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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deaux First and Napa Valley

LIFESTYLE

보르도 출신 와인메이커에게 나파밸리는 기회의 땅이다. 오랜 경험과 실력을 바탕으로 전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펼칠 수 있는 곳. 이 글은 그들의 열정에 관한 이야기다.

하나의 문화가 다른 문화와 만나면 종종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다른 지역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나 역시 어떤 곳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프랑스 와인업자가 타 지역의 경쟁 와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특히 보르도산 1등급 와인을 만들다 가장 팽팽한 맞수인 나파밸리로 터전을 옮긴 이들이 현지의 최고급 카베르네 와인 생산자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래서 늘 즐겁다.
샤토 라피트 로트칠드 출신의 베르나르 포르테는 1970년대 초 대서양을 건너와 실버라도 트레일에 ‘클로 뒤 발’을 설립했다. 클로 뒤 발은 현재 나파밸리에서 잘나가는 와인 생산자다. 샤토 페트뤼스의 와인메이커 크리스티앙 무엑스는 도미너스 와인을 개발하며 보르도 우안 지역의 나파밸리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샤토 무통 로트칠드는 1970년대 말 로버트 몬다비와 합작해 오퍼스원을 설립해 지금까지도 긴밀한 협력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올해 초 우연히 나파밸리에서 1등급 보르도 와이너리에서 건너온 2명의 와인메이커를 만날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나파밸리 와인에 대한 그들만의 독특한 견해를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지난 수십 년간 나파밸리로 쏟아져 들어온 거대 자본이나 건축 붐, 관광 특수가 낳은 결과를 논할 생각은 없었다. 와인의 품질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싶었다. 샤토 라투르 출신으로 현재 와인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개인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는 드니 말베크와 샤토 마고에서 2011년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이 경영하는 잉글누크 와이너리로 영입된 필리프 바스콜. 이 둘은 본래 나파밸리에서 생산하는 농익은 카베르네 품종을 선호하지 않기에 좀 더 우아한 와인을 만들기 위한 그들의 비법을 알아보는 것은 흥미로운 과정이었다.

필리프 바스콜

잉글누크 와이너리의 역사는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과거의 명성이 바래가던 이 와이너리를 다시 일군 인물은 영화감독 프랜시스 코폴라다. 1870년대 심은 카베르네 소비뇽을 유기농법으로 재배하고, 샤토 마고의 전설적 와인메이커 필리프 바스콜을 영입해 전설을 성공적으로 부활시켰다. 루비콘, 에디치오네 펜니노 진판델 등이 이곳을 대표하는 와인이다.

