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 Alone in Babylon
그 어떤 양식과 시류로도 규정할 수 없는 아티스트, 로베르토 쿠오기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시간을 가로지르며 자연과 기술, 대중문화와 순수예술을 폭넓게 넘나든다. 밀라노 외곽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을 방문해 그의 방대한 작품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Roberto Cuoghi로베르토 쿠오기

Belinda, 450×315×400cm, 2013
ⓒ Roberto Marossi
로베르토 쿠오기의 많은 작품은 제목이 ‘무제’이며, 모호함이 작업의 바탕이 되는 만큼 관람객에게 명확한 재료를 제시하지 않는다.
Untitled, 2014
Courtesy of the Artist ⓒ Andre Morin for Le Consortium
로베르토 쿠오기가 자신의 모습을 반영해 작업한 ‘Untitled’, 2004년 작품. 그는 자신의 모습을 소재로 삼는 경우가 많아 작가 사진을 공개하지 않는다.
ⓒ Alessandra Sofia
Untitled, 2014
Courtesy of the Artist ⓒ Andre Morin for Le Consortium
바빌론을 정원이라고 생각해왔는가? 신화는 언제나 현대의 삶에 수익을 창출해주는 수많은 캐릭터의 원천일까?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파리를 잡듯 과거를 붙잡으려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로베르토 쿠오기(Roberto Cuoghi)의 작품에서 바람은 무거운 공기 속 매듭이다. 어떤 형태를 이루기 직전 분자들이 치밀해진 것과 같은 상태다. 새로운 의미와 형태의 사슬을 따라 탄소 원자가 재편된 것이다.
신화와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쿠오기는 실험실, 고고학 분야와 꾸준히 협업해왔는데, 이는 지속적인 변화나 유동적 궁금증을 자아내는 새로운 형태의 발명과 프로세스를 통한 예술 작업을 위해서다. 폭력적 반란의 시대와도 같은 1970년대의 이탈리아는 일부 예술가를 도시의 펑크족, 거리의 싸움꾼, 스스로 방황을 선택한 방랑자로 만들었다. 그 시대에 태어난 로베르토 쿠오기는 독단적인 삶을 살았다. 예술가로서 그 어떤 이탈리아 양식이나 국제적 행동주의의 경향에서도 자신의 전설을 살찌울 만한 요소를 찾기 힘든 삶이었다.
한 예술가가 자기 아버지의 변형인 대머리의 뚱뚱한 중산층 이탈리아 지식인이 되기로 결정했을 때는 쉬운 지름길이 있다. 쿠오기는 자기 아버지로 변신했다. 그것으로 끝이다. 이 상황은 하나의 퍼포먼스가 아니라 현실 그 자체다. 단순히 얼굴을 찌푸리고 괴짜처럼 옷을 입어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의 변신은 육체적 변형이자 사회적·문화적 적응을 위한 일상의 노력이다. 그 노력은 회화, 애니메이션, 부조 등의 예술 작품으로 이어진다.
쿠오기가 자기 아버지로 변해가는 그 과정은 오래전 그가 물건을 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될 때까지 계속 손톱을 길러 마치 괴물이나 외계인, 추한 남자가 등장하는 영화 속 이미지로 보인 것만큼이나 불편하고 이상한 상황이다. 환상과 학문의 결합으로 재창조하기 위해 신화의 시대로 관심을 돌리기 전까지 그는 자신의 신체 훼손과 변형을 통한 작업에 집중했다.
쿠오기는 2008년 토리노 외곽의 카스텔로 디 리볼리(Castello di Rivoli) 미술관에 ‘수일라쿠(?uillakku)’라는 제목의 음향 및 조각 시리즈를 설치했다. 수년간 연구와 실험을 거쳐 재현한 악기로 연주한 음악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아시리아제국이 쇠락하고 니네베(Nineveh)가 적의 침략으로 쑥대밭이 된 7세기 메소포타미아로 상상 속 여행을 떠나게 한다. 아시리아인들이 신을 향해 탄식한 것에서 영감을 받은 이 강렬한 청각적 풍경은 관람객이 마치 수난의 시기를 겪는 수백 명의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이 여행은 다른 나라로 이어졌다. 2008년 런던 ICA와 2014년 뉴욕 뉴 뮤지엄(New Museum)에 전시된 것이다.
