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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와 오트 쿠튀르

FASHION

“패션은 현재와 공존해야 한다. 20세기를 상징하는 패션 아이템인 재킷을 21세기 버전으로 재탄생시키고 싶었다. 당시에는 기술적으로 한계에 부딪혀 시도하기 어렵던 기술을 활용해서 말이다.” 칼 라거펠트는 샤넬 2015-2016년 F/W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위해 클래식 재킷을 현재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봤고, 그 결과 3D 재킷이 탄생했다.

샤넬 2015-2016년 F/W 오트 쿠튀르 컬렉션 쇼 피날레 장면

카지노로 변신한 그랑 팔레

모던함과 예술성으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 3D 프린트 기술을 접목한 오트 쿠튀르 룩

매년 여름, 파리 곳곳에선 하이패션에 대한 열정과 갈망이 그 꽃망울을 터뜨리기 바쁘다. 지난 7월 초, 때 아닌 폭염에 허덕이던 올여름의 파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샤넬과 디올, 메종 마르지엘라, 아르마니 등 패션 하우스는 오트 쿠튀리에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창의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오트 쿠튀르 컬렉션 발표 준비가 한창이었고,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하이 주얼리 메종도 바통을 이어받아 그 저력과 진가를 발휘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쿠튀리에와 주얼러들이 선보인 섬세한 디테일로 완성한 오트 쿠튀르 의상을 비롯해 찬란한 광채를 발산하는 하이 주얼리는 시선을 압도할 만큼 온화하면서도 강렬한 오라를 내뿜었다. 우리가 꿈꾸던 패션에 대한 판타지가 현실에 나타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는 파리가 ‘패션의 원천지’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하는 데도 절대적 힘을 행사한다. 특히 옷에 관한 한 궁극의 단계, ‘호사스러운 맞춤복’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오트 쿠튀르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패션의 도시 파리의 상징이자 원동력이 되고 있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정밀함을 기반으로 하는 오트 쿠튀르 세계야말로 끊임없이 발전하는 혁신의 장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디자이너의 획기적 아이디어와 날 선 감각이 오랜 노하우와 테크닉을 자랑하는 아틀리에 장인의 섬세한 수작업을 통해 한 벌의 옷으로 태어날 때, 비로소 우리는 오트 쿠튀르의 특별함에 감탄을 자아낸다. 그만큼 오트 쿠튀르라는 타이틀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명예의 훈장을 얻기 위해선 까다로운 심사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오트 쿠튀르 의상을 표현할 때 ‘패션 예술’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데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백 스테이지 현장

크리스틴 스튜어트, 지드래곤, 리타 오라, 줄리앤 무어, 제럴딘 채플린, 바네사 파라디, 릴리 콜린스, 릴리-로즈 뎁 등 좀처럼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세계적 셀레브러티들. 이번 시즌 샤넬의 오트 쿠튀르 쇼를 위해 선뜻 르 서클 프리베 테이블의 주인공으로 등장했고, 덕분에 런웨이 무대는 한층 빛났다. / ⓒAnne Combaz, ⓒBenoit Peverelli

