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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ILOG LIFE] 내 삶의 방식

LIFESTYLE

패션 디자이너와 DJ, 작곡가의 라이프스타일에 녹아든 저마다의 아날로그, 저마다의 디지털.

현대적인 더 현대적인, DJ 바가지 바이펙스써틴
“기계만이 할 수 있는 필연적 표현에 매료됐죠”

“어떻게 테크노 DJ가 되셨죠?” 제주로, 부산으로, 인천으로, 전국을 종횡무진 오가며 테크노 음악을 전파하는 바가지 바이펙스써틴에게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이다. 내게 전자음악은 동시대의 가장 트렌디한 음악이면서도 어쩐지 멀게만 느껴졌으니까. 궁금했다. 그가 이 장르를 만나게 된 계기가. “저는 ‘AFKN 키즈’예요. MTV에 익숙한 세대처럼 저는 AFKN을 보며 자랐죠. AFKN 속 뮤직비디오와 음악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더라고요.” 친구들이 게임에 몰두하던 학창 시절 그는 게임 OST에 빠져들었고, 음악의 모든 것을 꿰차고 있는 아이로 통했다. 그의 인생에선 결코 최신 음악이 빠진 적이 없다. “워크맨이 인기였던 시절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모아 믹싱 테이프를 만들었어요. 바가지 1집이라고 불렀는데 5집까지 나올 정도로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었죠. 카세트테이프를 자른 다음 이어 붙여 원하는 음악을 만들기도 했어요.” 아마도 이때였나 보다. 그에게 DJ의 피가 흐르기 시작한 것은. 손수 만든 테이프가 최신식 기기로 바뀌었을 뿐, 상황에 어울리는 음악을 멋들어지게 조합하는 건 마찬가지니 말이다. 그리고 그만큼 수많은 음악을 제 것처럼 섭렵해야 하는 그다. 처음엔 여러 음악을 시도했지만 점차 테크노 음악가로서 정체성이 확고해졌다. 그런 그가 얼마 전 전통음악사 공부를 시작했다. 클래식을 전자음악으로 재해석해달라는 의뢰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클래식을 접할 기회는 적었지만, 저는 테크노가 일종의 클래식 변주곡이라고 생각해요. 요한 파헬벨의 캐넌은 테크노와 유사해요. 제가 하는 음악이 어쩌면 클래식의 영향으로 태어난 거죠. 하지만 기계를 쓰는 현대음악과 정통 클래식은 방법론적인 면에서 전혀 달라요. 사람이 만들어내는 음악엔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표현이 있어요. 각기 다른 고유성과 매력을 지니지만, 저는 기술적으로 앞선 새로운 장비를 쓰는 걸 좋아해요. 얼리어답터처럼요. 기계만이 할 수 있는 필연적 표현에 매력을 느껴요.” 요즘 DJ는 마치 한 편의 뉴미디어 아트를 감상하듯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공감각적 무대를 만든다. “DJ 부스 뒤로 영상을 만들어 쏘는 VJ와 컬래버레이션하기도 해요. 인터랙티브 아트처럼 사람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영상도 있어요. 현장감이 배가되죠.” 그는 2014년부터 다보탑이라는 레이블을 운영하고 있다. 그 이름이 생소하다면 이제라도 찾아 듣기 바란다. 곧바로 테크노 음악에 빠져들 것이라고 확신한다.

클래식 그 이상, 작곡가 김택수
“독창적 예술을 만들어내는 건 결국 사람이죠”
작곡가 김택수는 과학 영재였다. 과학고등학교 출신으로 국비 지원금을 받아 대학에 다닐 만큼 일찍이 화학 분야에서 인정받은 인재인 그가 어떻게 정통 클래식 작곡가의 길로 접어든 걸까? “나라의 지원으로 학교에 다닌 만큼 국가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때마침 문화라는 좋은 콘텐츠가 있더군요. 물론 화학을 전공했지만 어릴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고, 한시도 음악을 쉰 적은 없어요. 대학 다닐땐 라틴 재즈에 빠져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멕시코행을 꿈꾸기도 했죠. 음악에 전념하고자 작곡과 수업을 들었고, 클래식 작곡에서 가능성을 찾았습니다.” 곡을 써 내려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의미 깊고 창작이 놀이처럼 흥미롭다는 그는 삶의 도처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아이디어를 얻는다. “농구공 튕기는 소리나 커피 기계에서 영감을 얻고, 어떤 제스처를 음악으로 옮겨내기도 하죠. 술잔 부딪치는 소리도 음악이 될 수 있어요. 미술관에서 설치 작품을 봐도 음악으로 표현할 방법을 고민합니다.” 김택수 작곡가는 지난해에 색다른 경험을 했다. 그가 만든 곡과 인공지능 작곡가가 만든 곡을 함께 무대에 올린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로봇 작곡가의 의미가 궁금했다. “인공지능의 작곡은 상당히 높은 수준에 이르렀죠. 하지만 대상이 예술이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좋은 음악이 무엇인지 정의할 필요가 있어요. 그렇지 않다면 인공지능이 좋은 음악을 만든다고는 말할 수 없겠죠. 듣기 좋은 음악은 취향에 따라 다릅니다. 예술가는 타인의 스타일을 따라가지 않고 독창적인 예술을 목표로 삼는 반면, 컴퓨터는 어떤 음악을 프로그래밍해놓고 비슷한 음악을 만들죠. 기술이 발전한 시대지만 창작의 가치에 얼마나 의미를 두느냐에 따라 다른 철학적 질문이 생깁니다. 로봇은 아직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정통 클래식 음악에 몸담은 그지만 한 갈래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곡 작업할 때를 빼고는 모든 장르의 음악을 듣는다는 그는 ‘제14회 평창대관령음악제’를 위해 ‘평창을 위한 팡파르’를 작곡하며 진가를 발휘했다. 국악의 기악 독주곡 중 하나인 ‘산조’와 일렉트로닉 음악의 한 갈래인 ‘덥스텝’ 장르를 절묘하게 조합해 큰 호응을 이끌어낸 것. 고전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행보에 박수를 보낸다. 9월엔 그가 상주 작곡가로 있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정기 공연에서 그의 신곡을 초연한다. 놓치면 후회할 듯하다.