아시리아의 폐허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소음을 연구하면서 쿠오기는 악마 ‘파주주(Pazuzu)’의 작은 부적 조각상을 찾아냈다. 개의 머리와 영양의 뿔, 전갈의 꼬리가 어우러진 파주주는 아시리아 신전에서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인 악령이었고, 그 형상은 또 다른 악령을 쫓는 부적으로 사용됐다. 사람보다 큰 사이즈로 설치한 첫 번째 파주주 조각상은 카스텔로 디 리볼리의 전시장을 압도하며 관람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현대미술계에서 조각상에 이렇듯 구체적인 임무를 부여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특히 그것이 느낌이나 행운에 관한 임무라면 말이다. 조각상은 예술이라는 새로운 위상을 얻기 위해 그 힘을 넘겨준다. 이 두 가지 위상을 모두 취한 작가는 거의 없다. 뉴욕 록펠러 센터에 석상 작품 ‘휴먼 네이처(Human Nature)’를 전시한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는 선사시대의 투박함과 마법을 동시에 구현했다. 쿠오기는 아시리아 신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에서 이러한 마법을 형태와 재료의 문제에 접목했다.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 중 하나인 아르세날레(Arsenale) 전시장에 비스듬한 자태로 당당하게 선 그의 작품 ‘벨린다(Belinda)’(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 수상)는 생물의 형태이자 외계인 같은 캐릭터로 실제로는 현미경으로 봐야 하는 작은 생물체를 3D 프린터와 겹겹의 코팅으로 거대하게 확대한 것이다. 쿠오기는 이 접근법을 더 발전시켜 2014년 프랑스 르 콩소르시움(Le Consortium) 전시회에서 선보였다. 파주주를 토대로 한 조각상, 동물의 신체 부위와 그것의 변형을 조합한 그의 작품은 계속해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즐거움을 자아낸다.
그의 작품에서 대중문화에 대한 표현은 별로 눈에 띄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일본 만화 스타일의 구성 요소가 전면에 드러나기도 한다. 그래서 너무 쉽게 접근하면 작품이 공상과학영화의 소품처럼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는 지역별로 크게 다르지 않은 우리의 과거인 신화에서 비롯된 이야기를 고찰한 작품인데 말이다. 이 전시에는 쿠오기가 쓴 텍스트의 다중 언어 번역과 몇 가지 언어의 순환을 보여주는 수수께끼 같은 책도 함께 등장했다.
새로운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 기법이 필요하고, 오래된 지식을 재발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쿠오기의 작품에 사용한 세라믹 소재가 좋은 예다. 그는 헌신적인 예술가이자 탐험가, 개념을 확장하고 새로움과 환상을 제공하는 작가다.
Untitled, 53.2×57.2cm, 2010
ⓒ Alessandra Sofia
Untitled, 2014
Courtesy of the Artist ⓒ Andre Morin for Le Consortium
?uillakku, Sound installation, 2008.
ⓒ Alessandra Sofia
당신의 작품을 잘 모르는 아시아인에게 작품의 주요 아이디어를 가장 먼저 어떤 말로 설명하시겠습니까?
‘변신’과 ‘변형’이란 단어로 설명하겠습니다. 죽은 것과 산 것을 구별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변신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건 아닙니다. 의사도 나는 평범한 욕구를 가진 사람이라고 했죠. 변신은 부족하고 형편없고 보잘것없는 나 자신에게 스스로 가한 비난입니다. 내 작품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징역형을 사는 한 인간의 열정에서.