그랑 팔레, 카지노로 변신하다
2015-2016년 F/W 오트 쿠튀르 패션 위크에도 엄선된 패션 하우스는 공들여 완성한 예술 작품 같은 의상을 선보였고, 샤넬 또한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특히 샤넬은 매번 화려한 의상만큼이나 그랑 팔레를 가득 채우는 런웨이 무대 연출에도 탄성을 자아낼 만한 창의력을 발산하는데, 이번 시즌 샤넬의 상상 열차는 카지노로 향했다. 카지노로 재탄생한 그랑 팔레 한가운데에는 딜러와 함께 갬블링 테이블을, 객석 뒤로는 슬롯머신을 줄지어 놓아 관람객에게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한 것. 놀라운 발상은 정교하면서 색다른 무대 세팅에 그치지 않았다. 카지노로 변신한 영화 세트장 같은 그랑 팔레에서 본격적으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명장면을 연출했다(패션쇼에서 이런 광경이 펼쳐지리라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런웨이 쇼를 진행하는 내내 ‘르 서클 프리베(Le Cercle Prive´)’라고 이름 지은 갬블링 테이블에서 샤넬과 돈독한 친분을 자랑하는 20명의 세계적 셀레브러티가 블랙잭과 룰렛을 즐겼고, 이는 분명 오트 쿠튀르 쇼 현장에서 목격할 수 있는 장면이라 하기엔 파격적이었다. 카지노라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쇼적 요소를 시크하고 우아한 방식으로 활용한 오트 쿠튀르 런웨이 무대라니! 역시 가장 현대적이면서 차원이 다른 스케일과 스타일을 추구하는 샤넬답다. 완벽을 추구하는 샤넬의 손길이 여기서 멈출 리 없다. 한껏 차려입은 남녀 셀레브러티를 빛낸 오트 쿠튀르 드레스와 슈트도 샤넬이 이날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 이번 쇼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낸 셀레브러티 한 명 한 명을 위해 신경 써서 맞춤 제작했다. 그뿐 아니라, 각각의 룩에 마드모아젤 샤넬이 1932년 선보인 ‘비주 드 디아망(Bijoux de Diamants)’ 컬렉션을 재해석한 플래티넘과 다이아몬드 에디션 하이 주얼리를 곁들여 광채와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더했다. 셀레브러티는 라거펠트가 직접 초청했는데,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등장을 시작으로 이자벨 위페르, 리타 오라, 지드래곤(단연 눈에 띄었다), 릴리 콜린스, 스텔라 테넌트, 라라 스톤, 마지막으로 줄리앤 무어와 제럴딘 채플린이 그 뒤를 이었다. 바네사 파라디도 딸 릴리-로즈 뎁과 함께 갬블링석에 모습을 드러냈고 앨리스 데럴과 비올레트 뒤르소도 함께했다. 이날의 주인공인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빛낸 화려한 조연(!)들의 빛나는 활약은 단연 화제가 될 만한 장치였고, 관람객은 오트 쿠튀르에 대한 샤넬의 혁신적 접근 방식에 다시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에디터도 예외일 리 없다.

엠브로이더리, 브레이드, 스팽글, 비즈, 깃털 장식 등 섬세한 디테일이 단연 돋보인다.

쇼 무대로 나서기 전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는 모델들 / ⓒBenoit Peverelli

그렇다면 이날의 주인공은?
오트 쿠튀르다운 차원이 다른 예술적 아름다움을 드러낸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셀레브러티들이 갬블링을 즐기는 사이 획기적인 플런징 보브(plunging bob) 헤어스타일로 단장한 모델들이 하나 둘 등장했는데, 총 67벌의 섬세한 장식과 기하학적 실루엣의 슈트와 비대칭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룰렛 테이블과 슬롯머신 사이를 유유히 거닐며 이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칼 라거펠트가 언급한 대로 전통 기법에 최신 기술을 접목해 탄생시킨 3D 슈트의 다양한 변주는 21세기 버전 오트 쿠튀르의 진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선택적 레이저 소결 방식’(selective laser sintering, 레이저를 이용한 3D 프린트 기술로 가루 형태의 원료를 원하는 부분만 레이저로 응고시켜 한 층 한 층 쌓아나가는 방식이다)이라는 최첨단 기술을 활용, 그 위에 색상을 입히고 수작업으로 섬세하게 비즈를 수놓거나 가죽 브레이드를 더해 새로운 차원의 그래픽적 실루엣을 그리는 네오클래식 재킷을 선보였다. 컬러는 주로 블랙과 그레이, 네이비, 화이트, 레드, 골드, 모브, 핑크, 그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완전히 새로운 샤넬 브레이드’ 기법을 적용한 21세기형 슈트의 향연 속에서도 샤넬을 상징하는 트위드를 빠뜨리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그뿐 아니라 무릎길이의 기본 펜슬 스커트가 자아내는 여성적 매력에 단추 달린 견장을 장식한 와이드 숄더, 마치 접어 올린 슬리브처럼 세운 커프스 등 남성적 디테일을 더한 점도 이번 샤넬 오트 쿠튀르 컬렉션의 주요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이브닝웨어는 시선을 뒤로 이끄는 비대칭 라인이 단연 돋보였고, 레이스·실크·라피아·튈·오간자·더치스 새틴·파유(Faille, 비단의 일종)·태피터·시폰에 다양한 깃털과 스팽글 그리고 비즈 자수 장식으로 특유의 화려함을 부각시킨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드레스에도 3D 기법을 적용했는데, 풀 스커트 드레스를 에워싼 3D 자수는 전통적 노하우와 혁신적 기술력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걸작이라 칭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피날레를 장식한 웨딩 룩은 또 어떤가. 모델 켄들 제너가 남성적 매력을 물씬 풍기는 흰 새틴 턱시도 차림에 섬세한 엠브로이더리 장식의 기다란 튈 베일을 매치한 모습이라니! 이는 전통적 신부의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어깨가 넓은 더블브레스트 재킷 스타일을 응용한 룩엔 여성미와 남성미가 절묘하게 어우러졌고, 기하학적 모양의 힐이 달린 스트랩-온 부티는 그래픽적이면서도 편해 보이는 턱시도의 라인을 한층 살려주었다. 고결한 기품을 잃지 않은 채 모던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 피날레 웨딩 룩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단번에 부숴버렸다. 웨딩 가운에 대한 통상적 접근에 익숙한 우리에게 발상의 전환이 가져다주는 신선함을 제대로 일깨운 것이다.
샤넬의 전통에 경의를 표하는 일을 잊지 않으면서도 패션과 기교의 조화를 적절히 이끌어내고 끊임없이 재해석을 시도하는 칼 라거펠트. 그는 샤넬 오트 쿠튀르에 과감하고 창조적인, 동시에 현대적 감각이 돋보이는 새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쉼 없이 고민하는 일이 즐겁다고 했다. 현대적 우아함의 새로운 정의를 찾기 위한 그 고민의 흔적은 이번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도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이 시대의 패션 거장이 제시한 오트 쿠튀르의 미래에 박수를 보낸다.

