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el_건축 기행의 성지, 바젤
예술과 건축의 도시 바젤은 ‘아트 바젤 ’ 말고도 볼거리가 풍부하다. 세계적 건축가들의 손길로 탄생한 미술관과 산업 건축물은 바젤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다.

1997년 에른스트 바이엘러와 힐다 쿤츠 부부가 설립한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
스위스 바젤의 6월은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다. 세계 최대 아트 페어인 ‘아트 바젤’을 찾은 전 세계 미술 애가호와 건축 기행을 온 여행객들로 붐비기 때문. ‘건축의 메카’ 바젤, 미술 축제가 아니더라도 세계적 건축가 렌초 피아노(Renzo Piano), 헤어초크 & 드 뫼롱(Herzog & de Meuron), 마리오 보타(Mario Botta) 등 이디자인한 건축물 자체만으로 이곳을 방문할 이유는 충분하다.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Fondation Beyler Museum), 팅겔리 박물관 등의 미술관을 비롯해 허브 캔디 브랜드 리콜라(Ricola), 제약 회사 노바티스(Novatis) 등의 산업 건축물까지, 바젤서에 놓치지 말아야 할 다채로운 건축물을 소개한다.

1 캐나다 출신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립한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 2 자갈과 콘크리트를 섞어 만든 독특한 벽이 인상적인 샤울라거 미술관. 3 1996년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바젤 솔리투데 공원에 지은 팅겔리 박물관. 4 바젤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쿤스트무제움 바젤. 사진 JK
예술적 활력을 불어넣는 미술관
바젤이 예술과 건축의 메카라는 명성을 누리게 된 데에는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아트 바젤 창시자인 에른스트 바이엘러(Ernst Beyeler)와 힐다 쿤츠(Hilda Kunz) 부부가 1997년에 설립한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파울 클레(Paul Klee),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sntein) 등 근현대 거장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을 디자인한 이는 이탈리아 건축가 렌초 피아노. 그는 ‘오직 작품만을 위해재 존하는 전시 공간’을 목표로 인공적 조명은 최대한 자제하고 은은한 태양광이 비추도록 설계했으며, 미술관 외관은 푸른 잎이 우거진 나무와 조화를 이루면서도 절제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것이 특징. 바이엘러 재단 미술관에서는 개관 20주년을 기념해 올해 인상주의부터 현대미술까지 아우르는 전시를 준비했다. 모네에 이어 5월 28일부터 10월 1일까지 독일 사진작가 볼프강 틸만스(Wolfgang Tilmans)의 개인전을 만날 수 있다고 하니 놓치지 말자.
바젤 인근의 독일 도시 바일암라인(Weil am Rhein)에 위치한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Vitra Des igMnuseum)은 1989년 캐나다 출신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설계한 이래 산업 가구와 조명 디자인 분야에서 중요한 전시장 중 하나로 손꼽힌다. 비트라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가구를 비롯해 전 세계의 가구 1600여 점을 만날 수 있는 것이 특징. 건축물이라기보다는 직선과 곡선으로 이뤄진 조형물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외관과 달리, 내부는 기능적 측면을 고려해 깔끔하게 설계한 점이 흥미롭다. 6월에 방문한다면 비트라 가구의 궤적을 돌아보는 전시
1996년 바젤 솔리투데 공원에 설립한 팅겔리 박물관(Museum Tinguely)은 삼성미술관 리움의 뮤지엄1을 설계한 건축가로 유명한 마리오 보타의 작품이다. 붉은색 건물로 독특한 외형을 자랑하는 박물관은 벽돌 같은 전통 재료를 사용해 지형에 어우러진 건물을 짓는 그의 건축 철학이 집약되어 있다. 1954년부터 1991년까지 수집한 장 팅겔리의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하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부인 니키 드 생팔(Nikki de Saint Phale)이 기증한 덕분에 가능한 일. 전기모터를 이용한 움직이는 조각 같은 작품 외에도 드로잉과 각종 포스터, 카탈로그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장 팅겔리의 작품뿐 아니라 그의 작품에 대한 오마주를 표현한 아티스트의 작품을 함께 만날 수 있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 프랑스의 젊은 작가 제롬 종데(Jerome Zonder)는 죽음을 쫓는 주술 행위를 팅겔리의 설치 작품으로 보여준 ‘Mengele-Totentanz’ (1986년)에서 영감을 받아 드로잉 전시
