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s are All that Matters
3월 27일부터 5일간 열린 아트 바젤 홍콩은 지난해에 비해 더 많은 한국인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국내 주요 아트 컬렉터는 VIP 파티와 해외 갤러리가 주최하는 디너에 참석하느라 바쁜 모습이었고, 페어 부스에서는 일반 관람객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작품을 감상했다. 이미 한국에선 “홍콩을 여행하려면 아트 바젤 홍콩이 열리는 3월 말이 제격”이라는 이야기가 돈 지 오래다. 미술이 이제는 한국인들의 홍콩 여행 키워드 중 하나가 된 것이다. 독일을 대표하는 에스터 시퍼 갤러리의 에스터 시퍼 대표가 홍콩으로 가기 전 굳이 서울에 들른 데에는 이렇듯 현대미술에 점차 친근하게 다가가는 한국인의 아트 무드를 느끼려는 까닭이 컸다.

올해 아트 바젤 홍콩에는 35개 국가와 지역을 대표하는 242개의 우수한 갤러리가 참여했다. 지난해 32개국 248개의 갤러리가 참여한 것과 비교하면 갤러리는 6개 줄었지만 참여 국가는 오히려 3개국이 늘었다. 관람객도 8만여 명에서 올해는 8만8000명으로 증가했다. 매출도 주요 이슈였는데, 자우키의 ’17.02.71-12.05.76’은 180만 달러, 게오르그 바셀리츠의 회화는 180만 달러, 조지 콘도의 ‘Boy in Striped Shirt’는 120만~140만 달러, 윌렘 더 쿠닝의 ‘Seated Woman’은 97만 5000달러, 안토니 곰리의 ‘Wait’는 46만 달러에 판매되며 5일간 1조 원 이상 매출을 올린 것으로 주최측은 추정했다. 7년 전 아트 바젤 홍콩이 시작할 당시 “신생 페어라 판매를 예측하기 어렵고, 젊은 컬렉터가 많은 만큼 어디로 튈지 모르는 페어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리스크가 큰 만큼 성장 가능성도 큰 법. 많은 사람의 우려와 달리 지난 7년간 아트 바젤 홍콩은 미술 공공 인프라가 부족한 홍콩에서 대안적 역할을 잘 수행했다. 미국과 유럽 갤러리에 아시아의 새 고객을 만나는 더없는 기회를 열어주며 아시아 대표 미술 행사로 자리를 잡았다. 올해 페어 부스에서 만난 서구 갤러리스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그것을 증명했다. “아트 바젤 홍콩은 그간 아시아와 거리감이 있던 유럽과 미국의 갤러리에는 더더욱 중요한 행사가 되었어요. 갤러리는 각 대륙의 중요한 작가와 작품을 한눈에 보여줄 수 있고, 관람객은 현재 글로벌 아트 신에서 일어나는 현대미술의 담론을 엿볼 수 있으니까요.”
독일 쾰른에서 시작해 베를린으로 이전하기까지 만 30년을 독일 베를린 아트 신의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한 에스터 시퍼 갤러리(Esther Schipper Gallery)도 비슷하다. 사실 에스터 시퍼 갤러리는 아트 바젤 홍콩이 5월에 열리던 2014년까지만 해도 비슷한 기간에 열리는 베를린 갤러리 위크엔드와 프리즈 뉴욕, 그리고 6월 초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아트 바젤을 위한 준비 때문에 아트 바젤 홍콩에 참여하지 못했다. 하지만 3월로 옮긴 2015년부터 아트 바젤 홍콩에 참여하며 에스터 시퍼 갤러리 작가에게 높은 관심을 보이는 아시아의 아트 컬렉터, 갤러리와 5년째 만나고 있다.
