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의 시간을 가늠하는 방법
인간이 100세를 넘기기 어려운 것처럼 가게 하나가 100년을 넘기기란 쉽지 않다. 한데 지금 소개하는 호텔들은 100년은 물론, 1000년을 훌쩍 넘은 것도 있다. 이 정도면 박물관이라 불러도 될 수준. 한 우물 경영과 신뢰로 오랫동안 생명력을 이어온 세계의 오래된 호텔들을 소개한다
일본의 3대 명산으로 꼽히는 하쿠 산의 자연과 어우러진 호시 료칸의 노천 온천
옛 에도 시대 목조양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료칸 입구
수백 년 된 정원이 내다보이는 다실
1300여 년을 이어온 전통
_호시 료칸(Hoshi Ryokan)
호시 료칸은 지금으로부터 1296년 전인 718년에 창업했다. 신라에선 선덕여왕이 똑똑한 관리들을 모아 물시계를 만들라 주문하고, 유럽에선 북아프리카 유목민이던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지금의 스페인)를 침입해 수년간 그곳 사람들을 핍박하던 그 시기다. 호시 료칸은 그 유래부터 기막히다. 나라 시대에 다이초(泰澄)라는 대사가 한 나무꾼의 안내를 받고 하쿠산(지금의 호시 료칸이 들어선 산)에 올라 도를 닦다 부처님의 계시로 땅을 팠는데, 때마침 거기서 뜨끈한 온천수가 뿜어져 나왔고, 대사가 자신을 산으로 안내해준 나무꾼의 아들 가료(雅亮)에게 그곳을 지키라고 한 것이 호시 료칸의 시초라고 한다. 투자 대비 수익을 참작하면 가히 ‘봉이 김선달’의 할아버지급이라 할 수 있는 이 이야기는 실제로 호시 료칸의 홈페이지에서도 소개한 내용이다.
현재 46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호시 료칸은 에도 시대(1603~1867년) 초기의 건축양식을 유지하고 있다. 8세기에 지은 료칸이 17세기 건축양식을 보이는 건 1000여 년 동안 화재와 홍수 등으로 건물이 상당 부분 소실된 탓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료칸 곳곳엔 고풍스러운 전통미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특히 료칸 건물을 빙 둘러싼 정원은 이곳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400년 된 적송과 바위가 건재하고 집채만 한 수목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정원은 16세기의 이름난 조경가 고보리 엔슈가 설계한 것이다. 호시 료칸이 소재한 이시카와 현의 고마쓰 온천 주변에 현재 운영 중인 10여 개의 료칸 대부분이 특징 없는 현 대식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호시 료칸은 자연과 건축이 하나 된 일본의 전통 목조 양식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곳이 전통만 섬기는 영세한 구닥다리 숙박업소란 말은 아니다. 일반 료칸이 보통 10여 개의 객실을 갖춘 반면 이곳의 객실은 무려 80여 개나 된다. 한 해에만 4만 명의 방문객이 드나든다. 이 정도면 웬만한 호텔과 비슷한 수준이다.
호시 료칸의 장수 비결 핵심은 바로 가족 경영이다. 호시 료칸같이 일본의 오래된 작은 기업은 대개 장자 세습을 원칙으로 한다. 아들이 없는 경우 사위가 대신하기도 한다. 이런 일본 가족 기업 특유의 데릴사위 제도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기업 경영이 오랫동안 유지되게 한다. 이들의 데릴사위 제도는 단순히 사위가 처가에 들어가 사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성(姓)과 호적까지 바꿔 완전히 처가 쪽 사람이 되는 걸 뜻한다. 물론 사위라고해서 무조건 가능한 것도 아니다. 데릴사위로 처가에 들어온 남자는 가업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 참고로, 호시 료칸의 경우 경영권을 물려받는 즉시 창업자의 이름도 물려받게 된다. 호시 료칸의 오너들이 지난 1300여 년 동안 ‘호시 젠고로’라는 이름을 쓴 원인이 그것이다. 젠고로라는 이름은 1300여 년 전 다이초 대사를 하쿠 산으로 안내한 나무꾼의 이름 겐고로에서 따왔다. 당시 다이초 대사가 온천을 지키라고 지시한 겐고로의 아들 가료가 1대 젠고로인 셈이다. 현재 호시 료칸은 46대 젠고로가 가업을 잇고 있다. 일본의 정·관계 인사는 물론 문학가, 순례자 등도 자주 찾는 명소인 호시 료칸은 일본이 일본의 3대 명산으로 꼽히는 하쿠 산의 자랑하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WEBwww.ho-shi.co.jp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호텔인 호텔 델 코로나도
1886년 호텔 공사 현장을 그린 그림
서커스 텐트를 연상시키는 호텔 델 코로나도의 지붕
1920년 이 호텔에 방문한 찰리 채플린
미국 서부 리조트의 영원한 자부심
