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F/W 오트 쿠튀르 리뷰
2025년 7월 7일부터 10일까지 단 4일이라는 짧은 일정 속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장면이 이어진 2025 F/W 파리 오트 쿠튀르 위크.

Schiaparelli
2025 F/W 파리 오트 쿠튀르 위크는 단지 화려함이나 장인의 손길을 선보이는 무대에 그치지 않았다. 이번 시즌은 패션사의 중대한 분기점이자 각 하우스의 유산과 변화가 교차하는 전환의 현장이었다. 디자이너들은 압도적 스펙터클보다는 내면의 목소리와 본질적 미학에 귀 기울이며, 쿠튀르의 존재 이유를 묻고 또 증명했다. 완벽하게 봉제된 한 벌의 옷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감각과 태도에 대한 섬세한 응답이었고, 기억과 상징, 조형과 정서를 현재 언어로 번역하며 ‘입을 수 있는 예술’로서 쿠튀르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Maison Margiela
유산의 재조립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은 과거를 복제하거나 동경하는 대신 동시대적 감각으로 과거를 다시 해석하는 데 집중했다. 메종 마르지엘라는 17세기 플랑드르 회화의 색감과 질감, 벽지와 가구의 표면을 소환해 실루엣 위에 시간의 균열을 새겨 넣었다. 스키아파렐리는 살바도르 달리의 1953년 작 ‘왕의 심장’에서 영감받아 붉은 실크 드레스 위에 입체적 심장 모티브를 얹은 룩을 선보였다. 여성의 뒤태 중심에 배치된 이 심장은 실루엣 자체를 하나의 초현실적 오브제로 전환하며 불확실한 시대를 향한 상징적 메시지를 전달했다. 초현실주의의 유산은 감정의 깊이를 시각화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다크 시그널
어둠의 미학은 이번 시즌 종교, 죽음, 상징의 층위를 쿠튀르 언어로 풀어냈다. 메종 마르지엘라는 중세 장식과 고딕 조각에서 발췌한 실루엣과 마스크를 통해 고요하고 낯선 공포를 형상화했다. 스키아파렐리는 재앙과 낭만이 교차하는 시대적 감정을 조형적 장식으로 끌어올려 무대 위에 떠오르게 했다. 아시 스튜디오는 잊힌 범죄, 바랜 직물, 해체된 장식 파편을 조합해 어두우면서 서정적인 감각의 단면을 드러냈다.
절제된 찬란함
이번 시즌 장식은 과시나 부유함의 수단이 아니라 섬세한 정서를 매개하는 장치로 사용되었다. 아르마니 프리베는 은은한 금사와 시퀸을 통해 감정을 속삭이듯 환기하며 장식의 밀도를 정교하게 조율하는 절제된 기술을 선보였다. 빅터 & 롤프는 팽창과 납작함이라는 극단을 병치해 장식의 허구성과 해체 가능성을 유쾌하게 드러냈고, 주하이르 무라드는 시퀸과 크리스털, 실크 자수로 섬세하게 장식한 튈 드레스를 통해 화려함 속 긴장감을 유지했다.
곡선의 귀환
이번 시즌 곡선은 낭만적 도피가 아닌 구조와 감각을 조직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샤넬은 깃털, 레이스, 튤을 겹겹이 쌓아 곡선을 시적으로 구조화했고, 엘리 사브는 파스텔 톤과 유려한 실루엣을 통해 회화적 선율을 구현했다. 지암바티스타 발리와 주하이르 무라드는 각각 튤 드레스와 드레이핑을 활용해 드라마틱한 서사를 입혔으며, 아르다사에이와 아시 스튜디오는 조각처럼 절제된 곡선을 설계해 조용한 조형미를 제시했다.
