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Burgundian Dreams

LIFESTYLE

부르고뉴 와인 세계의 변화를 읽다. ‘최고’라는 굳건한 명성 아래 더 새롭게, 건강하게,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는 양상이다.

포마르 지역에 위치한 도멘 무아세네 보나르의 포도밭 전경

 

얼마 전의 일이다. 부르고뉴산 레드 와인의 숙성 잠재력을 점치기 위해 60종 이상의 부르고뉴 와인을 시음하는 호사를 누렸다. 이날 시음한 와인 중에는 신의 축복을 받은 2005년 빈티지도 다수 포함되었다. 아직은 오크통에 담겨 있는 와인이지만, 타닌이 줄어드는 과정을 살펴보기엔 무리가 없었다. 현지 와인 총괄 조직인 부르고뉴와인협회 사무국 주최로 열린 시음회는 감탄스러울 정도로 효율적인 진행이 돋보였다. 그들은 내게 시음용 샘플을 보낸 와인업자에게 공통적 서류 작성을 요구했는데, 거기에 적힌 질문 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2005년 이후 귀하의 포도원에서 새로운 점은?” 부르고뉴의 심장부인 코트도르에 대한 보편적 시각은 세계에서 가장 전통적인 와인 산지라 좀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 하지만 매해 급변하는 시음(브랜드) 목록만으로도 이곳 역시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느끼는 터다. 20세기 말 이후, 미국인이 물밀듯 이 지역으로 몰려들었다. 토지 확보가 어려우면 포도라도 손에 넣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와인 스타일을 나름대로 터득해보겠다는 포부를 품고. 이와 비슷한 뜻을 품은 다수의 호주인도 등장했고, 심지어 몇몇 포도원은 동양인의 손으로 들어갔다. 이러한 양상과 함께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둔 유기농과 친환경 농법으로의 전환이 부르고뉴 지역을 관통하는 가장 큰 변화다. 서류 양식을 제출한 30개 브랜드 중 여덟 곳이 이에 해당하고, 상당수는 이미 2005년 이전에 유기농 또는 친환경 재배 인증을 받았다.

르네 부비에 와이너리의 손 수확 과정

클로드부조의 샤토 드 라투르는 1992년부터 유기농 재배를 채택한 이 지역의 선구자다. 현재 묘목장에서 고른 나무를 옮겨 심지 않고 기존의 나무를 섞어 심는 방식으로 관리한다. 이들은 다른 업자들이 용이한 발효를 위해 채택하는 오크통을 옮겨 담는 과정이나 정화 작업을 요하지 않는 이스트나 효소의 사용을 확고히 거부한다. “우리와 함께 일하는 오크통 제조 장인 스테판 샤생의 솜씨 덕분입니다. 우리 농장에서 자란 결이 고운 목재로 만든 이 통에서 1차 발효를 시키면 와인과 나무의 완벽한 결합이 이뤄집니다.” 그들의 2005년 빈티지가 이를 제대로 뒷받침하고 있다. 코트드본 지역 코르골루앵의 도멘 다르뒤와 주브레샹베르탱의 로시뇰 트라페도 지난 10년간 친환경 농법으로 완전히 전환했다. 와인메이커 피에르 뱅상의 영향을 받은 신생 와이너리 사비니의 앙토냉 기용과 뉘생조르주 남쪽 마을 프르모-프리세의 도멘 드 라 부즈레도 유기농법을 따른다.
르네 부비에 또한 2013년에 유기농 인증을 목표로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유기농 전환에 몰입했다. 그 밖에도 새로운 와인을 만들기 위한 매우 바쁜 행보를 이어왔다. 2006년 주브레 북쪽에 위치한 브로숑에 새 포도원을 조성해 2010년에 성공적으로 발효 실험을 마쳤고, 2012년엔 클로드부조 그랑 크뤼 등급 포도밭의 품종을 추가해 2014년 새로운 역작 퀴베 르 샤피트르 쉬방을 탄생시켰다. 포마르의 장 루이 무아세네 보나르와 에마뉘엘 소피 부녀 역시 다른 마을의 포도밭을 새로 사들여 와인 레인지를 확장했다. 무아네세 보나르는 최근 ‘고가의 친환경 사업’을 인정받았는데, 이는 지난해 초 소유주 조제프 앙리오의 사망으로 재정비에 돌입한 명망 있는 네고시앙이자 와인 생산자인 부샤르 페르 에 피스의 행보와 뜻을 같이한다.
포도원을 새로 구입하고 새 와이너리를 조성하는 것이 부르고뉴에서 이른바 ‘붐’처럼 일고 있다. 코트도르의 토지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것으로 보아 이 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프랑스의 토지 거래를 관장하는 SAFER의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부르고 뉴 그랑 크뤼 등급 포도밭은 1헥타르에 평균 400만 유로 이상의 가격에 거래되며 새 주인을 맞았다(SAFER는 현지 주민의 구매를 선호하기 때문에 포도원을 사고자 하는 외국인은 현지인과 공동 사업을 벌여야 한다). 프리미에르 크뤼 등급 포도밭은 1헥타르당 평균 100만 유로에 거래되었다(화이트 와인 포도원은 레드 와인 포도원보다 공급량이 적어 더 비싸게 거래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토지 거래는 대부분 프리미에르 크뤼보다 한 단계 아래인 빌라주 등급이었지만, 분명 그 값도 만만치 않았을 듯하다.

