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FOR GOOD MEMORIES
미나 페르호넨의 창업주, 미나가와 아키라의 디자인은 좋은 기억을 향한다. 30년 전에도, 70년 후에도.

미나 페르호넨(Mina Perhonen)은 디자이너 미나가와 아키라(Akira Minagawa)가 1995년에 설립한 브랜드다. 핀란드어로 ‘나(미나)’와 ‘나비(페르호넨)’를 합친 브랜드명에는 나비의 아름다운 날개 같은 디자인을 만들고, 나비가 춤추며 날아가듯 곳곳에 브랜드 디자인을 선보이고 싶다는 염원이 담겼다. 30주년을 앞둔 지금, 전 세계에 두꺼운 팬층을 확보한 미나 페르호넨은 동화 같은 텍스타일 디자인을 바탕으로 패브릭, 패션, 식기, 가구, 인테리어 소품까지 일상 전반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언뜻 가파르게 성장한 브랜드로 비치지만, 이면에는 천천히 정성을 들이는 제품 생산 구조, 유행에 흔들리지 않는 디자인, 자국 내 장인과의 협업 같은 특유의 느린 호흡이 자리한다. 이는 모두 ‘100년이 지나도 좋은 옷’을 만들려는 미나가와 아키라의 고집에서 비롯되었다. 그런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철학을 확인할 수 있는 전시 <미나 페르호넨 디자인 여정: 기억의 순환>이 9월 12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막한다. 전시에 앞서 미나가와 아키라와 나눈 이야기는 그의 디자인 여정을 이해하는 알찬 가이드북이 될 것이다.

위쪽 2020년 효고 현립미술관에서 개최한 <미나 페르호넨/미나가와 아키라 지속하다>전. 텍스타일 디자인으로 꾸민 입구가 전시 시그너처다. © L.a.tomari
아래쪽 2015년 나가사키현 미술관에서 열린 <1∞ 미나카케루 – 미나 페르호넨의 지금까지와 지금부터>전. © Manami Takahashi
오늘 촬영한 DDP를 좋아하는 서울의 명소로 꼽으셨습니다. 이곳에서 곧 한국 첫 전시가 열리기도 하고요. 창덕궁과 리움미술관도 좋아합니다. 제게 서울은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도시예요. 다른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가까이 있다는 점이 이 도시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역사와 문화를 지키며 발전해가는 서울의 모습을 본받고 싶어요. 가족과 이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타인에게 친절한 점에서도 한국이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이번 전시는 2019년 도쿄도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미나 페르호넨/미나가와 아키라 지속하다>전이 원형입니다. 몇 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이렇게 큰 전시를 연 계기가 궁금합니다. 유구한 역사의 럭셔리 패션 하우스들이 종종 헤리티지를 보여주는 전시를 진행하지만, 미나 페르호넨은 비교적 젊은 브랜드니까요. 저와 미나 페르호넨은 제품을 만들 때 고객의 기쁨을 가장 먼저 고려합니다. 단순히 제품을 소유하는 즐거움을 넘어 디자인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행복한 기억을 쌓기를 바랍니다. 또 장인 등 브랜드 관계자들이 제작 과정에서 느끼는 충족감에 관해서도 생각합니다. 사용자와 제작자 모두 디자인을 통해 얻는 기쁨, 그 기억이 한 사람의 인생에 기여한다는 믿음으로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죠. 이러한 철학을 사람들과 공유하는 데에는 패션쇼보다는 전시 형태가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전시는 텍스타일 디자인을 성벽처럼 쌓은 입구를 지나 그간 출시한 옷을 빼곡히 모은 공간, 원단을 길게 늘어뜨린 공간 등을 거닐며 브랜드의 디자인 여정을 살피는 형식으로 꾸며집니다. 여러 공간을 구성하고 배치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특히 시선이 머무는 곳이 어디인지도 궁금합니다. 전시는 11개 공간으로 나뉩니다. 제작 과정에서 나온 다채로운 생각, 노력, 들인 시간 등을 전달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죠. 개인적으로 오래된 옷과 고객의 추억을 함께 선보이는 ‘흙’이라는 공간이 유독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앞서 말씀드린, 디자인은 좋은 기억을 위해 존재한다는 브랜드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공간입니다.
도쿄에서 시작된 전시는 대만, 스웨덴 등을 거쳐 한국에 당도했습니다. 그사이 브랜드가 꾸준히 성장한 만큼 이번 전시의 차별점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전시마다 컬렉션을 추가하고 있으며, 한국 전시에서도 새로운 디자인을 소개합니다. 한국 작가 네 명과 협업한 결과물도 선보이는데, 이는 다른 장소에서는 없던 시도입니다. 이상훈·문승지·임태희 작가와는 가구 등 인테리어 작품을 제작했고, 최덕주 작가의 경우 미나 페르호넨의 상징적 패턴을 새긴 한산모시로 현대적 조각보 작품을 만들었어요. 서로의 창의성과 의지가 이어진 멋진 관계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니, 눈여겨봐주셨으면 합니다.
전시 협업만이 아닙니다. 미나 페르호넨은 포터(Porter), 이딸라(Iittala) 등 패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와도 적극적으로 협업하고 있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브랜드 내에서는 어려운 창조성을 발휘하는 목적일 수도, 브랜드 철학을 널리 전파하는 수단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는 측면에서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각자의 장점을 융합하는 시도이자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기회가 되죠. 소재나 기술의 차이를 이해하는 과정이 뭔가 만드는 일의 본질을 찾는 여정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방금 말씀하신 것도 그렇고, 미나 페르호넨의 시선은 여느 브랜드보다 먼 곳을 향하는 듯합니다. 시작점부터 그래요. 설립 당시부터 100년 가는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생각하셨다고요. 제게 허락된 수십 년의 세월로는 하나의 철학이 완성되지 않으리라 느꼈기 때문입니다. 철학이란 누군가에게 이어지고 지속되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나무와 같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금도 개인의 성취감을 우선시하기보다는, 나무가 자랄 토양을 다지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토양은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신뢰 관계와 기술, 경험의 축적을 의미합니다.