에스터 시퍼(Esther Schipper) 대표는 서울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바젤로 가려면 트럭 한 대면 되지만, 홍콩의 경우 비행기로 보내야 합니다. 운송이나 유통 차원에서도 굉장히 다르기에 어떤 작품을 보여주는지에 대한 차이는 있어요. 하지만 분명한 건, 어떤 전시회에서도 전시한 적이 없는 작품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홍콩에서 선보일 마틴 보이스(Martin Boyce), 앙겔라 불로흐(Angela Bulloch), 라이언 갠더(Ryan Gander), 토마스 사라세노(Toma´s Saraceno), 필리프 파레노(Philippe Parreno) 등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홍콩으로 이동하기 전 서울의 미술관을 방문하고 파트너 갤러리, 고객들과 미팅 자리를 마련한 에스터 시퍼대표를 만났다. 그리고 시간을 거스르는 예술 도시 쾰른과 베를린에서 존경받는 갤러리스트로 사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1 올해 아트 바젤 홍콩에 참여한 에스터 시퍼 갤러리 부스 전경, Courtesy of the artists and Esther Schipper, Berlin.
2 Philippe Parreno, Quasi Objects: My Room is a Fish Bowl, AC/ DC Snakes, Happy Ending, Il Tempo del Postino, Opalescent acrylic glass podium, Disklavier Piano, 2014, Various helium inflatable float balloons in the shape of fish, electrical plugs and adapters, lamp with Arne Jacobsen lampshade, electrical system, electrical wire and plug, magnifying glass, opalescent acrylic glass podium, LED lights, 6 plugs, Exhibition view: quasi-objects, Esther Schipper, Berlin 2014-2015, Courtesy of the artist and Esther Schipper, Berlin.
아트 바젤 홍콩을 앞두고 한창 바쁜 시기에 서울에 오셨습니다. 특별한 일정이 있었나요? 저는 주기적으로 서울을 방문합니다. 클라이언트를 만나고, 서울의 주요 전시를 둘러보고, 비즈니스 파트너를 만나기도 하죠. 특히 아트 바젤 홍콩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행사입니다. 이렇게 대규모 아트 페어가 열리는 곳 주변 지역의 미술 시장을 알아두는 것도 중요합니다. 작년에는 토마스 사라세노 전시가 있어 대만과 중국에 들렀어요. 1년에 몇 번씩 이런 식으로 주요 아트 페어가 열리는 주변 도시를 방문하곤 합니다.
어제 도착하셨다고 들었는데, 혹시 그사이 들른 미술관이 있나요? 오늘 오전에 아모레퍼시픽을 방문해 새로운 건축을 보고 미술관도 둘러보고 왔어요. 매우 인상적이었죠. 남은 일정 동안 컬렉터와 큐레이터들을 만나고 갤러리도 방문할 예정입니다.
올해는 에스터 시퍼 갤러리 오픈 30주년입니다. 1989년 쾰른에서 시작해 베를린 미테, 쇠네베르크 우퍼 그리고 포츠다머 슈트라세로 확장, 이전하기까지 소회가 궁금합니다. 30년이면 한국에선 강산이 세번이나 변하는 시간이거든요. (긴 숨을 내쉬며) 저 또한 긴 여정이었다고 생각해요. 많은 걸 이뤄낸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30년이나 된 것 같지 않고요. 하지만 확실한 건, 분명 긴 시간이었다는 거예요.
베를린에 위치한 갤러리에서는 상반기에 루마니아 출신 작가 플로린 미트로이(Florin Mitroi)의 회고전과 인기 작가 라이언 갠더의 개인전이 열립니다. 올해 전시 라인업에 30주년의 의미를 담았나요? 그것과는 크게 상관없다고 보면 됩니다. 갤러리가 2년 전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를 했는데, 제게는 작가들이 새 공간에서 멋진 전시를 하는 게 훨씬 중요해요. 작가 개개인과 조율한 일정을 바탕으로 연간 전시 라인업을 짜기에 30주년과는 큰 연관성이 없죠. 현재 30년의 갤러리 활동을 디지털 아카이브로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이건 매우 중요한 작업입니다.
대표님은 몇 년 전 <모노클>과의 인터뷰에서 “갤러리를 오픈할 당시 상업 갤러리라기보다는 아트 플랫폼에 가까웠다”고 회상하셨습니다.1989년에 오픈한 신생 갤러리 에스터 시퍼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초반엔 1인 기업 형태였어요. 인턴과 직원 그리고 저까지 3명이 일했죠. 그때도 지금처럼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었지만, 지금보다는 덜 철저했어요. “이 전시는 다음 달이나 두 달 뒤에 하자” 이런 식으로 즉흥적으로 프로그램을 짜곤 했죠. 1995년 베를린으로 이사하면서 스태프가 조금씩 늘었고, 지금은 37명 정도 됩니다. 30년 전 갤러리를 처음 열 때 함께한 작가들 또한 몇 명은 지금도 함께 일하고 있어요.
