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F/W Collection Highlight
한국은 이제 막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한 봄이지만 패션 4대 도시로 꼽히는 뉴욕, 밀라노, 런던, 파리에서는 2016년 F/W 컬렉션으로 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화려한 축제 시즌처럼 새로운 트렌드와 이슈가 쏟아지는 패션 위크 기간, 2016년 F/W 컬렉션 쇼 현장에서 포착한 명장면만 모아 소개한다. 한발 먼저 만나는 2016년 F/W 컬렉션 하이라이트.
New York



20세기 뉴욕 워싱턴 스퀘어 파크를 그대로 재현한 톰 브라운 컬렉션 현장. 앙상한 나뭇가지, 쓸쓸하게 세워진 시계탑, 건초가 흩어져있는 이 작은 공원은 한파가 몰아닥친 공원의 겨울 풍경을 연상시킨다. 톰 브라운은 1900년대 워싱턴 스퀘어 파크에서 만날 수 있을 법한 클래식한 의상들을 대거 선보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1950년대부터 르네상스기를 맞은 미국의 여유롭고 풍부한 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의상이었다. 화려하면서도 실용성을 추구한 드레스와 남성복에서 영감받은 재킷, 팬츠, 피케 셔츠 등이 눈길을 끄는 가운데 톰 브라운만의 초현실주의적인 레이어링 기법으로 베이직 아이템의 화려한 변주를 엿볼 수 있었다. 액세서리도 재미있게 연출했는데 남성을 상징하는 넥타이 안에 와이어를 넣어 하늘로 솟구치는 모양의 헤어피스, 네크리스 등으로 재미를 줬다.



뉴욕 컬렉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마크 제이콥스의 컬렉션에선 ‘다크 프린세스(Dark Princess)’를 만날 수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블랙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아이라인으로 눈에 잔뜩 힘을 준 모델들은 고딕 시대 성안에 갇힌 공주 또는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떠도는 유령처럼 어둡고 침울한 표정으로 런웨이를 걸어 나왔다. 블랙, 그레이, 톤 다운된 바이올렛, 네이비 컬러가 주를 이룬 가운데 풍성한 어깨라인이 돋보이는 벨벳 블라우스, 화려한 자수 장식이 들어간 풀 스커트, 볼륨감이 느껴지는 퍼 코트, 까마귀 날개가 떠오르는 깃털 장식을 단 패딩 재킷이 연이어 등장했다. 고풍스러운 고딕풍 의상에 마크 제이콥스만의 반항적인 요소를 섞어 모던하면서도 위트 넘치는 의상들로 패션 느와르를 표현했다는 평. 팝가수 레이디 가가도 다크 프린세스로 변신했는데 가슴을 덮는 리본 장식이 달린 블라우스와 오버사이즈 코트, 통 굽 레이스업 부츠를 입고 고스룩의 진수를 보여줬다. 마크 제이콥스는 이번 컬렉션에서 배경 음악을 따로 두지 않고 실로폰 소리만으로 쇼 장을 가득 채워 분위기를 고조 시켰다.
London



패션과 음악의 공존을 가장 멋지게 보여주는 브랜드 버버리. 버버리는 이번 시즌에도 컬렉션을 위해 라이징 뮤지션을 런웨이에 세웠다. 라이브 공연으로 쇼 BGM을 채운 뮤지션은 1994년생 싱어송라이터 제이크 버그로 그는 어린 나이지만 천재적인 기타 연주 솜씨와 매력적인 보이스를 어필하며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 쇼에선 그의 대표곡 ‘Country Song’과 신곡 ‘On My One’을 포함해 총 5곡을 라이브로 선보였다. 제이크 버그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쇼장 전체를 감싸는 가운데 버버리는 영국의 아티스트, 뮤지션, 역사에서 영감을 받은 다양한 룩을 소개했다. 사토리얼 디테일이 어우러진 클래식한 디자인을 중심으로 타탄체크 패턴의 코트, 밀리터리 디자인을 연상시키는 필드 재킷, 테일러드 라펠에 수작업으로 프린지 디테일을 가미한 코트 등이 메인 아이템으로 주목 받았다.


영국을 대표하는 또 다른 브랜드 멀버리의 선전도 눈에 띈다. 이번 컬렉션은 특히 멀버리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낙점된 조니 코카의 데뷔 컬렉션으로 기대를 모았다. 히트 메이커로 꼽히는 조니 코카는 셀린느의 트라페즈 백을 만든 주인공으로 혁신적인 디자인과 발상으로 트렌드를 선도해온 인물. 그는 첫 멀버리 컬렉션의 모티브를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가져왔다. 중세시대에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의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모던한 멀버리의 부활을 알렸다. 블랙, 네이비를 중심으로 카키 그린, 애시트 옐로, 핑크 버건디 컬러와 화려한 장미 패턴이 어우러진 화려한 의상으로 쇼를 장식했다. 이번 쇼는 1400년대에 지은 고대 건축물 길드홀에서 개최했는데, 멀버리의 클래식한 매력을 잃지 않으면서 젊음과 변화의 에너지를 잘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
Milano


