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emblage with Dom Perignon
록 스타의 사진전에 갔다. 그의 피사체는 파티를 즐기는 비범한 친구들. 그리고 그날 그 자리, 그 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준 돔 페리뇽. 파티에는 술이 빠질 수 없고 예술가 집단에서 그것은 종종 돔 페리뇽이다. 돔 페리뇽이 함께한 소통의 시간, 흑백의 아름다운 아상블라주.

1 ‘Father and Daughter’. 레니 크라비츠가 가장 아끼는 사진이다.
2 아상블라주 전시장의 레니 크라비츠.
“I’m always on the run.” – 레니 크라비츠 ‘Always on the Run’ 가사 중에서
기자에게 출장이란 그곳이 제아무리 지상 최고의 휴양지라 해도 온전히 ‘일’의 영역을 벗어나긴 힘들다. 내가 밟는 그 길이 모두 한 줄의 글이 되어야 하기에 항상 어느 정도 긴장감을 유지하며 끊임없이 감각 세포에 귀 기울여 수첩과 휴대폰에 끼적여야 한다. 그럴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적어도 머릿속 어딘가에 마감 기간까지 반드시 유효한 기억의 메모를 남겨야 한다. 그래서 때론 출장 자체가 부담스럽다. 하지만 레니 크라비츠(Lenny Kravitz)를 만나러 가는 이번 뉴욕행은 선뜻 자원하고 나섰다. 끊임없이 물고 물리는 일상의 과제에 지쳐 잠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레니 크라비츠의 ‘Fly Away’를 음악어플의 재생 목록 1번 트랙에 올렸다. “I want to get away I want to fly away.” 후렴구를 따라 부르며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맨해튼 시내로 들어가는 옐로 캡 안에서 나의 뮤직 넘버는 ‘New York City’로 바뀌었다. 바쁜 도시, 화려하고 매력적이지만 생존을 위해 치열해져야 하는 곳, 그러나 여기를 사랑할 수 밖에 없고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라는 희망적 가사. 도시를 여자로 비유한 그만의 은유적 표현이 흥미롭다. 부지런히 레니 크라비츠를 알아가기로 했다. 1990년대 지미 헨드릭스, 포스트 프린스라 불릴 만큼 보컬은 물론 작곡, 프로듀싱 능력을 겸비했으며 거의 모든 악기를 직접 연주하는 만능 뮤지션. 록 뮤직으로 상을 받았지만 흑인 솔과 펑키, 힙합까지 그의 장르는 대중음악 전반을 아우른다. 1989년에 데뷔했으니 올해로 30년 차. 최근 4년 만에 열세 번째 정규 앨범

3 리샤 지오프로이와 함께 전시 오프닝 인사를 하는 모습.
4 안무가 뱅자맹 밀피에와 조 크라비츠가 춤추는 장면을 찍는 레니 크라비츠.
5 전시를 함께 감상하며 대화를 나누는 레니와 조 크라비츠, 애비 리, 알렉산더 왕.
