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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Few Good Men

BEAUTY

최근 붐을 일으키고 있는 국내 니치 향수의 트렌드를 주도한 BMK 박찬근 대표와 한국 뷰티 시장의 구원투수로 다시 돌아온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의 크리스토퍼 우드(Christopher Wood) 지사장. 각각 밀러 해리스와 톰 포드 뷰티의 국내 전개를 앞둔 BMK와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의 수장인 그들을 만나 2014년의 새로운 계획과 올 한 해 국내 뷰티 시장 전망에 대해 물었다.

 

크리스토퍼 우드의 세 번째 라운드
흠잡을 데 없이 똑 떨어지는 슈트 피트, 더 핸섬해진 얼굴로 그가 들어서자 카페 안 사람들의 눈동자가 자연스레 그에게 쏠렸다. 하긴, 에디터도 그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면 서울 한복판에서 키 190cm 버전의 조지 클루니를 마주한 황당한 기분을 느꼈을 터. “잘 지냈나요? 오랜만이에요. 한국에 다시 온 후 첫 인터뷰라 머리 하고 오는 길이에요. 미용실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을 싫어해 헤어 디자이너가 약속한 30분 안에 모든 것을 끝내주었어요.” 한국말로 또박또박 인사를 건넨다. 미국 본사로 발령나 뉴욕에서 지낸 몇 년 사이 한국말을 까먹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웬걸, 오히려 몇 배는 더 능숙해진 느낌이다. 그의 딸아이와 함께 미국에서도 한국어 학교에 다닌 덕분이라고.
한국의 뷰티 에디터와 편집장이 글로벌 회사 CEO 가운데 유독 그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데는 그의 무한 한국 사랑이 한몫한다. “지난 몇 년간 몸은 뉴욕에 있었지만 언젠가 내가 다시 돌아갈 곳이라는 생각을 쭉 했어요. 따져보니 한국에 산 기간이 통틀어 9년이더라고요. 재미있는 건 한국이 내가 가장 오랜 시간 산 나라라는 거예요. 내 고향이나 마찬가지죠.”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부터 전 세계를 떠돌며 생활한 탓이다. “한국의 정신, 정, 친절함, 예의 같은 것이 너무나 그리웠어요. 미국에선, 특히 뉴욕이란 쿨한 도시에선 그런 따스함을 기대하기 힘들거든요. 한국 음식을 워낙 좋아하는데 그런 건 문제도 아니었어요. 뉴저지나 플러싱의 단골 한식당에 가면 되니까요. 아, 포장마차! 포장마차는 정말 그리웠습니다. 광장시장, 통인시장 이런 데!” 그는 한국을 지칭할 때마다 종종 ‘우리나라’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것이 한국인의 환심을 사기 위한 립서비스가 아니라는 것은 그를 한 번만 직접 마주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그가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 한국 지사의 CEO를 역임할 때 수입 화장품은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가 본사로 발령받아 뉴욕에 간 몇 년 사이 국내 뷰티업계는 알게 모르게 휘청였다. 그래서 업계의 많은 이들은 다시 돌아온 그를 향해 구원투수라고 표현한다. “최고의 찬사네요. 한국 뷰티 마켓에서 수입 화장품이 왜 고전하나 살펴보니 고객들이 영민하게도 ‘칩 앤 시크’라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더군요. 예전엔 명품족은 명품족, 스트리트족은 스트리트족이었죠. 하지만 고객들이 그 둘을 적절히 믹스하기 시작했어요. 이건 세계적인 트렌드죠. 별로 놀랄 일은 아니에요.” 이런 변화에 대처하고자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고, 답은 이미 도출됐다. 로드숍 브랜드들이 줄 수 없는 문화를 주자고. 그들에겐 없는 서비스, 헤리티지, 이미지 등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제품 마케팅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컨슈머 마케팅을 시작할 것입니다. 그건 내가 다시 온 이후 우리 회사에서 가장 크게 변화하는 부분일 거예요. 고객이 시간을 내어 매장에 왔을 때 제품 외에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지, 어떤 경험과 서비스를 원하는지 고민할 것입니다. 또 고객과 장기적인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열쇠를 찾는 것도 우리의 숙제일 것입니다.” 이제 그들의 경쟁 대상은 매스 브랜드가 아니다. 고객들은 결국 하이엔드 브랜드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기 때문. 명품 화장품의 메이크업 제품이 잘되는 것이 그 청신호다. 그다음 고객은 스킨케어에 정착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결국 라이프스타일 전반의 모든 하이엔드 소비재가 경쟁 대상입니다. 발리 풀 빌라로 여행을 가느냐, 라 메르의 풀 세트를 사느냐? 또 특급 호텔의 프렌치 레스토랑에서의 한 끼를 즐기느냐, 에스티 로더의 리-뉴트리브 크림을 사느냐? 선택의 문제죠. 라이프스타일, 패션, 아웃도어 등 모든 것이 경쟁 상대고, 우리가 소비자를 설득해야 하는 이유죠.”

