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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스 101>, <쇼미더머니>, <언프리티 랩스타>. 최근 케이블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이 프로그램들은 모두 이 남자의 손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그는 좋아하는 걸 해왔을 뿐이라고 했다.

올해 1월 21일, Mnet <프로듀스 101>의 제작 발표회. 국내 46개 기획사에서 모인 101명의 여자 연습생이 경쟁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출발선이 다른 참가자들이 심사위원이라는 안전장치도 없이, 대국민 투표만으로 벌이는 살벌한 서바이벌. 현장을 지켜본 이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한국에서 시도하기에는 너무 파격적인 형식 같았다. 하지만 이 무모해 보이던 기획이 올 상반기 최고의 히트 상품이 됐다. 기획자이자 연출자는 Mnet의 22년 차 PD 한동철 국장. 이미 <쇼미더머니>와 <언프리티 랩스타>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오디션 프로그램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실력자다. 해외 출장에서 막 돌아온 이 남자를 불러 세웠다.

계속 해외 출장 중이던데, 어디에 다녀왔나? 중국에 다녀왔다. <쇼미더머니> 판권이 팔려서 컨설팅을 위해 며칠 머물렀다.

<프로듀스 101>은 안 팔렸나? 안 팔렸다. 대박 난 프로그램이라 그런지 판권을 안 사고 카피를 만들더라.(웃음)

혹시 완다 그룹(중국 최대 재벌 그룹. 최근 문화 사업을 크게 확장하고 있다) 관계자를 만난 건 아닌가? 하하. 안 만났다. CJ 일로 다녀온 거다.

올 초에 당신이 완다 그룹으로 이적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수십억 원대의 연봉과 제작 전권을 준다는 얘기까지. 과장은 있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고민한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CJ에서 좀 더 있어주길 바랐고, 후배들도 다 여기 있어서 포기했다.

그런 순진한 이유로 이직을 포기했단 말인가? 평생 오지 않을 기회라 생각했다면 어떻게든 옮겼을 거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이 아니라도, 다음 기회에도 갈 수 있을 것 같아 고사했다. 중국도 최소 몇 년간은 한국과 같이 제작해야 하는 상황이고, 몇 년 뒤에 옮긴다면 지금보다 좋은 조건으로 갈 수 있는 확률도 높을 것 같아서. 그러니까 지극히 계산적인 행동이다.(웃음) 무엇보다 나는 아직 CJ에 애정이 남아 있고, 나쁘게 헤어질 이유도 없으니까.

Mnet은 만성적 적자에 시달리던 채널이다. 당신이 만든 프로그램들 덕분에 채널 인지도나 수익 면에서 좋은 성과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나 혼자 잘해서 그런 건 아니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PD가 프로그램 10개를 하면 그중 하나 성공할까 말까 한다. 타이밍이 중요한데, 내가 좋은 타이밍을 탄 것 같다.

10개 중에 하나가 성공한다는 건 9개는 실패한다는 얘기다. 맞다. 하지만 회사는 그 실패에 대해서도 계속 지원해주니까. 사람들은 성공한 것만 기억하지만, 그 아홉 번의 실패를 기다려주는 게 회사다.

실패한 프로그램 중에 아쉬운 프로그램은 없나? 사실 망한 프로그램이 재미있기는 힘들다.(웃음) 잘 안 되는 건 내가 봐도 재미없다. 다만 애정이 있었는데 생각만큼 안 된 프로그램은 있다. <총각, 연애하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만드는 입장에서는 정도 많이 가고, 재미있었다. 다만 너무 마니아 취향이었고, 남자들에게만 인기가 있어서 문제였지. 여자들이 소비해야 이슈화된다.