“We got to let love rule.” – 레니 크라비츠 ‘Let Love Rule’ 가사 중에서
그의 음악 세계를 알기 원했고, 취재가 확정된 후부터 한 달여 그의 음악을 파고들었지만, 사실 에디터가 레니 크라비츠를 만난 연유는 전혀 다른 데 있다. 추석연휴가 끝나자마자 14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와서 이 전설적 록 스타 앞에 데려다준 이는 바로 돔 페리뇽이다. 17세기 후반 피에르 페리뇽 수도사가 만든 와인은 300년 후 그의 이름을 보틀에 새기고 세계에서 가장 패셔너블한 회사 LVMH를 통해 최고 샴페인이 되었다. 돔 페리뇽 만큼 호기심이 강하고, 특히 디자인에서 강한 도전 정신을 내세우는 샴페인 하우스가 또 있을까. 돔 페리뇽을 애정했던 앤디 워홀 트리뷰트 에디션, 마크 뉴슨의 블랙 박스와 네온 그린 라벨, 데이비드 린치를 위해 백색 금속 공학을 탐구하기도 했던 이들이 이제 막 레니 크라비츠를 택했다. 레니 크라비츠는 돔 페리뇽의 열렬한 팬으로, 돔페리뇽 최고 실력자인 ‘셰프 드 카브’ 리샤 지오프로이와 10년 넘게 친분을 유지해왔다. 이들이 소통하는 방식은 ‘영감’이다. 리샤 지오프로이는 레니 크라비츠의 개성과 스타일, 그리고 무한한 재능과 창의성이 영감을 줄 것이 라고 했다. 레니 크라비츠는 돔 페리뇽의 역사와 유산, 그리고 품질을 향한 헌신에 영감을 받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번 협업은 진정한 우정과 서로의 존중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돔 페리뇽은 레니 크라비츠에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타이틀을 선사했다. 그는 3년의 계약 기간 동안 다채로운 활동을 예고했는데, 첫 번째 프로젝트가 캠페인 사진 작업이다. 본래 의학을 전공한 리샤 지오프로이가 와인 제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연구해 두 번째, 세 번째 절정에 이른 P2, P3 시리즈를 탄생시키지 않았던가. 음악가인 레니 크라비츠의 사진 작업 또한 이와 같은, 기대를 완벽하게 뛰어넘는 참신함을 기대하게 한다. 실은 그는 본업이 무색하게 그동안 사진, 건축, 인테리어 디자인, 영화(<헝거 게임> 시리즈의 패션 디자이너 시나가 바로 그다!)등의 분야에서도 활약하며 문화와 세대의 경계를 초월하는 아티스트적 면모를 보였다. 특히 이 록 스타는 어딜 가든 라이카 카메라를 휴대해 그의 삶과 주변 사람들을 기록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의 사진을 보면 그가 꽤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돔 페리뇽과 제겐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사랑을 가장 강력한 영감으로 삼는다는 것이죠.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온 세상에 이야기를 전하고 또 공유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가 사진으로 보여주고 싶은 사랑 이야기는 비범한 재능을 가진 이들의 우정에 관한 것이다. 이를 위해 LA 할리우드 언덕에 위치한 그의 자택, 그가 직접 디자인한 빌라에 연예인 동료를 초대해 파티를 열었다. 사전에 공개한 일부 사진을 이미 온라인에서 본 적이 있다. 강한 명암 대비와 신선한 앵글로 각 아티스트의 강렬하고 특별한 개성이 담긴 사진이었다. 작품은 사진전과 국제 광고 캠페인을 통해 전 세계에 공개할 예정이다.

레니 크라비츠가 찍은 캠페인 사진.
위부터_ ‘La Cene’, ‘Selfie’, ‘Arrival’, ‘Girl Power’.

“The greatest time that you’ll ever find.” – 레니 크라비츠 ‘New York City’ 가사 중에서
사진전의 타이틀은 ‘아상블라주(Assemblage)’다. 첼시의 갤러리 지구에 위치한 뉴욕에서 가장 시크한 전시장 중 하나인 ‘스카이라이트 모던’에서 열렸다. 흑과 백이 지배한 공간, 그곳에서 내가 느낄 수 있는 천연의 빛이라곤 예의 길쭉한 잔에 담긴 은은한 금빛 돔 페리뇽뿐이었다. 레니 크라비츠의 발걸음을 따라 화보집을 넘겨보듯 사진을 눈으로 빠르게 스캔하고, 다시 돌아와 천천히 음미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모든 장면은 자연스러웠다. 1970년대 파파라치 사진가 론 게일라(Ron Galella)의 사진을 연상시켰다. 다소 차가운 흑백사진 속에선 사람의 눈빛과 미소가 최소한의 온기를 전했다. 사진은 가벼웠지만, 이를 보는 우리는 더없이 진지했다. 누군가 레니 크라비츠의 삶은 보헤미안의 슈퍼컴퓨터를 요약한 것 같다고 말했다. 