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dding Time
부티크에 진열된 시계만으로는 부족한가? 더욱 특별하고 희소가치 있는 시계를 원하는가? 방법이 있다. 전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시계 경매에 참가하는 일!
약 83억7000만 원에 주인을 찾은 파텍필립의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Ref. 5016A 모델. 손목시계 역사상 최고 경매가를 기록한 주인공이다.
2015년 11월, 시계업계에 실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희귀한 근육 질환인 뒤셴형 근위축증 연구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2년에 한 번 개최하는 온리워치 경매에서 파텍필립의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모델 한 점이 730만 스위스프랑, 우리나라 돈으로 약 83억7000만 원에 낙찰된 것이다. 손목시계 경매 사상 최고 금액이었다. 사실 이 시계는 진귀한 골드나 플래티넘 소재를 사용한 것도, 화려한 다이아몬드를 빼곡하게 세팅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파텍필립에는 ‘식은 죽 먹기’인 퍼페추얼 캘린더와 미니트리피터, 투르비용 기능을 한데 담은 복잡한 시계 중 하나였다. 문제는 바로 스틸 소재의 케이스. 보통 골드로 케이스를 만드는 브랜드라 스틸을 사용한 시계가 오히려 희소가치가 높아진 것이다. 더욱이 시계에 탑재한 무브먼트는 몇 년 전 생산을 멈췄고, 골드 소재를 사용한 동일 사양의 모델 또한 매장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니 ‘세상에 단 하나뿐인 시계’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쥔 이 시계를 접한 시계 애호가들의 동공이 이리저리 흔들릴 수밖에. 여기서 잠깐, 시계를 손에 넣은 이는 이 비싼 시계를 손목에 얹고 거리를 활보하기 위해 경매에 참가한 걸까? 에디터의 짧은 생각으로는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 이유는 파텍필립의 또 다른 시계 한 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99년 런던에 기반을 둔 경매 회사 소더비(Sotheby’s)를 통해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헨리 그레이브스 슈퍼컴플리케이션(Henry Graves Supercomplication, 1933년 제작)은 24가지 기능을 탑재하고 900개의 부품으로 완성한, 당시 가장 복잡한 시계 중 하나였다. 낙찰 가격은 시계 경매 역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약 123억 원!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건 이 시계가 2014년 같은 경매 회사를 통해 재등장했고, 낙찰가는 2323만7000 스위스프랑(약 264억 원)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금액! 어떤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보통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시계는 시간이 흐르면서 경매시장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가치는 더욱 치솟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손목시계 최고 경매가를 기록한 파텍필립의 스틸 시계도 언젠가 새 주인을 찾게 될지 모른다는 이야기!
하이엔드 브랜드의 회중시계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앤티쿼럼 경매에 입찰되는 다양한 시계들



시계 경매에 등장하는 시계의 면면. 손목시계는 물론 회중시계까지 종류와 디자인이 다양할뿐더러 브랜드는 물론 생산 연도도 천차만별이다.
사실 앞서 언급한 파텍필립 시계의 경매 가격은 보통의 샐러리맨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액수이며 무척 드문 경우다. 하지만 경매에 출품한 모든 시계가 천문학적 가격으로 낙찰되는 것은 아닐뿐더러 기존 판매 가격보다 낮게 책정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본인이 평소 구하고 싶었지만 구할 수 없던 제품을 찾을 수 있는 좋은 판매처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문워치’로 잘 알려진 오메가 스피드마스터의 오리지널 버전, 태그호이어의 전신인 호이어의 환상적인 레이싱 워치를 만날 수도 있다. 그뿐 아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까르띠에의 빈티지 탱크와 산토스, 런칭 이후 그 모습을 바꾸지 않는 롤렉스도 시대별로 시장에 나온다. 무엇보다 경매의 추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인기 있는 시계 브랜드, 좋은 시계 중에서도 옥석을 가리는 법을 자연스레 터득할 수 있다. 현재 시계 경매를 주관하는 회사는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그중 대표적인 곳은 앤티쿼럼(Antiquorum)으로 1974년 제네바에서 시작했다. 200년 이상의 역사를 이어온 다른 경매 회사에 비해 시작은 늦은 편이지만 오직 시계만 전문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시계 애호가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2005년 바쉐론 콘스탄틴이 특별히 제작한 투르 드 릴(Tour de I’lle, 187만 스위스프랑), 33개의 컴플리케이션과 1728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파텍필립의 최대 걸작 중 하나인 칼리버 89 모델도 앤티쿼럼을 통해 주인을 찾았다. 경매시장의 선조 격이라 할 수 있는 크리스티(Christie’s, 1766년 창립)와 소더비(1744년 창립)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시계 경매의 본거지다. 회화, 조각품, 자동차, 와인 등 다양한 분야의 제품을 거래하지만 기계식 시계의 엄청난 인기에 힘입어 시계 부문을 별도로 마련하고 정기적으로 경매 행사를 진행 중이다. 자동차 경매사로 알려진 런던 기반의 본햄스(Bonhams)도 최근 시계 분야를 늘리고 있는 추세다. 마지막으로 LVMH 그룹의 일원으로 앞서 소개한 온리워치를 공동 기획한 필립스(Phillips)는 주얼리와 시계를 함께 다루며 약진 중이다.
경매가 이루어지는 곳은 보통 시계 문화가 비교적 일찍 발달한 제네바, 홍콩, 뉴욕 등지이며 각 도시별로 1년에 두세 차례 정기적으로 개장하고, 이에 앞서 순회 전시를 하기도 한다. 경매에 나올 시계는 해당 경매사의 웹사이트 혹은 프린트물을 통해 미리 확인 가능한데, 예상 낙찰 가격까지 친절하게 알려줘 낙찰 가능성을 높인다. 경매는 사전 고지한 날짜에 진행하며 경매에 참가하기 위해선 사전 등록이 필수다. 참고로 앤티쿼럼의 경우 총 4개 경로를 통해 경매에 도전할 수 있다. 직접 개최 장소를 찾아 입찰에 참여하거나, 참석이 불가능한 경우 경매사의 비밀 대리인이 대신 진행하기도 한다(이때 본인이 입찰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을 사전에 정할 수 있다). 실시간으로 진행하는 행사인 만큼 전화와 인터넷을 통해서도 경매에 참가할 수 있다(시계 경매는 아니지만 영화 <베스트오퍼>에 등장하는 경매 현장을 떠올리면 좋을 듯!). 지불 방법을 포함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각 경매사의 웹사이트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으니 참고할 것.
시대를 막론하고 가치 있는 물건을 손에 넣는 건 기쁜 일임이 틀림없지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라틴어로 캐비앳 앰프토(Caveat Emptor, 매수자 위험부담 원칙)! 구입한 물품에 대해 구매자가 적극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간혹 진품이 아닌 제품이 올라올 위험도 있고, 유명인의 손을 거쳤다는 이유만으로 턱없이 시계의 가격이 높아지기도 한다. 낙찰가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추가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무엇보다 손에 넣은 시계의 가치가 어느 순간 날개를 잃고 추락할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구매에도 경험과 교육이 절실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무척 짜릿하다.
에디터 이현상 (ryan.lee@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