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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y Childish, 빌리 차일디시

ARTNOW

영국 현대미술계의 이슈메이커 빌리 차일디시. 가십에 가려 그의 진면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면 이번 기회를 통해 작가 빌리 차일디시를 새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회화, 음악, 시까지 모든 장르를 놀이터 삼아 뛰노는 아티스트의 이면.

자신의 작품 앞에서 재미있는 포즈를 취한 빌리 차일디시.
그의 캐릭터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 예술학교에서 퇴학당했고, 그 유명한 트레이시 에민의 전 연인이며(심지어 현재 다른 여성과 결혼해 두 아이의 아빠가 됐음에도 빠지지 않는 설명이다), 안티터너상 운동을 펼친 단체 스터키스트(The Stuckist)의 창시자이기도 한 빌리 차일디시. 그는 이처럼 많은 수식어 때문에 오히려 작품이 가려 빛을 보지 못하는 케이스였다. 로커이자 시인이면서 선이 굵고 강한 붓 터치가 특징인 회화까지 소화해내는 빌리 차일디시가 지난 3월 27일부터 5월 3일까지 리먼 머핀 갤러리 홍콩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홍콩에서 처음 열린 그의 개인전은 선명한 색상과 원시적 자연 표현,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 등 빌리 차일디시 회화 스타일의 정수만 모아놓았다. 인생은 갈 지(之) 자를 그려왔을지언정 작품은 점점 정제되고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 언제까지고 차일디시(childish)할 줄 알았던 작가의 변화가 서운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본명 대신 빌리 차일디시라는 이름을 쓰게 된 배경이 궁금해요. 차일디시라는 단어를 고른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차일디시(Childish)는 작품에 붙인 이름으로 사실 제가 차일디시라는 이름을 걸고 활동한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제 성인 햄퍼(Hamper)로 페인팅 작업을 해왔지만 뮤지션으로 활동할 때 이름을 미디어에서 그대로 사용했어요. 빌리 차일디시는 1977년 제가 열일곱 살 혈기왕성한 펑크 로커였을 때 친구가 붙여준 별명입니다. 그는 제가 제멋대로고 어린애 같다고 생각했죠.

1 작업실에서의 빌리 차일디시 2 빌리 차일디시는 딸 스카우트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다.

당신의 작업실 풍경이 궁금합니다. 작업할 때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맥주를 마시면서 자유분방하게 그리는 편인가요, 아니면 조용히 자신만의 세계에 집중하는 스타일인가요?
저는 서른세 살 때까지 알코올중독자였고 그 후로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젊을 때는 시카고 블루스 음악을 들으며 그리곤 했지만 지금은 보통 조용히 작업에 몰두합니다. 한번은 잔 시벨리우스(Jean Sibelius)와 베토벤을 들으며 작업해보려 했는데 신경에 거슬렸어요. 하지만 작업할 때 많은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가끔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인터뷰를 하기도 합니다. 제가 선호하는 방법은 조용한 환경에서 작업하다 때때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재스민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저는 무계획적으로, 혹은 아주 작은 계획만 세운 채 작업을 시작해 굉장히 빨리 완성합니다. 보통 한번 앉으면 한 작품을 끝내죠.

고향에서 꾸준히 작업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당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벌판, 풍경은 실제로 주변에서 늘 보는 모습인가요? 아니면 어떤 상황을 상상해서 그리는 건가요?
저는 대부분 사진을 토대로 작업합니다. 어떤 사진은 제가 사는 곳에서 찍은 것이고, 제가 아내를 만난 태평양 북서부 지역의 아주 오래된 기록 사진을 참고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제 친구의 증조할아버지가 1901년 남아프리카 전쟁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당신의 그림 속 인물은 밝은 컬러로 그렸지만 대체로 우울해 보입니다. 추운 겨울 풍경, 눈이 쌓인 벌판도 자주 등장합니다. 특별한 의도가 있는지, 아니면 마음 가는 대로 그릴 뿐인데 그렇게 나타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제 그림은 어떤 의도를 품고 있거나 교조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습니다. 우울한 것보다는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말하고 싶네요. 사람의 감정은 여러 층위가 있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나타납니다. 제 작품은 생명과 창조를 찬미하지만 거기에는 심오한 인간의 감정이 다양하게 깃들어 있습니다. 제가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작품에 표출됩니다.