해체와 재조합
지속 가능성은 단순한 소재의 문제가 아니라, 쿠튀르에 윤리적 상상력을 요구하는 시대적 과제로 부상했다. 메종 마르지엘라는 파리의 빈티지 숍에서 수집한 중고 의류, 폐보석, 종이와 주석 등을 해체하고 재조합해 조형적 룩으로 재탄생시켰다. 스크랩된 자수 셔츠를 레이어링한 드레스, 낡은 식기의 광택을 덧입힌 마스크, 종이 질감을 살린 코트 등은 재료의 수명을 확장시킨 사례였다. 빅터 & 롤프는 스튜디오에서 손수 제작한 오간자 인조 깃털을 수천 개 단위로 레이어링해 쿠튀르 장식의 미학과 윤리적 제작 방식의 접점을 제시했다. 발레 튀튀를 연상시키는 깃털 드레스는 친환경 소재와 수작업 기술로 쿠튀르의 가능성을 유쾌하게 드러냈다.
실용성의 미학
이번 시즌 쿠튀르는 드라마보다 일상에 가까웠다. 착용 가능성은 스타일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아르마니 프리베는 칼라리스 재킷과 슬림 팬츠로 구성된 룩을 통해 실크와 벨벳의 이질적 질감을 교차하며 절제된 포멀함 속 관능을 암시했다. 스키아파렐리는 극적인 퍼포먼스 없이도 조형적 커팅과 날렵한 비대칭 구조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천을 접고 누르는 드레이핑만으로도 여성의 곡선을 표현하며 최소한의 수단으로 효과를 최대한 이끌어냈다. 입을 수 있는 쿠튀르가 품을 수 있는 감각과 긴장의 최대치를 실험한 셈이다.
변화의 전조
샤넬은 마티유 블라지의 데뷔를 앞두고 인하우스팀이 전개한 마지막 컬렉션을 통해 과도기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이번 시즌은 샤넬이 오트 쿠튀르를 선보인 지 110년이 되는 해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영화감독 소피아 코폴라와 함께 커피 테이블 북 <샤넬 오트 쿠튀르>를 제작하고 사전판을 오트 쿠튀르 컬렉션 인비테이션으로 보냈다. 런웨이에는 코코 샤넬이 사랑했던 스코틀랜드 고지대에서 영감받아 겨울빛 트위드, 헌팅 재킷, 워킹 부츠를 연상시키는 룩으로 채워 샤넬 아틀리에의 기술을 다층적으로 선보이는 데 집중했다. 메종 마르지엘라는 글렌 마틴스가 처음 선보인 쿠튀르 컬렉션을 통해 갈리아노와 마르지엘라 이후의 서사를 과감히 재구성했다. 쇼는 2009년 마르지엘라가 마지막 컬렉션을 발표했던 파리 북부의 ‘르 상콰트르’에서 열렸다. 정지된 듯 천천히 등장한 모델의 오프닝은 1990년대 마르지엘라가 자주 사용했던 마네킹 퍼포먼스를 연상시키며 브랜드 고유의 미학과 미스터리를 환기했다. 전체 컬렉션의 약 3분의 1은 업사이클링한 재료로 구성했으며, 고전성과 실험성을 절묘하게 결합했다.
무대 밖 쿠튀르
2025 F/W 오트 쿠튀르 위크의 프런트 로는 단순한 관람석을 넘어 각 쇼의 테마를 시각적으로 확장하는 또 다른 무대였다. 스키아파렐리 쇼에서 카디비는 진주와 실크 프린지 장식의 커스텀 벨벳 드레스에 실제 까마귀를 안고 등장했고, 두아 리파는 브라이덜 화이트 깃털 가운으로 눈부신 존재감을 드러냈다. 샤넬은 공식 일정 전날 파리 장식미술관에서 여름 무도회(Bal d’Ete)를 열며, 셀러브리티를 위한 무대를 따로 마련했다. 샤넬 앰배서더 소피아 코폴라는 510시간에 걸쳐 제작한 핑크 실크 모슬린 드레스를 착용했고, 키라 나이틀리는 블랙 칼라 장식 트위드 드레스를 선택해 우아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메종 마르지엘라 쇼에 참석한 배우 다이애나 애그런은 시스루 셔츠와 비대칭 스커트, 실버 백과 브라운 메리제인 힐로 구성된 룩에 헤드 스카프와 틴트 선글라스를 더해 브랜드 특유의 해체적 무드를 간결하게 표현했다.
에디터 이주이(jylee@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