당신 말처럼 예능은 여성 시청자를 잡아야 히트가 가능하다. <프로듀스 101>의 경우도 크게 성공했지만 시청률만 생각하면 리스크가 큰 걸 그룹이 아니라 보이 그룹을 만드는 게 안전한 판단 아니었을까?
맞다. <프로듀스 101>의 기획 의도는 팬이 직접 만드는 오디션이었다. 내부에서도 팬덤이 강한 보이 그룹으로 가는 게 맞다는 의견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보이 그룹은 내가 거들지 않아도 이미 엄청나게 많다. 글로벌 그룹도 많고. 그런데 걸 그룹은 생명력도 약하고, 팬덤도 약하다. 역설적으로 뭔가 도전하고 변화하기 위해서는 걸 그룹으로 해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팬덤이 약하다면 세게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었다. 그리고 PD 입장에서는 걸 그룹을 만드는 게 편한 지점도 있다.

예를 들면? 뭐랄까, 여자들이 반응이 즉각적이고 격렬하다. 남자는 울지도 않고, 눈물이 나도 참고, 맘에 안 들어도 그냥 넘어가는데(웃음) 여자들은 그걸 표현한다. 그래서 리얼리티를 찍는 입장에서는 여성 출연자가 훨씬 편하다. 분량도 훨씬 많이 나오고.

하반기에 예정된 남성판 <프로듀스 101> 같은 경우는 여러 가지 장치를 넣어야겠다. 그렇다. 소년들은 아무래도 표현이 약하니까 좀 더 다른 요소를 넣을 생각이다. 다만 팬의 충성도는 보이 그룹이 훨씬 세니까 피드백도 몇 배는 더 강하겠지. <프로듀스 101>의 흥행을 봤기 때문에 기획사들도 이번에는 괜찮은 친구들을 많이 보낼 것 같다. 사실 처음 <프로듀스 101>을 기획할 때는 그들도 긴가민가했을 거다. 뭐가 어떻게 나올지 감이 안 잡히니까.

오디션 프로그램이 너무 많아져 인재 풀이 바닥나지는 않을까? 그건 아니다. 대부분의 오디션 프로그램은 기획사 연습생들이 참가할 수 없다. 그래서 인재가 없어 보이는 것 아닐까? 연습생은 생각보다 훨씬 많다. 물론 재능이나 열정도 이쪽이 좀 더 낫고. 내 생각에는 연습생으로만 10년은 프로그램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웃음)

<프로듀스 101>의 재미있는 지점은 10대만이 아니라 중년 남자들까지 열광하게 했다는 점이다. 티를 내진 않았지만 어딘가에서 다 보고 있었다. 의도한 바다. 나는 중년 남성들이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어떤 식으로든 자신 안에 숨어 있는 감수성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딸 같은 애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당연히 응원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누군가는 풋풋한 첫사랑을 떠올릴 수도 있을 테고. 누나 팬들이 유승호를 키운 것과 비슷한 이치다. 사회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방송을 보며 푼 거다. 적어도 특정한 소녀를 응원하는 그 순간만큼은 각자의 방식으로 힐링하지 않았을까.

분명 기대 이상의 성공이다. 당신은 자신 있었나? PD가 하나의 기획을 통과시킬 때 꽤 많은 고충을 거친다. 그러다 보면 애정이 생기고, 애정이 생기면 착각하기 시작한다. ‘이건 분명히 성공한다’고.(웃음) 그런 착각이라도 없으면 수십억 원짜리 프로젝트를 밀어붙일 수 없다. 하루에도 백 가지씩 문제가 생기니까.

<프로듀스 101>은 어떤 의미에서 자본주의사회의 극단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심사위원이라는 완충재가 없고, 참가자들이 서 있는 스타트라인도 달랐다. 유명 기획사에 소속된 참가자들은 처음부터 앞서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인정한다. 출발점이 다른 건 맞다. 그런데 모든 경쟁의 출발선은 공정하지 않다. 지금 한국 사회만 봐도 부모의 부가 많은 걸 결정하지 않나. 부자 부모를 둔 아이는 좋은 환경에서 클 거다. 가난한 아이는 그만큼 많은 걸 포기해야 할 테고. 이미 사회가 공정하지 않고, 아이들도 그걸 다 알고 있다. 그 현실을 이겨낼 때 드라마가 생기고, 감동이 따른다. 인지도가 높으니 불리하게 어떤 제약을 둔다? 그거야말로 역차별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오해는 생길 수밖에 없지만 우리가 정한 룰 안에서 최대한 공정하게 하고자 했다. 심사위원 없이 투표만으로 생존하는 구조에 대해서는 이렇게 되묻고 싶다. 심사위원이 뽑으면 공정성에 전혀 문제가 없나? 나는 대중이 심사위원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20대는 어땠나? 내가 1970년생이다. 그 당시에는 옵션이 없었다. 군대 다녀와서 대학 졸업하면 대기업에 가거나 중소기업 가거나. 그렇게 결혼하고 집을 샀다. 지금 어린 친구들처럼 ‘난 꿈이 있어요. 이게 정말 하고 싶어요’가 없었다. 그래서 내 눈엔 모든 참가자가 대견하고 대단하다. 뭔가 하고 싶은 걸 위해서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본 적이 없다.