감성으로 옷을 짓다, 드맹 디자이너 문광자
“사람과의 소통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원동력입니다”
정확하게 반백 년, 진부한 표현일지 몰라도 아름다운 옷을 만들겠다는 신념하에 외길 인생을 걸어온 ‘드맹’의 디자이너 문광자. 패션에 대한 타고난 열정, 자식들에 대한 어머니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사라져가는 한국의 전통 직물 무명을 향한 무한한 사랑은 그녀를 한국 패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로 만들었다. 무명. 재래식 베틀로 짜낸 한국의 토종 직물로, 손으로 느껴지는 오톨도톨한 질감과 소박한 색감 그리고 아무리 오래 입어도 쉽게 닳지 않는 견고함 덕에 서양 방직 기술이 들어오기 전 많이 사용됐다. 그녀는 이 천을 1992년부터 자신의 디자인에 접목했다. “사람으로 치면, 진실되고 소박하며 듬직하기까지 한 남자라고 할 수 있어요. 무명 특유의 도톰하고 투박한 성질 덕에 실루엣을 살리긴 조금 어렵지만, 그러한 한계 때문에 완성했을 때 더욱 큰 희열을 느끼죠. 무명옷을 입어본 사람이라면 그 매력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하는데, 편안하고 기품이 흐르면서 오래 입어도 질리지 않거든요. 무명은 화려하진 않아도 진중한 힘이 있는 옷감입니다.” 사실 드맹이 선보이는 옷 중 일부만이 무명으로 만든다. 목화를 재배하는 곳도, 베틀로 직물을 짜는 이도 극소수에 불과한 터라 구하는 것부터 문제다. 그래서 그녀는 아프리카, 이집트, 인도 등지에서 공수한 원단을 함께 사용하는데 퀼팅, 레이스, 자수 등 디테일에는 제한이 없지만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어야 한다는 원칙만큼은 고수한다. 기계로 만들어낸 것과 달리 그 안에서 감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원단을 매만지며 그것을 만든 시대로 돌아가기도 하고, 그것을 만든 사람을 상상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완성한 옷이 주인을 찾는 순간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믿는다. “옷감을 만들어낸 사람의 감성, 그것을 가지고 옷을 디자인한 사람의 생각, 완성한 옷을 몸에 걸친 사람의 감정은 각기 다르겠지만 사람의 향기가 묻어난다는 사실만큼은 같아요. 전 이것이 디지털 시대에도 굳건히 자리 잡은 아날로그적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일까. 이들은 대량생산에 대한 생각을 일찌감치 정리했다. 현재 드맹은 본사가 위치한 광주의 부티크와 서울 청담동의 쇼룸을 운영 중이다. 한때 백화점에도 입점했지만 금세 접었다. “좋은 옷 한 벌을 가지고 씨름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고객 한 사람을 마주하며 생긴 소중한 감정을 눈앞의 이익 때문에 저버릴 순 없었습니다. 장인정신과 무명에 대한 우리의 철학을 뿌리 깊은 나무처럼 견고하게 다지고 싶었어요.” 최근에 보이는 패션 명가의 변화 또한 아쉽다. 예전의 오트 쿠튀르적 감성은 뒤로 숨긴 채 판매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옷을 만들기 시작한 때는 위베르 드 지방시, 이브 생 로랑, 발렌티노 가라바니가 맹활약하던 시대다. “고객과 소통하며 옷을 짓던, 진짜 디자이너가 있던 시대가 그립습니다. 사람 사이의 소통이야말로 급변하는 디지털 세상에 유지해야 할 덕목이죠. 그리고 요즘은 비싼 돈을 들여 산 옷을 한 해도 채 입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유행을 추종한 나머지 다시 꺼내 입기 힘든, 말도 안 되는 상황 말입니다. 저는 여성의 보디에 잘 맞는 패턴과 실루엣이 있다고 굳건히 믿고 있습니다. 그런 패턴에 따라 완성한 30~40년 전의 의상은 지금 입어도 훌륭하죠. 처음 봤을 때는 덤덤하다 생각하지만 입으면 입을수록, 그리고 언제 입어도 아름다울 수 있는 옷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아날로그적 감성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그녀에게 5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외길을 걸어온 것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동시에 그 원동력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저를 찾아오는 고객들을 보며 자연스레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객과 저 사이에 계약서 없는 계약이 존재한다고 보면 좋을까요? 한번 온 고객이 다시 오고 또다시 발걸음할 때마다 제 결과물과 서로에 대한 믿음이 커졌어요. 게다가 고객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얻었습니다. 사람 만나는 걸 워낙 좋아하는 성격인 데다 옷을 맞추러 오는 이들 대부분이 좋은 일로 저를 찾거든요. 결혼, 생일, 승진 등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고 축하받아 마땅한 일이죠. 물론 옷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예요.” 그녀는 올가을 광주에서 고객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지난 50여 년을 반추하는 패션쇼를 개최한다. 디자이너 문광자와 새로운 세대가 함께 만들어나갈 또 다른 드맹의 50년이 기대된다.

 

에디터 <노블레스> 편집부
디자인 마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