2014년, 새로운 브랜드의 런칭을 앞두고 있는 것은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에 고무적인 일이다. 범블앤범블, 토리버치 뷰티, 톰 포드 뷰티가 국내 런칭을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 “세 브랜드 모두 개성이 뚜렷하고 훌륭한 브랜드예요. 범블앤범블은 전 세계에서 가장 쿨한 헤어 스타일링 브랜드라고 자신합니다. 토리버치 뷰티는 뉴욕 업타운 시크의 전형이죠. 톰 포드 뷰티는 뷰티업계의 부가티예요. 세련되고 탐나지만 아무나 손에 넣을 수 없죠. 너무나 좋은 원천을 손에 쥐고 있지만 서두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시장성, 패션 하우스와의 파트너십 등 내가 생각한 모든 것이 딱 맞아떨어질 때 바로 그때가 타이밍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지하면서도 나긋나긋하게, 강조할 부분에선 손짓을 섞어가며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그의 수려한 얼굴을 보고 있으니 문득 뷰티 CEO의 스킨케어 루틴이 궁금해졌다. “랩시리즈의 멀티 액션 페이스워시로 세안한 뒤 셰이빙을 하고 에스티 로더 갈색병 에센스를 발라요. 겨울엔 혹은 출장을 갔을 땐 좀 더 리치한 걸 원해서 달팡의 스티뮬스킨 크림이나 에스티 로더의 리-뉴트리브 크림을 번갈아 쓰죠. 화장품은 젊음을 위해 투자할 가치가 있고, 그 대가는 반드시 돌아옵니다.” 주문한 음료로 목을 축일 틈도 없이 맹렬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약속한 1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베스트셀러 자기 계발서 한 권을 독파한 듯 명쾌한 기분!

“콘퍼런스 콜이 있어요. 이런, 시간이 늦었네요. 사무실로 들어가는 차 안에서 통화를 해야겠어요.” 어련히 차가 문 앞에 대기 중일 줄 알았는데 그는 홀로 택시를 잡기 위해 큰길로 성큼성큼 향했다. 열린 마인드와 유머 그 속에 브랜드에 대한 열정과 자긍심으로 가득한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어쩐지 마음 한편이 든든해졌다. 히딩크가 다시 월드컵 대표팀 사령탑으로 복귀한 것 같은, 뭐 그런 감정일 것 같다.

 

아름다움에 열정을 피우다
니치 향수(niche perfume). 천연 원료를 사용하고 소량만 생산해 흔히 접하긴 힘든, 다시 말해 대중화를 지향하지 않는 소규모 퍼퓨머리 향수를 지칭하는 이 단어가 몇 해 전부터 국내 하이엔드 뷰티 시장을 조용히 물들이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딥티크와 세르주 루텐, 메종 프란시스 커정과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등 이름에서도 ‘시크한 오라’가 풍기는 퍼퓨머리 브랜드가 존재한다. 불과 몇 해 전에만 해도 소수의 힙한 편집 매장에서나 만날 수 있던 감각적인 향과 패키지의 니치 향수 브랜드가 남과 다른 나만의 독창적인 것을 추구하며 ‘커스터마이즈드’한 아이템을 찾는 요즘의 소비 패턴에 힘입어 인기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 이 신선하고 향긋한 바람몰이의 주역들 뒤에는 날 선 감각으로 브랜드를 엄선해 국내 시장에 소개하는 BMK(Beau Monde of Korea)의 박찬근 대표가 있다.

“프랑스어 ‘beau monde’를 직역하면 ‘아름다운 세상’을 뜻합니다.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지은 건 아니에요. 그저 우리 회사와 더불어 많은 사람이 행복해졌으면 좋겠고, 보다 즐겁게, 좀 더 가꾸면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박찬근 대표가 호탕한 웃음과 함께 언급한 회사 이름에 담은 진솔한 바람은 현재 그가 국내에서 전개하고 있는 니치 향수 브랜드들의 매력적인 활약과 더불어 순풍에 돛 달고 순항 중이다. 10년 전 국내 시장에 퍼퓸 멀티숍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 국내 최초로 롯데백화점 본점에 15평 남짓한 향수 편집 매장을 열면서 박찬근 대표의 향수 시장에 대한 예지는 본격화되었다.

