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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ne Together

LIFESTYLE

시간을 물질의 개념으로 바라보는 건 영화 <인터스텔라>의 주인공 쿠퍼와 브랜든 박사만이 아니다. 시간이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는 일반 상대성 원리나 양자역학 같은 과학적 용어를 언급하지 않고도, 우리가 사는 3차원의 세계에서 시간이 물질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람이 있다. “오랜 기간에 걸친 영상 작업을 통해 나는 시간을 명백한 물질로 경험하고 있다. 그것은 내가 아는 한 가장 실질적인 재료다.” 슬로모션 기법으로 시간을 쭉 늘여, 얼기설기 벌어진 그곳을 심미안으로 관찰하는 빌 비올라가 그렇다.

The Encounter, 비디오/사운드 설치, Color high-definition video on plasma display mounted on wall, 92.5×155.5×12.7cm, 19분 19초, 배우 Genevieve Anderson, Joan Chodorow, 2012
사진 Kira Perov 사진 제공 국제갤러리

“슬로모션으로 보여주는 것은 시간을 늘인다는 개념이다. 스웨터를 양쪽으로 쭉 늘이는 것과 비교하면 쉽다. 스웨터를 늘이면 그 속의 구멍이나 다른 패턴이 보인다. 어떤 한 가지를 오랫동안 깊이 관찰할수록 뭔가 새로운 것이 보이기 때문에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이다.” -빌 비올라

 

“나는 항상 우리가 경험을 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더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는 일상에서 늘 물질적인 것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많은 것을 간과한다. 여섯 살 때 삼촌과 함께 호수에 놀러 갔다 물에 빠져 익사할 뻔한 경험이 있다. 호수 밑바닥까지 몸이 가라앉은 상태에서 문득 위를 올려다봤는데, 놀랍도록 아름다운 푸른빛의 세상이 보였다. 삼촌이 나를 구하러 들어왔을 때도 나는 그 아름다운 세상을 계속 바라보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런 나를 삼촌은 억지로 끌어냈다. 죽을 뻔한 그때의 경험이 아주 중요하게, 계속해서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지금도 자주 그 순간이 생각난다. 이승이 아닌 세상, 아마 내 마음속 세상일 텐데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비디오 예술의 거장 빌 비올라는 물, 불, 흙, 공기와 같은 자연적 요소를 슬로모션이라는 시간의 방식에 버무려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작가다. 그의 말에 따르면 물, 불, 흙, 공기, 이 4가지 요소는 “지구 상의 강력한 힘”이다.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 여섯 살, 일찌감치 강력한 힘의 본질을 알아버린 그는 그것에서 비롯되는 고통과 파괴, 죽음, 구원 등을 작가가 된 후 수십 년째 영상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러나 빌 비올라의 작품에 관람객이 열광하는 건 거기서 이어지는 다음 메시지 때문. 그는 물, 불, 흙, 우리를 둘러싼 공기의 흐름이 늘 파괴적인 것은 아니고 변화의 도구로, 재생의 힘으로, 자아를 초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말한다.
일례로 영국 세인트폴 대성당 프로젝트에 설치한 ‘물의 순교자’(2014년)가 그렇다. 순교자의 원어는 그리스에서 온 단어로 ‘증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늘날의 매스미디어는 현대인을 모두 타인의 고통을 지켜보는 증인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 빌 비올라의 생각. ‘물의 순교자’ 도입부는 고통에 몸부림치던 인물이 바닥에 정지한 채 서 있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타인이 고통받는 것을 보면서도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밧줄에 묶인 그의 발목이 들리고 위에서는 폭포수처럼 물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윽고 완전히 거꾸로 매달린 인물이 더욱 세차게 퍼붓는 물을 맞는 그 기나긴 과정을, 빌 비올라는 순교자들이 고통과 죽음을 극복해 신념을 지키려는 모습이라고 말한다. 즉 폭력적 물줄기가 결론적으로 인간의 의지, 인내력, 신념, 희생과 도치되는 것이다. 게다가 슬로모션으로 편집한 덕분에 그의 작품을 보는 관람객의 감정은 극대화되고, 그 때문에 감동과 깨달음은 몇 배가 된다.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내적 여행을 즐기는 빌 비올라를 만나 그의 시간은 어떤 방향과 속도로 흐르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국제 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맞아 진행한 기자회견

