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New Cultural Center, Taichung
대만을 방문한다면, 더 이상 타이베이에만 머물진 말기를. 새로운 랜드마크와 함께 문화도시로 떠오른 타이중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타이중 중심가에 자리한 타이중 국립가극원 ⓒ National Taichung Theater
신흥도시의 풍경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높이 솟은 빌딩과 그 사이에 적당히 자리한 녹지가 만들어내는 풍경은 세련되고 정돈되어 보일지언정 도시 구석구석을 누비고 싶은 친밀한 디테일적 요소는 부족하기 때문. 여기에 활력을 불어넣는 건 역시 문화 예술이 아닐까. 세계적 건축가가 구현해낸 과감한 건축 디자인이나 개성 있는 아티스트의 소소한 손길은 도시를 더욱 근사한 모습으로 변화시키고 풍부한 콘텐츠를 만든다. 대만 중부에 자리한 타이중이 그렇다. 타이베이, 가오슝과 함께 대만의 3대 도시 중 한 곳으로 꼽히는 이곳이 최근 더욱 매력적인 장소로 떠오른 이유는 다이내믹한 문화 예술 스폿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 북부와 남부를 잇는 거점이자 온난한 기후 덕에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타이중에서 삶의 질을 더욱 높여주는 ‘예술적’ 공간을 둘러봤다.

2층에 자리한 2007석 규모의 대극장 ⓒ National Taichung Theater
오페라하우스 이상의 랜드마크로
유니버설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황혜민은 얼마 전 대만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제10회 인터내셔널 발레스타 갈라’에 초청받아 공연을 하고 돌아왔다. 지난 2월 11일, 세계 정상급 무용수들이 모인 갈라 공연이 열린 장소는 타이중 국립가극원(臺中國家歌劇院, National Taichung Theater). 그녀는 빠듯한 일정으로 공연을 마친 뒤 바로 돌아와야 했지만 새로 생긴 극장 하나를 찬찬히 둘러본 것만으로도 알찬 여행을 한 듯 강한 인상을 남겼다고 말한다. “주변은 테라스를 갖춘 고층 건물들이 자리 잡은 부촌인데 전체적으로 현대적인 분위기예요. 거대한 규모의 공연장 건물은 박물관처럼 볼거리가 가득하고, 실제로 그 내부를 둘러보기 위해 찾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타이베이보다 열정적인 타이중 관객이 특히 기억에 남네요!”
타이중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타이중 국립가극원은 오페라하우스로 기획했지만 오페라 공연은 전체 프로그램에서 극히 일부를 차지할 뿐이다. 2007석 규모의 대극장을 포함해 총 3개의 극장과 야외극장 하나를 갖추고, 대만의 전통극부터 뮤지컬, 리사이틀과 영화 상영 등 오페라하우스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2009년 공사를 시작한 뒤 2014년 부분 오픈을 하고 2016년 공식적으로 문을 연, 아시아에서 가장 최신식 공연장으로 꼽히는 곳. 이 건물을 디자인한 일본 건축가 이토 도요(Toyo Ito)는 공기의 흐름과 빛, 사운드 등 자연적 요소를 차용해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고려했다고 밝혔다. 건축물의 규모는 매우 웅장하지만 외관과 내부의 자연스러운 곡선 디자인과 실내로 들어오는 자연광 덕분에 어디서나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가장 방문객으로 붐비는 곳은 1층 전시장과 숍. 악기와 인테리어 소품 그리고 다양한 디자이너 브랜드가 모여 있어 웬만한 고급 쇼핑몰이나 디자인 페어에 비견할 만한 장소다. 하지만 1층만 둘러보다 중요한 경험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 건축물의 자랑거리는 가장 높은 곳에 있다. 6층 카페와 연결된 스카이 가든은 타이중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옥상에 꾸민 여유로운 휴식 공간이다.