도멘 무아세네 보나르의 장 루이 무아세네 보나르와 그의 딸 에마뉘엘 소피

한편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은 새로운 젊은 세대가 가업을 이어 와인을 만든다는 것이다. 일반 와인도 그러한데, 부르고뉴 와인은 분명 매력적인 사업 아이템인지라 이를 물려 받길 거부하는 후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요즘은 공식적 훈련 과정을 거치는 것이 기본이며, 젊은 포도 재배업자들은 대부분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해 돈독한 동료로서 종종 공동 시음회를 개최하고 본 지역의 포도 농사를 연구하는 데도 힘을 모으고 있다. 이는 이웃 농장이나 주변 와인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다고 주장하던 한두 세대 전 선조와는 상당히 다른 점이다. 오늘날 젊은 프랑스 와인업자치고 가족이 소유한 포도원에 합류하기 전에 해외에서일한 경험이 없는 경우도 드물다. 각종 통신과 온라인을 매개로 그들은 전 세계 와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며 과거의 인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사실 부르고뉴 지방의 소규모 가족 포도원에서 와인을 만드는 일은 목가적인 전원에서 농사를 짓는 것과 유사하지만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프랑스 상속법은 끔찍하기로 유명하고, 대부분의 포도원 소유권은 각기 다른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기껏해야 한두 명뿐인 작은 포도원인데도 여러 가족의 공동 소유인 경우가 많다. 어떤 가족은 와인의 품질로 포도원의 명성을 높이는 데 관심을 두는 반면, 또 다른 가족은 사업에서 목돈을 챙기는 데 집중해 가족 간에 갈등을 빚기도 한다.
부르고뉴에서 가장 이해관계가 복잡한 가족 소유 포도원 중 하나를 꼽는다면 유명한 화이트 와인 생산자인 퓔리니 몽라셰의 도멘 르플레브일 것이다. 1990년대 초부터 지난 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도멘 르플레브를 이끈 안-클로드 르플레브는 와인 생산에 대해 제대로 아는 이가 없던 수십 명의 친척을 감당해온 인물이다. 수많은 친척을 모두 설득할 수 있었던 힘은 그녀의 성품에 있는데, 그 덕분에 친환경 농법을 일찍이 실천할 수 있었다. 그녀의 후임자 브리스 드 라 모란디에르(그렇다, 아주 먼 친척이다)에게 각별한 행운을 빈다.

 

도멘 다르뒤는 1947년부터 3대째에 걸쳐 부르고뉴 지역에서 와인을 생산해왔다. 2009년부터 모든 와인을 바이오다이내믹 방식으로 만든다. 미네랄 캐릭터와 섬세하고 감미로운 산도를 갖춘 화이트 와인이 장기. 사진 속 와인은 연간 300병 정도만 생산해 희소가치가 있는 바타르 몽라셰 그랑 크뤼다.

15세기 가톨릭 수도사가 종교적 열정을 갖고 운영한 클로드 부조 그랑 크뤼 포도밭. 현재 80여 명에 이르는 소유주가 밭을 나눠 소유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주목받는 생산자가 샤토 드 라투르다. 유기농법과 함께 최신 양조 기술을 병행,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꾀한다. 대표 와인은 100년 된 올드바인의 복합미와 농축미를 담은 비에유 비뉴(Vieilles Vignes).

로시뇰 트라페는 16세기부터 볼네 마을에서 포도를 경작한 로시뇰 가문과 18세기부터 주브레샹베르탱에 터를 잡은 트라페 가문의 결혼으로 탄생한 도멘이다. 국내에서는 주브레샹베르탱 비에유 비뉴 2008년산을 만날 수 있다. AB(Agriculture Biologique)와 데메테르(Demeter)의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르네 부비에는 1910년부터 3대에 걸쳐 와인을 만들어온 부르고뉴의 오랜 터줏대감 중 하나. 6개 마을, 17헥타르의 포도밭에서 18개 아펠라시옹 와인을 선보인다. 시그너처 와인은 마르사네 루주 클로 뒤 루아(Marsannay Rouge Clos du Roy). 검은 과실의 아로마와 제비꽃 향, 스파이시한 풍미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감칠맛 나는 와인이다.

 

잰시스 로빈슨
영국 출신의 세계적 와인평론가이자 의 편집자. 휴 존슨과 함께 을 집필했으며 <파이낸셜타임스>에 매주 와인 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TV 출연과 강연, 시음 행사 등 와인 관련 활동을 다양하게 펼친다. <노블레스>에는 3개월에 한 번씩 와인 칼럼을 소개하고 있다.

에디터 이재연 (jyeon@noblesse.com)
잰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