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or of My Life
예술가는 색을 통해 전하고 싶은 감정을 표현한다. 한 가지 색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함축해 보여주는‘색깔’ 있는 예술가들.

붉게 타오르는 석양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윌리엄 터너의 ‘Petworth Park: Tillington Church in the Distance’.
샤를 보들레르는 말했다. “활달하면서도 경박한 색조가 있고, 경박하면서도 슬픈, 풍부하면서도 활달한, 풍부하면서도 슬픈 그리고 일반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색조가 있다. 그래서 베로네제의 색채는 조용하면서도 활발하다. 들라크루아의 색채는 종종 한탄하는 듯하고 카트린의 색채는 때때로 무시무시하다.” 예술가는 색채를 통해 분위기나 주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전달하며 이를 통해 감상자의 감성을 자극하고 심리적 변화까지 유도한다. 여기 유독 한 가지 색에 집착하는 예술가가 있다. 그들의 집착과 애정은 작품에 그대로 반영된다. 자신이 사용하는 파란색을 고유색으로 특허받은 프랑스 화가 이브 클랭(Yves Klein), 어둡고 고독한 검은색의 화가라고 불린 오딜롱 르동(Odilon Redon), 깊이를 알 수 없는 초현실적 블랙 컬러를 만들어낸 조각가 애니시 커푸어(Anish Kapoor) 등 색의 호수에 빠진 예술가를 소개한다.
“푸른색은 가장 순수하고 무한한 색채다.” 한없이 투명한 블루로 기억되는 화가, 이브 클랭의 말이다. 그는 모노크롬(monochrome) 회화의 대표적 작가로 꼽힌다. 붉은색, 오렌지색, 초록색, 금색, 분홍색 등 여러색으로 작업했지만 그의 이름을 딴 특허받은 ‘국제적 푸른색(International Klein Blue, IKB)’으로 그린 그림이 가장 유명하다. IKB는 진한 울트라마린 컬러로 그는 이를 활용해 200점에 달하는 회화를 완성했다. 그가 이토록 푸른색에 집착하게 된 것은 1957년 이탈리아 아시시를 여행하던 중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의 프레스코화를 본 뒤다. 종교화가 대부분 황금빛을 배경으로 삼은 것에 반해 조토는 청금석이라는 돌로 만든 청색을 배경으로 칠했다. 청금석은 당시 유럽에서 바다를 건너야 구할 수 있는 재료였기에 청금색의 푸른빛은 ‘울트라마린’이라 불렸다. 그는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중세의 울트라마린 컬러를 화학적으로 합성해 찾아냈다. 이후 자신만의 선명한 푸른색을 만들기 위해 화학자와 함께 끝없는 실험을 반복했는데, 그의 작업장은 마치 화학 실험실 혹은 화장품이나 향수를 조향하는 방을 방불케 했다고 한다. IKB 컬러를 처음 완성했을 때 그는 “모든 기능적 정당화로부터 해방된 파랑, 그 자체”라고 선언했다.