레게 머리, 가죽, 태슬, 뱀가죽 부츠라는 스타일 공식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따르는 그에게 이런 복고풍에 대한 집착은 각별한 이유가 있다. 자신이 성장하던 1960년~1970년대만큼 패션과 예술 분야에서 많은 재능과 사치를 발산한 시대는 없다는 것. 어쩌면 그는 이번 기회를 통해 자타 공인 돔 페리뇽 마니아인 앤디워홀이 친구들과 함께 돔 페리뇽을 즐긴 바로 그 시대의 서클 문화를 부활시키고 싶었는지 모른다. “레니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특별한 매력을 지닌 아티스트죠.” 레니 크라비츠가 사람 사이의 연결 고리를 만들었고, 돔 페리뇽은 이를 결속하는 촉매 역할을 했다. “돔 페리뇽은 사람을 하나로 모으는 샴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통이야말로 돔 페리뇽의 핵심이죠. 이러한 소통을 통해 영감을 얻고 무언가를 해나가게 되는 겁니다.” 수천 명이 환호하는 팬들 앞에서 에너지 넘치는 화음을 내지르며 배짱 있게 무대를 휘젓던 평소 모습과 달리 레니 크라비츠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차분했다. 기자단을 향한 정중한 매너를 보건대, 아마도 그는 완벽한 파티 진행자였을 것이다. 그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 앞에서 그의 친구들은 분명 마음을 열 수밖에 없었을 터. 오스카상을 수상한 대배우 수잔 서랜던, 천의 얼굴을 가진 영화계의 전설 하비 카이텔, 현대적 무용 정신의 화신인 안무가 뱅자맹 밀피에, 축구 선수 나카타 히데토시, 패션 천재 알렉산더 왕, 패션모델 출신 영화배우 애비 리, 그리고 그의 열정과 끼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딸, 조 크라비츠. 이들의 모습은 “삶이 여기 있기에 우리는 즐긴다. 우리의 인생과 우정을 위해 돔 페리뇽과 함께 건배!”라고 외치는 듯했다. “촬영하던 그날 밤은 우리가 집에 있을 수 있는 마지막 밤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새로운 주인이 인수하기로 돼 있었죠.” 마지막이라는 상황은 언제나 드라마틱하다. ‘최후의 만찬(La Cene)’ 사진을 보며 레오나르도의 동명의 명작을 떠올렸을 때 등 뒤로 오프닝 파티의 만찬 테이블이 채워지고 있었다. 최후의 만찬장의 그것처럼 하나로 길게 이어진 사각 테이블, 레니 크라비츠의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크고 작은 초를 밝혔으며 돔 페리뇽과 환상의 페어링을 선사할 굴과 각종 해산물,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한 로스트비프까지 총천연색 파티 음식이 차례로 등장했다. 그리고 이어진 퀘스트러브의 흥겨운 디제잉과 댄스 타임. 그날 그 자리에 모인 레니 크라비츠의 또 다른 셀레브러티 친구와 VIP는 돔 페리뇽을 마시며 각자의 방식으로 그 시간을 즐겼다. 파티는 오래도록 이어졌다. 분명 그 여운도 오래갈 것이다. 레니 크라비츠가 노래한 ‘It ain’t over ’til it’s over’ 처럼 끝날 때까지 결코 끝난 것이 아닐거다. 아니, 여정은 방금 시작되었다. 레니 크라비츠와 돔 페리뇽이 함께 만들어갈 다시없는 재미있고 기발한 창조적 행보 말이다.

LA 빌라에서 레니 크라비츠.
Lenny’s Sincerity
레니, 사진에 대한 당신의 열정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정말 재능이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감사합니다. 네다섯 살부터 카메라를 접했어요. 아버지가 NBC 뉴스기자였거든요. 베트남 전쟁을 취재하러 가셨는데, 집에 돌아올 때 라이카 카메라를 가져오셨어요. 버튼이 많은 수동 카메라였죠. 당시엔 놀잇감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스물한 살 때 그 카메라를 물려받았지만, 여전히 다룰 줄은 몰랐죠. 그런데 제가 음반 계약을 하고 뛰어난 사진가들 앞에서 사진 찍히는 경험을 하게 된 이후저는 조금씩 이 과정에 관심이 생겼어요. 사진가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그들이 저를 암실로 데려갔죠. 그때부터 카메라와 사진의 메커니즘에 대한 질문을 시도했지만, 시간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2012년, 2013년부터 진지하게 촬영을 시작했어요. 2015년 ‘플래시(Flash)’라는 타이틀로 첫 전시를 열었죠. 이번이 두 번째예요. 플래시는 언제나 대중의 시선을 받는 록 스타의 삶의 본질을 다뤘죠. 제 사진을 찍으려고 쫓아다니는 사람을 피사체로 한 작업이었습니다. 한때는 불편했던 순간이 이젠 사냥꾼과 사냥감 사이의 아름다운 춤처럼 승화된 셈이랄까요.