1 다양한 디자이너 브랜드를 만날 수 있는 타이중 국립가극원 1층의 숍 ⓒ National Taichung Theater
2 인터내셔널 발레 스타 갈라에 참여한 황혜민 ⓒ 黑潮藝術 Art Wave Inc.
타이중 국립가극원은 한번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공간이지만 공연 애호가라면 염두에 둬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최근 세계 정상급 공연 단체의 월드 투어 일정에 타이중이 추가되고 있다는 점. 이 공연장의 개관 덕분이다. 작년 9월 말부터 연말까지 화려한 라인업으로 오프닝 시즌 프로그램을 선보였고, 올해도 지속적으로 좋은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있으니 다음 시즌 프로그램도 기대되는 건 당연지사. 오는 5월 11일과 12일에는 에사 페카 살로넨이 지휘하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가 대극장 무대에 설 예정이다. 타이중 국립가극원 덕분에 타이중이 대만의 문화 도시로서 그 위상을 더욱 확고히 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국립대만미술관에서 6월 4일까지 개최하는 한투 아트 그룹의 전시 모습
타이중에서도 ‘아트’를 말한다
미술계 인사들도 대만 미술을 이야기할 때 당연히 타이베이를 먼저 언급한다. 타이베이 시립 미술관을 중심으로 유명 갤러리들이 주목할 만한 전시를 개최하고, 대만 현대미술의 지표를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 미술 행사 ‘타이베이 비엔날레’도 그곳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8년 문을 연 대만 최초의 국립 미술관은 타이베이가 아닌 타이중에 있다.
타이중 중심가에 위치한 국립대만미술관(國立台灣美術館, National Taiwan Museum of Fine Arts)은 근·현대미술을 아우르는 방대한 컬렉션을 갖춘 곳으로 연중 상설 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대만 현대미술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며 교육 프로그램과 비주얼 아트 부문에 주력하고, 특히 뉴미디어 아트를 지원하는 대만의 정책에 발맞춰 디지털 아트에 힘쓰고 있다. 2007년부터 지하 1층에 ‘DigiArk’라는 디지털 아트 센터를 따로 마련해 디지털 아트의 흐름을 소개하고 대만의 디지털 아티스트를 알리며 관련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을 정도. 현재 DigiArk에서는 ‘몸’을 주제로 한 디지털 아티스트 그룹전

야저우 대학 현대미술관의 전시실 ⓒ Asia University Museum of Modern Art
국립대만미술관이 타이중은 물론 대만의 명실상부한 대표 미술관이라면 몇 년 전 문을 연 야저우 대학현대미술관(亞洲大學現代美術館, Asia University Museum of Modern Art)은 타이중의 새로운 문화 예술 스폿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곳이다. 줄여서 ‘아시아 모던(Asia Modern)’이라고도 부르는 이곳은 2007년 대학 측에서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Tadao Ando)에게 건축을 제안해 2013년 가을 완공했다. 노출 콘크리트에 V자 각도를 전체적 테마로 설계한 대담하고 전위적인 건축물. 몇 편의 전시를 장기적으로 개최하는데, 지난 2월부터 2018년 9월 1일까지 대만 문화의 중요한 거점으로 떠오른 타이중을 조명하며 대만 미술의 역사를 돌아보는

안도 다다오가 설계해 2013년 개관한 야저우 대학 현대미술관 ⓒ Asia University Museum of Modern Art
길 위에서 만난, 생동하는 예술
근사한 미술관과 건축물을 둘러보는 것이 잘 차려놓은 정찬을 즐기는 느낌이라면 타이중 문화창의산업원구(臺中文化創意産業園區, Taichung Cultural and Creative Industries Park)는 길거리 마켓에서 다양한 먹거리를 맛보는 즐거움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곳은 런던의 해크니나 시드니의 치펀데일 지역처럼 과거의 공장 지대가 예술지구로 변화했다는 스토리가 있다. 어쩌면 도시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소는 이런 곳이 아닐까?
타이중 문화창의산업원구는 100년도 더 전에 지은 양조장이고, 1998년 양조장이 이전한 이후에는 오랫동안 버려진 공간이었다. 대만 정부는 낡은 공장 건물은 그대로 둔 채 주변에 예술적 분위기로 꾸민 공원을 조성했고, 공장 건물 내에는 여러 개의 갤러리와 카페, 편의시설을 구성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주로 대만의 젊은 현대미술 작가들이 전시회를 개최하는 갤러리는 공장 내부의 오래된 인테리어와 전시 작품이 어우러진 거친 분위기에서 독특한 멋이 느껴진다.

공장 지대가 예술지구로 탈바꿈한 타이중 문화창의산업원구
옛 공장 지대에서 예술적 정취를 만끽했다면 타이중 문화창의산업원구에서 도보로 7분 거리에 위치한 20호 창고(20號倉庫, Stock 20)도 잊지 말고 들러볼 것을 권한다. 타이중 기차역의 화물 창고를 미술가의 작업실과 전시실로 개조했다. 20호 창고 주변에서는 눈에 띄는 화려한 벽화와 아트 숍을 구경하는 재미도 누릴 수 있을 것. 문화창의산업원구와 20호 창고는 옛 건물을 철거하기보다 예술가들에게 내준 이 도시의 문화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장소다.
세련된 디자인의 건축물과 최신 시설을 갖춘 공연장, 대만의 아티스트를 지원하는 미술 기관, 젊은 예술가들의 참신한 작업과 다양한 볼거리로 가득한 거리에서 타이중의 진짜 매력이 빛난다. 문화로 한층 풍요로워진 타이중의 변화가 더 많은 사람의 발길을 이끄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타이중의 국립대만미술관
에디터 안미영(myah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