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상하이’의 지난 10년
상하이의 미술 신은 지금 왜 쇠락의 징조를 보이는 걸까?

〈10 YEARS, ShanghART at West Bund 2015-2024〉전 설치 전경. 사진 제공 샹아트 갤러리.
상하이의 아트 신이 가장 뜨거웠던 2017년 무렵, 아시아 미술계에는 ‘3월 홍콩, 11월 상하이’라는 공식이 존재했다. 정부 도시계획에 따라 공장 지대였던 황푸강 변 룽텅대로에 웨스트번드 예술특구를 조성, 이곳에 많은 메이저급 미술관과 갤러리, 비영리 기관이 모여들며 한때 상하이는 중화권을 넘어 아시아 미술의 중심 자리를 노릴 만큼 급성장했다.
한편, 미술품 거래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중국 본토와 달리 일찍부터 무관세 정책을 펴며 성장한 홍콩 미술 시장의 위상을 넘볼 만큼 기대를 모은 11월 상하이의 현재 상황은 그리 밝지만은 않아 보인다. 여러 내적 요인과 함께, 2022년부터 서울에서 아트 바젤과 경쟁하는 글로벌 아트 페어 ‘프리즈’가 ‘키아프’와 공동 개최하며 ‘9월 서울’에 ‘아시아 Top 2’ 자리를 내줘야 하는 ‘위기’에 처했다.

2024년 6월 상하이 예술특구 전경. 사진 제공 조혜정.

롱 미술관 웨스트번드 외관. 사진 제공 롱 미술관.
부흥에서 쇠락의 징조까지, 불과 10년 사이에 상하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웨스트번드 지역에 롱 미술관과 유즈 미술관이 문을 연 2014년 소수 정예의 ‘높은 문턱’을 차별화 전략으로 내세운 웨스트번드 아트 & 디자인 페어가 출범, 한 해 먼저 론칭한 상하이 베이스의 아트 페어 ‘ART021’과 선의의 경쟁을 하며 동반 성장했다. 같은 해에 중국에서 가장 먼저 동시대 미술을 다룬 샹아트 갤러리, 저명한 컬렉터 차오즈빙(Qiao Zhibing)이 설립한 차오 스페이스 같은 상업 갤러리, 상하이 포토그래피 센터(SCoP), 신세계예술기금(New Century Art Foundation) 등 비영리 기관과 작가 스튜디오가 웨스트번드에 모여들며 ‘아트 로드(Art Road)’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상하이 아트 신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2017년 무렵에는 쿠사마 야요이와 협업하는 일본의 오타 파인 아츠, 2005년부터 중국에 자리 잡은 우리나라 아라리오갤러리를 포함해 많은 갤러리가 웨스트번드에 입성했다. 한편, 같은 시기 베이징 798 예술특구와 주변의 갤러리, 작가 스튜디오가 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 정책 변화로 이주 및 철거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며, 대안지로서 상하이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더불어 2019년부터 웨스트번드 미술관과 퐁피두 센터가 5년간 협약을 맺고 선보인 ‘퐁피두 센터×웨스트번드 미술관 프로젝트(Centre Pompidou × West Bund Museum Project)’가 상하이 아트 신의 지형을 한 번 더 요동치게 했다.
하지만 누구도 비껴갈 수 없던 코로나19 팬데믹 대혼란 속에 쇠락의 징조가 나타났다. 정부가 임대료 감면 조치를 실시하며 웨스트번드에 입주한 예술 기관에 혜택을 주도록 독려했음에도, 소규모 기관들은 직격탄을 피하지 못하고 철거를 결정하거나 임대료가 저렴한 지역으로 이사했다. 2020년에는 본래 ‘홍콩 H 퀸스(H Queen’s)’처럼 갤러리 빌딩으로 조성하고자 계획한 웨스트번드 아트 타워(Art Tower)가 중국의 거대 기업 ‘알리바바’에 매각되며 예술특구의 불투명한 앞날을 예측할 수 있었다.
결국 2023년에는 웨스트번드를 대표하던 유즈 미술관이 임대료 문제로 상하이 근교의 인공 수향 마을 판룽 지역으로 둥지를 옮긴 데 이어 상하이 포토그래피 센터도 문을 닫았고, 올해 아라리오갤러리와 샹아트 갤러리 등 상업 화랑이 퇴거 혹은 철거될 운명에 처했다. 이를 대신해 알리바바를 시작으로 웨스트번드 지역에는 텐센트, 샤오미, 마이크로소프트 등 인공지능과 온라인, 미디어 관련 기업이 입주할 예정이라고 한다.

유즈 미술관 새 공간 전경. 사진 제공 유즈 미술관.

유즈 미술관 새 공간 전경. 사진 제공 유즈 미술관.
불행 중 다행인 걸까. 웨스트번드 지역에 가장 먼저 자리 잡은 미술관 중 한 곳인 롱 미술관과 랜드마크 격인 웨스트번드 미술관, 오일 탱크를 개조해 만든 탱크 상하이 아트 센터(Tank Shanghai Art Center) 등 일부 기관은 비록 먼 미래는 예측할 수 없지만, 올 상반기 거대한 철거 및 이주 흐름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은 베이징, 서울, 런던, 뉴욕 등 대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현재 상하이의 상황은 이런 도시와는 조금 다르다. 예술 기관이 웨스트번드를 떠나는 것은 물론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자발적’ 퇴거를 결정한 곳도 있지만, 더 많은 경우 상하이 정부가 도시계획을 변경하며 퇴거 혹은 철거를 ‘통보’한 까닭에 협상의 여지 없이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런 통보를 받은 기관은 짧게는 3개월 안에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했기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6월 1일, 갑작스러운 철거가 결정된 샹아트 갤러리 웨스트번드 공간은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선보인 전시를 회고하는 ‘게릴라’ 전시 〈10 YEARS, ShanghART at West Bund 2015-2024〉를 열흘간 개최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상하이는 여전히 화려한 야경을 자랑하며 경제 발전과 풍요로움을 뽐내고 있다. 롱 미술관, 웨스트번드 미술관 같은 랜드마크 격 기관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뉴욕에 버금가는 현대미술 중심지를 노리던 야심은 실현하기 어려워 보인다. 앞서 언급한 유즈 미술관을 시작으로 여러 예술 기관이 발 빠르게 상하이 중심지인 와이탄과 과거의 예술구인 M50에 새로운 둥지를 마련하고 있지만, 여러 지역으로 분산된 후에도 이전의 영향력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오는 11월 초, 상하이 아트 위크 기간에 개최하는 웨스트번드 아트 & 디자인 페어의 성패 여부가 상하이 아트 신의 앞날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되지 않을까.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글 조혜정(예술학자, 성신여자대학교 조소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