리샤 지오프로이와 친해진 계기가 궁금합니다. 친구의 소개로 리샤를 처음 만났는데, 평소 와인과 샴페인에 관심이 많아 자주 어울리게 됐어요. 함께 와인 테이스팅을 하고 식사를 즐기며 그 세계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었죠. 그리고 어느 날 제가 리샤를 콘서트에 초대했어요. 그는 콘서트를 본 뒤 와인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고 말하더군요. 이후 우리는 창조적 과정에 대한 지적인 대화를 나눴어요. 음악을 만드는 일이나 와인을 만드는 일 모두 예술의 한 형태잖아요. 우리는 서로의 예술을 이해하고 서로를 향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어요. 언젠가 둘이 함께 일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인 거죠.
특별히 좋아하는 돔 페리뇽 빈티지가 있나요? 1964년 빈티지를 너무나 좋아합니다. 그 밖에도 돔 페리뇽의 많은 빈티지가 매력적이에요. 사람을 초대하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과 어울리며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자리에 늘 돔 페리뇽이 함께하죠.
와인 전문가 리샤 지오프로이에게 특별히 배운 것이 있나요? 맛보고, 표현하는 방법이요. 강렬함, 집중력 이런 단어들. 그리고 페어링에 관한 것을 알려줬어요. 7가지 요리와 7가지 빈티지가 짝을 이룬 ‘7가지 감각(The Seven Sensitivities)’ 디너는 다시 생각해도 최고입니다.
존경하는 사진작가가 있나요? 다큐멘터리 사진가 브루스 데이비슨(Bruce Davidson)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론 게일라의 ‘Studio 54’는 ‘영감의 교과서’가 되었습니다. 배우, 음악가, 사회 인사가 모여 파티를 즐기는 모습을 담은 그의 흑백사진이 이번 전시의 모티브였죠.
왜 흑백을 선택했나요? 컬러도 좋지만 흑백사진이 좀 더 표현력이 풍부하고, 모순일 수도 있지만 왠지 더 사실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상블라주’를 통해 본격적인 사진작가의 경력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음악, 디자인, 사진 모두 제 마음속 같은 장소에 들어 있는 창조의 원천입니다. 모두 제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기에 매체의 제약을 두고 싶지는 않아요.
무엇이 이토록 끊임없이 당신을 움직이게 하죠? 음악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사랑, 그리고 사랑 그 자체요. 저는 여전히 고등학교 때 악기를 처음 접한 소년의 마음으로 연주를 해요. 이러한 열정과 노력이 제가 더 성장하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게 하죠. 관객으로부터 얻는 에너지 또한 너무 아름답습니다.
딸과 함께한 작업은 어땠나요? 정말 재밌었어요. 특히 그 아이는 매우 활기차고 사람들을 이어주는 촉매 역할을 누구보다 잘해냈죠. 저는 하비와 뱅자맹, 나카타와는 전혀 교류가 없었고 그들 중 절반이 배우지만 대본 없이 누군가와 처음 자리를 함께하는 건 그들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거예요. 다들 뭘 해야 할지 몰라 쭈뼛거릴 때 조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고 긴장을 풀어줬어요. 이후 저녁 식사와 댄스파티까지(집 지하에 나이트클럽이 있어요),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사진을 보면 알 거예요. 가식이 아닌 진짜라는 걸.
첫 앨범 발매 이후 거의 30년이 지났어요. 기분이 어떤가요? 열심히 인생을 배웠죠. 제 인생 최고의 작품은 지금 제 앞에 있어요.
오늘날 아티스트의 진정한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자신의 창조적 능력을 이용해 메시지를 전하고 사랑을 전파해야 합니다.
대중이 돔 페리뇽과 함께한 당신의 작품을 어떻게 기억하길 원하나요? 우정과 존경,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에디터 이재연(jyeon@noblesse.com)
사진 제공 MH Champagnes & Wines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