상대적으로 신참 격인 필리프 바스콜은 샤토 마고에선 폴 퐁탈리에 휘하의 2인자였다. 그는 지금 나파밸리의 유연한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다. “보르도에서는 전통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폴 퐁탈리에조차 변화를 시도하기 어려웠죠. 여기 사람들은 훨씬 변화에 개방적입니다. 마음의 준비가 돼 있어요. 물론 보르도에서처럼 정해진 방식대로 천천히 흘러가는 것은 와이너리 입장에서 훌륭한 보호막을 갖춘 셈이지만, 이곳의 열정과 도전정신은 와인메이커의 욕심을 채우기에 더없이 고마운 요건이지요. 확실히 보르도보다 흥미진진해요. 개인적으로 위를 향해 나아갈 확고한 목표를 갖는 것은 아주 짜릿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는 단시간 내에 잉글누크 와인을 드라마틱하게 개선하고자 하는 코폴라 감독의 기대에 부담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제가 모든 문제에 대한 즉답을 내릴 수는 없다고 설명할 필요가 있었어요. 면밀히 현 상황을 관찰한 후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찾아내야 했죠.” 요즘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그가 관심을 쏟고 있는 부분은 포도원 관리다. 그가 도입한 최초의 혁신 가운데 하나는 포도 수확용 통을 0.5톤 크기의 대형 사이즈에서 작은 상자로 대체한 것. 포도밭에서 양조장으로 옮기는 도중 포도가 으깨질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이어서 그는 나파밸리의 숙련된 라틴계 노동력을 제대로 파악해야 했다. 그들은 학습 능력이 뛰어나며 와이너리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발한다고 말했지만, 그들의 역량을 오롯이 와인 품질 향상으로 이끄는 데는 2년 가까이 소요되었다. 그가 처음 영입되었을 당시 235에이커(약 95만m2)에 달하는 잉글누크 와이너리의 포도 수확 노동자는 일반적인 이곳 임금 기준인 수확량에 따른 톤당 임금을 받았다. 그는 수확 속도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보르도에서는 결코 본 적이 없는 솜씨였다고. 속도가 너무 빨라 어떤 송이를 남기고 수확해야 할지 판단할 시간조차 없었단다. 그런데 그가 보기엔 포도와 함께 와이너리로 유입되는 잎과 불순물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2013년에 시급 임금을 도입했더니 수확 속도가 너무 느려졌어요. 오히려 속도를 높여달라고 부탁해야 했을 정도죠. 2014년에 적정 속도를 찾았고, 사람을 몇 명 더 고용해 균형을 맞췄습니다. 우리는 품질관리를 위해 보너스를 지급해요. 연간 전체 작업량을 기준으로 수확 직후에 보너스를 지급하는 겁니다. 상당수의 노동자가 수확이 끝나면 한동안 멕시코로 돌아가 지내는데, 포도원에서는 붙박이 일꾼을 두는 것이 좋기 때문에 도입한 아이디어입니다.”
그에게 프랑스가 그리운지 물어보았다. “친구들은 보고 싶지만 나라 자체가 그립진 않아요. 여기 음식도 잘 맞고, 이곳에선 제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다니기도 아주 쉽죠.” 보르도 와인을 얼마나 자주 마시는지 궁금해하자 그는 1시간 만에 처음으로 큰 소리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보르도 와인은 마시지 않아요. 분명히 입맛이 바뀐 듯한데 그것도 일의 일부겠지요. 이런 변화는 두려운 게 아니에요. 저는 여기서 보르도 와인을 만들고 싶지 않아요. 잉글누크는 캘리포니아 와인을 만들어야 하고, 그렇게 할 겁니다. 강렬함과 알코올에 저도 조금 더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드니 말베크나 클로드 블랑키에, 2013년 샤토 라투르 소유주가 인수한 아라우호 와이너리의 팀원, 잉글누크를 비롯해 나파밸리에 다양한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스테판 드르농쿠르 같은 나파밸리에서 일하는 다른 프랑스인을 아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미국인과 어울리려고 노력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처음엔 다른 와인업자를 만나는 것을 약간 주저했어요. 저만의 참신한 시각을 유지하고 싶었죠. 하지만 이제는 제 아이디어에 대해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이제 저는 정제 과정을 도입하려고 해요. 이곳 사람들은 최상의 응축도를 원하기 때문에 와인을 정제하지 않는데 저는 그게 부적절하다고 느꼈죠.” 실제로 그의 2012년, 2013년 빈티지는 달걀흰자를 촉매제로 정제할 예정이다. 포도도 일반적인 나파밸리 기준보다 일찍 수확할 계획. 또한 발효 탱크 높이가 올라가면 응축도가 낮아진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드니 말베크는 포도송이를 가지에서 오래 묵혔다 수확하는 나파밸리의 스타일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보르도 와인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토양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자신이 컨설팅을 맡고 있는 욘트빌의 캡샌디 와이너리 토양은 관리하기도 더 쉽다고 말하는 그. 그는 샤토 라투르에서 일하던 당시 조부에게 배운 지식을 활용해 2011년 유례없이 폭우가 내렸을 때도 그해 와인에서 이러한 기후의 악영향을 최소화했다. 와인 맛으로 판단하건대, 보르도에서의 경험이 제값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다.

크리스티앙 무엑스

도미너스 이스테이트는 샤토 페트뤼스의 오너 크리스티앙 무엑스와 잉글누크 존 대니얼의 두 딸이 합작해 1982년 설립했다. 장 클로드 베루에가 이끄는 샤토 페트뤼스 양조팀이 와인 생산에 참여해 보르도 방식인 테루아를 중시하는 와인을 만든다. 도미너스와 세컨드 와인 나파누크가 있는데, 두 와인 모두 일명 ‘메리티지’라 부르는 보르도풍 레드 와인이다. 카베르네 소비뇽을 주 품종으로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 프티 베르도를 블렌딩한 것.

베르나르 포르테

클로 뒤 발은 ‘작은 계곡의 작은 포도원’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1972년 보르도 샤토 라피트 로트칠드 출신의 베르나르 포르테와 존 고엘렛이 설립했다. 프랑스 와인의 우아함과 나파밸리의 풍부한 과일 향이 조화를 이룬 와인을 생산하며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우수 와인 대열에 들었다. 국내에서는 대통령 취임식 와인으로 사용하면서 중요한 일의 첫 시작을 의미하는 와인으로 자리매김했다.

피에르 페랑

타블라스 크릭은 프랑스 론 지역의 와인 명가 페랑 가문과 미국의 로버트 하스가 만나 탄생한 와이너리. 유기농을 넘어 바이오다이내믹을 실현하고 있으며 패소로블스 지역에서 론 품종을 활용한 환상적인 레드 블렌드와 화이트 블렌드 와인을 만든다. 페랑의 현 오너 피에르 페랑은 보르도 출신은 아니지만 캘리포니아 와인의 품질 향상에 기여한 주목할 만한 프랑스인 와인메이커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잰시스 로빈슨
영국 출신의 세계적 와인평론가이자 의 편집자. 휴 존슨과 함께 을 집필했으며 <파이낸셜타임스>에 매주 와인 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TV 출연과 강연, 시음 행사 등 와인 관련 활동을 다양하게 펼친다. <노블레스>에는 3개월에 한 번씩 와인 칼럼을 소개하고 있다.

에디터 이재연 (jyeon@noblesse.com)
잰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