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ifornia’s Re-entry
캘리포니아 와인 생산자가 세계를 무대로 다시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다. 유럽 와인 문화의 중심지 영국 런던에서 잰시스 로빈슨이 직접 포착한 캘리포니아 와인의 새로운 의지와 열망.

1 데이브 라미와 그의 대표 와인, 러시안 리버 밸리 샤르도네.
2 소노마 코스트의 개척자라 불리는 허시 빈야드의 리저브 에스테이트 피노 누아. CSR 와인이 운영하는 레드텅 부티크 와인 하우스에서 단독으로 판매하는 제품으로 매해 가장 오래된 포도나무를 선정해 탄생시킨다.
중국이 그간 포도나무 심기에 바빴을지 모르겠으나 이는 과일로서 포도일 뿐, 미국은 유럽을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와인 생산국이다. 그럼에도 필자가 보기엔 미국 외 지역에서 미국산 와인을 접할 기회가 너무 드물다. 부분적으로 그 이유는 미국 내수 시장이 워낙 거대해 굳이 수출할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인 듯하다. 호주와 뉴질랜드 와인 생산자가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1980년대 초 캘리포니아 와인과 와인 생산자가 영국을 휩쓸다시피 하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파운드와 달러의 환율 영향이 컸지만, 와인 수출업자에게 해외 출장 비용을 지원해준 미국 정부의 활약이 뒷받침했기에 가능했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 우선주의’와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다.
그러나 1990년대, 2000년대 들어 유럽에 공급하는 캘리포니아 와인의 양이 크게 감소했다. 영국 슈퍼마켓에서 줄곧 존재감을 유지하던 대량 판매용 저렴한 브랜드만이 예외였다. 미국 내 시장 말고는 그 어느 곳에서도 미국산 와인이 널리 유통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이따금 유럽 레스토랑의 야심만만한 와인 리스트 뒤편에서 유명한 캘리포니아 와인을 발견하더라도 빈티지는 수상쩍을 정도로 오래된 것이었다. 과거 수출이 호황을 누릴 때 남은 와인일 것이다. 실제로 지속적인 수출 정책을 갖춘(그리고 지금껏 성공적으로 수행한) 캘리포니아 와인 생산자는 리지 빈야드(Ridge Vineyards)가 유일하다. 리지 빈야드 와인메이커 폴 드레이퍼(Paul Draper)는 진정한 코즈모폴리턴이자 열정적 여행가로, 리지의 많은 해외시장을 열심히 관리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다.
자국 내 견고한 구매 수요와 캘리포니아 경제 호황으로 와인 상당수가 고가로 책정된 점이 내수 위주로 치닫게 했을 것이다. 파리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만난 와인 리스트는 와인 생산지를 무시한 채 가격이 점점 높아지는 순으로 목록을 만들어 유달리 지리학적으로 광범위한(프랑스 와인 외 다른 지역 와인도 일부 포함된) 와인을 선보인 것으로 기억한다. 각 목록의 맨 아래쪽은 캘리포니아 와인이 차지했다.
다행히 캘리포니아 와인은 유럽 와인 리스트와 판매대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기근을 겪은 이후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상당히 최근까지 (미국산 전체 와인의 80%에 달하는) 캘리포니아 와인은 아주 저렴하거나 아주 고가인 반면, 현재는 중간 가격대를 점유하기 위해 다양한 와인 생산자가 앞다퉈 달려들면서 진지하게 가격을 책정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알코올 도수가 높은 와인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도로 설립한 캘리포니아 와인 생산자의 비영리 기구 ‘IPOB(In Pursuit of Balance, 균형 추구)’에서 처음 시작했다. 이는 와인 칼럼니스트 존 보네(Jon Bonne)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기고한 와인 칼럼과 2013년 출간한 저서 <새로운 캘리포니아 와인>을 통해 갈채를 보낸 것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
요즘 새롭게 주목받는 와인은 소노마 해안 서쪽 지역에서 태평양의 시원한 바람을 마주하는 포도원과 산타 리타 힐스(Santa Rita Hills) 같은 중부 해안의 서늘한 지역에서 생산한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다(필자는 종종 간과하기 쉬운 앤더슨 밸리 피노 누아 팬이다).