바젤 뮌헨슈타인에 있는, 독일어로 ‘보는 창고’를 뜻하는 샤울라거 미술관(Schaulager)도 바젤의 건축 여행 리스트에 추가할 만한 기념비적 건물이다. 2003년 런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을 설계한 건축가 듀오 헤어초크 & 드 뫼롱이 수장고와 전시장을 결합한 공간을 탄생시킨 것. 자갈과 콘크리트를 섞어 만든 독특한 벽은 그 생김새만으로 호기심을 자아내는데,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는 수장고의 기능을 고려했다. 지상 4층, 지하 1층으로 이뤄진 샤울라거 미술관은 크게 지상 2~4층의 수장고와 1층과 지하의 전시 공간, 건물 중심부에 위치한 강의실, 도서관, 하역장 등 편의시설로 나뉜다.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수장고와 달리 유리 벽으로 설계한 편의시설에서는 소장품을 나르고 연구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바젤 미술관 건축의 하이라이트는 세계 최초의 공공 미술관이자 바젤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쿤스트무제움 바젤(Kunstmuseum Basel)이다. 한스 홀바인 더 영거(Hans Holbein the Younger),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등 15세기부터 19세기 작가의 작품을 비롯해 1960년대 이후의 현대미술 작품까지 방대한 컬렉션을 보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나의 본관과 2개의 분관을 운영 중인데, 본관은 1936년 보수주의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건축가 루돌프 크리스트 (Rudolf Christ)와 그의 동료 폴 보나츠(Paul Bonatz)가 설계했다. 1980년 전시와 강의 등 다양한 기능을 하는 두 번째 분관 게겐바르트(Gegenwart)를 설립한 이후, 2016년엔 본관과 지하로 연결되는 세 번째 신관이 탄생했다. 신관 설계 작업에 참여한 바젤의 젊은 건축가 그룹 크리스트 & 간텐바인 (Christ & Gantenbein)은 천연 라임스톤과 카보나이스 스틸을 사용해 클래식하면서도 미래적인 느낌을 구현했다. 쿤스트무제움 바젤에서는 넓은 공간을 활용한 다채로운 전시가 열리는데, 그중 신관에서는 세잔의 방대한 드로잉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The Hidden Cezanne〉(6월 10일~9월 24일), 분관 게겐바르트에서는 조각가 리처드 세라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필름 전시〈Richard Serra_Films and Videotapes〉(5월 20일~10월 15일) 등을 개최한다고 하니 참고하자.

5 붉은 벽돌과 프레스코화로 화려하게 장식한 바젤 시청사. 6 후기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을 결합한 바젤 대성당. 7 제약 회사 노바티스는 본사의 부지 전체를 21세기 유토피아로 변모시키고 있다.
건축적 연금술사의 도시, 바젤
이대로 미술관만 보고 떠나긴 아쉽다. 바젤은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건축물이 즐비한 곳이기 때문. 1459년 설립한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인 바젤 대학교, 후기 로마네스크·고딕 양식의 바젤 대성당, 붉은 벽돌과 프레스코화로 화려하게 장식한 시청사는 바젤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여기에 헤어초크 & 드 뫼롱과 디너 앤 디너(Diener & Diener), 페터 메르클리(Peter Markli) 등의 유명 건축가가 지은 철도 통제실 시그널 박스(Signal Box)와 제약 회사 노바티스를 비롯한 현대적 건축물까지, 이렇게 좁은 도시 안에 수준 높은 건축물이 밀집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미술 전시 공간만 40개가 넘는 바젤에서 짧은 일정의 건축 답사를 기획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럼에도 몇 점의 작품이라도 눈에 담을 수 있는 건 바젤을 방문한 이의 특권이다.
도시의 예술적 오브제가 된 건축물
바젤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듀오 헤어초크 & 드 뫼롱의 작품을 소개하기 전 그들의 건축 스타일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헤어초크 & 드 뫼롱은 단순하고 미니멀한 디자인과 실용성을 추구하는 한편 돌, 구리판, 플라스틱 등 재료의 물성에 집중해 우리의 일반적 인식을 확장하는 건축 작품을 창조해왔다. 바젤에는 앞서 소개한 샤울라거 미술관을 비롯해 그들이 설계한 건축물이 많지만 여기서는 산업 건축물에 집중해 소개할 예정이다. 투어에 나서기 전 한 가지 조언을 건네면 미술 작품을 바라보듯,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길 권한다. 시간의 변화에 따라 건축물의 얼굴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헤어초크 & 드 뫼롱이 1994년 아우프뎀볼프(Auf dem Wolf)에 지은 철도 통제실 시그널 박스는 구리 띠로 둘러싼 6층 건물이다. ‘포장’된 외부는 내부를 철저히 숨기려 하지만 창문 근처의 구리 띠만은 내부와 은밀히 소통하고, 그 틈을 뚫고 햇빛이 내부로 스며든다. 구리는 전자제어 장치의 재료이자 주변의 녹슨 철로를 연상시키지만 여기서는 건축자재로 재탄생했다. 실제로 보면 작은 박스 같은 외관과 달리 규모가 꽤 큰 것을 알 수 있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건물의 색깔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도 특징. 1999년엔 그 근처에 두 번째 시그널 박스를 건축했는데, 재료와 공법은 동일하지만 형태는 조금 달라졌다. 주위의 경관을 반영하는 그의 건축 철학에 따라 처음의 박스형 건물은 사다리꼴 부지에 맞춰 한쪽 모서리가 기울어진 형태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건축물이 주위의 경관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는 사실은 다시 봐도 놀랍다.