시대의 흐름상 이제는 현대미술계에서도 영상의 시대라는 말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예전부터 나왔지만 최근에야 사람들이 조금씩 수긍하는 것 같아요. 아마도 가고시안이 백남준 작가와 전속 계약을 맺으면서 그런 이야기가 더 많이 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1970년대 초반, 비디오 아트를 통해 그전까지 이어온 예술의 형식이나 체제를 타파하기 시작했을 때 당신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현대미술의 흐름이 지금처럼 영상으로 넘어올 것이라는 사실을 그 당시 인지하고 있었나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 영상 작업을 시작할 때 비디오 아트가 워낙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일단 기계에 대해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어요. 동료들과 뭔가 해보려 해도 기술적인 것을 먼저 알아야 했기에 교수님께 그런 질문을 하러 동료들과 함께 찾아가곤 하던 기억이 납니다. 새로운 기술을 공부하며 비디오 아트라는 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죠. 비디오 아트의 천재적 거장 백남준이 당연히 그 당시 마스터였어요. 그와 함께 일할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막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1970년대는 세계의 중심이 유럽에서 뉴욕으로 서서히 옮아가고 있을 때라고 볼 수 있어요. 그 시기에 아시아의 현대미술가도 뉴욕으로 많이 몰려들었고, 당신이 대학을 졸업한 것도 그즈음이었죠. 작가로서 매우 좋은 타이밍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요? 워낙 여러 가지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 시기였어요. 그 시기에 대학을 졸업하고 활동할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1970년대에 당신은 백남준 작가의 일을 도왔고 야니스 쿠넬리스, 비토 아콘치 등과 함께 비디오 아트 스튜디오를 운영했습니다. 새로운 예술 장르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그들과 작업한 초기에 주로 어떤 고민이나 주제를 나누었는지 궁금해요. 당시 ‘플럭서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 걸로 기억합니다. 저는 뉴욕 북쪽의 시러큐스 대학을 졸업했는데, 그 학교는 아트 스쿨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아트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학과에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죠. 1970년대 당시 제 작품의 주제도 아트에 한정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당신이 보여주는 영상 예술의 근원은 인간과 자연, 우주에 대한 경의와 깊은 성찰에 있다는 게 느껴져요. 당신의 경력을 살피다 보니 여러 도시로 이주한 경험이 있던데, 다양한 여행과 낯선 장소에 체류한 경험이 작품에 영향을 주진 않았나요? 물론 어떤 식으로든 낯선 장소, 새로운 경험은 제 작업에 영향을 미치죠. 하지만 무엇보다 백남준 선생의 영향이 가장 컸어요.

물의 순교자(Water Martyr)
비디오/사운드 설치, Color high-definition video on flat panel display mounted vertically on wall, 107.6×62.1×6.8cm, 7분 10초, 제작 책임자 Kira Perov, 배우 John Hay, 2014
사진 Kira Perov 사진 제공 국제갤러리

물의 순교자(Water Martyr)
비디오/사운드 설치, Color high-definition video on flat panel display mounted vertically on wall, 107.6×62.1×6.8cm, 7분 10초, 제작 책임자 Kira Perov, 배우 John Hay, 2014
사진 Kira Perov 사진 제공 국제갤러리

밤의 기도 (Night Vigil)
비디오/사운드 설치, Color rear-projection video diptych, two large screens mounted on wall in dark room, Overall projected image size: 2.01×5.28m; room dimensions variable, 18분 6초, 배우 Jeff Mills, Lisa Rhoden, 2005/2009
사진 Kira Perov 사진 제공 국제갤러리

(한국) 사람은 현대미술 중에서도 유독 영상 작품이 어렵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백남준 작가도 생전에 “내 작품 앞에 3분을 붙잡아두면 최고 성공”이라고 했을까요. 아마 영상 작품을 ‘영상’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보려 하는 대중의 의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일 겁니다. 관람자가 영상 작품을 대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부분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네, 맞아요. 한국 관람객은 영상 작품을 어렵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다. 하지만 영상 작품 관람에 대해 특별히 조언을 하기보다는, 관람객이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전시장에 와서 봤으면 좋겠어요.

