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ng Fashion
고급스럽고 합리적인, 혹은 낯설지만 친숙한…. 디자이너 마이클 코어스에게 패션 디자인이란 이처럼 상반된 요소를 결합하는 과정을 뜻한다. 서울 플래그십 스토어의 리뉴얼 오픈과 함께 방한한 그와 나눈 이야기.

1 디자이너 마이클 코어스 2 코어스 서울 행사 현장 3 코어스 서울 행사 현장
오랜만에 서울을 찾았다. 약 9년 만이다. 그때와는 또 다른 인상을 받았을 만큼 변화가 많은 이곳에 점점 호기심이 생긴다. 마이클 코어스 뉴욕 오피스에 활기를 불어넣는 한국계 디자이너들 생각도 나고.
새롭게 단장한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를 보았는가? 대부분의 한국 고객이 마이클 코어스를 핸드백 브랜드로 인식한다고 들었다. 컬렉션부터 디퓨전 라인까지 두루 선보이는 새로운 플래그십 스토어는 이러한 편견을 뒤집기에 충분할 것이다.
더불어 마침내 국내에서 마이클 코어스 컬렉션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컬렉션 라인은 나의 실험실과 같다. 고급 소재와 손기술을 마음껏 사용해 한계를 모르는 시도를 한다. 낮에 입을 수 있는 글리터링 룩이나 산뜻한 색감의 모피 코트를 비롯한 신선한 의상을 만날 수 있다.
마이클 마이클 코어스 라인의 핵심 아이디어인 ‘합리적인 하이엔드’를 떠올린 계기는 무엇인가? 1990년대 초 뉴욕의 백화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세일 첫날, 세련되고 우아한 여자들이 마이클 코어스 컬렉션 제품이 걸린 행어를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만 것이다.(웃음) 옷을 마구잡이로 집어 드는 멋쟁이의 모습을 보면서 ‘합리적(democratic)이면서 근사한 스타일은 없을까?’, ‘부유해야 세련될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 덕분에 런칭한 마이클 마이클 코어스만의 매력이 있다면? 무한한 예산 없이도 옷장의 뼈대(backbone)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 낡은 티셔츠와 악어가죽 슈즈를 매치하는 식의 동시대적 스타일처럼, 시즌마다 화려한 컬렉션 피스 한두 가지만 추가해도 훌륭한 스타일을 뽐낼 수 있는 근간을 완성할 수 있다.
마이클 코어스는 하이엔드의 고고함과 친밀감을 동시에 드러내는 브랜드다. 수십 벌의 옷과 가방 중에서도 유독 손이 가는 제품이 있기 마련이다. 마음 깊이 의지하는 친구처럼 말이다. 나는 이처럼 특별하면서도 일상적인 제품을 디자인하고 싶다. 예상치 못한 놀라운 요소와 익숙하고 친밀한 요소의 균형을 맞추는 방식을 늘 고민한다. 맞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마치 동양 철학의 음양(陰陽) 같은 거다.(웃음)
오래전부터 당신이 구축한 제트족의 모습은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1960년대 이전만 해도 여행은 배로 천천히 이동하고, 큼직한 트렁크에 옷을 구겨 넣는 행위를 의미했다. 이젠 홍콩에서 딤섬을 먹다 스위스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 스키를 타는 식의 재빠른 이동이 가능하다. 제트족은 그 순간순간에도 근사해 보이는 이들이다.

1,2 리뉴얼 오픈한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 3,4 2017년 리조트 컬렉션
날이 갈수록 변화하는 여행의 성향에 따라 디자인 역시 달라지는가? 스마트폰만 건드려도 여행이 가능한 시대 아닌가. 프라이빗 제트부터 지하철에 앉아 있는 누구나 제트족이 될 수 있다. 예전에는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멋져 보이고 싶었을지 모르지만, 바쁜 일상을 영위하는 우리에게 희생적 패션은 무의미하다. 그래서 디자인할 때 기능성과 편안함을 고려하게 된다.
TV 프로그램 출연, 실시간 컬렉션 중계나 스마트 워치 런칭 등 당신은 시대의 흐름을 잘 이해하는 디자이너 같다. 예전엔 도시 곳곳에서 트렁크 쇼를 통해 컬렉션을 선보이고 고객을 응대했다. 지금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해 전 세계를 상대로 트렁크 쇼를 벌일 수 있다.
그에 대한 호불호도 명확하다. 이제 새로운 컬렉션을 공개하면 즉각적인 반응이 어마어마하다. 골방에 갇혀 디자인하던 시대는 끝난 셈이다. 또한 대도시에 거주해야 트렌드를 접할 수 있었던 때와 달리, 이제는 누구나 섬세한 취향을 향유할 수 있다. 디자이너에게는 아주 훌륭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패션계의 ‘See Now Buy Now’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두 시즌째 마이클 코어스 컬렉션의 일부 아이템을 ‘See Now Buy Now’ 형태로 판매 중이다. 쇼에 등장한 모든 제품이 당장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흥미롭고 극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반응 역시 대단하다.
마이클 코어스는 다양한 인종과 국적, 연령과 외모의 여성에게 어필한다. 특정 인물을 떠올리며 컬렉션을 준비하진 않는다. 특히 요즘처럼 여성 개개인이 자신의 매력과 개성을 잘 알고 있다면, 한정적인 틀에 맞춰 디자인할 필요는 없다. 여담인데, 나는 그 이유를 예전보다 셀피(selfie)를 많이 찍어서라고 생각한다.
당신도 사진을 많이 찍는가? 물론이다. 나보다 키가 크고 팔이 긴 남편이 카메라를 들었을 때 더욱 근사한 셀피를 건질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웃음)
최근 당신을 가장 사로잡은 것은 무엇인가? 크리스마스 휴가로 아프리카 사파리에 갔을 때 일화를 들려주겠다. 오랫동안 불통이던 스마트폰 네트워크가 복구되자, 사자가 코앞에 있는 흥미진진한 상황에서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너무 많은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요즘, 때로는 모든 연결 고리에서 벗어나는 재충전의 시간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사파리라… 당신의 유니폼인 블랙 티셔츠와 재킷, 데님 팬츠를 그곳에서도 고수했는가? 벌레가 잔뜩 붙는 블랙 컬러는 금물이다.(웃음) 아무리 고집스러운 취향이 있다 해도, 주어진 상황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 패션이란 그런 것 아니겠나.
에디터 한상은(hanse@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