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nel Fantasy in Dubai
아랍에미리트의 진주로 알려진 두바이, 개인 소유의 섬 ‘The Island’에서 선보인 ‘샤넬 크루즈 컬렉션 2014-2015’ 쇼의 생생한 현장에 다녀왔다.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총괄 디렉터이자 사진작가로 예술가의 행렬에 동참한 칼 라거펠트는 여전히 마드모아젤 샤넬이 이 시대에 함께 숨 쉬고 있음을 전 세계에 증명했다.
“소위 피서지 패션은 내 신경을 몹시 거스른다. 잔뜩 구겨지고 헐렁한 옷차림이 그렇다. 감히 말하건대 나는 사람들이 너무 늘어져버린 모습이 끔찍이 싫다. 손녀의 옷을 빼앗아 입은 것처럼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정말 싫다.” 이 도도한 발언의 주인공 칼 라거펠트는 지난 5월 13일 저녁 두바이 한 개인 소유의 섬에서 펼친 ‘샤넬 크루즈 컬렉션 2014-2015’ 쇼에서 중동의 이국적이면서 화려한 포디움을 선보이며 또 한 번 멋지게 관객을 사로잡았다.
춥고 습한 유럽의 겨울을 피해 따뜻한 휴양지를 찾는 상류층을 대상으로 하는 크루즈 룩은 많은 브랜드에서 S/S, F/W 시즌보다 어떤 면에서 더 많은 관심과 심혈을 기울이는 컬렉션이다. 특히 가브리엘 샤넬이 1913년 여름, 도빌에 생애 첫 부티크를 오픈한 당시 선보인 의상이 바로 휴양지 룩이었다는 건 샤넬 크루즈 컬렉션이 여타 브랜드의 그것에 비해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다.
영화 <설국열차>에 함께 출연했던 틸다 스윈턴과 고아성이 샤넬 쇼에서 다시 한번 조우했다.
베니스와 생트로페, 카프당티브, 베르사유 그리고 싱가포르에 이어 올해 샤넬 크루즈 컬렉션 쇼 장소로 두바이가 선정된 건 칼 라거펠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동양, 모든 사람을 위한 동양의 모습을 나타내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었기 때문. 실제로 ‘The Island’에 지은 반듯한 사각 형태의 클래식한 컬렉션장 뒤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부르즈할리파(높이 828m, 162층)가 위치해 완벽한 동서양의 조화를 보여줬다.
앞서 언급했듯 샤넬은 이번 쇼를 위해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 직사각형의 거대한 쇼장을 설치하는 기염을 토했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아랍 전통 문양처럼 보이기도 하는 샤넬의 더블 C 로고는 아랍의 전형적 무샤라비에(목조 격자무늬 창살) 기법으로 조각해 거대한 샌드 컬러 건물의 외관을 빽빽이 장식했다. 단 하루의 쇼를 위한 이 건물은 두바이의 초현대적 스카이라인과도 아름답게 어우러져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풍요롭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아랍의 옛 뗏목을 개조해 만든 것 같은 레드 캔버스 지붕을 설치한 배를 타고 섬에 내리자 섬 입구부터 쇼장까지 이어지는 길목에 수백 개의 초가 촘촘히 모래에 박혀 낭만적인 샤넬의 밤에 힘을 보탰다.
석양이 지기도 전 일찌감치 인산인해를 이룬 쇼장에는 화려한 샤넬 드레스와 트위드 재킷을 비롯해 커스텀 주얼리, 투톤 슈즈, 클래식 백 등 시그너처 아이템으로 무장한 세계 각국의 패션 피플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전 세계 샤넬 부티크의 모든 아이템이 총출동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패션 피플들이 걸친 샤넬 의상과 액세서리는 그 존재만으로 빛났다. 아부다비와 샤르자,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서 온 VIP들이 걸친 차도르 속에서도 샤넬은 위풍을 잃지 않았다. 40℃를 웃도는 강렬한 태양빛이 힘을 잃어갈 즈음, 쇼장 곳곳을 비추는 은은한 촛불 빛 아래 드디어 칼 라거펠트가 등장했다. 그는 이번 컬렉션이 동양이 서양을 만나는 끝없는 여정이었다며 “이번 컬렉션에는 특별히 한두 가지에 치중한 민속적 요소가 없습니다. 동화부터 영화까지, 낭만주의 예술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페인팅부터 모더니즘 패션의 선구자 폴 푸아레의 디자인까지 아주 많은 곳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쇼의 시작을 알렸다.