1 이브 클랭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Venus Bleue’.
2 상징주의 화가 오딜롱 르동의 목탄 소묘화 ‘Le Prisonnier’.
영국 풍경화의 역사를 대표하는 화가, 윌리엄 터너(Joseph Malord Wiliam Turner)는 유독 레드에 집착했다. ‘빛의 화가’로 불릴 만큼 빛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고, 그중에서도 석양의 아름다움을 즐겨 묘사했다. 붉게 타는 태양을 표현하기 위해 진홍색 안료인 커민을 주로 사용했는데, 이는 선인장에 기생하는 암컷 연지벌레에서 추출한 붉은색 염료다. 연지벌레를 모아 말린 다음 물에 넣고 끓여 추출하는데, 생명의 희생을 통해 얻어낸 화려한 아름다움이라는 모순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태양이 구름 사이로 강렬하고 화려한 빛을 뿜어내는 순간을 표현할 때마다 캔버스에 커민 안료를 칠했지만 그 색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변색되곤 했다. 하지만 그는 이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평소 작품 관리에 소홀하고 자신의 만족감을 우선시한 터너는 커민이 쉽게 변색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용을 멈추지 않았다. 커민의 빛나는 붉은색은 그가 느낀 석양의 아름다움이며 그의 눈을 유혹하는 현재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었다.
막연하고 고요한 공간,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공중에 떠 있는 3개의 머리, 귀 대신 박쥐의 날개를 단 사람, 잘린 머리가 접시 위에 담겨 있고 그로테스크한 형상의 거미는 벽을 타고 내려온다. 기괴한 인상을 주는 오딜롱 르동의 모노톤 그림은 완벽한 이해가 불가능한 모호함을 표현한다. 작가 위스망스(Huysmans)는 그의 그림을 “악몽을 미술로 옮긴 작품”이라고 평했다. 상징주의 화가 오딜롱 르동은 기이한 생명체와 현실이 아닌 초월적인 검은 세상의 풍경을 창조해 가장 ‘순수한’ 상징주의 화가로 평가받는 인물. 특히 20여 년간 목탄과 석판화만 사용해 스스로 ‘검은색(Noirs)’이라 부른 작품을 선보였다. 그에게 검은색은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을 전달하기에 적합한 순수한 도구였다. 부모와 떨어져 외삼촌의 손에서 자란 어린 시절은 그에게 어둠, 침묵, 상상의 시간으로 기억되었는데, 후에 그 기억이 자신의 ‘슬픈 미술의 근원’이자 ‘검은색 회화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특유의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작품 스타일로 섬뜩한 심리적 공포를 유발하는 <검은 고양이>의 작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an Poe)와 비교되곤 했는데, 실제로 그는 1882년에 ‘에드거 앨런 포에게’라는 석판화 연작을 발표하기도 했다. 신비롭고, 예측 불가능하며, 꿈같이 몽환적인 그의 그림은 에드거 앨런 포의 표현대로 “이 세상이 아닌 그 어딘가”와 같은 분위기를 담고 있다. “나의 상상력은 있을 법하지 않은 형상을 그럴듯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그가 펼쳐 보인 검은 연기가 가득한 무의식 세계는 20세기 추상회화와 초현실주의자의 모태라 할 수 있다.

1 물성을 뛰어넘어 정신적 사유를 작품에 담아내는 조각가 애니시 커푸어.
2 애니시 커푸어가 지난 국제갤러리 개인전에서 선보인 ‘Gathering Clouds’.
모든 예술가가 탐낼 만한 완전무결한 검은색에 대한 권한을 독점한 조각가 애니시 커푸어 역시 색채에 대한 남다른 집착을 드러낸다. 그는 조각이라는 매체를 이용해 물성을 뛰어넘는 정신적 사유를 담아낸다. 반사와 왜곡, 전환을 통해 시공의 감각을 뛰어넘어 영적 미학을 탐구하는 그의 작품은 크기나 깊이를 명확하게 알 수 없어 느껴지는 불안한 인식 너머의 심연, 그 아득함에서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다양한 재료를 통해 비정형, 비물질을 연구해온 그는 “찰흙으로 도자기를 만들면 그 안에 빈 공간이 생긴다. 찰흙이라는 흔한 소재로 창출한 비현실적 영역, 어두운 내부, 손에 잡히지 않는 개념 등이 내 예술의 중요한 테마다”라고 말한다. 그는 영국 기업 서리나노시스템스(Surrey NanoSystems)가 개발한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검은색, ‘반타블랙(vantablack)’을 예술 목적으로 사용할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 빛을 99.96%로 거의 완벽하게 흡수해 색을 칠한 표면이 울퉁불퉁해도 정면에서는 완전한 평면으로 인식될 정도로 인간의 육안으로는 음영을 분간하기 어렵다. 그는 영국에 있는 색상 연구팀과 함께 반타블랙을 30㎡에 달하는 대규모 작품에도 사용할 예정. “나는 오랫동안 암흑에 관심이 많았다. 허무, 어둠, 텅 빈 것에 대한 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최근 관심을 갖고 있는 ‘대상의 부재’라는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반타블랙이 꼭 필요하다. 너무 까매서 거의 존재하지 않고 표현할 수 없는 색상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꿈 같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초월적 특성을 지닌 색상이기 때문이다.”
에디터 김윤영(snob@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