밀라노 컬렉션의 핫이슈 아이콘을 꼽으라면 단연 펜디의 피로 짱과 벅 군이 아닐까. 점잖은 매력과 위트가 공존하는 브랜드 펜디는 놀이동산에서나 볼 법한 캐릭터 인형 피로 짱과 벅 군을 펜디 쇼에 초대했다. 2m에 달하는 키를 자랑하는 이들 주인공은 북슬북슬 털이 난 펜디의 대표 캐릭터. 사랑스러운 분홍빛 소녀 피로 짱과 파란색 볏으로 화려함을 뽐내는 벅 군은 일본 대중문화 키구루미(탈인형)에서 착안해 만들었다. 펜디의 마스코트는 밀라노 컬렉션에 등장, 직접 프런트 로에 앉아 쇼를 관람하고 밀라노의 패션 스트리트를 거닐었다. 펜디의 수장 칼 라거펠트와 펜디 쇼를 찾은 수많은 셀레브러티를 제치고 이날 가장 많은 플래시 세례를 받은 피로 짱과 벅 군 덕분에 한층 유쾌한 분위기가 이어졌다는 후문.



펜디 쇼에서 두 마스코트가 밀라노를 뜨겁게 달궜다면, 모스키노의 이색적인 드레스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를 자랑했다. 제러미 스콧은 이번 쇼에서 화려함의 극치를 달린 15세기 르네상스 시대를 퇴폐미와 결합해 재현했다. 풍성한 실크 드레스, 화려한 액세서리, 크리스털이 박힌 리본 장식은 드레스의 한쪽을 찢거나 남성적인 가죽 소재를 더해 반항적인 여전사 스타일로 재탄생했다. 클래식한 롱 드레스는 면 티셔츠, 데님 셔츠 등 현대의 캐주얼한 아이템과 만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는데 모자, 부츠에는 거친 느낌의 캘리그래피로 ‘Warrior’ 등을 새겨 넣었다. 쇼의 말미에 등장한 불에 그을린 듯한 디테일의 의상도 눈길을 끌었는데 블랙 슈트, 화이트 블라우스, 드레스 모두 불에 검게 그을린 자국이 있고 여기저기 구멍이 난 모습으로 런웨이에 올랐다. 이 모티브는 화려한 르네상스 시대의 뒤안길에서 만날 수 있는 폐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피날레를 장식한 블랙 롱 드레스의 끝부분 역시 불에 탄 것처럼 거칠게 마무리했고, 허리에 크리스털 벨트를 매치한 뒤 가로 폭만해도 1m에 달하는 샹들리에를 달고 나와 진풍경을 연출했다.
Paris



베트멍의 헤드 디자이너로 활약한 뎀나 즈바살리아의 데뷔 쇼로 이슈가 된 발렌시아가 컬렉션. 패션계에서 급부상한 베트멍의 헤드 디자이너인 뎀나 즈바살리아가 발렌시아가의 아트 디렉터로서 어떤 컬렉션을 보여줄지 많은 이의 관심이 쏠렸다. 그 결과는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발렌시아가가 추구하는 혁신, 새로운 도전을 잘 보여줬다는 평. 뎀나 즈바살리아를 대표하는 특유의 오버사이즈 피트는 드레스처럼 치렁치렁한 볼륨의 트렌치코트와 이불을 덮은 것처럼 몸을 감싼 모직 코트로 탄생했다. 여기에 어깨선을 강조해 브이넥으로 여며 입는 아우터, 입체 패턴으로 허리를 볼록하게 부풀린 재킷까지, 여성의 실루엣을 진보적 디자인으로 보여주고자 노력한 발렌시아가의 오리진이 그대로 묻어나는 컬렉션이었다.


발렌시아가처럼 브랜드 아카이브를 되짚어 본 또다른 쇼도 있었다. 가브리엘 샤넬이 컬렉션을 발표한 깡봉가 31번지의 살롱을 그대로 재현한 샤넬 쇼가 바로 그 주인공.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이번 쇼에서 칼 라거펠트는 그동안 런웨이가 너무 멀어서 옷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게스트의 의견을 반영해 모두 프런트 로에 앉을 수 있도록 좌석을 배치했다. 도서관 의자처럼 일렬종대로 깔끔하게 정리한 의자 사이로 모델들이 지나가 누구나 프론트 로에서 샤넬의 2016 F/W 시즌 의상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날 샤넬 쇼 리뷰를 위한 공식 해시태그도 #FrontRowOnly가 선택됐는데 모델들은 종대로 이어진 런웨이를 거닐며 우아한 걸음걸이를 뽐냈다. 이번 시즌 의상은 샤넬의 근본적인 요소에 집중해 오버 스트릭 코트(over strict coat), 남성용 리퍼 재킷, 긴 진주 목걸이 등 상징적 요소를 활용해 브랜드 아카이브를 강조했다.
에디터 | 이아현 (fcover@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