거듭 말하지만, 중간 가격대의 캘리포니아 와인이 점점 많아지는 것은 기쁘기 그지없다. 특히 그중 상당수가 과거 고가였던 카베르네와 샤르도네 와인에 집중돼 있으며, 이 와인이 다양한 변주를 보인다는 점에서 더욱 흐뭇하다. 새로운 움직임을 따르는 캘리포니아 와인 생산자 사이에 옛 포도나무의 포도 품종을 찾으려는 노력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따라서 요즘 캘리포니아에선 알리칸테 부셰, 바버라, 그르나슈, 프티 시라, 생로랑, 발디그, 말바지아, 세미용, 피노 블랑 같은 훌륭한 다품종 블렌딩 와인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오랜 세월 샤르도네 와인의 왕좌를 차지한 데이브 라미(Dave Ramey)는 유서 깊은 러시안 리버 밸리 포도원이 보유한, 60년~125년 수령의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진판델, 알리칸테 부셰, 프티 시라를 비롯해 산조베제, 카리냥, 트루소, 프티 부셰, 시라, 베클랭, 타나, 펠루르쟁, 그라시아노, 플라박 말리, 팔로미노, 몽바동까지 다수의 부수적 품종을 블렌딩에 포함시켰다.

3 나파 밸리의 영향력 있는 여성 와인메이커이자 와인 컨설턴트 로즈메리 케이크브레드와 그녀가 만든 갈리카(Gallica)의 그르나슈 와인.
4 부르고뉴 피노 누아에 매료되어 본래 경영하던 패션 사업을 접고 와인의 길로 빠져든 허시 빈야드의 설립자 데이비드 허시(David Hirsch). 그의 딸이 재스민 허시로 마케팅과 영업을 담당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와인의 신선한 변화를 이끄는 와인은 프랑스, 스페인, 호주, 남아프리카에서 새로운 물결을 이루는 와인과 그 흐름을 같이한다. 전형적 나파 밸리 카베르네 와인에서 연상되는 과도한 농익음과 대조적으로 가벼운 질감과 투명도를 자랑한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나파 밸리 카베르네 와인 생산자는 과거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그들의 와인은 이미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게다가 그들의 와인을 수집하는 이는 경제적 부는 물론 와인의 진가를 오롯이 알아보는 안목을 갖췄으니 충분히 납득이 간다.
나파 밸리 카베르네 와인은 여전히 몇 병만이라도 손에 넣겠다며 주요 고객 목록 진입을 꿈꾸는 자국의 추종자에게 주로 판매되겠지만, 런던에서도 보르도 와인이 처음 성장할 때와 견줄 만한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나파 밸리 카베르네 와인의 대표 주자들이 점점 눈에 띈다. 지난 몇 달 동안 필자는 런던을 방문한 캘리포니아 와인 생산자와 두루 교류했는데, 그 목록에는 폴 홉스(Paul Hobbs), 프레이 시뇨렐로(Fray Signorello), 로즈메리 케이크브레드(Rosemary Cakebread), 데이브 라미, 마이클 크루즈(Michael Cruse), 재스민 허시(Jasmine Hirsch)가 포함돼 있다. 마지막 두 사람은 단연코 새로운 물결의 구성원이다. 필자는 더없이 반가운 마음으로 캘리포니아 와인 생산자가 파티에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의 우아함과 정교함을 상징하는 폴 홉스의 카베르네 쇼비뇽 와인. 폴 홉스는 싱글 빈야드 와인을 정착시킨 캘리포니아 최고의 와인메이커 중 한 사람으로 불린다.
에디터 이재연(jyeon@noblesse.com)
글 잰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