파리 프랭탕과 봉마르셰 백화점을 수십 번이고 방문해 각 브랜드의 매장은 물론 고객의 호응도를 면밀히 관찰하는 등 꼼꼼한 시장조사 끝에 박찬근 대표의 감식안으로 포착한 브랜드는 미국 시장에서 2차 검증을 거친다. 유럽의 인기에 그치지 않고 미국 시장의 반응을 살피는 것은 디스트리뷰터로서 그만의 노하우를 살린 철저한 브랜드 사전 탐색 단계. 이뿐만이 아니다. “현지에서 아무리 좋은 반응을 얻은 브랜드라 해도 국내 시장에서 그 브랜드의 타깃을 고려해 유통할 수 있는 적절한 판매처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승산이 희박하다고 봐야 해요. 그래서 ‘이거다’ 싶은 브랜드를 발굴하면 먼저 국내 백화점과 그 브랜드의 전개에 대해 다각도로 의견을 나눕니다.” 작년 9월 국내에 성공적으로 상륙시킨, 힙스터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의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매장을 둘러보면 박찬근 대표의 혜안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향수 브랜드 단독 부티크로서 국내는 물론 세계 주요 도시의 백화점에서 그만한 규모의 매장을 찾아보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각 브랜드의 특징을 파악해 차별화한 마케팅을 펼치는 것도 관건입니다. 딥티크는 아트워크가 굉장히 뛰어난 브랜드예요. 세련미의 극치를 보여주죠. 특히 캔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은 ‘향의 출판사’라는 브랜드명처럼 퍼퓨머리로서 자부심이 남다른 브랜드입니다. 최고의 조향사와 함께 작업해서인지 향에 크리에이티브한 감성을 입힌 최고의 작품만 생산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그야말로 향수계의 오트 쿠튀르를 표방하죠. 세르주 루텐의 경우는 파리 팔레 루이얄에 위치한 루텐의 부티크를 처음 방문한 당시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요. 판타지를 자극하는 오묘한 컬러에 향도 깊고 신비로웠거든요. 그래서인지 루텐은 마니아층이 탄탄한 편이에요. 마지막으로 메종 프란시스 커정은 최연소 조향사가 이끄는 브랜드인 만큼, 향만 봤을 때는 가장 보편타당한 향을 추구해 거부감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전개하고 있는 니치 향수 브랜드 하나하나 세심한 설명을 곁들이며 각각의 특징을 소개하는 박찬근 대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니 BMK가 공들여 준비 중인 다음 프로젝트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은 더욱 고조되었다. 올봄 BMK를 통해 국내에 데뷔할 퍼퓸 브랜드는 바로 영국에서 날아온 하이엔드 퍼퓨머리 ‘밀러 해리스(Miller Harris)’와 호주의 실용적인 홈 프래그런스 브랜드 ‘제이니미(Jaye Niemi)’. 여기에 박찬근 대표가 4년 전부터 눈여겨본, 1971년 프랑스 남부의 매혹적인 휴양지 생트로페 태생 프레스티지 비치웨어 브랜드 ‘빌브레퀸(Vilebrequin)’까지 국내 전개를 앞두고 있다. 박찬근 대표의 탁월한 안목으로 골라낸 만큼 공통적으로 특유의 세련된 감성이 녹아 있는 이 3개 브랜드의 런칭 소식이 마른 땅을 촉촉이 적실 싱그러운 봄비처럼 기다려진다.

“기존에 20대와 30대 여성이 주로 즐겨 찾던 아이템인 향수는 이제 10대부터 60대까지, 여성은 물론 남성들도 기꺼이 즐기는 아이템이 됐어요. 불과 1~2년 사이에 향수 시장이 재편되고 있습니다. 소비자의 관심과 니즈가 커짐에 따라 니치 퍼퓸 시장도 선택의 폭이 넓어져야죠. 국내 퍼퓸 마켓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고, 그 규모도 확장되리라 생각합니다.” 국내 니치 향수 시장 형성에 선구적 역할을 해오며 우리의 일상에 우아한 향기를 더하고 있는 박찬근 대표. 그의 확신에 찬 장밋빛 시장 전망과 더불어 아름다움을 간파하는 심미안,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전파하고자 하는 열정 덕에 우리는 앞으로도 바삐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좀 더 여유를 가지고 한 템포 쉬어가는 향기로운 삶을 가꿀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 유은정 (ejyoo@noblesse.com) 박세미(프리랜서)
사진 정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