예술, 재료, 기술, 데이터, 신화 등을 창조하는 것은 형태를 만들어가는 과정의 한 부분입니다. 그 시작점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내가 화려하지 않은 선택을 하려 한다는 것 말고는 밝힐 것이 없습니다. 욕망이란 본래 그런 것이니까요.
예술계는 무엇이든 단순화하길 좋아합니다. 작가를 하나의 형태, 스타일, 관심사로 정의하려 하죠. 하지만 당신의 작품은 모두 그 반대의 모습을 보입니다. 각 시리즈가 특정 지식과 연구, 절차와 형태를 필요로 하니까요.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할 때 미리 많은 부분을 가늠하나요, 아니면 그저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태도로 어느 방향이든 나아가나요?
내 마음은 늘 활짝 열려 있기 때문에 가끔 스스로를 보호해야 할 정도죠. 자유에 대한 생각도 너무 앞서나가 결국은 어딘가에 감금을 당할 정도입니다. 현기증이 날 만큼 글로벌화된 현대사회에 대한 혼란스러움은 정통주의와 근본주의를 탄생시켰죠. 혼란은 아직 느껴지지 않은 ‘질서’지만 느끼기 전에는 엉망인 상태일 뿐입니다.
자신보다 마흔 살이나 많은 남자로 변신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나요? 그리고 이후 실제의 신체 나이로 돌아온 느낌은 어땠나요? 그 경험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마치 전혀 다른 두 사람처럼 보였는데 실제로도 그렇게 느꼈는지 궁금해요.
일단 해보고 나서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판단하는 게 좋은 습관인지 나쁜 습관인지 잘 모르겠어요. 건강의 측면에서 보자면 중세시대의 고문과도 같은 경험이었죠. 난 나 자신이 우월한 생명체라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설명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네요.
“내가 하는 모든 작업에는 빙의 같은 측면이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빙의란 아주 강력한 개념인데, 그것이 어떻게 당신과 당신의 작품에 영향을 주는지 설명해주십시오.
작업을 하면서 적당히 하는 법을 아는 것은 프로페셔널한 자세가 아닙니다. 몇 년 전 나는 ‘방대함’의 성질을 파악하려 애썼습니다. 그것을 하나의 소명이자 신중한 사회와 맞서 싸우는 하나의 부정적 가치로 이해했죠. 만약 하나의 생각이 종양처럼 퍼져나가지 않는다면, 그 생각은 하찮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암에 대해 강렬한 반응을 보이지, 건강한 대상을 보고 그러진 않잖아요. 그것이 논란이 되는 건 그 방대함이 ‘자연의 법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Untitled, 165×80×50cm, 2015
ⓒ Alessandra Sofia
Pazuzu, 2014
Courtesy of the Artist ⓒ Andre Morin for Le Consortium
당신은 시리즈마다 독특한 형태적 전략을 구사합니다. 그 시리즈가 애니메이션, 동영상, 만화책 같은 대중문화의 구성 요소든 조각이나 음악 같은 역사적이고 신화적인 대상이든 말이죠. 마치 작품을 위해 새로운 형태나 상황을 창조하는 ‘연구 센터’ 같습니다.
거의 그렇습니다. 내 작품들이 존재할 수 있는 건 그 연구 센터가 보조금을 받지 않기 때문이죠. 연구 센터는 자신의 신경증만을 위해 일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아시리아의 언어와 의식에 관한 연구는 언제 시작했나요? 특히 기원전 612~609년 아시리아제국의 문화에 집중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보통 더 높은 수준의 질서에 대해 생각하지만, 더 높은 수준의 무질서에 대해 생각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고 느껴야 합니다.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날 때 그것을 우연의 산물로 볼 수도 있지만, 일종의 벌이라는 인상도 남아 있습니다. 언제부터 ‘수일라쿠’ 작업을 생각하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나는 그것이 자본주의의 위기나 중동 혹은 미제국의 쇠락을 은유하도록 의도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니네베의 몰락을 탄식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을 뿐이죠. 나는 종교와 도덕의 원천인 순응과 질서의 중요성을 알고 있습니다. ‘수일라쿠’는 그 자신에 대한 대학살의 선언이며, 사람들이 그들을 초월한 원칙을 공유하게 한 일종의 정화입니다.