말이야 그렇게 해도 쉽게 되는 건 없다. 난 공부 못했다. 좋은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직장 다닐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당시 여자친구가 직장을 못 구하면 결혼 안 해주겠다고 해서 여기저기 원서를 내다 동아TV에 합격했다. 그러다 IMF에 실업자가 됐고, 선배가 Mnet에 원서를 넣어보라고 해서 넣었다가 덜컥 합격했다.

당시 600명 중에 한 명 뽑는데 당신이 뽑혔다고 들었다. 왜 당신이 뽑힌 것 같나?
CJ 인사팀에 허점이 많아서 아닐까.(웃음) 나도 정말 모르겠다. 여러모로 내가 뽑히면 더 이상한 상황이었거든. 다만 옆에서 나와 함께 면접을 보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굉장히 멋있는 말을 하는데, 정작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더라. 먹물 냄새가 너무 났달까. 난 내가 잘하는 실무 측면에서 ‘Mnet의 이 시스템은 너무 구리다’는 식으로 얘기했는데 그게 통한 것 같다. 어쨌든 입사한 뒤 CJ의 사내 문화에 굉장히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됐다.

왜인가? PD는 기본적인 인문학 소양이 있어야 한다. 힙합 프로그램도 힙합만으로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다. 프로그램을 관통하는 최소한의 교양이 있어야 한다. 말했지만 난 공부도 못했고, PD로서 기본적 소양이 부족했다. 그런데 승진도 빨리 했고, 내가 하고 싶은 걸 대부분 했다. 사실 난 대기업에서 인정해주기 힘든 스타일의 캐릭터다. 당장 내가 입은 옷 좀 봐라. 국장인데도 늘 이렇게 입고 다닌다. 그런데도 내가 내부에서 인정받는 건 시스템이 나를 받아주기 때문이다. 내가 공중파에 갈 리도 없겠지만, 만약 갔다면 아직도 아웃사이더로 겉에서 빙빙 돌고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굉장히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렇게 좋은 회사를 왜 옮기려고 했나?(웃음) 할리우드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겠느냐 물으면 어떤 PD가 싫다고 하겠나.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그렇다고 꿈을 접을 수는 없지 않겠나.(웃음) 그건 솔직하지 못한 거다.

당신이 기획한 프로그램들을 보면 참신하다 못해 생경하다. 2000년, ‘힙합’이라는 단어도 생소할 때 당신은 이미 힙합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었다. 안정보다 모험을 추구하는 성향인가? 그보다는 내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것만 했다고 하는 게 맞을 거다. 힙합도 내가 좋아하는 장르라 그걸 프로그램으로 만들 수 있었다. 연예인 캐스팅도 마찬가지다. 10년쯤 전에 <서인영의 카이스트>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했는데, 그때 서인영을 캐스팅한 건 PD로서 분석한 결과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성격이 세고 제멋대로인데 솔직한 여자.(웃음) 캐스팅한 후에는 PD의 시각적으로 접근했다. 내가 좋아하는 서인영의 매력을 대중도 좋아할 수 있게 만드는 거다. 개인적으로 데이트 프로그램을 좋아하는데, 그것도 실제로 여자한테 많이 차여서인 것 같다.

