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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iving Legend

LIFESTYLE

피아제 가문의 4대손 이브 피아제(Yves G. Piaget) 명예회장. 주얼러 그리고 워치메이커 명가로서 14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피아제의 이름을 널리 알린 ‘살아 있는 전설’이다. <노블레스>는 봄이 찾아오기 전 제네바에서 일흔을 넘긴 백발의 거장을 단독으로 만났다. 이제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영광의 시절을 반추하지만, 자신이 일군 브랜드에 대한 자긍심과 끝없는 애정 그리고 믿음은 여전했다. 깊은 여운을 남긴 대화, 실로 오랜만이었다.

 

4년 전 피아제의 140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라코토페(LaCote-aux-Fe´es) 매뉴팩처에 가봤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름다운 전원의 풍경과 친절한 사람들 덕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고요. 저는 1942년 라코토페에서 태어나 열네살 때까지 지냈습니다. 유년 시절을 보낸 그곳은 지금까지도 제게는 정말 특별한 곳이며,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지금과 그때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름이면 녹음이 우거지고, 겨울이면 새하얀 눈으로 뒤덮이는 목가적 풍경이 반기죠. 이런 환경에서 매뉴팩처의 워치메이커들은 시계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제네바 근교의 플랑레주아트(Plan-les-Ouates)에는 최신 시설을 갖춘 매뉴팩처가 있지만, 시계의 심장은 여전히 라코토페에서 제작합니다. 그러니 라코토페는 피아제의 심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라코토페에서 시계를 만들기 시작한 당시 피아제는 우리 가문의 이름이었을 뿐이지만, 오늘날 피아제라는 이름은 전 세계에 명성을 떨치는 브랜드를 가리킵니다. 전 그 사실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언제나 필요 이상으로 잘하라(Always do better than necessary)’라는 브랜드의 철학은 늘 인상적입니다. 창립자 조르주 에두아르 피아제의 정신을 대변하는 문구죠. 피아제의 역사가 시작된 19세기 말 라코토페에 정착한 사람은 대부분 매우 숙련된 기계공이자 농부였습니다. 익히 들어 알겠지만, 당시 스위스 몇몇 지역의 사람들은 농사일을 하지 않는 겨울이면 정교한 손기술을 요하는 시계 제작 일을 했고 이에 필요한 지식과 숙련도는 상당한 수준이었죠. 그렇기에 피아제는 당시 시계 제조사들보다 뛰어난 품질의 무브먼트를 생산하고자 하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이런 철학과 정신은 피아제가 빠른 시간 안에 정상 궤도에 올라설 수있게 한 원동력이었고요. 지금도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합니다. 피아제가 선보이는 작품의 면면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명예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인터내셔널 브랜드 앰배서더로 전세계를 여행하고 있습니다. 피아제의 가치에 대해 널리 알리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실무적으로는 은퇴했지만 그간 쌓은 경험을 현재 브랜드를 이끄는 직원에게 전파하는 역할도 합니다. 저에게 피아제는 자식이나 다름없습니다. 어쩌면 피를 나눈 자식 그 이상의 의미일 수도 있고요.
얼마나 오랫동안 피아제에서 일하셨나요? 정확히 43년 된 것 같군요. 대부분의 시간을 피아제의 수장으로 일했고, 그 세월 동안 피아제의 모든 변화와 발전을 겪었습니다.

 

사진가 스티브 히트(Steve Hiett)가 촬영한 화보. 브랜드 북에 담았다.

그렇다면 본인이 생각하기에 피아제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가장 소중한 작품은 무엇인지 꼽을 수 있나요? 쉽지 않을 것 같군요. 대신 다른 방식으로 피아제의 작품을 얘기하면 어떨까요? 피아제를 하나의 비행기로 생각한다면, 이 비행기엔 2개의 엔진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창조성입니다. 우리는 가장 편평하고 얇은 시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해왔습니다. 1950년대에 처음발표한 울트라 신 무브먼트는 ‘혁명’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창조적 정신은 1960년대와 1970년대로 이어졌습니다. 전례 없는 시계가 탄생했죠. 디자이너의 상상력을 자유자재로 끌어내 만든 커프 워치, 네크리스 워치 등이 대표작입니다. 컬러 스톤과 젬스톤 등 새로운 소재를 사용한 시계도 선보였는데, 이는 업계 최초의 시도였습니다. 한편 과거에 선보인 폴로(지금의 폴로 컬렉션과는 다르다) 워치는 출시 직후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이 하나로 연결된 디자인 때문이었습니다. ‘시계를 장착한 브레이슬릿’이라 부를 정도로 창조적 디자인이었죠. 창조성조차 기술력이 뒷받침되어야 했습니다. 그 기술력이 두 번째 엔진입니다. 울트라 신 외에 쿼츠 기술력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전통의 기계식 시계와는 별개로 쿼츠 방식 역시 시계 산업을 이끄는 중심축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현재 고급 기계 시계 제작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무척 중요한 기술이었습니다. 얘기하다 보니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군요.(웃음)
피아제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금 소재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매뉴팩처로 알려져 있습니다. 금에 집중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건 고도의 브랜드 전략이었습니다. 피아제는 브랜드 창립 초창기부터 골드와 플래티넘 시계만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라코토페에서 만든 정교한 무브먼트를 흔한 소재의 케이스에 담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죠. 이런 생각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지금은스포츠 컬렉션 폴로의 일부 모델에만 티타늄 케이스를 사용한다).
창립 140주년을 맞아 피아제의 역사를 담은 책 가 출간됐습니다. 책을 받아본 후 감회가 남달랐을 텐데요. 무척 뿌듯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그간 엄청난 성장을 했고, 브랜드 북을 펴낼 적기라고 판단했습니다. 피아제의 전체적 이미지와 정체성을 정리해줄 뿐 아니라, 브랜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비전을 유기적으로 보여줄 무언가가 필요했거든요. 한마디로 우리의 제품 외에 브랜드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매개체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발간하기까지 2년의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대규모 아카이브를 정리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 피아제 로즈 컬렉션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당신이 대회에 나가 수상한 ‘이브 피아제 로즈’ 덕분에 컬렉션이 탄생할 수 있었고요. 여전히 장미를 키우시나요? 어릴 때부터 장미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제가 기른 장미가 1982년 제네바 인터내셔널 로즈 대회에서 수상한 덕에 ‘이브피아제’란 이름도 얻게 되었고요. 자신의 이름을 딴 장미가 존재한다는 건 무척 특별한 경험입니다. 장미를 기르고 후원하는 일은 여전히 소중한 제 취미입니다. 2년 전 탄생한 로즈 컬렉션은 그런 의미에서 제게도 무척 특별한 작품이죠.

2015년 초 발간한 브랜드 북 의 커버

현재 알티플라노 컬렉션의 근간이 된 울트라 슬림 워치 캠페인(1960년)

에디터 이현상 (ryan.lee@noblesse.com)
사진 제공 피아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