‘파주주’는 무엇(또는 누구)인가요? 작은 부적이던 파주주를 거대한 조각상으로 만든 이유가 궁금합니다.
파주주는 모든 이교도의 우상숭배 관습을 특징짓는 애니미즘의 표현입니다. 파주주의 영혼은 모든 존재에 깃들어 있습니다. 신의 본질은 그것을 묘사하는 재료에 있습니다. 우상숭배는 문화적으로 유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아이의 행동에서 찾아볼 수 있는 즉흥적 욕구에 대한 반응이죠. 우상을 만드는 것은 신과 직접적 관계를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이 바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특권을 누리는 것이죠. 따라서 파주주를 소유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재앙과 질병의 악령을 통제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는 물신숭배라는 정신적 전략에 기본적으로 내재된 모호함으로 지배하기 위해 침묵하게 하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며, 형태와 눈을 부여해 사물의 복잡성을 단순화하도록 구성하는 겁니다. 한 아이디어에 명칭을 부여하는 것만으로도 그 아이디어는 하나의 제품이나 사물과 같은 존재로 변화하고 영속화합니다. 나의 ‘파주주’는 조각상이 아닙니다. 단지 루브르 박물관 동양 미술 전시관의 열대에 전시된 작은 펜던트를 크게 확대해놓은 것일 뿐이죠. 내 ‘파주주’는 과거지만 흘러가지 않는 과거입니다.
2014년에는 프랑스 르 콩소르시움에서 중요한 전시를 했습니다. 그전 해에 베니스에서는 ‘벨린다’를 선보였죠. 지금은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요?
계속 다양한 작업을 진행 중이에요. 예전에 바나나 숙성 창고로 쓰던 공간을 새로 꾸미고 있죠. 새로운 재료로 작업하기 위해서이기도하고, 디종에 있는 르 콩소르시움에 전시할 새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더 많은 작품을 제작하고 싶어요. 구찌(Gucci)그룹이 그 지역을 매입해 패션 센터로 탈바꿈시키려 한다니 난 투자를 꽤 잘한 셈입니다. 그래서 옛 토탈(Total) 그룹의 프랑스어 간판을 떼고 철자를 바꾼 후 현관에 다시 걸었어요. 이제 그 간판엔 ‘Lotta’라고 쓰여 있죠(Lotta는 ‘투쟁’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곧 그리스에서 선보일 ‘하이드라 프로젝트(Hydra Project)’에 관해 말씀해주세요.
원래는 도자기로 인공 산호초를 만들고 싶었어요. 하지만 세라믹 작업이 너무 복잡해서 준비가 끝났을 땐 이미 너무 늦어버렸더군요. 그래서 기본적 형태의 가마를 직접 만들어 설치하고, 게를 그 가마에서 불태운 다음 단백질로 만든 음식물 속에 차갑게 냉각시키는 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1000℃쯤 되는 온도에서 작품을 탄생시킬 예정이에요.
로베르토 쿠오기
1973년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태어났다. 밀라노의 브레라 미술대학(Brera Academy of Fine Arts)을 졸업했으며 회화, 조각, 디지털 애니메이션, 드로잉, 사운드, 설치 작업을 통해 방대한 예술 세계를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2008년 런던 ICA, 2014년 뉴욕 뉴 뮤지엄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인 아르세날레에서 ‘Belinda’로 특별상을 수상했다. 현재 밀라노 외곽에 작업실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
글 김승덕(컨템퍼러리 아트 센터 르 콩소르시움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