_호텔 델 코로나도(Hotel del Coronado)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콜로라도 비치에 있는 호텔 델 코로나도는 나무로만 만든,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호텔이다. 1888년 개관 당시엔 세계에서 가장 큰 리조트였고, 미국 서부의 부유함을 과시하는 상징이자 자부심이었다. 필라멘트 전구를 개발해 전기 회사를 차리고 전기 공급에 앞장선 토머스 에디슨이 세계 최초로 전기를 넣은 곳이자 동화 작가 프랭크 바움이 <오즈의 마법사>를 집필한 호텔,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영화배우 찰리 채플린과 메를린 먼로가 휴가차 방문한 호텔, 역대 미국 대통령인 해리슨과 루스벨트, 레이건, 닉슨, 지미 카터 등이 캘리포니아에 오면 마치 제 집 드나들듯 방문한 호텔이 바로 이곳이다. 한 가지 더 있다. 1892년 11월 24일 체크인하고 아직 체크아웃하지 않았다는 이 호텔의 유명한 유령 소녀 케이트 모건말이다(소녀 유령에 대한 이야기는 한때 호텔 델 코로나도의 공식 웹사이트에서도 언급됐다). 어찌 됐든 이곳은 뉴욕의 플라자 호텔같이 오랜 역사를 자랑하던 호텔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쓸쓸히 퇴장(플라자 호텔은 2012년 인도의 부자에게 팔렸다)하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며 캘리포니아 해변가를 지키고 있다. 1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화재나 자연재해 한 번 겪지 않고 무던히 나이를 먹은 것은 물론, 1977년엔 이 호텔의 서커스 텐트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지붕 건축양식이 ‘해변 리조트의 멋진 예’로 지정돼 미국의 국립 역사 기념물이 됐다. 호텔 델 코로나도의 장수 비결은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호텔의 보수와 재정비에 있다. 이들은 호텔의 낡은 시설을 재정비하는 데 결코 돈을 아끼지 않았다. 1960년에 이미 200만 달러(약 20억 원)를 들여 당시 300여 개 남짓한 전 객실을 리모델링했으며, 1963년엔 무려 1억5000만 달러(약 1500억 원)를 들여 기존의 객실 수를 2배로 늘렸다(현재 이 호텔은 679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다). 또한 최근에도 2년에 걸친 리모델링으로 내부를 새롭게 단장했다. 1880년대부터 샌디에이고 역사의 일부분이던 호텔 델 코로나도는 캘리포니아, 아니 미국의 현재진행형 역사다.
WEBwww.hoteldel.com
유유히 흐르는 라인 강과 어우러진 그랜드 호텔 레 트루아 루아의 뒷모습
1844년 당시의 호텔을 그린 그림
1920년대의 아르데코 스타일로 꾸며진 객실
클래식한 화려함이 돋보이는 호텔 내부
스위스 호텔 역사의 산증인
_그랜드 호텔 레 트루아 루아(Grand Hotel les Trois Rois)
스위스는 예부터 관광 대국이었다. 융프라우 산과 루체른 호수, 라마트 강 같은 천혜의 자연이 늘 세계의 관광객을 끌어 모았기 때문이다. 이에 자연스레 호텔도 발달했다. 호텔들은 스위스전역에 분포돼 각각 차별화된 서비스로 규모를 키워갔다. 그중 예술의 도시 바젤엔 그랜드 호텔 레 트루아 루아가 있었다. 이곳은 지금으로부터 330여 년 전인 1681년 개관했다. 건축 당시부터 큰돈을 들여 휘황찬란했고, 이후엔 나폴레옹이 1798년 이집트를 침략하기 전 잠시 들러 호젓하게 점심식사를 즐긴 곳으로(당시 호텔 직원은 나폴레옹에게 서로 요리를 나르려고 야단을 떨었다고 한다), 피카소가 1937년 희대의 명작 ‘게르니카’를 완성하고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장기 투숙한 곳으로 알려지며 오랫동안 바젤 최고의 호텔로 자리했다. 물론 지금도 이 호텔은 최고다. 101개에 달하는 객실 전체를 각기 다른 컨셉으로 꾸민(큰 틀은 1920년대의 아르데코 스타일) 바젤 유일의 5성급 부티크 호텔인 데다, 바젤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객실 테라스 아래로 중부 유럽의 자존심인 라인 강이 시원스럽게 흘러 최적의 전망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술 더 떠 호텔 내부엔 미슐랭 2스타에 빛나는 지중해 레스토랑 ‘슈발 블랑(Cheval Blanc)’과 2012년 유럽의 권위 있는 주류지 <믹솔로지>에서 ‘올해의 호텔 바’로 선정한 ‘바 레 트루아 루아(Bar el s Trois Rois)’도 함께 자리한다. 호텔 개관 150여 년 만인 1844년, 노후화된 호텔을 손보기 위해 이곳을 찾은 스위스 최고의 건축가 아마데우스 메리안(Amadeus Merian)은 당시 라인 강 저편에서 석양에 이글거리는 그랜드 호텔 레 트루아 루아를 보고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이 호텔이 지금과 같이 과거의 화려한 역사와 현대의 고급 시설이 어우러진 매력을 뿜게 된 데엔 그의 역할이 컸다. 그랜드 호텔 레 트루아 루아의 장수 비결은 뭐니 뭐니 해도 지독한 끈질김과 서비스 정신이다. 세계적 호텔 브랜드들이 라인 강을 무대로 각각 크고 화려한 호텔을 개관하는 중에도 레 트루아 루아는 역사적 사명감을 안고 바젤 최고(最古)의 호텔 타이틀을 지켜냈고,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실행’하는 ‘기본’을 바탕으로 이들은 고객 만족 서비스를 실현해왔다. 오래된 것이 전부 좋다는 건 아니지만, 수백 년간 역사와 전통을 지켜온 이들의 노력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WEBwww.lestroisrois.com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