뜻밖이다. 나쁜 남자였을 것 같은데. 내가 좋아하는 여자와 사귀려고 애쓰다 보니 늘 차이는 입장이 된 것 같다. 그리고 난 뜻밖에 무슨 일이든 쉽게 싫증을 내지 않는 사람이다. 싫증이 나도 잘 참는다. 그러다 보면 다시 좋아지더라.

늘 젊은 출연자들과 젊은 프로그램을 만든다. 40대 중반인 당신의 삶과 괴리가 생길 때는 없나? 너무 많다. 나도 친한 친구는 결국 어릴 때부터 만나온 동창들이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면 좋긴 하지만 매력을 느끼진 못한다. 난 여전히 젊은 친구들이 매력적으로, 재밌게 느껴진다. 물론 요즘은 체력이 떨어져서 그것도 힘들지만.

지금 <쇼미더머니>의 다섯 번째 시즌이 방영 중이다. <쇼미더머니>는 방송 심의에 많이 걸린 프로그램인데. 나만큼 심의실에 자주 드나든 사람도 드물 거다.

한국의 방송 심의가 너무 보수적이라는 생각은 안 드나? 한국의 심의 기준이 너무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이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방송 심의부터 개혁해야 문화 산업이 발전한다. 최근까지 우리 방송의 제일 큰 문제는 표절이었다. 중국이 요즘 한국 프로그램을 표절한다는데, 한국도 얼마 전까지 일본 프로그램을 표절하는 게 예사였다. 그런데 요즘 심의실 가면 첫마디가 뭔지 아나? ‘이건 해외에도 없는 포맷’이라고 한다. ‘이건 못 보던 거라 이상하다. 이런 건 없었는데 왜 너희가 이걸 하느냐’는 거다. 심의실에 계신 분들 연세가 많다. 방송은 젊은 친구들에게 영향을 주는 건데, 그분들이 젊은이를 1년에 몇 번이나 만날까? 그런데 그분들이 하지 말라면 못하니 콘텐츠가 제대로 만들어질 리 없다. 그뿐 아니다. 한국 프로그램은 퀄리티가 떨어진다고, 조악하다고들 한다. 그런데 퀄리티는 어느 수준을 넘어가면 결국 제작비 싸움이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곳은 한국과 비교하면 제작비가 10배 이상 차이 난다. 중국의 <런닝맨> 제작비는 700억 원이 넘는다. 한국은 5000만 원 수준인데. 게임이 안 된다. 그러면 광고 협찬을 어느 정도 허락해줘야 하는데, 한국처럼 협찬이 제한된 나라도 없다. 물론 너무 과한 건 안 되겠지만, 돈을 못 벌게 하면서 좋은 걸 만들라는 건 모순이다. 이렇게 가면 중국에 금방 잡힌다.

당신은 소위 말하는 한류, K-컬처의 선봉에 서 있다. 누구는 거품이라 하고, 누구는 미래 산업이라 한다. K-컬처의 실체가 있긴 한 걸까? 있긴 하다. 그런데 이제 그걸로는 안 된다. 우리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일제나 미제라면 마냥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K-컬처도 비슷하다. 지금까지는 ‘한국에서 이걸 좋아한다’ 하면 전 세계가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아니다. 예컨대 빅뱅은 이제 한류 스타가 아니다. 전 세계 어디서도 그냥 빅뱅이다. 마이클 잭슨을 두고 미국 가수라고 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이제 각자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힘들 거라고 본다.

방영 중인 <쇼미더머니 5>가 끝난 뒤에는 또 뭘 만들까?그동안 너무 음악 기반의 경쟁 프로그램만 해서 변화를 줄 생각이다. 우선 데이트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말할 수 없지만 일반인이 주인공인 데이트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분명 많은 분이 재밌게 볼 수 있을 거다.

문득 당신이 19금 프로그램을 만들면 어떤 느낌일까 싶다. 아, 정말 생각하고 있다. 미국에는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하는 성인 대상의 코미디 채널이 있다. 나도 언젠가 그런 채널을 만들어보고 싶다. 이젠 한국에도 슬슬 그런 프로그램이 나올 때가 됐다고 본다.

에디터 | 이기원 (lkw@noblesse.com)
사진 | 장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