Edge of the forest, oil and charcoal on linen, 152.5×122cm, 2013
빌리 차일디시가 이번 개인전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꼽은 ‘Edge of the forest’

Girl with stick, oil and charcoal on linen, 244×183cm, 2013
딸 스카우트를 뮤즈 삼아 그린 작품

사랑스러운 딸이 당신의 뮤즈인 것 같습니다. 그녀는 당신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요?
제 딸 스카우트(Scout)가 태어나기 전과 후는 비교할 길이 없습니다. 예술 작품은 예술가의 삶에 영향을 받고, 그 여정에 따라 함께 성장해가기 마련이니까요. 마찬가지로 열네 살 된 제 아들도 저와 제 작품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최근 리먼 머핀 갤러리 홍콩 전시회에서 선보인 작품 중 본인에게 가장 의미 깊은 작품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작품 활동을 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행위 그 자체입니다. 모든 그림은 그걸 완성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존재감을 지니게 되고, 그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제가 작품과 관계를 맺게 됩니다. 홍콩 전시에 출품한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제 대표작인 ‘Edge of the Forest’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무가 남자의 몸을 뚫고 나와 자란 것처럼 뒤섞여 있는 특이한 구성이 마음에 들어요. 그뿐 아니라 작품이 전하는 안온한 느낌과 작품 속 남자의 기괴한 표정도 좋아요. 썩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2년 전 서울의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을 열 때, 작가 이상과 이광수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홍콩 개인전을 위해 특별히 그린 인물은 없나요?
아쉽게도 홍콩 전시는 시작하기 전에 시간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특별히 준비한 작품이 없습니다. 서울 전시에선 제 전시를 선보일 나라와 소통하기 위한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가끔 전시를 개최하는 지역과의 연결 고리 혹은 유대감을 느끼는데 이것을 표현하는 것은 무척 기쁜 일이에요.

꾸준히 회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장르와 차별화되는 회화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림 그리기는 제가 아주 어린 소년이었을 때부터 해온 겁니다.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그림 그리기는 제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저는 그림을 그릴 때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렇다고 언제나 제 작품에 만족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전 특이하게도 작품의 성공이나 실패를 걱정하지 않아요. 어찌 보면 회화는 제 본성을 완벽하게 표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이자 뮤지션이고 화가입니다. 이처럼 책, 음반, 회화에 걸쳐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에너지가 놀라울 정도입니다.
힘들이지 않고 빠르게 작업합니다.(웃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걱정하지 않습니다. 작업하는 데 숙달돼 있어요. 저는 자신감도 있고 운도 따른 것 같습니다.

그래도 휴식은 꼭 필요할 텐데, 작업을 하지 않을 때는 무엇을 하며 여가를 보내는지요?
단순합니다. 앉아서 차를 마십니다.

Thatchers Children Box Set, 로커 빌리 차일디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앨범 커버도 하나의 작품 같다.

당신의 활동을 보면 현재를 즐기고, 재미있는 걸 찾아서 하는 느낌입니다. 반면 특정한 분야의 거장이 되겠다 하는 야망, 욕심 같은 건 보이지 않는데 어떤 편인가요?
저는 아티스트로서 평안함을 느낍니다. 제 한계를 알고 있고 그것에 신경 쓰지 않죠. 제 야망은 돈을 더 버는 것이나 세계적으로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제 자신을 잘 알고 싶고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성숙함과 나잇값을 강요하죠. 아이다움(childish)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저는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세상을 조롱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적을 만들 수도 있죠. 독창성은 사람의 능력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아이들에게 정말로 교육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독창성을 키울 기회를 가로막습니다. 다양한 색과 구도의 그림 세상에서 노니는 것은 모든 아이가 만끽할 수 있는 근사한 자유인데도 말입니다. 저는 딸과 함께 집 주변의 작은 숲을 거니는 걸 좋아합니다. 저는 부엉이 장난감, 딸은 여우 장난감의 목소리를 맡아 놀기도 하죠. 우리는 각자 스쿠터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 가끔 시내로 함께 스쿠터를 타고 나가기도 해요.

마지막으로 누군가는 예술을 힐링의 방법으로, 누군가는 재테크의 수단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대중과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아티스트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문학, 그림, 음악 전반에 걸쳐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당신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버터나이프를 흉기로 쓸 수 있는 것처럼 하나의 생각 또는 물건도 다양한 의도로 사용할 수 있죠. 당신에게 어떤 재능이 있다면 그것을 발전시키는 것이 당신의 의무입니다. 하지만 재능을 남용한다면 오히려 버리는 게 됩니다. 욕심 부리는 것은 삶, 자신 그리고 세상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예술가가 될 재능이 있다고 해도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마음에 져버린다면, 결국 시간을 허비하게 될 뿐이죠.

에디터 고현경
사진 제공 리먼 머핀 갤러리 홍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