2001년에 완공한 장크트야코프 파르크(St. Jakob Park)는 바젤 도심의 장크트야코프 거리에 있는 스위스 최초의 다목적 축구 경기장으로, 현재 FC 바젤의 홈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헤어초크 & 드 뫼롱은 축구장 외피만 디자인했는데, 천창의 개구부를 덮는 용도의 반투명 플라스틱 덮개를 축구장 외벽의 재료로 사용했다. 낮엔 은은한 우윳빛 도자기 같은 축구장이 밤이 되면 TV 스크린처럼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축구장 내부에서 조명이 흘러나오면 플라스틱 외벽도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데, 위에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차 붉은빛이 옅어지는 것이 흥미롭다.

바젤 출신의 건축가 헤어초크 & 드 뫼롱이 1999년 설계한 철도 통제실 시그널 박스. Photo by Alexander Paulus, Courtesy of Fotopaulus
리콜라와 노바티스가 시도한 건축적 실험
헤어초크 & 드 뫼롱은 초기부터 외벽에 평범한 재료를 반복적으로 구축하는 기법에 집중해왔다. 이들에게 일찍부터 건축설계를 의뢰한 브랜드는 허브 캔디를 만드는 리콜라다. 1987년 바젤 인근 도시 라우펜(Laufen)에 지은 리콜라 창고는 이터닛(석면시멘트) 패널을 반복해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자세히 살펴보면 패널이 기울어져 있는데, 패널을 자체 하중에 의존해 수직·수평의 반복 배열로 축조해 완성한 것이다. 헤어초크 & 드 뫼롱은 부지 주변의 목재 보관 방식을 응용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산업과 건축가의 동맹은 바젤에서 드물지 않다. 인근의 비트라(Vitra) 단지는 대표적인 대중적 사례로 최근 들어 라인 강변에 위치한 바젤의 제약 회사 노바티스가 그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본사의 부지 전체를 21세기 유토피아로 변모시키려 하는 것. 격자 체계의 맨해튼 블록처럼 독립적인 특성으로 고유의 건물을 짓고 있다. 프랭크 게리, 렘 콜하스(Rem Koolhaas), 헤어초크 & 드 뫼롱, SANAA 등 스타 건축가들이 초빙되었고 2030년경 완공을 목표로 하나하나 작품을 완성해가는 중이다. 그중 가장 먼저 완공한 건축물은 바젤 건축가 디너 & 디너의 2005년 작품 ‘포럼3’다. 다양한 파스텔 톤의 색유리가 중첩된 외피는 스위스 화가 헬무트 페데를레(Helm Fuetderle)와 협업을 통해 완성한 것으로, 반사되는 주변 풍경과 투과되는 내부 이미지에 따라 컬러가 시시각각 바뀐다. 원래 염료 회사로 시작해 발전한 노바티스의 기원과 그 과정을 드러내듯 각기 다른 색이 소통하고 결합하며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한다.
이듬해 봄, 취리히 건축가 페터 메르클리는 노바티스 파르마(Pharma) 건물을 완공했다. 우선 선택한 건축자재에서 비범함이 느껴진다. 산화피막 처리한 알루미늄으로 덮인 창틀과 건물은 기묘한 샴페인 빛깔을 띠는데, 귀금속의 아름다운 빛에 가깝다. 내부의 알루미늄 난간이나 트래버틴 대리석처럼 고급 재료로 마감한 깔끔한 바닥, 계단 등이 시선을 끈다. 하지만 그보다 아름다운 것은 옥상 위의 공조 시설이다. 반드시 필요한 기능이지만 그동안 숨겨온 덕트를 금빛 알루미늄 패널로 마감해 미니멀리즘 조각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젤의 수많은 건축물을 둘러보니, ‘바젤은 어쩌면 사소한 재료로 아름다운 작품을 탄생시키는 건축의 연금술이 실현된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디터 최윤정(amych@noblesse.com)
글 백아영(프리랜서), 남성택(한양대학교 교수) 사진 제공 스위스 정부 관광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