CHANEL Cruise 2014/15 Fashion Show
샤넬을 상징하는 화이트, 블랙, 베이지와 함께 푸크시아 핑크, 카민 레드, 미드나이트 블루 등 다양한 컬러가 사용됐다.
쇼 전체를 지배한 컬러는 샤넬의 아이코닉 컬러인 화이트와 블랙, 베이지였다. 듀크 오브 처트니(Duke of Chutney)의 절제된 ‘Domi’의 리듬에 맞춰 등장한 모델들은 미래에 환생한 오리엔탈 공주 같은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로 대담하고 세련된 분위기의 캣워크를 선보였다. 골드 루렉스 실크의 배기팬츠와 마이크로 시퀸 자수를 더한 볼륨감 넘치는 볼레로 재킷을 매치한 모델이 런웨이로 걸어나오자 쇼장은 플래시 세례로 가득 찼다. 과장된 헤어에 진주와 인조 보석으로 만든 티아라를 얹은 모델들은 때론 경쾌하고 때론 도도한 워킹으로 런웨이를 누볐다. 칼 라거펠트는 이 모습을 “이 시대 전설적 모델 마리사 베렌슨의 환생”이라고 설명했다. 화이트와 블랙, 레드를 사용한 클래식한 트위드 슈트는 재킷과 스커트와 시가렛 팬츠, 재킷과 드레스와 시가렛 팬츠 등 ‘스리피스’로 구성해 중성적이면서 동시에 여성스러운 느낌을 선사했다.
1 샤넬은 이번 쇼를 위해 두바이의 한 개인 소유의 섬 ‘The Island’에 건물을 지었다. 1000여 명의 셀레브러티와 게스트들은 그곳에서 화려한 샤넬의 밤을 즐겼다. 2 갈기처럼 부풀린 과장된 헤어에 진주와 인조 보석으로 만든 티아라를 얹어 크루즈 룩에 우아함을 더했다. 3 런웨이가 끝나고 이어진 자넬 모네의 열정적인 무대 4 눈은 강렬하게, 그러나 입술에는 은은한 핑크를 사용해 휴양지의 자유롭고 여유로운 느낌을 극대화했다.
이번 컬렉션은 우아하고 글래머러스한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반짝이는 소재를 많이 사용한 점이 돋보였다. 동시에 강렬한 채도의 유채색이 대거 등장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름다운 빛깔의 니트 조끼와 함께 매치한 실크 시폰 드레스, 다양한 플로럴 문양과 기하학적 패턴을 프린트한 튜닉과 시가렛 팬츠는 중동의 이국적인 느낌을 더했고 컬렉션에 등장한 전형적인 동양의 모자이크 문양은 때론 자유롭게, 때론 대담하게 어우러져 동양의 매력을 한껏 발산했다. 무엇보다 눈에 띈 건 실크로 만든 엑스트라 라지 배기팬츠. 자유로운 움직임을 부각한 이 팬츠는 애니메이션 영화 <알라딘>의 재스민 공주를 연상시켰고, 마드모아젤 샤넬이 가장 사랑한 까멜리아를 수놓은 네오프렌 소재 재킷, 시퀸을 장식한 튜닉과 매치해 더욱 신비로운 느낌을 강조했다. 특히 지중해 지방 사람들이 애용한 길이가 길고 소매가 헐렁한 카프탄과 튜닉의 기하학적 흑백 패턴은 전형적인 오리엔탈 아트를 생각나게 했다. 런웨이에 선 한국 모델 수주는 브론즈 컬러의 트위드 재킷에 화이트 시폰 롱스커트를 매치해 우아함을 더했다.