초보 갤러리스트에게는 전시 기획과 더불어 작품 판매나 영업도 결코 쉽지 않은 문제였을 텐데, 대표님도 그 부분이 힘들었나요? 초반에는 직원이 적다 보니 갤러리 수익만으로도 먹고살 정도는 되었어요. 어떻게든 늘 수익이 났죠. 1인 기업 형태의 갤러리는 컬렉터 한두 명만으로도 먹고살 수는 있으니까요.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보다 힘들었던건 작품을 홍보하고 갤러리 관람객이 마음을 열고 이해하도록 돕는 일이었어요. 그건 지금도 어려워요.
좋은 작가를 발굴하는 것은 작품을 판매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큰 실패 없이 멋진 작가를 발굴할 수 있는 심미안이 중요하죠. 저 혼자 작가를 선정하는 게 아니라 스태프 모두 작품을 보며 함께 이야기를 나눕니다. 작가를 선정할 때 갤러리스트는 갤러리의 커리어뿐 아니라 작가의 커리어 또한 중요시해야 합니다. 작가가 현재 어떤 시기,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아야죠. 최근 우리는 영상 작업과 뉴미디어 작업을 하는 여성 작가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어요. 작가도, 우리도 서로 원했죠. 우리 갤러리가 성공하게 된 배경에는 ‘작가와 갤러리가 서로 함께 일하고 싶어 한다’는 부분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것 같아요.
에스터 시퍼 갤러리에는 중견 작가도 많지만, 실력 있는 30대 젊은 작가가 많은 점이 눈에 띕니다. 10~15년 전에는 1970년대생 아티스트를 주로 만났다면, 요즘은 1980년대생 작가들을 관심 있게 보고 있어요. 우리는 젊은 작가와 이름 있는 중견 작가의 전시를 조화롭게 구성하는 편입니다.
아티스트가 얼마나 개성 있는 작품을 하는지는 갤러리 커리어 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약 40명의 에스터 시퍼 갤러리 소속 작가들은 저마다 고유한 특색이 있는데, 대표님이 작가들을 직접 살피기도 하나요? 작가 담당 디렉터, 전시와 작품 프로덕션 담당 등을 따로 두고 있습니다. 작가와 작품을 면밀히 검토하고 관리하는 팀 덕분에 저와 작가들이 수월하게 소통할 수 있죠. 예전엔 저 혼자 모든 걸 했다면, 이제는 팀별로 움직이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성 강한 아티스트와 늘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에스터 시퍼 갤러리만의 노하우가 있을까요? 오랜 인연을 유지하지만, 갤러리와 작가는 서로의 커리어에서 상호 의존적 관계이기에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매우 복잡합니다. 우정이 있지만 서로 생계를 유지해줘야 하는 관계인 것 또한 명백하죠. 보이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많은 요소가 관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다양한 감정과 정서의 층이 겹겹이 쌓인 관계라고 할까요. 그래서 갤러리와 작가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복잡하면서도 특별하죠.
대표님은 네덜란드 출신 미술 사학자였던 어머님 덕분에 일찍이 미술을 접했습니다. 예술을 가까이하며 자랐다는 건 참 멋진 일이죠. 어릴때 미술로 얽힌 어머니와의 추억이 있나요? 어머니는 1970년대 아방가르드 미술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1972년에 어머니가 친구분과 함께 카셀 도쿠멘타에 다녀온 뒤 들려준 흥미로운 이야기예요. 1972년 카셀 도쿠멘타는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기념비적 전시예요. 스위스의 전설적 큐레이터 하랄드 제만이 디렉터를 맡았는데, 큐레이터가 아티스트를 뛰어넘은 전시라고 평가받았죠. 어머니가 들려주신 그때의 전시 이야기 덕분에 저 또한 미술을 공부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하랄드 제만의 영향도 많이 받았습니다.
