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Colors of Korean Design
국내를 넘어 해외 무대에서도 인정받은 우리의 젊은 아티스트. 그들의 열정과 철학, 빛나는 작업물… 예술을 향한 무한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과 마주했다.
‘더 모먼트 오브 이클립스’ 시리즈 by 이광호
‘블룸’ by 김하윤
실크 스크린 북 by 조규형
‘젊은 한국인 디자이너의 힘!’ 요즘 부쩍 실감하는 명제다. 세계적 디자인 매체와 기관에서 앞다퉈 상을 주고 전시를 열어줄 뿐 아니라, 그들의 재능과 작품에 대해 말한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무수한 젊은 인재 중 <노블레스>가 주목한 3인방은 누구보다 특출하다. <월페이퍼>의 표지를 장식한 것만으로도 두고두고 칭송받아 마땅한 그래픽 디자이너 조규형, 파리의 메르시와 밀라노의 하이테크, 이제는 뉴욕까지 빅 3 도시에서 작품을 판매하는 세라믹 아티스트 김하윤, 패션과 뷰티까지 다채로운 영역을 넘나들며 가구 디자인과 설치 작품을 선보이는 이광호. 여기에 담고자 하는 건 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그들의 무한한 열정과 노력을 이야기하고, 한국 디자인이 이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앞으로도 각자의 분야에서 더욱 개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는 소망도 함께.
커트러리 시리즈
‘앨리스 인 원더랜드’ 펜던트 조명과 다이닝 테이블
기(器) 하나로 세계와 소통하는 세라믹 아티스트
김하윤
왜 세라믹 아티스트가 되었느냐고? 산업디자인학과에 들어갔는데 시각 디자인과 요업 디자인 중세부 전공을 택할 수 있었다. 딱딱한 컴퓨터 작업보다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게 좋았다.
흙의 매력 흙이란 소재는 한번 건드리면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이를 가소성이라고 한다. 따라서 제작 과정 중에 매우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아주 높은 온도에서 불을 만나는 모험을 통해 요변(窯變)을 경험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고 한계도 많지만 그 결과물이 다른 재료로는 빚어낼 수 없는 특유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백자만 고집하는 이유 내 작업은 무엇보다 형태에 집중한다. 화려한 색상은 형태의 조형성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형태 이상의 장식은 염두에 두지 않는 편이다.
디자인 영감의 원천 부‘ 분의 목격자’ 정신. 그냥 지나칠수 있는 소소한 것 하나에서도 심미성과 역사성을 찾는다. 공간에 놓여 있는 그 물건의 상태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봄으로써 의미를 재해석한다. 반복, 해체, 결합을 통해 기성관념을 부정하고 단면을 재구성해가는 것이 나의 작업 방식이다.
작품 세계 예나 지금이나 최대 관심사는 그‘ 릇’이다. 테이블 위에 놓인 그릇이 그 기능 때문에 한정된 장소에만 있어야 하는 것(주방과 그 언저리), 실용성을 앞세워 조형성을 간과하는 것이 아쉬웠다. 그릇을 모티브로 그릇이 아닌 그릇을 많이 만들었는데(그릇 형태의 오브제와 조명), 결국 본연의 역할을 하는 그릇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해외 진출 2009년 런던 100% 디자인전을 통해 처음으로 해외 무대에 나섰다. 그 뒤로 파리의 메종 & 오브제,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도 진출했는데 그때마다 많은 프레스와 바이어의 콜을 받았다. 이탈리아 셀레티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것을 계기로 유명 리빙 편집숍에서 작품을 팔 기회도 얻었고. 한국에서 공부한 내게 이런 관심은 자신감을 북돋워주는 원동력이다.
트위그뉴욕(Twig NY) 한국도자기와 협업한 테이블웨어 브랜드다. 서울이 아닌 뉴욕에서 먼저 런칭했다. 첫번째 컬렉션이 ‘커트러리 시리즈’. 런던의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오래된 커트러리에서 영감을 받아 그것을 고스란히 그릇에 담았다. 누구 누구가 먹고 간 자리, 시간으로 기억하는 그날의 식사라는 의미를 담고자 했다.
