933년 정권을 잡자마자 건축가 파울 루트비히 트로스트(Paul Ludwig Troost)를 전속 건축 고문으로 두고, 옛 글라스팔라스트 자리에 하우스 데어 쿤스트를 세웠다. 하우스 데어 쿤스트는 뮌헨에 지은 나치의 첫 건축물이었고, 히틀러는 해마다 이곳에서 기획전 <위대한 독일 미술전(Grossen Deutschen Kunstausstellung)>을 열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이가 알다시피 그 시절 히틀러는 아방가르드 예술을 강하게 탄압했다. 미래파와 입체파, 다다, 청기사파 등의 작품을 비독일적이고 병적인 ‘더러운 예술’로 치부했다. 그는 독일인에게 제대로 된 미술을 교육한다는 이유로, 또 미술계에서 모든 ‘퇴폐’를 청산하겠다는 일념으로 아방가르드 작품을 하우스 데어 쿤스트에 모아 <퇴폐 미술전(Entartete Kunst)>이란 전시를 개최하기도 했다. 한데 그 전시는 아직도 미술계에 회자된다. 고흐와 고갱, 피카소, 칸딘스키, 샤갈, 렘브란트 같은 작가의 작품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으니 말이다. 이는 지금도 ‘다시는 한곳에 모으지 못할 작품 전시’로 통한다.

1 내년 1월까지 하우스 데어 쿤스트에선 영국 작가 프랭크 볼링(Frank Bowling)의 전시가 열린다.   2 영국 출신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

그런데 최근 독일을 비롯한 유럽 예술인의 아픈 역사가 서린 이 하우스 데어 쿤스트에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지난해에 노후화로 몸살을 앓던 이 건물의 리모델링 건축가로 영국의 스타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가 선정되었는데, 그가 예의 나치 스타일로 건물을 손보겠다고 발표한 것.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사실 독일 정부는 그간 하우스 데어 쿤스트가 나치의 선정적 건축물로서 뮌헨 시내에서 두드러지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자국의 ‘창피한 역사’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도록 하우스 데어 쿤스트의 전면에 설치돼 있던 175m 너비의 위압적인 계단을 없앴고, 커다란 보리수를 여럿 심어 나치의 느낌을 지웠다. 그 결과 이 건물은 그간 풍성한 자연에 가려진 채 뮌헨의 중심가에 그리 눈에 띄지 않는 모습으로 자리해왔다.
하지만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생각은 달랐다. 그의 리모델링 도안엔 나치 정권의 위압적 절대 권력의 상징인 미술관 입구의 거대한 계단이 다시 등장했다. 또 건물 앞 주차장을 없애고, 그 인근에 심은 나무 또한 모두 베어버린다는 계획. 이는 히틀러가 거대한 몸집으로 완공한 하우스 데어 쿤스트를 통해 ‘상대를 압박하고, 마음대로 조종하겠다’며 무언의 지배력을 과시한 것과 거의 흡사하다는 지적이다. 덧붙여 독일인에겐 ‘1937년 히틀러의 첫 나치 이데올로기 건축물이 되살아나는 악몽의 재현’과도 같은 감흥을 떠올리게 한다고.
그러나 이런 논란에 대해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이렇게 말한다. “독일인은 지나간 역사에 대해 더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2년이 지난 현재 우리는 하우스 데어 쿤스트를 나치의 건축물이 아닌, 순수한 예술 건축물로 바라봐야 할 시기가 되었다”고. 덧붙여 “그런 이유로 미술관 전경을 가리고 있는 나무를 없애고, 미술관의 모습을 당당히 드러내는 게 별문제가 없다”고 말이다. 그의 지적처럼 현재 독일인은 역사에 대한 책임감과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야 하는 시대적 요구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3 나치 시절의 사건 기록을 소장하고 있는 뉘른베르크의 나치기록보관소.   4 1937년 하우스 데어 쿤스트에서 열린 <퇴폐 미술전> 관련 사진 자료.

이 뜨거운 이슈를 두고, 현재 뮌헨에선 유대인 단체를 비롯한 여러 시민단체가 항의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바이에른 TV는 지난해에 이미 하우스 데어 쿤스트의 리모델링에 관한 방송을 방영하기도 했다. 이 방송에서 뮌헨의 유대인 문화단체 이사장 샤를로테 크노블로흐(Charlotte Knobloch)는 “치퍼필드의 리모델링 도안에서 하우스 데어 쿤스트는 여전히 히틀러의 역사적 첫 나치 건축물이다. 이 거대하고 위압적인 나치 건축물이 무엇을 위해, 왜 뮌헨의 중심부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가”라고 반론했고, 뮌헨현대사연구소의 역사학자 마그누스 브레히트켄(Magnus Brechtken)은 “하우스 데어 쿤스트를 예의 나치 이데올로기로 리모델링하는 건 마치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Mein Kampf)>을 비평 하나 달지 않고 현재의 서점에서 원본 그대로 파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반대쪽 의견도 팽팽하다. 하우스 데어 쿤스트의 관장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는 “이제 뮌헨은 오래전 나치의 중심부였다는 역사적 이미지를 벗고 현대적이고 국제적인 도시로 발돋움했으며, 하우스 데어 쿤스트 또한 그간 세계적 예술 작품을 전시한 공간답게 더는 ’나치 건축물’이 아닌 ‘현대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후에도 여러 매체가 앞다퉈 찬반론을 다루었고, 이 문제는 얼마 전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리모델링 도안이 ‘뮌헨의 상징적 나치 건축물의 재탄생’으로 인식돼 일부 내부 리모델링은 인정, 외부 리모델링은 채택되지 않으면서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이르렀다.
독일에서 세 번째로 크고 매력적인 도시 뮌헨. 하지만 현재 뮌헨은 아돌프 히틀러와 얽혀 있는 역사적 오명으로, 미술사적으로도 유서 깊은 하우스 데어 쿤스트의 운명마저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앞으로 이 역사적 건축물이 어떤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할지 기대된다. 부디 ‘독일 뮌헨의 자랑스러운 새 얼굴’로 자리매김하길 바랄 뿐이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김은아(독일 RTL 아트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