대표님은 2004년부터 ‘갤러리 위크엔드 베를린’을 이끌고 있습니다. 주말을 포함해 4일 정도 여는 행사로 컬렉터를 부스가 아닌 갤러리로 직접 불러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데요. 이 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갤러리 위크엔드 베를린’은 갤러리의 ‘이니셔티브(솔선수범해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계획)’로 보면 됩니다. 저와 노이게림 슈나이더(Neugerriem Schneider)의 디렉터 팀 나이거(Tim Neuger)와 막스 헤츨러 갤러리(Galerie Max Hetzler)의 막스 헤츨러(Max Hetzler)가 주도했죠. 우리 셋은 세계 곳곳의 작가들이 베를린으로 모여든다는 점에서 분명 이 도시가 특별한 매력을 지녔다고 생각했어요. 베를린에는 전시 공간도 많을 뿐 아니라 각각의 갤러리는 특징이 뚜렷하고 독창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죠. 갤러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다양한 건축물도 구경할 수 있고요. 이런 점에서 ‘갤러리 위크엔드 베를린’은 매년 똑같은 부스에서 비슷한 작품을 보여주는 아트 페어와는 다른 재미가 있어요. 갤러리 입장에서는 각자가 표방하는 작품이 어떤 건지 제대로 보여줄 수 있고, 클라이언트와 아트 애호가들을 부스가 아닌 ‘갤러리’로 모여들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하죠.
뉴욕에서는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갤러리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는 광경도 벌어집니다. 대표님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나요? 네. 한 번은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 전시였고, 다른 한 번은 토마스 사라세노 전시였죠. 지금은 공간이 훨씬 넓어져 줄 서는 광경을 보긴 어려울 것 같아요.
아트 바젤 홍콩에서 에스터 시퍼 갤러리는 마틴 보이스, 앙겔라 블로흐, 시엘 플로이어, 사이먼 후지와라, 도미니크 곤잘레스 포레스터, 타오 후이, 토마스 사라세노의 작품 등을 선보입니다. 홍콩에 가져갈 작품을 선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홍콩에 가져갈 작품을 선정할 때는 먼저 작가들과 어떤 작품이 가장 적합할지 대화를 나눠요. 아트 페어는 지역과 접근성의 차이 때문에 가져갈 수 있는 작품이 많이 다르죠. 설치시간이나 기술적 측면도 생각해야 하고 자동차, 비행기 등 이동 수단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더구나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아트 바젤은 1993년부터 참여해왔지만, 홍콩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도 작품을 선정하는 데 영향을 미칩니다.
아트 바젤만 해도 3월엔 홍콩, 6월엔 바젤, 12월엔 마이애미 비치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대표님이 보는 각 지역의 아트 마켓은 어떻게 다른가요? 자세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우리에게 유럽은 익숙한 시장입니다. 미국의 경우 가장 활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전통적 시장인 것 같아요. 아시아의 아트 시장과 비교할 때 미국 사람들은 미술을 궁금해하고 열린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빠르게 발전하는 시장이기도 하죠.
한국에는 여성 갤러리 대표가 많지만, 해외에서는 남성의 파워가 더 커 보입니다. 독일에서 여성 갤러리스트로 살기는 어떤가요? 쉽지 않아요. 독일은 현재 14년째 여성 장관도 있고, 다양한 기관의 대표도 여성이 많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미술 시장에서는 남자가 경영진 자리에 있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2018년 매거진 <아트 리뷰>가 선정한 ‘파워 100인’에 대표님 이름이 올랐습니다. 간혹 갤러리스트와 큐레이터를 만나보면 ‘파워’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데, 대표님은 어떤가요? 제겐 큰 영광이죠. 사실 ‘파워’라는 건 애매한 단어이긴 합니다. 영향력을 말하는지, 대중에게 익숙한 정도인지 정확하지 않잖아요? 어떤 의미의 ‘파워’인지는 몰라도, 파워가 있는 사람으로 선정된 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주변에서는 대표님을 ‘미테를 예술 지구로 발전시킨 장본인’, ‘독일을 대표하는 갤러리스트’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우리 작가들요. 작가들과 함께 성장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함께 시작한 1세대 작가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명성을 얻었고, 그 발전 과정을 지켜본다는 건 제게 큰 영광이었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그 후에도 꾸준히 다양한 경력을 갖춘 작가들과 함께할 수 있었어요. 이렇듯 갤러리엔 작가가 전부입니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 장소 협조 플랫폼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