현재 진행 중인 작업 4월 싱가포르에 오픈하는 설화수 매장의 메인 디스플레이를 맡았다. 트위그뉴욕을 통해 한식기도 선보일 예정. 도자기와 IT 기술을 접목, 사용자 인터랙션을 통해 제작 과정과 사용법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으냐고? 누구든 내 작품을 보면 내 이름을 떠올리며 “역시 김하윤이네!” 해주는 것. 그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이솝 가로수길 스토어에 전시 중인 PVC 체어
일상의 낯선 재료를 사용해 가구를 만드는
이광호
천장에서 바닥까지 길게 내려오는 전선으로 만든 조명, PVC 소재의 튜브를 손으로 엮어 만든 테이블, 금속을 용접해 칠보를 입힌 의자 등. 이광호 디자이너가 만드는 가구는 일상 속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해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방법으로 탄생한다. 이 때문에 한편으로는 가구가 아닌 하나의 오브제처럼 느껴진다. 30대 중반인 그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졸업 후 1년 만이었다. “학부 시절 커리큘럼에 조명 수업이 있었어요. 다른 친구들이 전등갓처럼 전구 위에 어떤 디자인을 씌울지 고민할 때 저는 조명을 구성하는 전기, 전구, 전선 3가지 요소를 떠올렸죠. 그중 손으로 엮어 만들기 쉬운 것이 전선이었습니다.” 그는 손으로 뜨개질하듯 전선을 엮어 만든 조명을 졸업전에 출품했다. 그리고 1년 뒤 베를린을 시작으로 암스테르담, 런던 등 해외 갤러리의 러브콜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2011년 펜디의 글로벌 프로젝트 ‘파토 아 마노(Fatto a Mano(Handmade))’에 참여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졌다. 일종의 역수입과도 같은 것. “지금도 많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고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협업이었어요. 방식 자체가 결과물이 아닌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었거든요. 저를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스킨-에나멜드 쿠퍼’ 시리즈 스툴. 구리 소재를 옻칠로 마감했다.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만큼 그에게 재료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만든 것이 기억에 많이 남아 있어요. 잔나뭇가지를 모아 엮어내는 것만으로 빗자루가 되는 것처럼 단순한 재료가 모여 쓰임새를 창출하더군요. 그때의 기억이나 경험이 재료를 다룰 때 자유로운 사고가 가능하게 한 것 같아요. 지금도 재료 시장에 가면 아직 시도해보지 못한 재료를 보며 설레곤 합니다.” 비교적 다른 이들에 비해 일찍 주목받기 시작한 그가 최근 그룹 프로젝트 서‘ 플라이 서울’을 만들었다. “어떤 매체에서 신진 아티스트 지원 프로젝트라고 소개했는데, 그건 아니고요. 저와 비슷한 작업 활동을 하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친구들이 모여 서로의 작업을 소개하고 공유하는 모임이에요. 국내의 젊은 작가에겐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드문 편이니까요. 전시나 토론을 통해 자신의 작업을 발전시킬 수도 있고, 술을 마시며 서로의 애환을 달랠 수도 있는 일종의 소모임 같은 거죠.” 효자동 윈도우갤러리를 시작으로 올해는 성수동으로 자리를 옮겨 활발한 활동을 펼칠 예정이라고 한다. 아직 결성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젊은 아티스트가 모여 서로 작업 활동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기대가 되는 그룹이다. “저에게 멘토는 동료 디자이너인 것 같아요. 유명한 디자이너는 삶의 지침을 줄 순 있지만, 현재의 현실적 고민이나 작업 활동을 도와줄 수는 없으니까요.”현재 그는 자신이 어떤 디자이너인지 스스로 반 문하는 시기라고 한다. 왜 사람들이 자신의 작업을 좋아하는지, 어떤 부분이 그런 것인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맞는지…. 젊은 나이에 이름을 알려 자만할 법도 한데, 고민을 이어가는 그의 모습이 앞으로 활동을 기대하게 만든다.
픽토그래프로 적은 ‘러브레터’
하나의 이야기에 두 개의 서로 다른 그림을 겹쳐 그린 색다른 컨셉의 동화책 <문 쿠키>
북유럽에서 주목하는 한국 디자이너
조규형
왜 스웨덴인가? 국내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고, 기업에서 6년 정도 상업 디자인을 하다 보니 염증이 생겼다. 가장 상업적이지 않으면서 내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곳을 고르다 보니 스웨덴이었다. 콘스트파크 예술대학원에서 스토리텔링을 전공했다.
스토리텔링은 어떤 학문인가? GDI(그래픽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의 석사 과정이다. 학생 대부분이 영상과 일러스트레이션 혹은 사진작가나 그래픽 디자이너인데, 결국 그 모든 것이 이야기를 비주얼화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스토리텔링학과라고 한다.
국내와 다른 점이 있다면? 크게 보면 직책에 상관없이 평등한 관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스웨덴에서는 사장이 디자이너와 직접 만나 커뮤니케이션한 뒤 고용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디자이너를 회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 어떻게든 디자이너에게 더 많은 도움을 받기 위해 존중하는 개념이다. 또 언어 자체에 존칭이 없어 친구와 이야기하듯 편하게 대화하다보니 다양한 시도가 나오는 것 같다.
픽토그래프(Pictograph)로 영국 매거진 <월페이퍼> 커버를 장식하고, 현재 이딸라와 작업하고 있다. 어떤 작업인가? 국내에 있을 때 사물놀이를 하는 친구의 장구 가죽 면에 먹지를 붙여 장구채가 부딪친 자국을 만든 적이 있다. 규칙적 형태를 띠진 않지만, 본질(소리)에 가까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발전시킨 것이 픽토그래프 작업이다. 단순히 그림문자 서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알파벳을 그림으로 만들어 프로그래밍한 것. 픽토그래프를 사용해 하나의 글을 작성하면, 정확히 읽을 순 없지만 이야기의 본질은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실크 스크린을 사용해 패브릭에 인쇄하면 소유도 가능하다.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 스웨덴은 정말 외로운 나라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사색하는 시간이 많다. 산책이나 자전거 타는 것을 즐기는 편인데, 대부분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이 시간에 얻는 것 같다. 내 안의 이야기만 끌어내면 되는 시간이니까.
픽토그래프뿐 아니라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책, 세라믹, 가구 등 컬래버레이션 작업이 유난히 눈에 띈다. 혼자 일을 진행하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소통하면 내용도 풍성해지고 완성도 높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 다만 협업만 하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정의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둘다 균형 있게 하려고 노력한다.
올해는 어떤 계획이 있나? 북유럽 디자이너가 참여해 제품을 만드는 대만 브랜드 ‘낙낙(NakNak)’이 런칭한다. 브랜딩과 로고 모두 내가 디자인했다. 네덜란드 조명 회사부‘ (Boooo)’에서도 내가 디자인한 조명 벌브를 출시한다. 이 밖에도 9개 정도 제품이 나올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오는 9월 대림미술관의 구슬모아당구장에서 전시를 열 예정이다. 새로운 픽토그래프를 만들어 선보이려고 하는데, 한글의 경우 2000자가 넘는 조합이라 고민이다.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나? 그저 오랜시간 쭉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한 가지만 고집하다 질리고 싶지 않아서.
에디터 이재연 (jyeon@noblesse.com) 홍유리 (yurih@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