쇼장에 함께한 바네사 파라디, 틸다 스윈턴, 아나 무글라리스, 앨리스 데럴, 저우쉰, 다코타 패닝, 그리고 배우 고아성과 소녀시대 윤아 등 전 세계 셀레브러티와 1000여 명에 달하는 게스트는 런웨이에 새로운 모델이 등장할 때마다 눈을 반짝이며 샤넬의 변주에 감탄했다.
창밖으로 완전히 해가 넘어가자 부르즈할리파를 위시한 두바이의 환상적인 스카이라인을 상징하는 롱 드레스를 공개했다. 브레이딩(실을 꼬는 것)과 시퀸, 스팽글로 수놓은 실크 소재의 화이트, 블랙, 샌드 컬러 드레스는 궁극의 우아함을 드러내기 위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라인으로 디자인했다.
1 칼 라거펠트가 촬영한 크루즈 룩 2 크루즈 룩에도 역시 트위드 소재는 빠질 수 없다. 3 컬렉션 쇼장을 찾은 바네사 파라디 4 칼 라거펠트는 이번 컬렉션이 “두바이가 아닌 다른 곳에서 진행된다는 건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품위 있는 여성’을 지향하는 샤넬의 이상이 자칫 지루해 보일 수 있는 시대가 왔다며 “나는 그 지루함과 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샤넬 재킷의 명성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칼 라거펠트는 이번 컬렉션에서도 그것을 또 한 번 실현했다. 그는 샤넬을 상징하는 화이트, 블랙, 베이지를 푸크시아 핑크, 선홍색에 가까운 카민 레드, 검은빛이 도는 미드나이트 블루와 매치해 샤넬도 경쾌한 스타일링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리고 가벼운 트위드와 실크 시폰, 리넨, 코튼 보일까지 다양한 시스루 패브릭을 여러 방법으로 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여성의 몸을 자유롭게 하라”라는 마드모아젤 샤넬의 외침이 쇼장을 가득 메운 순간이었다.
다양한 디자인의 J12와 화려한 파인 주얼리는 크루즈 룩의 매력을 더욱 극대화했고, 마드모아젤 샤넬이 그랬던 것처럼 커스텀 주얼리와 함께 매치해 더욱 시크했다. 골드 컬러 퀼팅 레더로 만든 제리 캔 핸드백과 진주 백, 초승달 티아라, 작은 보석이 박힌 샌들, 그리고 이번 시즌 재등장한 오리엔탈 슬리퍼는 칼 라거펠트의 창의성과 그 안에 내재된 유머를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런웨이를 장식한 이 모든 매력적인 룩은 중동의 여인을 떠올리게 하는 그윽한 아이 메이크업의 도움을 받았다. 눈은 강렬하게, 그러나 입술에는 은은한 핑크를 사용해 휴양지의 자유롭고 여유로운 느낌을 극대화했다. 특히 눈 앞머리에 포인트를 주기 위해 사용한 금박 조각은 칼 라거펠트가 선보인 튜닉과 카프탄 등 중동의 전통 의상 느낌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마지막 런웨이가 끝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끝없는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칼 라거펠트가 무대에 등장하자 쇼장을 가득 메운 프레스와 VIP들은 큰 소리로 환호하며 다시 한 번 머리 위로 박수 치며 존경의 뜻을 표했다. 이윽고 가수 자넬 모네의 열정적인 노래가 시작되자 게스트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음악에 몸을 맡긴 채 스탠딩 파티에 동참했다.
칼 라거펠트는 야외에 마련한 포토 존에서 쇼장을 찾은 셀레브러티들과 인사를 나누며 파티를 즐겼다. <설국열차>에 출연한 영화배우 고아성은 함께 연기한 틸다 스윈턴과 어울려 새벽까지 파티장에서 샤넬의 밤을 만끽했고, 소녀시대 윤아도 여러 중국 매체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며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칼 라거펠트는 이번 쇼에서 “두바이는 내일의 세상”이라는 말로 두바이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클래식의 정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그래서 결국 새로운 클래식을 만들어내는 샤넬이야말로 ‘내일의 패션, 내일의 스타일’이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사진 제공 샤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