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GILOG LIFE] 아날로그는 앞으로 어떻게 재탄생할까?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디지털 기술을 예측한다.

곧 다가올 초연결 시대에도 인간의 아날로그적 경험은 여전히 유효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다. 우리가 느끼는 기분과 추억, 정감은 첨단 기술과 만나 더 새로운 체험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여우비가 내리는 날, 손글씨로 편지를 쓰며 조용히 누군가를 떠올려본다. 간간이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도 한다. 어느덧 나이테가 살아 있는 의자에 앉는 게 좋을 나이. 한데 이 책상과 의자는 어디에서 자란 나무로 만든 걸까? 이런 질문으로 나이테 하나하나의 살결을 헤아리는 내게 책상 속에 숨은 RFID(초소형 칩으로 다양한 정보를 관리하는 기술)가 말을 건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의 30년 된 고목으로 만들었다고. 그리고 책상이 만들어지기까지 과정을 동영상으로 보여준다. 최근 4차 산업혁명으로 마치 신세계가 열릴 듯 요란스럽다. 여기엔 여러 상념도 따른다. 미래엔 지금보다 여유로워질까? 더 바빠지진 않을까? 또 품위 있는 기술이 우릴 정말 편안하게 해줄까?
결혼 5년 차인 친구는 전화로 늘 피곤하다고 난리다. 백일이 지난 둘째를 챙기는 동시에 큰아이를 놀이방에 보내고 출근 준비까지 해야 한다고. 조금 여유로운 호흡으로 육아를 하고 저녁이 있는 하루를 맞을 순 없을까 고민한다. 그가 그런 고민을 하는 건 이해가 된다. 요 몇 년간 개발된 인터넷 기술은 대부분 ‘소통’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아이러브스쿨 같은 커뮤니티로 가끔 동창회에 나가 친구들을 봤지만, 지금은 다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동창들과의 실시간 대화를 돕는다. 소통의 상호작용이 늘수록 한번 한 소통이 두 번이 되고, 두 번 단 댓글은 결국 세 번, 네 번 단 ‘대대대댓글’로 발전한다. 댓글과 공유 그리고 ‘좋아요’를 누를수록 머리 한편을 차지하게 되는 가상의 분주함. 한데 이런 분주함은 동시대의 어떤 신기술도 해결해주지 않는, 오롯이 인터넷 공간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중·삼중으로 피로감을 준다.
그래서인지 사실 결혼한 친구들에게 최고의 발명품은 여전히 세탁기다. 아무리 TV에서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 웨어러블 등에 대해 떠들어댄다 해도 그들에게 ‘의미 있는 기술’은 ‘육아와 노모 돌보기, 집안 살림의 일상’에서 탈출하게 해주는 것들이다. 제아무리 다양한 디지털 기업이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고 제품을 판매한다 해도, 그 정보와 제품의 포장을 뜯고 포장지를 버리고 내용물을 꺼내 사용해야 하는 노동은 온전히 우리 몫이다.
한데 앞으로 네트워크로 사람과 데이터, 사물 등을 모두 연결하는 초연결 사회(hyper-connected society)가 오면 이것이 조금 바뀔지도 모르겠다. 연결이 초월적 수준으로 복잡해지는 초연결 사회에선 모든 사물을 자유롭게 작동할 수 있다. 머리 위를 나는 드론으로 커피와 구급약을 전달받고, 미용실에 가면 이전에 어떤 화학제품으로 파마를 했으니 얼마간은 쉬는 게 좋겠다는 엄마와 같은 친절한 조언도 들을 수 있다. 그뿐이 아니다. 아이폰의 시리 같은 음성인식 기술을 이용해 말로 뭐든지 작동할 수 있다. 일례로 사용자가 외출한 시간에 빨래와 설거지를 하고 집 안 청소를 하는 건 기본. 인공지능과 빅데이터가 집안일을 파악하고, 그 패턴에 맞춰 가사를 돕는다. 당연히 집은 고급스러운 컨테이너 벨트 라인처럼 가사를 자동으로 처리한다. 그때쯤이면 “국 떠라”, “밥 식는다. 빨리 와라” 같은 어머니의 정감 있는 목소리는 식탁에서 사라질지 모른다.
하지만 사물인터넷을 통한 초연결 사회에서 본격적인 로봇 사회로의 진입은 시간이 꽤 걸릴 거다. 그럼에도 주방과 연결된 식탁에 로봇 팔 정도는 곧 보급될 전망이다. 이미 이웃 나라 일본에선 로봇 팔이 일반 식당에 투입돼 식자재를 다듬고 조리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점 하나. 이러한 디지털 세계에서 아날로그적 감성은 어떻게 신기술과 만나게 될까? 지금은 없는 미래의 기술로는 과연 인간의 추억이나 감성과 관련된 것도 재현할 수 있을까?
추억이라는 건 사실 사물이나 장소에 기억을 아로새기는 걸 말한다. 대학 시절, 필자가 다닌 대학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시선을 끄는 나무는 아니었지만, 해 질 녘 하늘을 바라보면 캠퍼스의 가로등불이 켜지기 직전까지 늘 시선에 있던 나무였다. 필자는 어릴적 어머니와 함께 남산식물원에 다녀온 이후 나무라면 다 좋았다. 한데 만약 초연결 사회가 도래하면 그리고 인간의 아날로그적 습성이 기술에 투영된다면 추억 또한 사물에 바로 새길 수 있다. 나무에 사물인터넷으로 센서를 달고, 그 자리에 이전에 필자가 앉아있던 모습을 영상으로 저장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머지않아 이런 일이 정말 벌어진다면, 그런 날이 온다면, 필자는 미래의 어느 날부터는 늘 대학 캠퍼스를 방문하게 될지 모른다.
얼마 전엔 지인 한 명이 사업 아이템에 대해 상담을 청했다. 하와이 코나 농장에 있는 커피나무에 추억을 심자는 아이디어였다. 그곳의 농장에 커피 묘목을 심고, 거기서 생산한 커피에 100일 된 연인의 닉네임을 붙이자는 계획이었다. 코나 농장의 커피나무가 자라면서 두 연인의 사랑도 성장한다는 아이디어는 언젠가 둘이 결혼할 때 커피나무 열매까지 전달하자는 사업 모델로 발전했다. 커피나무의 생육 과정을 CCTV와 다양한 센싱(사물인터넷)으로 보여주면서 말이다. 그럼 두 연인은 서울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하와이에서 자라는 커피나무를 보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추억할 수 있다. 커피나무의 성장과 열매 맺기, 비바람의 어려움 등을 빅데이터로 분석해 연인들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색다른 기억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는 단연 4차 산업혁명이다. 이 화두엔 초정밀 지도와 빅데이터 그리고 인공지능 등의 기술 기반에 대한 담론이 잔뜩 담겨 있다. 이미 한국은 로봇과 드론 등의 기술이 세계의 다른 나라에 비해 뒤처져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그렇게 판단하긴 이르다. 원천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 응용 기술과 창의력 그리고 상상력으로 그린, 디지털에 덧입힐 아날로그적 서비스 분야는 언제든 빠르고 거대하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가온 초연결 시대,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재설계한 디지털 기술은 아날로그도 디지털도 아닌, 이전에 없던 새로운 체험과 추억, 마음을 우리에게 제공하지 않을까 싶다.
글 강장묵(고려대학교 정보창의교육연구소 연구교수)일러스트 조성흠