엠브로이더리, 브레이드, 스팽글, 비즈, 깃털 장식 등 섬세한 디테일이 단연 돋보인다.

피날레를 장식한 웨딩 슈트

톱 스티치 기법으로 완성한 그레이 튈 퀼팅 드레스

톱 스티치 기법으로 완성한 그레이 튈 퀼팅 드레스와 제작 장면

숨막힐 듯한 아름다움을 연출한 오트 쿠튀르 신. 플런징 보브 헤어 또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1세기형 샤넬 오트 쿠튀르가 탄생하기까지
칼 라거펠트는 공방이나 장인과의 협업을 통해 기존의 틀을 깨뜨리는가 하면, 제작 공정에서도 실험적 시도를 하고,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창조해낸다. 의상 자체의 스타일은 물론, 칼 라거펠트의 디렉팅에 따라 하우스 직속 공방과 장인 공방에서 탄생시키는 독창적 소재와 뛰어난 기교는 감히 견줄 데가 없을 정도다. 전통적 소재에 PVC와 루렉스, 플라스틱 코팅 레이스, 네오프렌 등의 신소재를 더해 드레스에 새로운 볼륨을 과감히 더하기도 하고 비딩이나 엠브로이더리, 크리스털, 시퀸 장식은 기본, 콘크리트까지 의상으로 재탄생한다.
평균적으로 오트 쿠튀르 슈트 한 벌을 완성하는 데 200시간 이상 소요되며, 드레스의 경우 300~600시간이 걸린다. 웨딩드레스 작업은 1000시간 넘게 걸릴 때도 있다. 의상 제작의 첫 단계는 예상한 대로 칼 라거펠트의 스케치다. 스케치가 완성되면 먼저 모슬린 소재로 샘플 의상을 만든다. 이후 마네킹에 입힌 샘플 의상을 보고 칼이 소재와 재단 기법을 고민해 정한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실물 제작에 돌입한다. 트위드와 울, 가죽을 전문으로 다루는 장인 50명이 상주하는 슈트 제작 전문 공방 두 곳에서는 슈트를, ‘플루’(Flou, 소프트 드레스) 전문 공방 두 곳에서는 튈·오간자·레이스·모슬린·크레이프 같은 섬세한 소재를 전문으로 다루는 장인 50명이 정교한 손길로 환상적인 드레스를 만들어낸다. 마지막으로 70여 벌(평균적으로 샤넬 오트 쿠튀르 컬렉션은 60~70벌 정도의 의상으로 이뤄진다)의 오트 쿠튀르 컬렉션 의상이 완성되면 여기에 주얼리·장갑·모자·구두 등의 액세서리를 매치하는데, 이는 쇼 하루 전날 캉봉 가 29번지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최종 피팅에서 칼 라거펠트가 결정짓는다.

에디터 유은정 (ejyoo@noblesse.com)
사진 제공 샤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