이번 전시는 2003년, 2008년에 이어 7년 만에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세 번째 개인전으로 최근 2년간 작업한 7점의 주요 영상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입니다. 관람객 중에는 당신의 작품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도 있을 텐데, 그들이 어떤 자세로 작품을 감상하는 게 좋을까요? 먼저 휴대폰을 끌 것?(웃음) 요즘 많은 사람이 작품을 대할 때 휴대폰으로 사진부터 찍는 걸 봤는데,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우선 영상을 감상한 후 사진을 찍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사진 찍는 행동은 작품과 관람객 사이에서 감상을 방해하는 요소입니다. 작품이 주는 메시지를 제대로 느낄 수 없죠. 그랑 팔레 전시에서는 작품 수가 많기도 했지만 전시장을 전혀 색다른 분위기로 연출한 덕분에 관람객의 평균 관람 시간이 2시간 30분 정도였습니다. 매우 놀라운 일이죠. 관람객도 그 정도 시간이 흘렀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몇몇 미디어 작가의 작품을 보면 기술이 아이디어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걸 느껴요. 당신은 말하고자 하는 걸 현재 영상 기술로 100% 표현하고 있나요? 언제나 한계는 있을 수밖에 없고, 또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한계라는 고난과 역경이 있어야 뭔가 강력한 것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재 기술로 원하는 것을 다 쉽게 만든다면 그 결과물은 얄팍한 수준이겠죠. 한계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깊이 파고들었을 때 무언가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실수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 경우 실수가 심오한 깨달음으로 이어진 경우가 많아요. 최고라고, 멋지다고 생각하다가도 다시 보면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죠.

당신은 영상이라는 매체의 한계를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현대미술에서 영상의 기술과 인식의 진화는 어떤 과정을 거칠 것으로 예측하나요? 잘은 모르겠지만 비디오 아트는 앞으로 괜찮을 것 같아요.(웃음) 특별히 걱정은 안 합니다. 미래에 전 여기 없겠지만 많은 젊은 사람이 도와주지 않을까요? 인생은 무한히 흘러가는 강이에요. 인간은 이 강에 들어왔다 언젠가 사라집니다. 저도 어느 시점에 이 강에서 사라질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뭔가를 이 세상에 남기죠. 원시시대를 생각해보면 그때도 도구가 있었고, 사람들이 그것을 이용해 뭔가를 했기에 예술이라는 것이 존재했죠. 앞으로도 그럴 거라 미래의 예술에 대해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고민해야 할 점은 뭘까요? 중요한 건 지금 우리가 이 순간을 어떻게 잘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에요. 시간의 이쪽 편에는 태어나는 사람이 있고 저쪽 편에는 죽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태어나고 인생의 어느 순간에 도달했다가 또 사라지죠. 이 양쪽은 무한한 세상이고 우리가 존재하는 여기 가운데만 유한합니다. 굉장히 아름다운 현세죠. 그러므로 사라지기 전에 뭔가를 남겨야 해요. 장자가 남긴 말을 인용하고 싶네요. “탄생이 시작이 아니고 죽음도 끝이 아니다.”

40년간 작품 안에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그리고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해 질문해왔다고 들었습니다. 그 답은 찾으셨나요? 아니요. 애초에 명확한 답이 나올 수 있는 질문이 아니죠. 나라는 존재는 그냥 나일 뿐,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그전의 내 모습을 알게 될 것이고, 그때는 나와 내 주변 환경이 어떻게 연결되고 맞물리는지 좀 더 물러서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은 뭔가를 설명하기보다 조금 물러서서 사람들이 스스로 느끼도록 하는 것이죠.

기자회견이 끝나고 사인 중인 빌 비올라

Bill Viola is
빌 비올라(64세)는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미국관 대표 작가로 선정되면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초창기부터 비디오라는 현대적 예술 언어와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정신적·심리적 의식의 흐름이라는 주제를 탐구해왔다. 1997년 휘트니 미술관에서 <빌 비올라: 25년의 연구>, 2003년 미국 폴 게티 미술관에서 <욕망>, 2006년 도쿄 모리 미술관에서 <첫 번째 꿈>, 2014년 파리 그랑 팔레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번 국제갤러리 개인전에서는 최근 2년간 작업한 7점의 주요 영상 작품과 이전의 대표작을 선별해 소개한다. 5월 3일까지.
문의 735-8449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사진 강태욱  취재 진행 안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