미나 페르호넨 옷은 십수 년 전 출시된 것도 낡은 느낌이 없습니다. 이 역시 100년 가는 브랜드라는 명확한 지향점 덕분이겠죠. 다만 사회 전반적 분위기나 새로운 세대의 등장 등 느리지만 큰 변화에 대응하는 노력도 있겠지요. 패션 디자인도 인테리어 디자인만큼 누군가의 인생을 오랜 시간 빛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유행을 좇기보다는 꾸준히 입을 수 있는 단순한 디자인을 선택한 것도 그 때문이고요. 물론 거대한 변화 앞에서는 생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서둘러 바꾸기보다는 자신과 타인의 일상에서 느낀 변화의 지점을 자연스레 디자인에 반영하고자 합니다. 체형 변화의 경우 긴 주기에 걸쳐 서서히 패턴을 변경하거나 개별 요청에 따라 리폼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미나 페르호넨 하면 탬버린(tambourine) 등 다채로운 패턴이 떠오릅니다. 과거에는 혼자서 모든 패턴을 창작했지만, 현재는 직원들도 함께 만들죠. 시즌별 출시할 패턴을 선정하는 기준이 궁금합니다. 그 기준이 ‘미나 페르호넨다움’인 듯해서요. 브랜드가 지속되려면 창의성을 이식하고 융합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디자인을 결정하는 기준은 명확해야 하죠. 미나 페르호넨의 기준은 ‘오랫동안 애착을 가질 수 있고, 일상에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디자인이 고객에게 좋은 기억을 심어줄 수 있는지 끊임없이 되묻는 거죠.
섬세한 자수, 원단의 감촉 등 높은 퀄리티도 많은 사람이 미나 페르호넨을 찾는 이유입니다. 일본 내 섬유 산업자들과 오랜 시간 합을 맞춰온 것 또한 비결이고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해외 생산 등 적당한 타협점을 찾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죠.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과 최대한 직접 소통하려 합니다. 생산 현장을 눈에 띄는 곳에 두고,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관계를 중요시하고요. 전 세계의 훌륭한 공장과 협력해 제품을 만들고 싶지만, 신뢰를 쌓으며 진행하고 싶습니다. 미나 페르호넨은 세컨드 라인을 전개하지 않는데, 최선을 다해 만든 제품을 선보이기 위해서입니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수고를 덜거나 소재를 엄선하지 않는 것은 고객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미나 페르호넨은 옷을 제작하고 남은 재료로 가방, 액세서리를 만들죠. 지속가능성이 화두로 떠오르기 전부터요. 의류 외 다른 제품을 만들 때도 재료는 남아요. 남은 재료에도 역시 수고로움 같은 것이 깃들어 있고요. 이를 폐기하기보다 새로운 뭔가로 만드는 것은 디자인하는 브랜드에 부여된 의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디자인과 재료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는 것도 우리의 역할 중 하나겠죠.
대다수 브랜드의 직영 공간은 어딜 가나 콘셉트나 취급 품목이 비슷합니다. 반면 미나 페르호넨의 직영 공간은 오래된 민가를 개조한 가나자와점, 미나 페르호넨의 원단으로 가구 업홀스터리가 가능한 에리바 2 등 공간별 개성이 돋보여요. 한편으로 온라인 판매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오프라인 매장의 미래를 어떻게 예견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자연계에서 환경에 따라 다양성이 뻗어나가는 것처럼, 인간 사회에서도 지역에 맞는 건축과 공간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온라인 판매는 편리함을 무기로 더욱 확장될 것입니다. 하지만 오프라인 공간만이 줄 수 있는 기쁨이 있죠. 손님들과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미나 페르호넨의 만들기 철학을 나누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이후에도 오프라인 공간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제안할 수 있을 거예요.
1995년 브랜드를 론칭하며 걷고자 했던 길과 현재 위치가 일치하는지, 또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브랜드를 운영하며 상상도 못할 훌륭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많은 자극과 경험을 얻었으며, 이들과 협업하고 공명한 결과 현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변화도 많았죠. 기술·경제·지정학적 이슈, 코로나19까지. 중요한 건 무수한 질문 속에서도 정직함과 진실함을 양손에 쥐고 나아가는 일 아닐까요? 미나 페르호넨은 시작할 때 중요시한 가치를 꾸준히 지켜왔고,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성숙해지고 있습니다.
목표한 대로 100주년을 맞이했을 때, 미나 페르호넨이 사람들에게 어떤 브랜드로 남아 있길 기대하나요? 탁월한 제작자의 경험과 전통, 혁신적 기술을 반영한 제품이 세심한 환경 속에서 탄생하고 있기를 바랍니다. 작은 시작에서 비롯된 미나 페르호넨의 세계가 제가 없는 시점에도 이어질 수 있다면, 상상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네요.(웃음)
이번 전시를 찾은 사람들이 무엇을 얻었으면 하나요? 여러 사람의 기억과 디자인의 연결성을 집중해 봐주셨으면 합니다. 많은 사람의 노력과 시간, 생각이 어떻게 디자인 형태로 표현되는지도요. 물건의 수명은 제작자의 열정과 사용자의 애착으로 결정됩니다. 디자인은 유행으로 측정하는 것이 아닌, 자신과의 행복한 관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공감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조영훈(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